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Joseph's Website:https://sites.google.com/view/ict-joseph
학창시절
1954년경 사진 앞줄 왼쪽 형(조석환,당시 10세), 오른쪽 본인(조석팔 당시7세), 뒤줄 왼쪽 집안조카(조용덕), 오른족 6 촌형(조광석, 히로라고 호칭,, )
1963년경, 형과 함께(상의는 형의 옷을 입음)
정확한 년도는 기억이 없으나 60대 초반에 조석헌선생께서 전근가시면서 한양조가 족친학생들을 모두 집합시켜서 기념사진을 찍음(족친에 대한 애정이 깊으신 집안 형님이시자 선생님이 셨음)
- 앞줄 왼쪽 : 박원양, 권칠영, 이영길, 박재경
- 뒤편 왼쪽: 김정원, 윤홍기, 이재국, 조석팔, 전해섭, 신순진 , 여기서 권칠영, 박재경, 전해섭이는 이미 저세상으로 같다고 한다. 윤홍기는 지금도 어릴때의 그 소탈함과 익살스러움으로 친구들을 웃기게하는 재능을 아직도 지니고 있다. 나와는 재미있는 추억을 많이 지니고 있다. 중학교시절에는 주식이 보리밥이다. 이 보리밥을 먹고나면 깨스가 엄청많이 나온다. 홍기와 나는 어릴때 장난기가 심하여 수업시간에 교대로 방귀(깨스)를 방출하여 선생님께 야단맞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나는 체육 체조시간에 체조동작때 마다 깨스를 나누어서 방출하다가 남경희체육선생한테 밧다 맞은 일이 있다. 그리고 시험시간에 갑자기 왠 백지 시험답안지가 내 뒤에서 넘어오면서 내 답안지를 가져가는 것이 아닌가. 홍기 이친구가 내 답안지를 가로챈 것이다. 이때 감독관으로 들어온 체육교사 조동묵선생이 답안지를 가져간 홍기를 부르지 않고 나를 나오라고 하더니 나에게 빰을 그 두꺼운 손으로 사정없이 내리 쳤다. 당시의 홍기 부친은 학교의 명망있는 교무과장선생님이셨다. 그래서 그런지 홍기에게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벌을 주는 것이 아닌가? 지나고 나니 다 아름다운 추억이였다.
정다운 친구들: 조석팔, 정길윤, 정인섭
고3 마지막 여름방학 들어가기 전, 학창시절 서로 다정하게 지내던 사총사 친구들 생각의 고삐가 풀린 나머지 막걸리 한잔씩마시고 사진관에 들어서 사진을 찍었음, 나는 너무많이 마셔서 눈동자가 풀렸음,
앞줄 왼쪽 정인섭, 조석팔, 뒷줄 왼쪽 박찬우, 정길윤.
왼쪽: 정인섭, 정길윤, 조석팔
이재림, 조석팔
전해섭,조석팔
신주철이와 함께 설악산 울산바위를 미는 장면(뻥의 이야기: 울산바위가 몇일전에 설악산 계곡을 울리면 뻥소리와 함게 계곡을 굴러 떨어졌다고 한다. 알고보니 "뻥"이였다....)
1969.4 군입대하기직전 형과 함께 기념 (불광동사진관에서...왼쪽 조석팔, 오른쪽 조석환)
대학 4학년 졸업앨범 사진
덕적도 앞바다 선상에서 앞줄왼쪽 김재남, 임동우, 김창희, 조석팔, <정형섭> 뒷줄 왼쪽 정형섭, 윤천식, <?> (제대하여 복학후 후배 재학생들과 함께),,
대학 4학년 증명사진
1973, 김평범교수와 함께 도봉산산행, 뒷줄 오른쪽 3번째 조석팔 ( 앞줄 오른쪽 ? 이승덕,< ?> 김폄범교수, 한영선, 이문재, 조민환, 박성국, 유균상, 뒷줄 오른쪽 송한일, 국규주, 조석팔, 박춘배, <?> 전완근,<?> 정태익, 등)
1973, 학과 우승프로피, 오른쪽 조석팔, 윤천식 , 조민환, 이문재,왕지균교수, 신동수,
학부 4년간 공부열심히했다고 우수상 수상(학창시절 문교부 재단장학생이였음)
우수상 상패
졸업식에 참여한 이모부님내외분
식장 오른쪽 우영선, 국규주, 조석팔
야외식장
상장받고 기분좋아서 내려옴
석사학위수여식장
석사우수논문상 수상
학위수여식때 형과 함께
한양대 전자통신 석사동기들 (왼쪽 이대성, 조석팔,황인팔,홍권표, 김원준,김재열)
1992 공학박사 학위수여(경희대 전자공학박사), 조영식총창으로 부터 학위수여 장면
92. 본관 건물앞에서
뒷바라지 수고한 아내와 함께
형님 내외분과 함께
왼쪽 친구 정길윤,조석팔, 권영도
왼쪽 차예, 경희, 형수,아내,조석팔,형
조석팔,남인식,형
이대영교수님과 함께
이주찬과장,여민기과장, 김영철박사
장모님과 함께
외사촌질녀 차예와 함께
현정이와함께
형 학위(연세대 경영학박사)수여식참가, 왼쪽 조석연부총장(평택대), 형수님, 형님, 집안조카 건영씨(경상북도 도청 국장, 영양군수 역임) 내외, 아내
형 학위(연세대 경영학박사)수여식 참가. 형과 나와는 3살차이다. 만학을 하신분이다. 참으로 자랑스럽다 . 아버님께서 일찍돌아가시고 어머님과 함께 3식구가 살아온 지난날의 살아온 삶을 글로 다 표현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비록 환경은 어려웠지만 한 이불밑에서 함께 딩굴며 생사고락을 함께 한 지난날의 일들은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도 가질수도 없는 인생 살아가는 데 삶의 소중한 자산이요 아름다운 추억이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아버지처럼 동생에 대한 사랑은 지극하였다. 나의 인생의 목표는 3번 바뀌었다. 어릴때는 목회자가 되는 꿈, 중년이 되어서는 무역선 타고 돈버는 꿈, 군대 제대할 무렵에는 학교를 복학하지 않고 중장비 기사가 될려는 것이 꿈이였다 . 그러나 제대하여 집으로 돌아오니, 형이 내 복학수속을 다 밟아 놓았지 않는가. 당시의 형은 결혼하여 아이들과 가정을 꾸려가기에도 어려운 환경이였지만 동생에게 최선을 다하였으며 올인하였다. 나와는 성격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어느누구도 따라갈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도 이를 헤쳐나가는 형의 그 지구력과 집념은 하늘로 부터 받은 귀한 선물이다. 내인생에 이러한 형을 내 곁에 있게하시고 어머님을 통하여 신앙의 유산을 남겨주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비록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9) 말씀으로 오늘 이곳까지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남은 삶도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줄 믿고 천국 소망을 품고 오늘을 살아간다.
졸업식을 마치고 형과 잠시 한장 찍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