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검은 옷의 기현씨
(원제: 캡션 바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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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무실을 쓰는 기현씨는 매일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것 같다. 은은하게 패턴이 들어간 검은색 셔츠에 검은색 바지, 그리고 검은색 워커. 좀 친해졌다 여겨졌을 즈음 ‘왜 같은 옷만 입고 다니는 지’ 넌지시 물어본 적이 있다. 그냥 학창시절에 교복 입고 다니던 것 생각해보면 따로 뭐 어떻게 입을지 고를 고민도 없고 편하다는 것이 대답이었다. 물론 같은 옷만 입고 다니는 것이 가끔 지긋지긋할 때가 있기에, 3년에 한번 옷차림을 바꾼다고 한다. 학교 달라지면 교복이 바뀌는 것처럼. 3년 못채우고 지긋해져서 옷차림을 바꾸게 되면 전학간 셈친다고도 한다. 그의 옷장은 어떨지 상상해보게 됐다. 검은색 옷들로만 가득찬 옷장. 그런데 생각해보니 교복은 학교 가는 날만 입는 옷인데, 기현씨도 출근 안하는 날에는 다른 옷을 입지 않을까란 생각도 든다. 주중에는 검은 옷을 입다가 주말에만 알록달록한 옷을 입는 기현씨를 상상해보니 이미지가 잘 그려지진 않았다. 혹시 기현씨는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날에는 쓰레기 무단투기나 점유물이탈횡령 등 사소한 범법행위를 저지르곤 곧 검은 옷을 입음으로서 용의선상에 오르는 것을 예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상상도 해봤다.
어느날 깨달았는데 기현씨는 매일 같은 옷을 입는 것이 아니었다. 검은색이라 잘 몰랐는데, 셔츠의 패턴이 조금씩 달랐다. 어제는 한톤 바랜 검은색 땡땡이였는데 오늘은 한톤 바랜 체크무늬였다. 그러고보니 처음 물어봤던 날은 꽃무늬가 그려져 있던 것 같다. 내가 알게 된 이 사실을 기현에게 얘기하니 약간 당황한 듯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였다. 나는 왠지 학주가 되어 교묘하게 패션을 추구하는 복장불량 학생을 잡아낸 기분이 들어 매우 뿌듯해했다.
며칠 뒤 출근하니 기현씨는 사표를 내고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놀라며 혹시 나 때문에 나가는가 싶어 물어봤다. 기현씨는 나를 따로 옥상으로 데려와 얘기했다. 사실 교복같은 마음으로 옷 고르기 귀찮아서 같은 옷을 입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계속 같은 검은 옷만 입다가 나중에 사무실 비품 훔치거나 할 때 알록달록한 옷을 입으면 cctv를 돌려볼때 용의선상에서 제외되진 않을까하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주말에 비품 훔치다가 현장에서 들키는 바람에 사표를 쓰고 나가게 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