우이무이 偶爾無二
6.11 - 6.16, 2024
문래예술공장 갤러리 M30
전시 서문
기억은 실로 상대적이라 공간과 그 속 물건들의 크기, 보낸 기간 등을 자유자재로 변형시킨다.
용융되어 늘어난 유리 덩어리가 시간이 더해져 식어가며 예상치 못한 모양으로 투명해지는 것처럼, 정확하다 믿었던 기억조차 의외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과거의 산물, 망각의 조각들은 제각기 다른 형태로 우리의 곁을 맴돈다.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이 뜻하지 아니하게 일어난 일들, 하지만 오직 하나뿐이고 둘 이상은 없는 그 기억들을 이민지, 이혜진, 박은영 작가는 그들의 작업을 통해 끊임없이 융합하고 와해시킨다. 그 과정에서 마주치는 예기치 않은 사건, 실험과 만남들을 작품 위에 기록하며 무수히 쌓아올린다.
지극히 개인적인 세 작가의 기억들이 상응하며 발현되는 우이의 시너지는 감상하는 이로 하여금 기억의 유일성과 우연성을 반추하게 한다.
이민지는 유년 시절 캐나다 벤쿠버에서 세라(Sarah)라는 이름으로 살며 자유롭게 자신을 표출하던 행복한 기억 속의 풍경을 되살리는 작업을 한다.
작가는 아직도 밴쿠버에 살고 있었다면 어떤 풍경을 바라보고 있을지 상상하는 과정을 통해 그저 유년기를 보냈던 장소를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실 속 답답하고 공허한 문제에서 벗어난 위로의 공간으로 확장시킨다. 얇은 순지의 투과성을 이용한 배채(背彩) 기법을 활용함으로써 만들어 낸 우연적 효과들은 소극적인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세라의 이상적인 시선을 효과적으로 그려낸다.
이혜진은 인간관계에서의 기억들과 본인만의 루틴을 화면에 옮겨 기록하며 평온함의 시각적 표현을 실험한다.
작가는 ‘관계’에 대한 집착을 분산시키기 위한 목적성을 규정하고, '분산'이라는 목표 아래 '백, 배접, 페이퍼컷팅'이라는 세 가지의 규칙을 따른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은 초동의 그림에 대한 본인의 집착을 깨뜨리고 평온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함이기도 하다.
도달한 그곳에 꼭 평온이 존재한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 과정 속에선 평온하고자 하는 욕구와 기대감이 깃들어 있다.
박은영은 사물이나 풍경을 볼 때 느껴지는 기시감으로부터 호출되는 유년의 기억을 소재로, 떠오르는 이미지와 말들을 수집한 것을 바탕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파편적으로 떠오르는 기억을 직관적으로 옮기고, 기억으로부터 부유하듯 떠오르는 기호적 형상들을 감응하는 대상에 따라 재구성한다.
어린 시절에는 소중하게 간직 했지만,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 물건들을 대상으로 시작된 작업은 유실된 기억들, 어렴풋한 단상들, 장면들을 모두 포함시킨다. 작가는 개인의 기억으로부터 출발한 작업이 타인과 공유될 수 있는 지점을 찾고자 한다.
일별에 스쳐지나간 인광의 기억부터 눈길을 주어 자리한 부동의 기억들까지, 세 작가는 순간의 칸으로 그들의 존재를 현현한다. 작가들은 본인만의 시각과 색을 담아 새로움과 지루함을 익숙함으로 부드럽고 면면히 풀어놓으며 재인과 소거의 반복,
불온한 기억의 리프레이밍을 거친 망각들을 마음 속 지형도 안으로 끌어들인다. <우이무이 偶爾無二>는 우연과 유일, 작품과 관객 간의 공생적 상호작용을 탐구하며, 일상과 기억 사이의 미묘한 순간들을 발견 및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작가 박은영 이민지 이혜진
기획, 글 송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