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편*
쩝쩝산중
🐀🐀
왠지 비위가 상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신경이 쓰이기도 하나보다. 나는 언젠가부터 인스타그램 검색 탭에 떠 있는 음식 사진들을 눌러보게 됐다. 이것들은 식당 리뷰를 가장한 홍보 게시물이고, 처음 봤을 때 나는 좀 놀랍고 속이 더부룩해졌다. 이 사진에 가해진 보정이 음식을 맛나 보이기 위한 연출임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볼 수는 있었으나, 실은 그와 반대로 역겨워 보였기에 나는 내가 역겨워하는 이유나 이렇게 역겨워 보이게 찍는 이유, 또는 내가 알 수 없는 이런 사진이 갖는 효과 등이 궁금해졌다. 미묘하게 다른 차이가 있으나 사진의 공통된 점은 채도와 선예도가 극단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먹거리에는 한색보다 난색이 더 식욕을 돋운다고는 하지만 음식 사진이 너무 누렇고 시뻘게서 화마가 덮친 현장에서 마지막으로 내온 한 그릇을 찍은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저렇게 시뻘건 음식은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건지, 아니면 요즘 무슨 세대다 뭐다 하며 내세우는 신세대들은 사실 정말 나의 세대와는 분리되어 저렇게 시뻘건 음식에 군침을 흘리는 걸지에 대해 너무나도 궁금했다.
재작년쯤 핸드폰을 바꾸며 예전 핸드폰의 액정이 꽤 누렇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어쩌면 나의 편견과 의문은 말 그대로 색안경일 뿐이었나 자신감을 잃었던 시기도 있었으나 투명한 액정을 가진 새 핸드폰을 통해서 본 그 음식 사진들은 역시나 보기 역겨웠다. 정말 사진이 이렇다면 실제 음식은 어떨까? 단지 알 수 없는 맛돌이의 미감에는 단지 채도가 높은 사진이 맛나 보여서 보정을 과하게 한 것인지, 알고 보니 보정은 그다지 하지 않았는데 실제로 내오는 음식이 저 지경인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해갈되지 않는 궁금함이 남는 것이다. 진짜 저런 음식이 세상에 있는 것일까? 하지만 떡볶이가 점점 엽기적이게 되고 음식에 마약이나 핵이라는 말이 들어가며, 음식에 캡사이신을 적극적으로 처바르는 경향이 늘어났기에 실제로 저런 음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뻘건 사진에 곁들여 음식을 묘사하는 문구들도 이런 비위 상함을 증진했는데, 이런 맛스타그램에 빠진 자들은 꾸덕꾸덕하고 녹진한 것, 왕 커다란 것, 노릇노릇한 것, 매우 기름지고, 간이 자극적이고, 바삭하고 축축하며, 채 가시지 않은 핏물이 뚝뚝 떨어져 내리고, 치즈가 흘러넘치고, 쫀득쫀득하고 가격에 비해 양이 많은-보통은 그릇이 제 역할을 못할 정도로 흘러넘쳐서 테이블까지 소스가 흘러넘치는 모양새 등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이미 사진에서도 그릇을 들은 손의 엄지손가락이 음식에 담겨있는 경우도 많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저 음식들을 먹을 때 손과 입가에 뭔가를 묻히지 않고 먹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이런 음식 사진을 보고 찾아다니며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음식을 남기지 않고 먹기를 기원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세상 아래에는 지옥 비빔밥이라는 무시무시한 식사/형벌이 있기 때문이다. 지옥 비빔밥은 살면서 남긴 음식들을 모두 모아 비벼 먹는 밥이라고 한다. 음식을 남기지 말고 먹게 하려는 의도가 다분한 세계관 설정인데, 보통은 맛없는 것을 남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옥 비빔밥의 맛없음은 보장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음식을 남기는 죄악보다 많은 선을 이뤄서 지옥에 가지 않는다면 지옥 비빔밥은 면제되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사후세계나 신 등을 믿지는 않으나, 재밌으니 더 진행해 본다면 천국에도 천국 비빔밥이 있을 거라 생각된다. 지옥과 반대로 여기서는 생전에 남기지 않고 먹었던 모든 음식들을 비벼 먹는 것이다. ‘맛있는 것만 모았더니 왕 맛있다!’ 인스타 먹방러들의 감탄 리뷰가 천국의 나팔 소리와 함께 귓가에 울려 퍼지는 듯하다. 사실 지옥 비빔밥이나 천국 비빔밥이나 역겹기는 마찬가지다.
