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모하는 회화, 작동하는 로컬리티(locality) 

문현정 

1.변모하는 회화, 변형되는 시리즈(series) 

인터넷과 미디어 속 범람하는 콘텐츠와 이미지를 주제로 한 회화를 이어온 장승근은, 지금까지 세 번의 개인전을 통해 각기 다른 시리즈로 묶어낼 수 있는 조형과 주제를 드러내었다. 그런데 이번 개인전 «론도»(2023)에서 작가는 기존의 에어브러시(airbrush)를 활용한 작업 방식에서 벗어나, 사물과 대상에 집중한 구상 회화를 선보이며 작업의 변곡점을 알리고 있다. 온라인 속 부유하는 ‘상'이라는 시대적으로 가열된 주제를 다루었던 그는 2023년의 개인전을 통해 다른 국면을 맞이하며, 그의 작업이 변모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그가 지금까지 선택해왔던 변칙적 방법론에 대해 나름의 해설을 위한 근거를 보여주는 동시에, 작업의 근간에 숨어 있던 한국의 제도적이고 구조적인 로컬리티(locality)를 반증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의 미술계는 1970년대 이후부터 더 이상 특정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하지 않고, 보다 개인을 중심으로 한 다변적이고 혼종적인 양상을 내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동시대적 상황을 묘사하는 주제 의식과 키워드, 개념을 전면에 내세우는 작품이 대폭 등장하면서, 피상적 제재를 토대로 개진되는 복합적 형상으로서의 작업이 유행처럼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이 산업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전환된 미술계 전반의 제도적 운영과 문화 및 지원 사업, 그리고 집단보다는 개인을 지원하는 공모 사업의 영향이 자리했다고 서술할 수 있으며, 문화 예술계에 위치한 작가의 생존이 개인에게 부속된 것처럼 느끼도록 만드는 정서의 가속화로도 설명할 수 있다. 

젊은 세대의 작가가 시장과 제도에 자리하기 위한 생존의 조건으로 취득한 전략은, 결과적으로 작가 개인의 작업으로 하여금 특정 키워드나 주제 의식이 강하게 자리 잡도록 만들었다. 장승근 역시 이러한 시대적 변모의 역사 가운데 놓인 개인으로서, 전반의 변화와 양태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시리즈의 변주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장승근 역시 온라인과 디지털 상의 이미지라는 가변적인 주제의 작업을 선보이고 있었으나, 이번 전시 «론도»에서는 보다 사적인 영역으로 그 주제를 이동하고 있다. 작가의 시선이 사적인 영역으로 옮겨졌다는 것은, 곧 작가가 생존과 경쟁을 위한 회화를 지속하지 않고 다시금 자신의 손과 경험으로 회귀하여 보다 넓은 세계관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변화의 과정은 곧 한국을 무대로 활동하는, 동시에 ‘춘천’이라는 도시를 기반으로 하는 그의 정체성과 함께 로컬리즘적 징후로서의 페인팅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2. 서울과 춘천, 로컬리티(Locality, 지역성) 

장승근의 작업은 ‘춘천’이라는 도시를 기반으로 진행된다. 물론 그의 작업이 도시와 주변적 의식을 재료로 삼고 있지는 않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그의 작업과 전개 과정을 ‘로컬리티(지역성)’라는 키워드로 설명하고 싶다. 이는 그의 회화를 비단 지역에 한정하는 것이 아닌, 한국이라는 국가가 가진 지리적 근거와 더불어 서울을 기반으로 확장하는 글로벌리티(globality), 그리고 그 반대 급부로 등장하는 지역적 문법과 맥락에 대한 이해를 위한 언급이다.  

특정한 지역에 속하는 성격, 혹은 어떠한 지역의 특수성을 드러내는 용어인 ‘로컬리티'는 장소나 공간의 상황을 기반으로 생성되는 성질로서, 어떠한 지역을 보다 넓은 맥락 속에 위치시킴으로써 변화하는 양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 과정에서 로컬(local)한 대상의 정체성은 그것을 경계 짓고 있는 선 너머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유기적으로 변모하며 구축된다. 이에 따라 특정 지역에 속한 한 개인이 국가나 지역적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 방식은 그것을 둘러싼 사회를 통해 획득되며, 점차 구성원 공동의 성질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증법적 로컬리티는 지리적 경계를 넘어 다양성을 기반으로 여러 공동체가 지닌 문화와 역사의 가치를 서술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국이 서술하는 로컬리티는 서울에 집중된 인프라, 그 변두리에 위치한 주변 지역, 그리고 한국이라는 지리적 위치가 외부와의 관계를 통해 체득한 역사적 상황을 전제로 형성된다. 국내 미술계는 서구적 전통을 답습했던 일련의 역사를 토대로 자신의 문화에서 나오는 로컬리티와 상징적 도상을 결합하는 식의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그 안에서의 변두리를 다시금 만들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지역에는 있으나 다른 지역에는 없는 것, 변두리에 존재하는 것, 규격화된 방식으로 지역적 콘텐츠를 생산하는 양상은, 서울이 서술하는 로컬에 대한 심상과 동시에 변두리가 자체적으로 만들어내는 한정적이고 조건적인 문화를 대변한다. 

1960년대 한국이 추진했던 서울 집권의 도시 계획과 실행 사업은, 서울이라는 거점 지역이 보유한 공동체로서의 집단과 인프라, 자본의 유동을 필두로, 변두리에 위치한 지역으로 하여금 서울을 보다 이상적인 곳으로 인식하도록 만드는 사고를 유발하였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타 지역과의 차이와 차별은 지금도 지방의 도시를 주변화시키는 로컬리티의 문화 정치학을 작동시키고 있다.  

