鑛夫 수필
鑛夫 수필
영일만에 늘어져 있는 포스코 산업단지를 바다 너머 바라보면, 나는 祖父母·父母世代의 獻身을 느낍니다. 이 가난한 나라에서 지나칠 만큼 자식에 대한 父母의 犧牲 아래 많은 젊은이들이 산업역군으로 일하고, 또 다른 젊은이들은 해외로 유학하였기 때문에, 나는 이곳에서 오늘날의 榮光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時代에서는 저출생으로 인하여 이 나라는 모든 분야가 위축되는 구조적 위기가 있을 것인데, 앞으로 나는 이 나라의 學者로서 연구·교육 분야에 있어서 최대한 이런 위축을 막아보려고 합니다.
지난 대학원 생활을 돌이켜보면 앞의 절반은 입학시험, 논문 자격시험이 있었고, 學問에 대한 熱情喪失, 그리고 回復의 단계였다면, 나머지 절반은 3편의 논문 작성, 수십 번의 발표, 철길숲 걷기, 책 읽기 과정에서 個別性을 確立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전반기를 더 알차게 보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지만, 그 나머지 折半의 시간이라도 살려내어 오늘의 學業을 마무리 한 것은 하나의 成果라고 생각합니다.
대체 인간생활에서 조화란 무언가. 조화란 타협으로 이루어지는 건가, 양보로 이루어지는 건가. 그런 조화도 가능하리라. 그러나 진정한 조화란 참된 대결에서 찾아지는 균형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 조화의 획득을 위해 인간은 부단히 눈에 뵈지 않는 눈물이나 피를 흘리리라. -黃順元, 神들의 주사위
예전에는 밤이 길다는 이유로 겨울을 좋아했는데, 밤에 나오는 창의력으로 내 能力을 최대한 이끌어 보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요사이에는 낮이 길다는 이유로 여름이 좋은데, 오후 7시에도 밝은 거리를 걷는 氣分이 좋은 것입니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것은 學問的으로는 위상시계열분석에 관한 좋은 리뷰논문을 쓰기와 Springer 출판사에 책을 출판해보고 싶고, 人間的으로는 餘裕를 가지고 이 世上을 寬大하게 대해보고 싶습니다.
2024 유월
鑛夫
2021년 8월 일주데이터스쿨에서 류한백 교수님, 김진수 교수님과 프로젝트를 같이한 것이 인연이 되어 이번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Nonnegative Matrix Factorization (NMF)을 어느 문제에 적용할까 회의를 하는데, 지도교수님이 서울대학교 서기원 교수님이 제안했었던 지구중력장 데이터의 denoising 문제에 적용하게 된 것이다. Basis 차원을 조절해나가며 그리고 얻은 basis를 smoothing하여 데이터를 reconstruction 하기도 했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고, 이듬해 3월까지 그저 NMF를 다루는 것에 익숙해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상황이 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지구중력장의 예측 문제로 바꾸게 되었다.
NMF를 사용하여 시공간 데이터를 시간, 공간 데이터로 나누었고, 이 과정에서 얻은 시계열 데이터들을 예측해서 시공간 데이터를 예측하는 방법으로 접근했다.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 쉽지 않듯이 많은 방법 (Hankel matrix factorization, Long short term memory, Topological data analysis)들을 동원하여도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선행 논문에서는 지구중력장을 예측하기 위해 강수량, 증발량 등 보조하는 데이터를 사용한 것은 알고 있었고, 지도교수님도 보조데이터 사용을 독려했지만, NMF에 적용이 잘 될까 하는 회의적인 생각과 데이터를 얻고 손질해야 하는 귀찮음, 그리고 지구중력장 데이터만을 사용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서 미루고 있었다. 2022년 5월에 이르러 보조데이터를 사용해서 괜찮은 실험 결과를 얻어서 하이퍼파라미터 튜닝을 하며 성능을 높이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이대로 간다면 이 논문의 수학적 성취는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실험하면서 한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는데, 중력장의 시간 데이터의 성질을 학습하는 과정에서는 우세한 주기는 11개월이었는데, 학습을 바탕으로 예측하는 과정에서 우세한 주기에서는 14개월이 우세한 것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이런 결과에 대한 해석으로 중력장 데이터의 누락된 기간이 있으니까 12개월이 안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찝찝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간단한 것이었는데 알고 봤더니 11, 14개월은 진동수에 해당하는 것이었고 12개월이 주기로 나왔는데, 이 결과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Frequency domain에 대한 regularization을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이 regularization 문제는 optimization problem을 푸는 문제로 바꾸었고, 이 문제를 풂으로서 이전부터 고민하던 수학적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이론 연구에 집중하여 데이터 분석, 이론의 응용에 대해 경시하고 있었는데, 이번 연구는 데이터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영감을 얻어 연구해야 할 이론을 떠올렸다. 내가 주도하여 이번 연구를 진행했지만, 공동 연구자의 활용에 있어서 지속적으로 내 생각을 들어줄 사람, 그리고 공동 연구자에게 만족스러운 질문을 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답변을 듣지 못하더라도 말을 하는 과정에서 생각이 정리된다는 경험도 하였다.
