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들지 않을 자유'를 처벌하는 나라

2017. 4. 2. 경향신문 오피니언

글. 민선영 | 청년참여연대 공동운영위원장


2년 전만 해도 줄줄이 입대하던 대학 동기들이 어느덧 제대해 함께 학교를 다니고 있다. 운전병이었던 친구가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이야기, 포병이었던 친구가 왕따인 동기를 대하기 껄끄러워했던 이야기, 의무병이던 친구가 관심병사가 되지 않도록 애썼던 이야기 등은 이따금 술자리에서 회자되는 추억이 됐다.

옛날부터 ‘군대’란 함부로 이야기해서는 안 될 남성의 고통이었다. 물론, 장애인도 성소수자도 아니어서 군대에 다녀올 수 있었던 ‘정상 남성’인 자들만의 고통이다. 그 밖의 이유로 군대에 다녀오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따금 입단속을 해야 한다. 어느 순간 군대 이야기로 대동단결하는 사내들 사이에서 소외되더라도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 낫다. 하지만 맞아야 정신 차린다며 체벌하는 가정, 선배에게 이쁨받아야 하는 대학, 까라면 군말 없이 까야 하는 직장의 구성원이 될 준비를 하고 있을 때마다 느끼는 씁쓸함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군대에 가지는 않았으나 그들처럼 ‘군기’에 익숙해져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면 나도 군대 얘기 좀 하고 문제제기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군대에 가기 싫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군기가 바짝 든 내무반 생활이 불편해서일 것이다. 1930년대와 1940년대에 일제 장교가 병사를 구타하는 것을 하나의 정책으로 들여온 뒤 군대 내 폭력은 ‘내리 갈굼’, 얼차려 등의 문화로 자리 잡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말을 듣지 않으면 때리고 실수하면 맞는 문화에서 인간의 자존감은 바닥 아래로 떨어져 무엇에도 복종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이것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병사가 되기 위한 비인간화 과정이다.

이 고통을 거부한 병역거부자에 대한 비난은 ‘너희가 지키지 않으면 누가 나라를 지켜?’로 시작된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하고 한 해에 1000명도 안되는 병역거부자들을 대체복무로 편입하면 군대가 해체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현역 군인 46만명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12만명 정도가 이미 대체복무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음은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병역거부는 이미 곪을 대로 곪은 군대에 대한 직접적인 고발이다. ‘군대 가고 싶어 하는 놈 나와보라 그래, 근데 너희는 왜 안 가?’라는 말 속에서 그 누구도 가기 싫어하는 군대의 개선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병역을 기피하든 거부하든 군대를 거부하는 사람들, 또는 병역에 면제된 사람들 심지어 군대에 갈 기회조차 없는 사람들이 비난을 뒤집어쓰게 될 뿐이다.

UN자유권규약위원회는 2006년 11월에 이미 한국 정부에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을 중지하고 충분한 보상과 함께 그들을 구제해야 한다는 권고를 내렸다. 이례적으로 강한 어조의 권고였다. 정부는 분단국가이자 아직 휴전 상태인 한국엔 상당한 군사력이 필요하므로 그럴 수 없다는 반박을 했다. 그에 다시 자유권규약위원회는 그 점을 참작하더라도 대체복무로 병력을 전환했을 때 군사력 보유에 문제가 생긴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서술한다. 유독 몇몇 분야에서 세계화에 뒤처지는 늦깎이 한국이지만 제 발로 들어간 기구에서 배 째라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시민교육을 받은 청년에게 1년9개월 동안 비인간적 생활을 강요하고 이를 거부한 자에게는 감옥이라는 처벌을 내리는 국가. 병역을 거부한다는 것은 이런 비상식적인 국가에서 상식적인 국민의 길을 선택한 일이라는 어떤 병역거부자의 외침이 아직도 광화문 거리 한복판에서 메아리처럼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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