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XXXVI
망원동 핫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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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글쓰기 선생님이 있었다. 학업을 잠시 중단했던 2년까지 포함한다면 6년을 알고 지낸 분이었는데, 굉장히 젠틀하고 수업을 재밌게 하면서 학생들에게 적절한 조언을 해주기도 하는 근사한 선생이다. 그렇지만 내가 낯을 가리는 건지 그가 적정 선을 유지하는 건지 사적으론 영 친해지기 어려웠다. 그래서 마지막 수업 이후로 몇 년 지났지만-심지어 핑계 좋으라고 매년 4월 15일 스승의 날이 돌아오지만-연락 한번 드리지 않았다. 이렇게 쓰고 나니 그냥 내가 무정한 자로 보이는데, 사실 언젠가 한 번 연락을 드리든 직접 찾아뵙든 하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언제나 나의 마음 한편에 남아있다.
하나 물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건 아마 2019년 어느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던 사이. 나는 저녁 무렵 그다지 취하진 않은 채로 망원동 거리를 걷고 있었다. 물론, 이미 술을 마시긴 했다. 기억이 흐릿하지만 아마 <현정이네 두루치기>가 있는 골목 어느 사이였다. 사람도 좀 많고 요란하기도 해서 쳐다봤는데, 글 선생께서 술이 거나하게 취해있었다. 완전 벌겋게 취해서 셔츠 단추는 한 4개쯤 푼 것 같고 양쪽으로 언니들과 어깨동무하고 즐거워하며 뭐라 중얼대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나는 번쩍 술이 깬 기분이었다. 물론 골목이 좀 어둑하기도 하고 가운데에 어깨동무하던 글 선생이라 여겨진 자는 원래 글 선생보다 키가 매우 작아서 아마도 같은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벌겋게 취해서 눈이 풀린 채 즐거워하는 저 얼굴은 아무래도 글 선생이다. 물론 수업 때는 허여멀게서 크게 표정을 드러내진 않지만 그렇기에 더 확신하곤 한다. 아마 실제로 그런 상태의 얼굴을 봤다면 다른 점을 찾았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기에 저 망원동 핫가이가 정말 글 선생이라 믿을 수밖에 없다. 키 차이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는데, 아마 수업 때 학생들은 앉아 있고 선생은 서 있으니까 더 커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원래 학생은 선생을 더 크게 보곤 한다. 결국 나는 그날 본 망원동 핫가이가 글 선생이었다고 믿게 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언젠가 선생을 찾아뵌다고 하더라도 이 믿음을 확인 받을 수는 없겠다. 제자로서, 사람 된 도리로 차마 그런 건 물어볼 수가 없기에. 이렇게 나의 믿음은 영원히 확인할 수 없고, 단지 내가 믿고 싶어서 믿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