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XXXV
열린 우주\ 미래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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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은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하게 안정화(부패)해가는 세계에 예측 불가능성을 공급하는 가장 확실한 자원이다. 젊음이 자원이라는 말은 다름아닌 이러한 의미에서이다. 이것은 어린이와 젊은이의 죽음이 특히 더 안타까운 것으로 여겨지는 이유이기도 한데, 그것은 세계가 다를 수 있었을 더 많은 가능성의 중단을 뜻하기 때문이다. 한편 그러한 중단(죽음)은 그 자체로도 하나의 예측 불가한 사건이었기에, (늙은이의 죽음과는 달리) 마지막까지도 '새로움'의 원천이 된다.
유망함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미래성에 대해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있는가? 미래를.. 오래 전 칼 포퍼는 우리가 미래의 그 어떤 것도 진정한 의미에서 예측할 수 없을텐데,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그걸 지금 예견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건 미래가 아니라 지금에 다름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걸 ‘tell’이라는 이름의 예측기와 ‘told’라는 이름의 계산기로 구성된 아주 간단한 2진수 기계의 예를 들어 이야기한다. ' told'는 'tell’이 말한 것을.. 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그런데 그것은 가능하지 않다. 결정론만큼이나 악마적인 <열린 우주>는 이렇게 논증된다.
그렇다면 기금은 예측 행위가 갖는 근본적 모순에 시달린다고 볼 수 있다. 이를테면 기금은 예측하는 동시에 예측할 수 없어야 한다. 만약 기금이 실제로 미래 예술을 예측할 수 있다면, 미래 예술은 이미 현재에 일어나있을 것이므로 굳이 미래에 투자할 필요가 없다. 그냥 이미 적법한 것으로 판촉된 창작물 x를 '포상'하면 된다. 이것이 상금(명예)의 원리다.
반면 기금이 아무 것도 예측할 수 없다면, 수많은 창작지원금 서류를 분류하고 솎아내는 심사 과정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을 것이며, 궁극적인 공정함은 매 주 빙글빙글 돌아가는 로또 기계를 통해 선정자를 추첨하는 난수 생성을 통해 성취될 것이다. 기금은 예측 불가함을 예측한다는 모순을 짊어지고, 그 모순 속에서 진동한다.
기금은 일종의 신용대출이다.
그런데 돌려주어야하는 것이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당신은 무엇으로 상환할 것인가?
어떤 멍청한 사람이 갚을 수 없는 대출을 받는가?
부패하는 세계 속에서 당신이 도입하려는 중단점은 무엇인가?
돈으로 돌려받을 수 없는 것을 돌려줄 것을 ‘약속’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