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기랄! 망할! 빌어먹을!"
반곰은 머리를 쥐어짜며 소리쳤다. 킬리는 그런 반곰의 맞은편에 앉은채 팔짱을 낀채 그런 반곰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거야!"
반곰이 소리쳤다.
"당신의 실수였습니다."
"젠장,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하잖아!"
"마땅한 결과였습니다."
반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속임수야!"
"그런일은 없습니다. 우선 이 결과에 속임수가 가능한지부터 생각해보시죠."
"젠자아앙..."
반곰은 머리를 부여잡은채 다시 자리에 앉았다.
"뭐가 잘못된거지? 완벽했는데..."
"완벽은 없습니다. 한없이 완벽에 가까워질 수는 있겠죠."
"...한번만."
"예?"
"한번만 기회를 줘..."
반곰이 신음하듯 웅얼거렸다.
"당신은 이미 당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전부 쓰신것 아니였습니까."
"젠장, 누가 이런걸 예상했겠냐고."
"그건 당신이 해야하는 일이지 제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반곰이 고개를 들어올리더니 이내 테이블을 내려쳤다. 쾅 소리와 함께 테이블이 흔들렸다.
"내가 처음에 내놓았던 그 제안. 없던일로 하겠어."
킬리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 발언, 진심입니까?"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보라고."
"이건 당신이 자초한 결과라고 했습니다."
"난 인정 못해."
"인정하는건 당신이 아닙니다. 결과가 그걸 말해주는것이죠."
반곰 박사는 이를 악물었다.
"수십번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얻어낸 결과였다고. 근데 그게 틀렸다니?"
"당신 뇌 속에서 돌린 시뮬레이션따위, 맞을리가 없잖습니까?"
"말이 좀 심한데."
반곰은 킬리를 노려봤다. 그는 여전히 팔짱을 낀채 테이블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이 먼저 시작했습니다."
"네가 먼저 거짓을 말했지. 안그래?"
"전 거짓을 말한적 없습니다."
"하? 그 발언, 감당할 수 있겠어?"
"물론입니다. 당신과는 다르게, 전 제가 한 말은 책임지죠."
킬리는 눈을 가늘게 뜬채 반곰을 노려봤다. 반곰은 그런 킬리를 노려보다 이내 시선을 피했다.
"뭡니까? 또 쓸데없는걸로 싸우시는겁니까?"
타스가 휴게실 문을 밀고 들어왔다.
"쓸데없는거라니!"
"절대 쓸대없는것이 아닙니다. 타스 박사."
반곰과 킬리가 타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 음, 예. 그렇군요."
타스는 자신을 향한 두 시선에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제 슬슬 받아들이시죠."
"뭐?"
"이 이상의 논쟁은 무의미합니다."
킬리가 고개를 저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될걸 알고 있었나?"
반곰이 주먹을 꽉 쥔채 말했다.
"전 알고 있었습니다."
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처음의 그 발언은?"
"제가 이 분야에 전문가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분명."
반곰은 잠시 생각하는듯 싶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제기랄. 맞네."
타스는 킬리와 반곰을 번갈아 바라봤다.
"또 무슨 일입니까?"
"이 자식이 날 엿먹였어."
"전 딱히 당신을 엿-먹이려고 한적 없습니다. 당신이 먼저 저한테 제안을 했죠."
"그러니까!"
반곰이 뭐라 말하려는 순간 킬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반곰은 멍하니 킬리를 바라봤다.
"어..."
킬리는 손을 뻗어 반곰의 멱살을 잡아 자신의 얼굴 앞으로 끌어당겼다.
"딱 한마디만 더 하겠어."
킬리는 반곰을 노려봤다. 반곰은 말없이 침을 삼켰다.
"게임에서 졌으면, 쿨하게 패배를 받아들여. 찌질하게 굴지 말고."
킬리는 반곰을 놓아주고는 안경을 고쳐썼다. 반곰은 잠시 멍하니 킬리를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미안해."
반곰은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 게임?"
타스가 움찔하며 둘을 바라봤다.
"게이이이임?"
타스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반곰은 옷깃을 정리하며 타스를 바라봤다.
"응. 게임."
반곰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이게 무슨, 아니, 뭐죠? 뭔 실험 결과로 싸운줄 알았는데?"
"내가 게임 하나를 요즘 좀 열심히 하고있는데 말이야."
반곰이 웃으며 테이블 위에 얹어둔 태블릿을 집어들며 말했다.
"잠깐, 뭐가 뭔지-"
"저랑 반곰 박사가 게임으로 내기를 했습니다."
킬리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이긴 쪽이 점심 사는걸로."
반곰 박사가 웅얼거리는 발음으로 말했다.
"저는 그 게임을 한번도 해본적 없었지만, 공짜 점심은 환영이니 승낙했습니다."
"뭔 공짜 점심이야!"
"제가 이길게 뻔한 승부였으니, 당연한게 아닙니까."
"젠장! 날 속였어!"
"전 분명 그 게임은 처음 해본다고 했습니다."
킬리는 피식 웃었다.
"그러면, 고작 게임 하나로 이렇게 싸운거에요?"
타스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킬리를 바라봤다.
"전 싸운적 없습니다. 반곰 박사가 먼저 달려들었죠."
"사기쳤잖아아아!"
"실력이라고 하는겁니다."
"제기아아아아아알!"
반곰은 괴성을 지르며 쇼파에 머리를 들이박았다.
"..."
타스는 마른 세수를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마저..."
"제가 뭘 말입니까?"
킬리는 한쪽 눈썹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타스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싼채 말했다.
"그런 관계로 오늘 점심은 오랜만에 밖에서 먹도록 할까요."
"뭐?"
쇼파에 머리를 처박고 있던 반곰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제가 이기지 않았습니까. 점심 사셔야죠."
"구내식당 쏘는거지! 뭔 외식이야!"
반곰 박사가 손가락으로 킬리를 가리켰다. 킬리는 손을 뻗어 손가락을 치워내며 말했다.
"어디서 먹는다곤 이야기 안했습니다. 그냥 점심 내기라고 했을뿐."
"야!"
"오랜만에 회나 좀 먹어야겠습니다. 타스 박사? 같이 가실겁니까?"
킬리가 타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저요?"
"같이 가시죠. 이 남자가 사는 밥을 언제 또 먹겠습니까."
"누구 맘대로! 안돼!"
반곰은 발악하듯 소리쳤다.
"제 맘대롭니다. 가시죠."
킬리는 벗어둔 외투를 집어들어 어깨에 걸치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 잠시만요!"
타스는 잠시 고민하다 이내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야이 나쁜자식아아아아아!"
반곰의 비명이 55기지 휴게실에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