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과 함께, 나 또한 병역을 거부한다.

2017. 4. 25. 재판 방청 후기

글 | 김경희 (참여연대 간사, 병역거부자 홍정훈 후원회장)


최후 변론을 하던 임재성 변호사가 말을 멈췄다. 목소리는 떨렸고 울먹이는듯 했다. 굳이 고개를 들어 확인하지 않았다. 이미 방청석에 앉은 모두가 울고 있었다. 조금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저와 같은 병역거부자들의 감옥행이 11년이나 지속될 것이라고 결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임재성 변호사의 말에, 생뚱 맞지만 11년 전에 난 뭘 하고 있었는지 떠올려봤다. 그때에도 누군가는 이렇게 고된 시간을 견뎌내고 있었구나 싶어 괜히 부끄럽고 미안해졌다.

4월 4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은 홍정훈 활동가를 응원하기 위해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홍정훈은 무죄다’ 손피켓과 꽃을 든 사람들의 얼굴이 긴장되어 있어서 사진을 찍는 나까지 긴장됐다. 재판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홍정훈 활동가가 나타나지 않아 초조해지던 때에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피켓을 든 우리를 찍으며, 재밌다는 듯이 홍정훈 활동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병역거부자 홍정훈 재판 날,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홍정훈의 무죄를 주장하는 피켓을 들고 있던 홍정훈 후원모임 홍합지졸과 길을 건너며 그 모습을 보고 좋아하는 병역거부자 홍정훈

재판장에 들어온 판사는 오후 첫 재판인데도 불구하고 꽉 채워 앉은 방청단을 보고 놀랐는지, 첫 재판 때와 사뭇 다른 공손한(?) 태도로 재판을 시작했다. 증인으로 나온 홍정훈 활동가의 친구는 “정훈이가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고 놀러 다니면서도 폭력적인 것에 거부반응이 심했고 이를 별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나중에 잘 알게 되면서 ‘비폭력적인 가치관과 신념을 가졌구나’하고 이해하게 되었다면서. 함께 참여연대에 들어와 같이 활동을 하며 겪은 그도, 과연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문화에 억압받길 바라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부당한 폭력과 그 폭력을 행사하는 군대라는 조직과 군사주의 문화에, 보다 적극적으로 저항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거대한 국가라는 단위에서 군대를 통해 행사하고자 하는 폭력에 결코 참여할 수 없습니다.”


법정에 서야만 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드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비참함을 느낀다는 그는 최종의견 진술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자신의 신념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병역을 거부해야 한다는 확신이 크다”라고 말했다. 담담하지만 울림있는 그의 고백이 부디 판사에게 전해지기를 바랐다.

재판을 준비하는 중에 EBS 토크쇼 <까칠남녀> 예고편을 봤다. 내가 본 예고편은 이분법적 젠더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젠더 별로 역할을 부여해서 여성에게는 여성스러울 것을 강요하고 남성에게는 남성스러울 것을 강요하는 문화를 말하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예고에 스치듯 나온 내용이다. 토크쇼의 패널 중 한 사람이 이런 성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사고가 군대에서 만들어지고 군대에 다녀온 사람들에 의해 공유되고 강요된다는 것을 콕 집어 말했다. 우리 사회와 구성원은 군대라는 조직과 군사주의 문화가 끼치는 악영향을 이미 직감적으로 이해하고 해결책을 고민하고 있다고 느꼈다. 4월 20일 열린 선고공판에서 판사가 말한 ‘사회적 합의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라는 것은 이미 사회구성원들이 합의한, 직감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을 인정하지 않음으로 이해됐다.

선고 공판을 앞두고 열린 홍정훈 후원의 밤. 홍정훈의 친구와 동료 활동가들이 모여서 그의 병역거부를 축하(?)했다. 이 후원의 밤 덕분인지, 다행히 법정구속이 되지 않았고 불구속인 상황에서 2심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병역거부는 홍정훈 활동가 만의 일이 아니다. 11년 전 병역거부를 했던 임재성 변호사의 일이고, 수감 지원 후원의 밤에 와서 병역을 거부할 것이라고 털어놓은 또 다른 내 친구의 일인 동시에, 나의 일이다. 온전히 자신으로 살고자 하는, 자신을 향한 폭력적인 억압에 저항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의 일이다.

홍정훈 활동가가 선택한 길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그래도 너무 어렵지 않기를 바란다. 불안과 외로움이 그를 너무 세게 흔들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함께 선언하고자 한다. 나 또한 병역을 거부한다. 우리의 온전한 자유를 위해 함께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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