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심리학의 주류는 아무래도 미국입니다. 또 미국 대학은 학비에 대한 걱정도 없는 편이어서 많은 학생들이 미국 대학원 과정을 선택합니다. 미국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한 준비 사항을 알아봅시다. 소제목을 달기는 했지만, 위에서부터 하나씩 하나씩 찬찬히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1. 대학원 과정: 박사 vs. 석사

학문을 목적으로 하는 미국 대학원은 대부분 석박사 통합과정입니다. 즉,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부를 마치고 별도의 석사과정 없이 곧장 대학원 과정을 들어간다는 말이고, 그 과정은 박사과정이라는 겁니다. 

한국에서 학부를 마친 학생들 역시 곧장 박사과정(석박사 통합과정)으로 지원할 수 있습니다. 물론 박사과정 없이 석사학위만을 제공하는 대학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밑에서 다시 설명합니다. 


2. 장학금과 생활비 지원

미국의 대학원 과정은 장학금이 많습니다. 특히 심리학 박사과정의 경우는 학비는 거의 무료이고 생활비까지 지원받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생활비의 경우, 주변 물가에 따라 금액이 상당히 차이가 나는데 기본적으로 대학이 있는 지역에서 '생존'할 수 있을 만큼은 줍니다. 즉, 돈이 없어서 대학원을 못갈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미국으로의 대학원 과정 유학이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이죠. 

장학금을 안 받아도 되니 뽑아달라고 하는 요구는 다른 학과에서는 가끔 통하는 것 같기도 한데 심리학과에서는 거의 통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외부 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받는 것은 입학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유학생을 지원하는 재단은 여러 개 있지만 아래의 재단들이 그 중 특히 좋은 듯합니다.

  - 관정 이종환 교육재단

  - 한국고등교육재단


3. 지원시기와 준비사항

미국 대학원은 가을학기에 시작하고 그 전 해 12월에 원서 접수를 마감합니다(대부분은 12월 1일, 빠른 곳은 11월 15일). 대부분의 대학이 1년에 한 번만 선발합니다. 12월 원서 지원까지 필요한 사항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영어성적: GRE와 TOEFL

두 성적은 12월 원서 지원 전까지 미리 받아 놓는 것이 좋습니다. 12월이나 1월에 대학교로 성적을 직접 보내는 것은 가능하지만, 자신의 성적을 모른 채로 지원하는 것은 별로 권장하지 않습니다. 두 성적이 높으면 당연히 좋겠지만, 높을수록 좋은 것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 선을 넘으면 더이상 두 성적에 대해 신경 쓰지 않습니다. 물론 GRE 성적의 경우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지만, 이 장학금을 지원 당시에 너무 많이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 또 GRE는 최근 영어권 학생들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비판이 많아 요구하지 않는 대학들도 늘어나는 추세이니 미리 확인해 보면 좋을 듯합니다. 

많은 학교들이 재학생들의 학교성적 및 영어성적들의 평균을 학과 홈페이지에 올려 놓으니 가고자 하는 학교의 평균이 어느 정도인지는 미리 알아두면 좋을 듯합니다. APA에서 매년 발간하는 Graduate Study in Psychology라는 책을 보면 모든 대학원 과정의 신입생 평균 점수와 장학금 정보, 나아가 지원자 수와 합격자 수 등의 정보가 나옵니다. (심리학과 사무실에 책이 있으니 참고하세요.) 그리고, 영어시험은 여름방학까지 모두 끝마치는 것이 좋습니다. 


  (2) Statement of Purpose (SOP)

일단 학부성적과 영어성적, GRE 성적이 충분하다 싶으면, 교수가 실제로 가장 관심 있게 보는 것은 SOP입니다. 쉽게 말하면, 학업계획서 같은 겁니다. 대부분의 심리학 박사과정은 지도교수와 1대1의 도제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지도교수와 연구주제가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입니다. 열정 가득하니 뽑아만 주시면 목숨바쳐 공부하겠다는 말은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보통 2-3쪽 정도의 분량으로 작성하는데 이 공간을 이용하여 내가 어떤 주제에 관심이 있고,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 주제를 공부하기 위해 어떤 준비가 되어 있으며 졸업 후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등을 적어야 합니다. 즉, 왜 내가 이 과정에서, 특히 이 지도교수 밑에서 공부해야만 하는지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나와야 합니다. 참고로, 대부분의 교수들은 제자들이 교수가 되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마지막 부분은 교수가 되고 싶다고 적는 게 유리합니다. 

연구주제는 '내가 당신 논문을 읽었습니다'라는 느낌이 들도록 자세하게 적어야 하지만, 지도교수로 하여금 '이건 내가 연구하는 거 아닌데' 하는 느낌이 나게 너무 자세하게 적는 것도 피해야 합니다.  


