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연출가 겸 겸 극작가로 21세기 초 한국의 사실주의를 대표하며 체홉과 러시아 사실주의 연기법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많다.
장편〈강택구>(1996)로 동서희곡문학 신인작가상을 수상했는데, 배우들과 즉흥극으로 시작하여 만든 이런 희곡들이 초반에 주류를 이루었다.
초기 단편〈결혼전야>(1995), 중편〈회상>(1996) 등은 러시아 유학시절에 공연과 함께 만든 작품이고 그 시대 평범한 사람들이 어지러운 사회속에서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생활상이 잘 묘사되어 있다.
귀국하여 <난타>(1997), <도깨비 스톰>(1998), <나에게 사랑은 없다>(2000)등의 상업뮤지컬류를 의뢰받아 집필하다가 극단 애플씨어터를 창단하면서 자기 작업에 몰두하였는데 그때 일반화와 편견이 가득찬 한국사회를 풍자한〈죽음의 토크쇼〉(2000)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당시에는 많은 논란과 반감을 산 작품인데 채 15년이 지나지 않아 시대의 고정관념에 대한 뒤통수를 치는 적절한 희곡이라는 평이 쏟아진다.
장막 〈내일은 챔피온>(2009)는 그해 차범석 희곡상에 차석에 그쳤지만 같은 해에 문광부 창작팩토리 최우수 희곡으로 선정된다.
이 작품은 서울연극제에 출품되어 21세기 한국적 사실주의의 기준을 알리는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으며 원로작가 윤대성씨로부터 완벽한 희곡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이후 극단을 위하여 그는 〈안똔체홉 4대장막전>, <안똔체홉 '숨겨진' 4대장막전>을 번역과 연출을 하며 체홉작품의 올바른 소개에 힘을 쓴다.
그의 번역본은 특히 전공생과 배우들에게 환호를 받았는데 바로 번역투가 없는 구어체로 배우들이 무대에서 연기하기 편하게 ‘말’을 할 수 있도록 한 이유이다.
더불어 전훈의 4대장막 완성을 진행하고 있는데 현재 <내일은 챔피온>(2009), <렌트더리얼>(2016), <아모라>(2018)까지 탈고 되었고 공연되었다.
2019년엔 한국영화 100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첫키노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 <의리적 구투(혹은 구토)>를 2시간짜리 희곡으로 복각해냈다.
2024년에는 <안똔체홉8대장막전>을 1년동안 릴레이 공연하며 안똔체홉극장 10주년을 기념했다.
서울 종로구 청운동 출생(1965.07.12)
부모님은 함경남도 흥남 출신으로 한국전쟁 발발시 부산에서 피난생활을 하다 휴전 후 서울에 정착했다.
특출나지 않은 어린시절을 보냈고 평범한 집안에서 자랐으며 공부도 적당히, 운동도 적당히, 취미도 적당했다.
유치원이나 학원등은 다녀 본 적 없고, 독서와 음악 그리고 여행이 그의 학창시절 과외생활이었다.
그냥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사는게 최고라는 집안분위기라서 특별한 억압이나 바라는 점 없이 자랐고 그것이 자유로운 사고에 어느 정도 영향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이후 자립을 해야해서 젊은 시절 동안은 경제적으로는 풍족하지 못한 상황에서 작업을 병행했다.
동국대 연극과에서 연출을 공부하는 동안 선배의 자취 집에 얹혀 살고, 휴학 후 육군 수송병과 30개월 병장 만기제대.
복학전에는 대학로 한 소극장에서 조명감독으로 1년간 취직하여 극장 숙직실에서 기거했다.
90년, 복학 후에는 인사동에 거주하는 어느 스님 수행방의 옥탑에서도 신세지며 살았고, 졸업 후엔 허드렛 일은 돕는 조건으로 목포 반야사에서 6개월간 숙식하며 공부했다. 이후, 1992~1996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유학생활 하면서 한인식당과 관광가이드로도 일하며 학비를 보탰다.
귀국 후 대학 강사일을 하며 작가겸 연출가로 데뷔했다.
초창기엔 상업적인 뮤지컬이나 의뢰받은 작품들을 쓰고 연출하다가 이후 자신의 삶과 철학에 영향을 끼친 작가 체홉의 작품적 경향과 일맥상통하는 작품들을 주로 쓰고 연출하고 있다.
여러 대학에서 강사와 겸임교수로 재직했다가 자신의 창작산실인 안똔체홉극장(2014년 개관)을 만든 이후엔 학교 일은 모두 그만두고 자신의 터에서 안똔체홉학회, 연기아카데미, 극단 애플씨어터, 그리고 출판사 애플리즘을 운영하고 있다.
특별히 사상을 외치지도, 철학을 강요하지도, 대중을 가르치려 들지 않는 창작 활동을 하며 살고 있으며 또 그럴 것이다.
참고로 자전거 여행을 즐긴다.
아내와 두 딸, 그리고 아들 하나가 그의 식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