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II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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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 어느새 자연스러워지고 있었다. 매해 새로운 전염병이 나라를 휩쓸었다. 인간 전염병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식물, 동물, 살아있는 모든 것이라면 면역력을 강화하고 죽지 않기 위해서 이동을 자제해야 했다. 특히나 올해는 우제류 전염병이 특히 심했다. 한우, 육우, 젖소 할 것 없이 출생수는 살처분 수를 따라가지 못했다. 청도에서는 소싸움의 명맥이 유지되느냐 마느냐 했다. 시들해지나 싶었던 육류 소비량은 잠깐 주춤했을 뿐, 고기를 향한 사람들의 욕망은 더욱더 활활 불타올랐다. 한우는 아파도 소고기다, 라며 여전히 돼지고기보다 높은 몸값을 유지했다. 아니, 오히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여 가격은 더 가파르게 올랐다. 종류와 지역을 막론하고 도축, 생산량이 시장을 따라잡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정부세종청사의 농림축산식품부 우주임은 의아함을 느낀다. 축산물이력제 데이터를 살펴보던 그는 유독 한 지역만 이 모든 전염병을 비껴가는 듯한 상황에 이상함을 감지했다. 어떤 심한 전염병이 돌아도 그 지역만큼은 일정한 사육 두수와 도축 두수를 지키고 있었다. 한 농장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혹시 지역적으로 농장 운영 방식이 건강하게 조성된 걸까? 마을이 서로서로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나? 건강한 소들이 살고, 다 같이 면역력이 높은 거라면? 그렇다면 이보다 더 모범적인 지역 농장 조합이 있을 수 없지 않은가. 그는 절망적인 상황을 타개할 희망을 품고 답사를 나가기 위해 상부에 결재를 요청했다. 1인 출장인 덕분에 약간의 해방감도 느꼈다. 건강한 농장 운영과 엄격한 관리 감독하에 이뤄지는 번식, 그리고 위생적인 도축을 기대하며 그는 고속버스에 올랐다. 카메라와 컴퓨터, 녹음기까지 알뜰하게 챙겨서. 데이터화되지 않은 정보는 언제 소실될지 모른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직원으로서 마을의 진짜 모습을 만나기 어려우리라는 것은 예상했었다. 그러나 이것은 좀 달랐다. 이렇게 다른 지역과 차이가 나는데 약간의 관리 비결을 자랑스레 알려줄 수는 없는 걸까? 아니면 정말 철저한 위생과 건강 관리, 비용의 투명한 처리가 이렇게까지 극적인 차이를 낳는다고? 건강하고 행복한 마을 사람들이 맞이하긴 했지만 뭔가 달랐다. 정말로 즐겁고 행복해 보이는데 어딘가 허전한 느낌. 뭐가 빠져있었다. 이 기시감이 뭘까. 갑자기 아트하우스 모모에 영화를 보러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평화로운 캠퍼스. 삼삼오오 돌아다니는 학생들. 당연한 풍경이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더욱 평화로웠던 그 풍경에는 남자가 없었다. 마을 청년회는 부녀회와 다를 게 없었다. 이장님은 당연히도 여자였다. 바깥양반의 소재를 묻자, 주말부부라고 한다.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아저씨가 실종되었거나, 일찍 사별했다고 한다. 아저씨가 없으면, 아들도 없는 걸까? 보통 시골에서 모시고 사는 할아버지도 안 보인다. 물론 할머니들은 축산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많은 주민이 우주임과 마찬가지로 마을의 남자 없음에 대하여 걱정했다. 대가 끊어질까 봐. 그렇게 마을이 사라질까봐. 그래서 외부인에게 텃세를 부리지 않고 두 팔 벌려 환영한다고 했다.


남자가 없다니. 소를 키우고, 돌보고, 생산하고, 도축에 유통까지 이 마을 주민들이 다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인지 혼란스럽다. 그렇지만 그는 여성학 수업을 들었다. 걸즈 캔 두 애니띵. 우주임은 이내 자신의 성차별적인 의문에 대해 반성했다. 여자라고 못 할거 있어? 나만 해도 이렇게 혼자 출장 잘만 다니는데. 역시 여자가 세상을 바꾸는구나. 관리직에, 높은 자리에 여성이 올라가면 변화가 가시적으로 보이는 건가 봐. 스스로에게 엄격한 성격의 우주임은 김영란법에 저촉되는 선물은 일절 받지 않았다. 시골치고 드물게 1인 식사도 가능하다고 자랑하는 마을의 도축 식당에서 고기를 양껏 먹고 서울로 돌아왔다. 여자 혼자 왔다고 해서 밥을 적게 주는 일도 없는 것 같았다.


무사히 귀경하여 개운한 마음으로 출장 보고서 작성을 하던 그는 한 영상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축사 쪽 창고에 밥상을 물리는 한 주민의 모습. 창고 안에 자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는데, 우주임의 눈에 그것은 분명히 수염이 달린 아저씨였다. 아저씨가 어떻게 마을 이야기를 하는데 코빼기도 안비쳤을까? 보통의 아저씨들이란 관심을 갈구하기 마련이다. 말할 기회가 있는데 말을 않는다니. 보통 아저씨가 아닌데… 생각하고 있는 우주임 뒤로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옆팀 팀장님의 잔소리가 들린다.


  “김공익! 밥 먹었으면 양치도 하고 좀 걷고 그래! 사람이 그렇게 먹고 바로 누우면 소 되는 거 몰라?”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의 우주임. 그는 김공익씨를 그 마을에 출장 보내면 어떨지 잠시 생각한다. 일을 해야 먹을 수 있고, 먹었으면 일을 하고 움직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