  (3) 교수와의 연락

앞서 말했지만, 미국 대학원의 경우 학과가 학생을 선발하기보다는 교수가 자기 학생을 선발하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모든 교수가 매년 학생을 받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지원 전에 관심 있는 지도교수에게 미리 이메일을 보내 해당 년도에 신입생을 선발할 계획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것에 대해서 부담을 느낄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이메일을 보낼 때는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관심 연구주제 등을 언급합니다. 너무 많은 정보를 첫 이메일에 적기보다는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기꺼이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식으로 마무리하는 게 좋습니다. 본인의 CV가 인상적이라고 생각하면 첨부 형식으로 보내는 것도 괜찮습니다.


  (4) CV

교수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메일을 보내면 종종 CV를 보내라는 요구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미리미리 알차고 또 멋지게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학과 홈페이지에 보면, 대학원생들의 명단이 나오는 곳이 있는데 이런 곳들을 잘 살펴보면 자신의 CV를 올려놓는 대학원생들이 있습니다. 이 학생들의 CV를 서너개 살펴본 후에 어떤 내용을 어떻게 적어야 할지 고민하여 만들어 놓으면 됩니다. 박사 후 막 조교수가 되신 분들의 경우 학생 때 사용하던 CV를 올려놓는 경우도 있으니 이런 분들의 CV를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5) 추천서

지원할 때 보통 추천서 3개를 요구합니다. 즉, 3명의 교수님들께 추천서를 부탁해야 한다는 겁니다. 추천서를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한국의 교수님들은 정말 바쁩니다. 따라서 10월 말 정도에 지원하는 대학의 명단과 함께 추천서를 부탁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추천서를 부탁할 때는 자신의 성적표, CV, SOP 등을 함께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추천서는 대부분 자유양식이기 때문에 일단 한 번 작성하면, 실제 발송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요즘은 온라인상으로 다 해결할 수 있고요. 밑에서 다시 얘기하겠지만, 보통 10개 넘는 지원서를 내야 하기 때문에 너무 많은 양의 추천서를 부탁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눈 딱 감고 많이 부탁해도 됩니다.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원서 지원이 12월 1일이라고 할 때 지원자(학생)가 11월 30일에 온라인 서류 작성을 하게 되면 추천서를 써줄 지도교수님께 추천서 이메일이 11월 30일에 갑니다. 그러니 결국 추천서를 실제로 작성할 시간은 딱 하루가 되는 거죠. 그래서 온라인 서류 작성을 좀 일찍 시작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부분 학교 시스템에서 완전히 지원을 끝내지 않아도 추천자 입력은 가능) 지도교수님들이 시간을 내지 못하면 결국 손해보는 것은 지원하는 학생 자신이니까요. 


4. 지도교수 검색 방법 및 살펴봐야 할 사항들

미국 대학원 진학 과정에서 지도교수의 역할이 이토록 중요한데, 그럼 어떻게 자신에게 맞는 지도교수를 찾을 수 있을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논문을 통해서입니다. 논문을 읽다가 '아, 이 논문 정말 좋다'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 그 교수에게 지원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만으로 교수를 찾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보통 10개에서 15개 정도의 대학원에 지원서를 넣기 때문이죠. 심리학 박사과정의 경우 미국 내에서도 아주 인기가 많기 때문에 많은 대학에 지원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저는 아래의 방법을 추가로 권합니다. US NEWS 등에 나오는 대학 순위를 살펴보고 상위 130 등 정도의 대학이 어디인지 봅니다. 그리고 각 대학의 심리학과 홈페이지를 들어가서 자신의 전공 분야 교수들의 사이트를 읽어보는 겁니다. 엄청 많은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지만 분명 필요한 작업입니다. 구글에 들어가서 '대학이름 psychology' (예, Stanford Psychology) 정도로만 입력하면 곧장 심리학과 홈페이지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일단 연구주제가 맞는 교수를 발견하게 되면 CV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야할 것은 논문 출판입니다. 지난 몇년 간 매년 서너 편 이상씩 꾸준하게 논문을 출판하는지, 출판을 주로 혼자 하는지 학생들과 함께 하는지 등을 반드시 봐야 합니다. 무능하거나 게으른 교수 밑으로 들어가게 되면 인생 걷잡을 수 없이 힘들어집니다. 


5. 연구경험의 중요성

심리학과 대학원 선발 관련 사이트를 읽어보면, 지원시 필요한 사항으로 연구경험을 항상 언급합니다. 한국에서는 대학생들이 연구에 참여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이 부분을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허나 미국 대학생들의 경우 연구보조원으로 일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습니다. 그래서 석박사 통합과정에 필요한 SOP를 작성할 때나 CV를 작성할 때 충분히 자신의 연구경험에 대해서 쓸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이 한국에서 학부를 마치고 곧장 미국 대학원으로 입학하기가 어려운 이유이고, 많은 학생들이 국내에서 석사를 하는 이유입니다. 자신의 연구주제와 얼마나 맞는지에 상관없이 어떤 연구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경험은 엄청 소중합니다. 만약 학부 마치고 곧장 지원을 생각한다면, 학부생 연구보조원을 선발하는 랩에 지원하여 연구경험을 쌓는 것이 필요합니다. 


6. 사립대학 vs. 주립대학

보통 주립대학이 프로그램 종류도 다양하고 매년 선발하는 학생도 많은 편입니다. 

