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LVII
가격 정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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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을 정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작품 가격을 정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물건값을 정할 때는 주변에서 파는 비슷한 것들과 비교해서 정할 수 있지만 작품의 경우 매우 그러하지 못하다. 가장 큰 문제는 나는 약간 비뚤어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삼성의 경기도 창고에 가면 수많은 미술품들이 재산 은닉과 탈세의 목적으로 보관되고 있다는 뉴스. 유럽 여러 나라들의 면세지역에는 미술품들이 면세 보관함에 쌓여서 세상 빛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탈세와 재산은닉의 수단으로 잠들어 있다는 뉴스.
이런 뉴스를 보고, 이렇게 작품들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난다. 그리고 모두와 좋은 것을 같이 나누지 않는 사람들이 싫다. 우연의 결과 얻어진 것들을 마치 자신의 소유인양, 자신이 모두 만들어 낸 것인 양 행동하고 인류의 기쁨을 훔쳐 가는 도둑들을 용서할 수 없다.
이렇게 삐뚤어진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내 작업이 자본주의 경제 안에서 제대로 유통되지 못하게 만들고 싶다. 그래서 작품 가격을 정하는 것은 더욱더 어렵다.
모순.
인간의 삶이 그러하듯 나의 삶도 생각도 모순덩어리라 먹고 살아야 한다. 돈도 필요하다.
이런 생각이 들면 내 작업의 가격이 위치하는 지점을 설정하는 것이 매우 어렵게 된다.
뿌연 안개의 어느 한 지점인데,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