이는 천국과 지옥이 대립하는 구도가 아니라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은유하는 것은 아닐까? 교단 측에서는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지옥 비빔밥과 천국 비빔밥에 대해 교인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해석을 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 10년 전에 같이 기숙사 생활을 했던 친구 C는 어떤 생각을 할까? C는 신실한 신자였다. 위층과 아래층으로 나뉘었을 뿐, 한 침대를 쓰던 우리는 그럭저럭 사이가 나쁘진 않은 편이었다. 하지만 나는 C가 편하진 않았는데, 언제나 하느님에게 기도하고 감사를 돌리는 것이 나와 맞지 않았다. 게다가 피자를 시켜 먹을 때면 언제나 피자 도우 부분만을 남긴 채 내게 먹기를 권유하곤 했는데, 그 의도를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얘가 나한테 시비를 거나 싶기도 했으나 너무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피자 꽁다리를 받아먹을 때마다 알 수 없는 굴욕감을 느꼈기에, 이에 대해 내 나름대로 고민을 해본 결과 이것은 권력관계의 재확인 절차였다. 신라에서 잇자국이 더 많은 사람이 왕이 됐었다는 얘기가 떠올랐는데, 생각해 보니 C가 건네준 피자 도우는 언제나 어금니까지 잇자국이 남도록 깊게 베어 물은 자국이 남았었다. 그러다 보니 침이 좀 많이 묻어있기도 해서 받아 먹기 내키지지 않았으나, 나도 모르게 피자도우에 남은 잇자국이 많은 점 때문에 거절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C는 믿음이 강한 친구였기에, 그저 자신이 미래에 마주하게 될 지옥 비빔밥의 구성을 염두에 뒀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슬슬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게 됐다.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는 생각은 보편적인가? 그럴 수도 있다. 맛없는 것을 먹고 싶어 하지 않다는 것이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는 것과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옥 비빔밥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성공적으로 전래한 데에는 맛없는 것을 비벼 먹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맛있어 보이는 것은 어느 한도를 넘어가는 순간 굉장히 비위가 상하는 것도 사실이다. 인스타그램에 나오는 음식 사진들을 찍어 올리는 사람들은 너무 맛있어 보임에 집착하다가 주화입마에 빠지듯 비위가 상하는 음식사진을 찍고 배포하게 된 것 아닐까 싶다. 이쯤에서 최근 머릿속에 맴도는 하나의 생각을 토로할 수밖에 없다. 연말 파티로 여러 사람을 초대하여 음식을 해 먹은 적이 있다. 모두가 떠난 후 설거지를 하며 수챗구멍의 거름망을 비우던 중이었는데,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모인다고 음식을 많이 했었나 거름망 가득히 음식물 찌꺼기가 모여있었다. 평상시보다 많은 음식물에 얕은 당혹스러움이 스쳐 지나갔는데, 한편 이 음식물은 조금 전에 그릇에 있을 때와 뭐가 그렇게 달라졌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물에 불어있고 많이 섞여 있긴 했으나 딱히 더러운 것은 아닐 것이다. 설거지를 하며 세제를 써서 세제 거품이 묻었을지도 모르나 이미 물에 씻겨 내려가기도 했다. 이런 생각을 처음 하는 사람이라면 씻겨 내려갔다고 해도 세제 거품이 묻었던 것이 거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면 설거지를 한 그릇들을 다시 사용하는 것에도 거부감을 느낄까? 세제거품으로 범벅이 됐던 그릇을 단지 물로 씻어 내린 것 뿐인데 별 생각 없이 그릇을 사용하지 않나? 밥을 먹을 때마다 빈 그릇을 바닥에 내던져 깨뜨리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수챗구멍의 음식물 모음이 더럽다고 말하기엔 당위가 부족하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나는 이 음식물 모음으로 현실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 일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됐다. (이제 천국이나 지옥에 대한 상상은 그만 하고 싶다. 그와 반대되는 내가 발붙이고 있는 이 곳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 있었는데, 일단은 현실이라고 호명하며 넘어가도록 하겠다) 생각의 전개를 통해 나는 이 음식물의 모임이 그다지 더러운 것이 아니라고 여길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물기를 잔뜩 머금고 불어있는 이 음식물의 촉감은 여전히 불쾌했는데, 여기서 초심자 코스와 상급자 코스를 나눠보기로 했다.
현실 비빔밥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우선 이 음식물들을 채반 같은 곳에 늘어뜨려 물기를 날려보내고, 건조된 음식물은 다시 종류별로 모아서 재조리를 하는 것이다. 재조리 된 이 음식은 비빔밥의 형태가 아닐 수도 있으나, 개념적인 출발점이나 여러 편의상 여전히 현실 비빔밥이라 칭하고자 한다. 여러차례의 실습을 통해 현실 비빔밥에 익숙해진 강인한 사람들에게는 다음 단계를 권하고자 하는데, 물기를 머금은 이 처덕처덕한 음식물 더미를 보며 죽이나 리조또와 같은 점도가 있는 류의 음식을 연상하는 것이다. 이미 훌륭한 파인 다이닝이 눈 앞에 펼쳐지려고 한다. 소금 간을 맞추고 예쁜 그릇에 담아보면 어떨까? 사진을 찍어보니 윤기가 좌르르 흐르며 꾸덕하고 녹진한 것이 완전 식욕을 자극하는 듯 하다. 그리고 가성비도 굉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