장승근은 자신이 위치한 ‘춘천’이라는 도시의 지리적 특성과 그 과정에서 새롭게 파생되는 서울과 춘천 사이의 지역적 연계를 인지한 상태로 작업을 이어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발생하는 나름의 경계 짓기는 그로 하여금 자신의 작업을 끊임없이 재문맥화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의 시도는 중심에서 변두리로 시선을 이동한 작가의 작업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며, 로컬을 지역에 한정하여 사유하는 것이 아닌 서울을 둘러싼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자신의 근방에서 대안적 문맥을 선택하고자 하는 생각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3. 장승근의 작업으로 돌아와서 

기존의 방법론을 변형하여 보다 로컬한 속성을 기반으로 작업을 전개하고자 하는 장승근은, 이번 전시를 통해 시리즈의 전반을 변주해 내고 있다. 주변부를 살피는 일련의 과정에서 감각되는 사물, 그리고 대상을 바라보며 깃드는 작가의 감각은 곧 구상적 회화로 귀결되며 기존 시리즈와의 경계를 흩트리고 있다. 에어브러시를 활용하던 작품의 시리즈가 작가의 신체를 배제하고 있었다면, 이번의 시리즈는 유화를 토대로 작가의 신체를 전면적으로 활용하며 계산된 것이 아닌 순간의 심상을 진솔하게 드러낸다. 

«론도»에서 회화는 구체적 대상을 토대로, 정확히는 작가가 현실에서 관계를 맺는 대상에 대한 면밀한 재해석을 토대로 구성된다. 작가의 시선과 그가 견지한 사물에 대한 정서는 그가 관찰한 여러 대상을 펼쳐놓는 식으로 회화의 내부에 개입한다. 작가가 일상에서 마주한, 그의 시선이 내재되어 있는 사물은 일련의 시리즈로 풀어내어지며 구체적 형상으로 조형되지만, 그 시선에는 일종의 객관화를 위한 거리 두기와 현실에 대한 자각이 염세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그리고 구상을 위해 그려진 이전 단계로서의 드로잉은 회화와 함께 병치되며, 사물을 바라보는 과정에서 작가가 얻은 깨달음을 일련의 소재로 늘어놓고 있다. 컨투어 드로잉(contour drawing)을 활용하는 작가는 대상을 바라보지 않고 눈으로 포착한 순간을 거칠고 투박한 형태로 옮겨낸다. 

‹날 선 와이퍼›(2023)에서 시작되는 시리즈는 매년 폭설이 내리는 지역인 강원도 춘천의 눈 내린 주차장에 정차한 차량을 묘사한다. 쌓인 눈은 작가로 하여금 앞을 내다볼 수 없도록 만드는 환경을 은유하는 동시에 눈이 멀어버리게 되는 불가항력의 순간을 이야기하고 있다. 얼어버린 유리가 깨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세워둔 차량의 와이퍼(wiper)는 다시금 작가가 앞을 내다볼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방법을 암시한다. ‹회화›(2023)라는 이름이 붙은 시리즈는 작가의 작업실 인근을 돌아다니는 고양이를 관찰하며 발견한 정서를 토대로 한다. 손을 뻗었을 때 도망가는 고양이는 다가갈 수도, 그렇다고 방임할 수도 없는 작가적 태도의 양가적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딱밤 때리기›(2023) 역시 상반된 태도가 동시에 공존하는 상황을 비유한다. ‘딱밤’, 즉 이마를 때리는 행위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손가락을 뒤로 잡아당긴 뒤 놓아서 앞으로 튕겨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반동을 얻기 위해 후퇴하는 손가락, 그리고 딱밤을 얻어맞은 개인이 마주하는 깨달음의 순간은 수치심을 동반하며 개인을 보다 명료한 지각의 상태로 이끈다. ‹손님, 저희 마감이 7시라›(2023)와 같이 커피잔을 사물로 그려내는 시리즈는 작가가 ‘춘천’에 새로 개업한 특정 에스프레소 바(espresso bar)를 방문하며 겪은 사건을 중심으로 한다. 젊은 세대를 목표로 한 카페가 드문 춘천 지역에서, 그곳을 방문하기 위해 먼 길을 향하는 작가의 태도는 서울이라는 특정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투영하는 동시에 닿을 수 없는 현 지역적 상황을 대변한다. 마지막으로 전시장의 모서리에서 매번 마주하는 ‹잠에서 깬 얼굴›(2023) 시리즈는 작가의 자화상을 토대로 현 상황을 직시하는 자신의 자기-인식을 드러내며, 스스로에게 던지는 냉소적 시선을 직설적인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다. 

장승근의 «론도»는 그 자신의 로컬리티에 대한 수용과 변모의 의지를 숨겨둔 일련의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는 서울의 문화 중심 지역에서 진행되었는데, 이는 작가가 동경하는 서울이라는 지역과 본인이 위치한 풍경을 동시 병치하는 상황을 연출하며, 동시에 그 풍경에 완전히 동화되기 어려운 작가 자신의 감정적 거리감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회화 속의 대상은 작가가 속한 문화의 지형을 토대로 한 로컬의 시선을 내재한 채로, 변두리로 옮겨진 시선이 환기하는 작가의 작업적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서울 중심으로 형성된 문화적 이데올로기를 마주하는 작가의 작업은, 곧 사물과 그것에 투영하는 시선을 통해 전반의 상황을 암시하며 다음의 시리즈로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