여러 주립대학들이 있지만, 그 중 각 주를 대표하는 대학들은 크게 'University of 주이름'이거나 '주이름 State University'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보통 전자가 더 우수한 대학입니다. 캘리포니아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UCLA, UC Berkeley 등은 캘리포니아의 대표적인 주립대학이죠. University of California at LA, 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at San Diego 이런 식으로 주가 큰 경우에는 위치하고 있는 도시 이름이 붙기도 합니다. 

한편, California State University at Northridge, California State University at Fullerton 등 한 등급 정도 낮은 대학들도 존재합니다. 물론 대학의 등급을 일반화시키기는 어려울 테지만요. 예외가 되는 대학이 University of Pennsylvania인데 여기는 사립대학이고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가 펜실베니아 주를 대표하는 주립대학입니다. Ohio 주의 경우도 대표적 주립대학의 이름은 Ohio State University입니다. 

외국인으로서 대학원을 지원할 때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주립대학의 경우 내국인과 외국인의 학비 차이가 엄청 크기 때문에 학과나 교수가 외국인 학생에게 보조해야 할 금액이 더 커집니다. 따라서 주립대학으로 지원할 경우에는 지도교수에게 미리 연락하여 외국인 신분임을 밝히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미국이 경제위기로 허덕였던 2008년에 지원을 했는데 장학금 지원이 어려워 외국인을 선발하기는 힘들다는 답장을 종종 받았습니다. 물론 장학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받는 경우라면 문제가 되지 않겠죠. 

이런 이유로 외국인들에게는 사립대학이 더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 허나 사립대학의 경우 선발 인원이 적고 좋은 학교가 많지 않다는 문제가 있죠. 그래서 결국 두 종류의 대학에 모두 지원하기가 쉬울 겁니다. 어느 쪽이든, 지도교수에게 연락하여 문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7. 석사과정이 별도로 있는 대학

석박사 통합과정 외에 석사 학위를 별도로 수여하는 과정도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보통 Terminal Master's Program이라고 합니다. 간혹 석박사 통합과정도 있으면서 이렇게 석사 과정이 별도로 있는 경우도 있는데 New York University가 대표적입니다. 이런 경우, 모든 장학금은 통합과정으로 흘러 가기 때문에 학비 및 생활비 전액을 스스로 부담해야 합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석사를 하지 않고 미국에서 곧장 석사를 하고 싶은 사람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통합과정은 없이 석사과정만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대학들은 보통 석사과정 학생들에게도 장학금을 주기 때문입니다. 웬만큼 좋은 대학이면서 이렇게 장학금을 주는 대학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위의 두 곳은 입학하는 모든 학생들에게 장학금 및 생활비를 주고. 밑의 두 곳은 우수한 학생들에게만 장학금 및 생활비를 제공합니다.

 - College of William and Mary

 - Wake Forest University

 - University of Dayton

 - Villanova University


8. 학부 마치고 곧장 대학원 유학을 가도 괜찮을까?

앞서 말했듯, 국내에서 학부 과정만 마쳐도 곧장 석박사 통합과정으로 입학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게 과연 좋은 선택일지는 잘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어떤 교육과정에 입학만 하면 거의 모든 것을 이뤘다고 생각하는데 박사과정 유학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나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기를 희망하는 경우에는 학위 과정 중 얼마나 많은 논문을 출판했는지가 다른 무엇보다도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학부를 마치고 곧장 유학을 가는 경우 이 부분에서 크게 세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선, 언어의 장벽입니다. 미국 대학원에 가게 되면 더이상 한국 학생과의 경쟁이 아니라 미국 학생들과의 경쟁인데 그들의 언어로 경쟁해야 합니다. 둘째, 문화적 적응입니다. 단순히 장은 어디에서 보고 식당 예절은 어떻고 하는 문제도 어렵지만, 수업 시간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발표를 하고 다른 동료 학생들과는 어떻게 관계를 유지할지 등의 문제는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셋째, 연구 경험입니다. 미국 학생들은 학부 다닐 때부터 여러 연구실에서 보조원 생활을 하며 연구에 대한 경험을 쌓는 게 일반적인데 한국 대학에서는 상대적으로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연구와 관련해 아는 것도 부족한데 적극적으로 의견 개진하는 것도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얘기를 해야 하니 정말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 석사 과정을 밟으며 최소한 한 가지, 즉 연구 경력만큼은 미국 학생들보다 더 뛰어나게 준비해서 가는 게 좋은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석사과정 중에 논문도 써보고, 가능하면 출판도 해본 경험이 있을 때 비록 떠듬떠듬 말을 한다고 해도 미국 지도교수와 다른 학생들이 여러분의 말에 귀 기울여 주고, 논문을 쓸 기회가 있을 때 '경험자'인 여러분에게 제1저자로 논문을 쓸 기회를 줄 겁니다. 

결론적으로, 위의 세 가지에 있어서 스스로가 얼마나 자신이 있는지 생각해 본 후에 국내에서 석사과정을 거칠지, 곧장 유학을 갈지 결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