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XXXI

포시즌 스테이크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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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슬렁대며 더러운 거리를 배회하다가 포시즌 스테이크 하우스에 사로잡혀 발길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가게 앞에서 서성였다. 약간 가게 이름에서 코코스 같은 패밀리 레스토랑의 향취가 나기도 하고 간만에 스테이크를 맛보고 싶기도 하여 큰맘 먹고 발걸음을 가게 안으로 옮겼다. 생각보다 제대로 된 곳인지 매장 내부는 화려하진 않지만 깔끔했고, 잔잔하게 클래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메뉴를 골라 주문하고 기다릴 즈음 곡이 바뀌어 비발디의 사계가 재생되고 있었다. 활기찬 봄에 덩달아 기분이 들뜬 한편 베네치아에서 지내던 때가 생각이 나 잠시 아련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의 1악장이 끝날 무렵 스테이크가 나왔다. 사진도 한 장 찍고, 곁들인 와인도 한 모금 마시고, 고기를 썰고 있는데 여름의 3악장이 시작되었다. 나도 모르게 빠른 바이올린의 선율에 맞춰 격정적으로 고기를 썰었고, 여름이 끝났을 땐 이미 스테이크는 갈기갈기 찢기고 다져진 곤죽이 되었다. 그다지 먹고 싶게 생긴 모양은 아니었지만, 아깝기도 하고 음식 함부로 버리면 나중에 지옥 비빔밥으로 먹어야 하기에 깨작거리며 식사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음악원에서 수학하던 시절의 열정이 되살아나 고기를 써는 데 매우 몰입해선지 기분은 썩 상쾌했다. 너무 심취했는지 잠깐 스테이크가 담긴 접시를 들고 턱을 받친 채 나이프로 활을 켜듯 마구 칼질하기도 하여서 조금 민망한 일이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니 다행히 가게에 나 말고 다른 손님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