2024 유월
博士學位硏究課程 回顧錄 - 2022년 십이월,
나는 작년 1월부터 정재훈 교수님에게 박사학위 논문지도를 받기 시작했다. 교수님이 읽으라고 권한 논문은 [1,2]였는데, 논문과 관련된 reference들을 읽었지만 도통 연구의 背景을 이해할 수 없었다. 수많은 논문과 책을 읽어도 감이 잡히지 않아 2월에는 교수님께 찾아가서 조언을 구하였다. 교수님은 Mathieu Carrier가 쓴 논문들을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이라 하셨고, Mathieu의 최신 논문인 [3]을 읽었다. 이 논문을 읽은 것이 Multi-parameter persistence 이론을 처음 접한 것인데, 응용수학임에도 이 이론은 많은 대수적 지식이 있어야 하는 것이 魅力的이었다. Mathieu의 논문을 읽고 코드를 돌려보면서 작년 10월까지 무슨 연구를 할지 구상했지만 잘되지 않아 연구에 대한 구상을 보류했다. 올해 3월이 되어서야 내 박사학위논문에서 이 이론을 접목시킬 수 있게 된다. 그래도 이 논문을 읽으면서 [4] 논문이 필요해서 읽었고, Machine Learning(ML)과 Topological Data Analysis(TDA)를 결합하기 위해서 persistence diagram의 vectorization이 필요하다는 배경을 이해했다.
한편 작년 8월 일주 데이터스쿨에서 류한백 교수님으로부터 Supervised Nonnegative Matrix Factorization(SNMF) 이론을 배웠다. 그 이후 SNMF와 TDA를 결합하려는 시도는 자연스러운 것이랴. Supporting data의 persistence diagram을 vectorization하고, 원래 데이터셋에 concatenate하여 SNMF를 적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시도들의 결과는 좋지 못했고, 결국 다른 주제들을 교수님과 고민하게 되었다. (이듬해 Obayashi가 내가 했던 방법들을 적절한 data set에 적용하여 새삼스러운 감정이 들었다.) 그러다가 교수님께서 persistence diagram의 vectorization의 계산시간을 줄이기 위해 오차를 작게 하는 vectorization의 linearization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Linearization을 한다는 것은, 예를 들어, sinusoidal function에 대한 vectorization을 알면 trigonometric polynomial의 vectorization은 sinusoidal function의 vectorization의 linear combination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Sinusoidal function에 대한 1-dimensional persistence diagram 공식을 추론하고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계산을 했고, 그 추론을 증명하기 위해 골을 싸매었다. 그러던 중 내 생일에 친구들에게 요리해주고 여느 때와 같이 밤을 새우며 연구하는데, 12각형 안에 6각형을 그리고 그 안에 3각형을 그리니까 증명이 되는 것이었다.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와 같다고 할까나 그동안 나를 괴롭히던 고뇌는 解放感으로 바뀌었고, 그 해방감을 만끽하기 위해 새벽 6시에 연일로 3시간 동안 산책하러 갔었다. 형산강 주변에 펼쳐진 갈대밭과 졸졸 흐르는 강물 소리, 그리고 더 걷다 보니 논이 보이고, 묶여 있는 개, 꼬끼오하는 닭 소리도 들리었다. 다시 기숙사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너무 멀리 나와서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아이러니하게 지금까지 적은 연구들은 최종적인 논문에 담기지 않았다. 내 생일 때 증명한 명제만은 빼놓기 싫어서 Appendix에 덧붙였을 뿐이다.
