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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인의 친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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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위기감 때문인가, 요즘의 미술 기획을 힐끗 보면 친환경이나 지속 가능한 미술작업 등이 유행인 것 같다. 예전에도 논의되어 왔겠지만, 마치 돌고 돌아 다시 온 레트로같이 요즘에 또 자주 보인다. 하지만 미술인이 말하는 친환경만큼 허황된 말이 없다. 그렇게 야망에 가득 차서 신작을 뽑아내며 환경을 위하는 척이 가증스러울 따름이다. 하지만 진짜 친환경을 실천하려 해도 친환경이라는 말은 모호하다.
친구 환경이라면 어떨까. 친구 사이라면 조금 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친구끼리 위해주기도 하고 배려도 하지만, 반면 친구이기에 조금 신세를 지기도 하고 친구라서 편하게 대하기도 하니까. 약간 산업 쓰레기를 만들고 폐기하면서도 “ 친구야 좀 미안하게 됐다.” 하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이게 무슨 친환경인가 싶겠지만 그래도 이런 관계라면 미술인과 환경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미술인만 환경에게 일방적으로 막 대하는 건 아니다. 이렇게 망가진 환경이 초래한 재앙은 모두 감내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미술인과 환경은 죽을 때까지 친구인 진짜 친구다. 단지 좀 아플 때면 내가 친구한테 좀 심했나 생각하게 되겠지.
‘지구야 미안해.’라는 말을 많이들 하는데, 그럼 본인 스스로 느끼기에 친환경하다 싶은 행동을 할 때는 “지구야 고맙지?”라고 하는 것도 좋겠다.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니까. 그리고 나아가 미술인으로서 진짜 친환경을 생각한다면 자꾸 지구한테 미안하거나 고맙거나 하는 것보다는, 진짜 재밌는 작업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구야 재밌지?”라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