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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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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사회 비판적 예술이 단기적으로는 비판 대상의 평판을 훼손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정부는 곧 블랙리스트를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신 블랙리스트는 원래대로라면 블랙리스트에 기재되었을 예술가들을 반대로 포상하고 인정함으로써 이들의 발칙한 저항적 면모를 널리 알려 이로이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대체로 블랙리스트라는 것은 억압과 검열에 맞서 재난의 희생자를 추모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공분과 상실의 감정을 바탕으로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은 이들의 공동체’를 구성하고자 분투하는 지하의 검은 조직같은 것이 아니던가? 


문제는 이들의 동태가 무척이나 사건 중심적이며, 따라서 사건이 촉발하는 첫 번째 모델(혁명이 시작되는 곳)에 관해서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해박하지만 그 뒤에 오는 두 번째 모델에 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점에 있다. 향유하는 이들에게는 정의로운 일시적 소속감을, 제공하는 이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명분을 제공하는 저항의 제스처에 천천히 중독되어가는 과정에서 첫 번째 모델 이후에 뒤따라야 할 두 번째 모델의 개발은 미뤄지거나 잊혀진다.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어떻게든 저항의 대상을 찾아나서지만, 더 싸울 대상을 찾지 못하게 되면 사건이 발생했던 당시의 구체성을 잃고 유목적인 범생태사랑주의로 귀결되는 무서움은 그것을 그것을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적절히 변환되지도 그렇다고 적절히 종결되지도 못한 첫 번째 모델의 지지부진한 지속 속에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신 블랙리스트는 바로 이러한 느린 죽음을 가속하는 역설적인 장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