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XIII
허구적 대상에 대한 존재론적 책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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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는 온도계를 참고함으로써 방 안의 온도에 대한 믿음을 형성한다. [...]그러나 사실 온도계는 고장났으며, 정해진 범위 안에서 무작위하게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다. Temp가 모르게, 방 안에는 온도조절기를 조종하는 어떤 행위자가 숨어있으며, 그의 역할은 Temp가 온도계를 볼 때마다 방안의 온도가 온도계와 일치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Temp 사례는 설령 행위자가 적절한 현실 인식 능력을 지녔고, 그 현실이 인식된 것과 일치하는 경우에조차도 지식을 얻을 수 없는 상황을 상상합니다. 그 가정은 주인공이 알지 못하는, 방 안에 존재하는 숨겨진 행위자를 가정합니다. (가장 간편하게는 악마라고 이름붙일 수 있을) 그 숨겨진 온도조절자는, 주인공 Temp가 고장난 온도계를 바라볼때마다 무작위한 값에 맞추어 방 안의 온도를 조금씩 춥거나 덥게 만듭니다.
그런데 우리는 Temp 사례의 숨겨진 행위자(hidden agent)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존재론적으로 책임지거나, 알레고리로 치부하여 텅 빈 이름으로 만들어버리기에 앞서, 그것이 시간을 접었다가 펼치며 오고가는 귀신의 굴신왕래屈伸往來를 보여주는 하나의 자연적인 원리로써 정초된 것은 아닐까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귀신이 하나의 합리적 자연 원리라는 사실이 새롭습니까? 조선에서 귀신의 존재가 초월적이 된 것은 18세기의 실학과 유보론의 영향 이후에야 가능해진 것입니다. 가장 누추하고 어두컴컴한 구석에 혼자 있을 때도 경계하고 삼갈 것을 제언하는 불괴옥루不愧屋漏는 귀신의 집이 아니라 가장 이상적으로 작동하는, 가설된 두려움의 극장입니다. 이 때의 상제귀신은 알레고리도, 텅 빈 이름도 아닙니다. 이것은 너무도 생생하게 현재로 합성해 들어옴으로써, 우리가 현재 미래라고 부르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어떤 대상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그 대상을 계속해서 알지 못하는 상태로 만드는 방해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이 방해물이 고의성을 갖고 있는가 아닌가는 부차적인 문제고요. 이것은 행운이건 불행이건, 어떠한 종류의 인식적 운도 차단하는 일을 필요로 하는데요. 하지만 운이 개입하지 않는 것(악마가 없을 가능성) 자체가 하나의 운일 수 있지 않을까요? 즉, 반 운 조건이 그 자체로 하나의 행운이 되고, 운이 개입하는 상황 그 자체가 불행일 수 있는 것입니다.)
* Duncan Pritchard, “Anti-Luck Virtue Epistemology”, The Journal of Philosophy, 2012, 109(3): 247-279. p.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