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XXXVII
운명의 세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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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현대인들은 뭔가 모자란 기분을 느끼곤 한다. 언제나 멘토를 찾고 솔루션을 얻고자 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위로도 함께. 아니 어쩌면 위로만 얻을 수 있다면 솔루션은 중요치 않다. 이런 현상의 이유를 찾는 것은 그다지 재미가 없기에 아주 단순하게 뭉개서 생각한다면, 그냥 다들 여리게 자라서 그렇다. 아쉬운 점은 현재 대한민국에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는 솔루션을 받을 수 있는 장르가 세 가지뿐이라는 것이다. 그 셋은 음식, 어린이, 강아지. 이 세 가지에 있어서는 각각의 분야에 통달한 구루가 각자 솔루션을 주는 프로그램을 이미 여러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들의 솔루션에 전적으로 의지하며 이제는 그 용안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떤 신뢰를 느끼고 위로를 얻는다. 하지만 그 외의 분야에서는 영 인물이 없다. 간혹 누군가 다른 분야에서 저 트리오 구루와 같은 역할과 위상을 원하며 뛰어들곤 하지만, 이미 카리스마가 쨉(jab)이 안되기에 그들은 여전히 트리오로 남을 뿐이다. 사람들은 쉽게 말을 꺼내진 못했지만 이런 사실에 아쉬움을 느꼈다. 그래서 이 세 명의 전문가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조금 옆으로 벗어난 사안에도 관여하게 됐다. 사람들은 조국의 더 많은 영역에서 그들의 조언을 들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한편 그들의 저변 확장은 거슬리게도 일부 반동들이 그들의 전문성을 의심하게 된 시발점이기도 하다. 언제나 존경받아오던 세 명의 전문가는 처음 마주하는 자신을 향한 의심과 약간의 불만에 신경이 좀 예민해졌다.
그래서 점점 여러 프로그램에서 물론 틀리진 않았지만 과격한 방식의 해결책을 내기도 했다. 음식을 망치는 주방장을 권총으로 협박한다거나 땡깡 부리는 애나 개에게 바디 블로킹이라 소개하며 강렬한 타격을 가한다거나 하기도 했다. 이는 대중들을 더 열광하게 하기도 했지만, 더 반발하게 만드는 계기이기도 했다. 팽팽하게 당겨진 끈처럼 긴장이 계속됐고, 끈이 끊어진 계기는 단지 개도 기르고 애도 기르는 주방장 한 명의 등장이었다. 이 애송이는 음식도 애도 개도 다 엉망이어서 특별편으로 <세상에 금쪽같은 골목식당은 없다>라는 다소 말이 안 되는 제목의 방송을 편성하게 됐다. 제목은 각자의 시그니쳐 프로그램의 제목을 적당히 짜깁기한 결과라는 것을 대충 보면 다 알 것이다. 이 전무후무한 역사적인 이벤트를 사전 녹화라는 김빠지는 방식으로 풀 생각은 없었기에 전국 동시 중계되는 생방송으로 진행하게 됐다.
운명의 방영일 날이 다가왔다. 주방장은 바닥에 나동그라져 땡깡을 부리는 애의 한 손을 잡고 세상모르고 즐거운 강아지를 다른 한 손으로 옆구리에 붙든 채, 그저 고개를 숙이고 눈물 흘릴 수밖에 없었다. 방송이 시작한 지 3분이 채 안 돼서 정리된 일이다. 세 명의 전문가는 이 애송이를 가운데에 둔 채 아주 가까이 세 방향에서 에워싼 채 훈육을 시작했다. 제작진 측에서는 이를 위해 특별한 무대 세트를 제작했는데, 마치 중식당의 레이지 수잔(lazy susan) 또는 놀이터의 원심분리기에서 따온 듯, 무대 위에서 따로 회전하는 원판이었다. 차이점이라고 하면 중심부는 회전하지 않고 마치 달이 지구를 공전하듯 도넛 모양의 띠가 원의 중심을 따라 회전하는 구조였다. 이는 조언을 듣는 사연자가 진실하게 깨달음을 얻는 데에 도움을 주기 위해 고안된 장치인데, 쉽게 말하자면 혼날 때 눈을 마주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라 할 수 있다.
물론 세 명의 전문가가 둘러싸고 가운데의 사연자만 뱅글뱅글 돌아도 같은 효과를 낼 수는 있지만 그러면 사연자가 멀미로 인해 솔루션에 집중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 위대한 세명에게 조금 실례되는 일일 수도 있지만 그들을 믿고 그들을 돌린 것이다. 방송에서 이 장치를 효과적으로 느끼게 하기 위해 사연자의 머리에도 고프로를 달아서 세 명의 전문가가 휙휙 돌면서 각자 사연자를 마주하고 혼내는 것을 시청자들도 대리 체험할 수 있게 했다. 방송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미 이 애도 개도 요리를 못하는 가여운 자는 전의를 상실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듯 눈물을 쏟아냈지만, 이 세명에겐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복합적인 문제 덩어리를 까부수기 위해 셋은 아주 가열차게 조언을 주게 됐고, 점점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점점 커지는 원심력에 이 셋은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으려 서로의 손을 맞잡았고 점점 빨라지는 속도에 이 셋은 마치 호랑이 버터(Helen Bannerman, The Story of Little Black Sambo, Grant Richards, 1899)처럼 하나가 되어갔다. 그리고 빠르게 도는 와중 합일한 세 자매는 깨달음을 얻었다. 단지 음식과 애와 개에 대한 얘기밖에 못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중요치 않은 사소한 일이었다는 것을. 하나의 태풍과도 같은 세 자매는 더 이상 이 애송이 주방장에게 머무르지 않고 스튜디오 안의 모든 사람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그들의 가운데에 가두고 질문과 조언을 하기 시작했다. 혹시 요리한다면, 애나 개를 기른다면 그에 대해 말을 했고, 그렇지 않다면 왜 애나 개를 안 기르고 요리를 안 하는지에 대해 혼내기 시작했다.
이미 티비에는 스튜디오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하나의 태풍과 그 잔해밖에 보이질 않았으며, 곧 특별재난방송이 편성되어 멀리서 지나다니는 태풍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됐다. 태풍이 형성되며 많은 비가 내렸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염분이 있는 것으로 봐서 이건 사연자들의 눈물이 비가 되어 내렸다고 추정된다. 이 태풍은 이제 스튜디오를 떠나온 국토를 돌아다니며 조언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여느 태풍처럼 진로를 북동쪽으로 향해 바다로 나아가 소멸하며 끝났다. 이 태풍의 이름은 삼보(Sambo)로 명명되었으며 이례적으로 육지에서 시작된 태풍이었다. 그리고 머무른 시간에 비해 사상자가 없다는 점도 놀라운 기록으로 남았다. 다만 태풍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요리를 시작하고 애와 개를 기르게 됐다고 한다. In memory of dear Paik&Kang&Oh.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