3월이 되어 [5]의 논문을 읽었는데, 내가 유도한 명제로부터 일반적인 trigonometric polynomial에 대한 1-dimenionsal persistence diagram 공식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만 이 결과만으로는 내 논문이 아주 새로운 것이 없었다. 일전에 공부하던 multi-parameter persistent homology 이론을 그냥 묵히기에는 아까워 나의 논문에 접목하려고 했고, 이전의 linearization에서 sinusoidal function을 다루던 기억과 합쳐져서 frequency를 가지고 multi-parameter filtration을 생각해내었다. 3월 말이 되어서야 지금 논문의 줄거리가 완성된 것이다.
너의 意味를 알게 되어서야
비로소 내 가슴이 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는 어리석은 나에게 다가와
뜨거운 熱情으로 나를 감싸주었다.
6월 말이 되어서 내 연구를 발표할 정도로 준비되었고, 경주 힐튼호텔 랩 워크숍에서 대략 2시간 발표했다. 발표 이후 허은우 兄과 방에서 이야기했는데, metric의 선택에 따라 topological inference가 달라지는 것을 이해했다. 내 연구에서 중요하게 사용한 정리는 persistent Künneth formula인데, product topological space가 maximum norm을 가질 때 사용하는 정리였다. Point cloud가 있는 공간이 Euclidean space가 아니라 maximum norm을 가지는 공간을 생각한다는 것이 TDA 관점에서 무슨 의미인지 이해를 한 것이다. 발표하면서 discrete time-series data를 continuous time-series data로 바꾸는 것이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면서 얼버무렸는데, 이것 역시 잘못된 주장이었다.
그러다가 7월이 되어 여러 가지 논문을 보다가 Henry Adams의 [6]의 논문을 보았는데, 이전에 내가 증명한 sinusoidal function에 대한 1-dimensional persistence diagram 공식이 있었고 뿐만 아니라 n-dimensional에 대한 공식이 있었다. 이 당시에 나는 내 논문의 핵심 중 하나인 나의 증명이 무의미해졌다는 사실에 [6]의 논문이 틀렸을 것이라고 믿고 오류를 찾으려고도 했었다. 이 과정에서 내가 하려는 연구가 이미 되어있는지 아닌지 체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9월 말에는 나의 生涯에서 가장 큰 학술대회 발표가 예정되어 있었다. ‘The 2nd POSTECH MINDS Workshop on Topological Data Analysis and Machine Learning’으로 국제학술대회였다. 이 워크숍에는 내가 논문에서 인용한 Henry Adams가 참석했고, SNMF와 TDA를 결합한 Obayashi 발표가 있었다. 아무튼 나는 발표 이전에 내 논문을 arXiv에 업로드하는게 목표였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시간을 투자한 만큼 써지는 것이 아니오, 내 논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부분이 있어 그러지 못했다. 발표 준비도 많이 하려고 했지만, 해당 연구와 다른 연구를 진행하면서 준비해야 했고, 개인적인 일이 생기면서, 그리고 교수님의 피드백을 수용하느라 그러지 못했다. 좋은 기회였는데 내 발표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 이후로 고된 것은 나의 아이디어가 공개된 상황에서 내 논문을 최대한 빨리 arXiv에 업로드해야 하는 압박감이었다. 대략 논문 타이핑은 완료했지만, 내용의 구성, 배치, 양식, 문장 교정 등 할 일이 많아 업로드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렇게 해서 6주 정도가 지나 arXiv에 업로드했다. 이제 11월 말 KSIAM 학회, 12월 초 WYMK 학회에서 발표하는 것을 제외하곤 더 이상 논문에 신경 쓸 일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교수님께서 제목과 문장을 조금 고치고 싶다고 하여 그러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잘못된 것과 설명이 부족한 것을 메우느라 고생했다. 특히 KSIAM 학회 사흘 전에 오류를 발견해서 그 오류를 수정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고, parameter 공간에서 여러 개의 ray를 생각하는 부분이 추가되었다. 12월 28일이 되어서야 저널에 submit을 했고 당분간 내 논문의 拘束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2022년 십이월
[1] Bubenik, Peter, and Alexander Wagner “Embeddings of persistence diagrams into Hilbert spaces”
[2] Mitra, Atish, and Žiga Virk. “The space of persistence diagrams on 𝑛 points coarsely embeds into Hilbert space”
[3] Carrière, Mathieu, and Andrew Blumberg. "Multiparameter persistence image for topological machine learning.“
[4] Adams, Henry, et al. "Persistence images: A stable vector representation of persistent homology.“
[5] Gakhar, Hitesh, and Jose A. Perea. "Künneth Formulae in Persistent Homology."
