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마옥>, Acrylic on panel, 45x38cm, 2025
다마고치
나는 괴마옥을 키운다. 사람들은 괴물인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더 태연해지고 숨기고 도망간다. 그들이 얼마나 모자라는지 스스로 깨닫는 순간, 괴물같은 자신을 알기에 더 일그러진 모습이다. 결핍은 그렇게 무서운 방식으로 사람들을 어리석게 만들며 괴롭힌다.
오랜 친구가 집 앞에 왔다는 전화를 받고 서둘러 나갔다. 그는 스위치에 대해 연구하는 회사에서 긴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 하나도 빠짐없이 나에게 설명했다. 친구도 스위치에 대해 명쾌하게 알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스위치에 대한 정보는 결핍과 욕망의 조각들이 응축된 세계로 안내한다는 것과 그곳이 감각적으로는 환상에 가깝지만 온전한 환상은 아니라는 것 두가지 뿐이다. 스위치는 환상이기에 더 애틋해지고 온전하지 않기에 결핍은 더 선명해진다. 그렇기에 그는 스위치를 두려워했다. 나는 친구에게 소문을 전했다. 물론 스위치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지난달에는 주인이 버리고 간 떠돌이 개에 대해서, 이번에는 가위를 들고 다니며 동네를 누비는 정신 나간 여자에 대해서 떠들었다.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늘 역겹다는 표정을 했다. 나는 늘 친구의 기분을 맞춰 같이 찌푸렸지만, 그 사이로 스위치를 눌러 환상을 잘만 따라가면 이 지겨운 세상이 끝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처음으로 그와 다른 표정을 지었다. 길어진 술자리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괴마옥이 나를 향해 가시 같은 잎을 세우고 있었다. 나는 더 태연하게 숨을 고르다 결심했다. 도망가지 않기로 했다.
나는 스위치를 눌렀다. 내 것은 조금 오래 작동하지 못한 탓인지 삐덕거렸다. 녹슨 스프링이 움츠리며 소름 끼치는 마찰음을 냈다.
그렇게 나는 다마고치 속으로 들어왔다. 누군가 던져둔 괴물 뭉치들이 구르고 있었다. 애매하게 사람을 닮은 것들이 우글거리지만 삐딱하게도 그리 닮지 않았다. 다마고치 세상은 끊임없이 괴물을 만들었고 나는 그것들을 돌보고, 키우고, 언젠가 멀리 떠나보내야 했다.
<코니에게>, Acrylic on panel, 97x144cm, 2025
코니는 내가 이곳에 도착한 후 처음 만난 괴물이다. 코니는 아팠다. 나는 코니를 들어 업고 도와줄 사람을 찾아다녔지만, 이곳에서 우글거리는 괴물 외에는 누구도 만날 수 없었다. 결국 코니는 운명을 다할 것 같았다. 나는 수많은 괴물들에게 하나씩 이름을 붙이지 않았지만, 코니에게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작고 귀여운 뿔이 아기 유니콘 같아서 나는 코니라고 지었다. 이름을 부르고 부드러운 털을 매일 쓰다듬었다. 조금이라도 이곳이 환상이 아닌 걸까 되물으며 간절함은 계속 불어났다. 연약하고 무력한 건 지키지 못한 나의 책임이라든지 덜컥 무서워지는 부담감 같은 감정은 아니었다.
코니는 내 손 위에서 오랜 시간 머물다 떠났다. 나는 남은 털을 주물럭거렸다. 폭신하던 털은 어느새 손의 땀과 함께 축축 늘어져 있었다. 나는 털을 손바닥에 비벼 길게 길게 이었다. 돌보지 않으면 결국 사라질 아주 작은 나는 손에서 떨어지는 줄로 가장 긴 울타리를 놓았다.
<괴물과 결혼하기>, Acrylic on panel, 162x242cm, 2025
<까만 별>, Acrylic on panel, 19x27cm, 2025
보라색 작은 괴물은 까만 별의 명령을 받으면 반지 하나를 들고 다른 하나와 반죽 되고 성장한다. 다마고치에서는 '결혼'이라고 하던데 내가 생각한 결혼은 보다 낭만적인 일이라서 나는 그냥 '합성하기' 혹은 '결합하기' 같은 의미로 그들을 키웠다. 보라색 괴물은 점점 커져 나처럼 팔다리를 휘두르고 걷고 소리를 냈다. 중얼중얼 그에게 내가 다마고치 밖에서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었는지 늘어놓고 한번 멍때리는 일이 잦아졌다. 그는 내가 거칠게 붓을 휘두르는 이야기가 제일 듣기 좋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몸에 하나둘 거친 붓질을 내주었다. 붓이 지나간 자리에 움푹 패인 상처와 겉으로 밀려난 살덩이는 나를 자랑스럽게 했다.
그는 반지가 없이도 하루하루 커졌다. 나는 더 이상 그를 돌볼 필요가 없어졌다. 보라색 괴물은 내가 그를 키웠던 것처럼 연약한 내 몸에 붓질했다. 그의 붓질은 나만큼 거칠지 못했지만 칠할수록 나를 더 하얗게 하얗게 만들어 갔다.
그가 상실한 눈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는 손에 놓인 반지를 내 앞에 두었고 나는 찬란한 반지에 눈이 멀어버릴 뻔했다. 나는 괴물이 아니라서 결혼도 결합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다른 괴물과 결합이 되어 더 이상 보라색 괴물이 아니게 되면 나는 너무 슬플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가 까만 별을 이길 만큼 강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를 떠나겠다고 했다.
나는 찢긴 그의 살가죽 아래 처음으로 나와 같은 온기를 느꼈다. 까만 별과 반지가 재촉하던 시간이 거의 끝나갈 때쯤 그는 나에게 천천히, 아주 작은 입모양으로 말했다. "너도 정말 괴물 같아". 나는 그가 그 말을 해주기까지 왜 그리 오래 망설였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한 손에 스위치를 누른 채 그의 보라색 가죽 위로 하얀 반점을 남겨 이곳에 남았다.
<괴물과 신부>, Acrylic on panel, 24x24cm,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