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XXVII
작업의 재료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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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작업이라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 하던 작업을 생각해 본다. 주된 재료는 비판과 반성이었던 것 같다.
까닭스러움.* 어머니는 이 단어로 자주 나를 지칭하시곤 했다. 까닭스러운 놈. 기억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면 ‘까닭스럽다, 까탈스럽다‘는 어머니가 내게 항상 하던 말씀이었다. 어떻게 이런 성격이 되었는지 알 수 있는 길은 없지만 비판이라는 재료는 내가 원하지 않아도 그냥 가지고 태어난 것 같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비판보다는 불평과 불만이 더 어울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눈과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그 무엇이 항상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지도 않았지만, 주위를 한 번 휘둘러보면 시야를 불편하게 만드는 요철을 바로 끄집어 낼 수 있었다. 대상이 무엇이건 상관없다. 음식, 사람, 사회 등. 그 불편함 때문에 항상 ’싫어‘라는 단어가 자주 입에서 튀어나왔고, 어머니는 그때마다 까닭스런 놈이라고 부르셨다. 나는 까다로움을 작업의 재료로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까다로운 놈이 된 나는 한때 유행했던 말로 ‘프로불편러’가 되어서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러다가 문득 반성을 하게 된다. ‘나는?’이라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순간 큰 죄책감이 들게 된다. 누구나 각자의 사정이 있을 터인데 내가 가위를 들고 재단 것에 대한 죄책감. 구조 안에서 자신의 의지와 다른 모습으로 움직여야만 하는 것들에 대한 연민. 그런 것들이 불평과 불만 뒤에는 항상 따라오게 된다. 그렇게 한 동안 내가 불만을 늘어놓았던 행위에 대한 반성을 하고 나면 다시 세상에 너그러워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이고 다시금 불평을 늘어놓는다. 다시 불평하고 반성하고. 이런 과정이 계속 반복된다. 불평과 반성이 재료가 되어 그 사이 어디에서가 작업을 생각하게 된다.
* ‘까닭스럽다'는 집안 사투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