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X

타이틀 매치


🐀🐀


별 대단한 사실은 아니지만 보통 2인전은 살아있는 작가 2인의 전시인 경우가 많다. 다들 그냥 그렇다고 하고 넘기기에 왜 그런지는 모를 것이다. 왜 그런지를 알기 위해서는 미술계 내에서 2인전이라는 것이 가진 의미와 2인전의 관습적인 절차를 알아야 한다. 일단 그룹전이란 것은 작가들의 공동 전시라기보다는 어떤 대결/경연과도 같은 전시이다. 보통 그룹전을 하면 사람들은 ‘누가 더 잘했네’, ‘누구 개인전 같네’ 하며 평가를 하곤 한다. 보통 작가의 지인들은 작가 편을 들어주며 ‘와 완전 네 전시 같다’는 둥 말을 하며 치켜올리곤 하는데 그럼 작가는 ‘아유 무슨 소리야’라고 하지만 이미 콧대가 아주 기고만장이 아주 장난 아니게 된다. 그렇게 모든 그룹전 내의 작가들은 ‘내가 짱이다’라는 마음을 갖곤 하는데, 2인전의 경우는 단둘 뿐이므로 필연적으로 둘 사이에는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서로 간의 우열을 정해야만 한다. 그래서 미술을 하지 않는 사람들 입장에선 잘 모르는 일일 수도 있지만, 미술계에서는 2인전을 열게 되면 결투를 하는 것이 필수적인 코스라고 할 수 있다. 보통 뒷풀이 자리에서 술에 취한 각자의 지인들을 증인으로 놓은 채 전시를 같이 열은 두 명의 작가는 술에 취해서 싸운다. 싸움의 양상은 두 갈래 정도로 나뉘는데, 그냥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안주를 씹어가며 말로 싸우는 경우가 있고 진짜로 싸우는 경우가 있다. 보통 전자의 경우는 어떤 싸움이 되었든 두 작가 모두 샌님 자식이란 소리를 피하긴 어렵기에 웬만해선 진짜 치고받고 싸운다. 이래야 이겼든 졌든 호방한 작가라 불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죽은 사람과의 전시이다. 처음에 어느 작가가 죽은 작가와 엮여 2인전을 치른 적이 있다. 물론 한 쪽이 죽었기에 아직 안 죽어있는 작가 쪽이 부전승이라 여길 수 있었다. 하지만 전시가 열린 뒤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안 죽은 작가 쪽에서 자꾸 가위에 눌리거나 어떤 심령현상을 체험하게 되고 거의 반죽음이 되어 골골거리게 됐다. 전시가 끝나기 며칠 전, 그의 꿈속에 이미 죽은 작가가 나와서 자신의 승리를 인정하라는 말을 했다. 그는 이미 너무 죽을 것 같이 힘든 시간을 보냈기에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고 비로소 안식을 찾을 수 있게 됐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엮는 기획은 되도록 지양하고 산 사람은 산 사람끼리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끼리 묶어서 전시해야 별 잡음이 없겠다는 의견이 기획자들 사이에서 공유되었다. 그래서 산 사람끼리 묶은 2인전들은 예전처럼 별 탈 없이 깔끔하게 결투를 통해 우열을 나눴다. 하지만 죽은 사람끼리의 전시는 예상과는 다르게 문제가 있었다. 애초에 안 죽은 사람과 이미 죽은 사람 사이의 결투에는 불균등한 요소가 있었기에 이미 죽은 사람 두 명을 붙여놓은 것이었는데, 두 영혼의 결투로 인해 갤러리는 전시 기간 내내 프로젝터 키스톤이 맞지 않거나 지킴이가 전원을 안 뽑고 가거나 관람객들이 전시를 보는 중 알 수 없는 오한이 드는 등 여러 심령적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여러 기획자가 모여 고민을 하다가 이미 죽은 작가를 2인전에 포함하는 경우에는 제령을 먼저 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그래서 그 실험으로써 어느 젊은 작가 한 명과 이미 죽은 작가의 2인전을 열게 됐는데, 오픈 날 뒷풀이인 척 고사를 같이 지내며 퇴마 의식도 같이하였기에 예전의 사례처럼 아직 안 죽은 작가가 해코지를 당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상하게도 전시를 열고 보니 죽은 작가의 작품들이 별 볼 일 없어 보였다는 것인데, 이는 퇴마를 해서 작품에 깃든 죽은 작가의 영혼이 씻겨 나갔기 때문이다. 결국 미술계 내에서 퇴마는 어느 정도 터부가 되었고 역시 죽은 사람이 2인전에 구성되는 것 또한 터부시되었다. 결국 죽은 작가의 전시는 오롯이 홀로 열어주거나 아니면 작가가 여러 명으로 구성된 그룹전에 참여 시켜 그 죽은 영혼의 괴롭힘을 나눠야 한다는 것이 미술계 내의 암묵적 규약이 됐다. 그래서 결국 미술을 하지 않는 일반인은 몰랐겠지만 보통 2인전은 살아있는 작가 두 명을 묶어서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