[6] Adamaszek, Michał, and Henry Adams. "The Vietoris–Rips complexes of a circle."
1. 자기소개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라는 책에 아마추어 수학자 볼프스켄이 실연의 고통으로 자살일정을 계획하고 책장을 뒤지던 중,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대한 쿰머의 증명 방법에 영감을 얻었고, 정리를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에 자살을 포기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로 아무리 많이 가지고, 배우더라도 하고 싶은 일이 없다면 삶이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정의하는 행복한 삶이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삶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영웅이라도 우주 안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만큼 작은 존재’라는 사실에 경외심을 느낍니다. 그 광활한 우주의 진리를 위해 스러져간 학자들처럼, 저 역시 진리를 찾아 헤매는 광부가 되고 싶습니다. 우주를 이해하기 위한 학문은 많지만, 수학은 펜과 종이만 있으면 내 생각을 표현하고, 확인할 수 있다는 매력에 수학자의 길을 걸으려고 합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홀수 완전수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주제로 연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새로운 방법을 발견할 때마다 아무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되었습니다. 수업시간에도, 자다가도 몇 번씩 일어나서 공책에 제 생각을 적어보기도 했습니다. 수학이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열정이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과 같아지기를 싫어했고, 나만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동료들과 소통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부산대학교에 입학할 당시에는 이러한 의사소통을 위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공간도 없었고, 수학 그 자체에 흥미를 가진 사람도 적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2013년 가을, 선배들과 Prime이라는 수학 동아리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선배들과 저희 동아리가 학술의 장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세미나를 하였고,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며 각자의 가치관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멋있어 보인다.’라는 생각으로 물리학 공부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을 다니면서 수학은 너무 판에 박힌 듯 이론을 전개해서 따분함을 느꼈지만, 양자역학을 공부하면서 깨지는 상식들을 보며 참신함을 느꼈습니다. 저는 물리학과 학생 분들과 연구실에서 수식에서 생각할 수 있는 물리 현상에 대한 의미를 여러 번 토론 하였고, 교수님 연구실에 찾아가서 토론한 내용을 발표도 하였습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수리물리학에 관심을 가졌고, IBS-CGP가 있는 포스텍에 진학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작년 전기 포스텍 대학원 입시에 지원을 했습니다. 1시간 동안 면접을 보면서 대답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사실에, 지난 3년간 대학생활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자괴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국수 공장에 가서 국수나 뽑으며 살까?’ 하며 생각도 했지만, 내 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노력의 부족으로 생각하며 다시 한 번 더 도전해보자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작년 8월 포스텍에서 열린 Number Theroy and Quantum Field Theory에 참여하여 흰머리가 지긋이 난 할아버지들도 1시간 내내 경청하고, 질문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지난 입시에서 불합격한 후로 부족한 전공들을 복습하였고, 영어 공부, 상대성 이론 등을 공부하였습니다. 이번 면접에서는 저번처럼 아무 말 못하고 1시간을 보내지 않겠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을 안고 IBS-CGP에 있는 많은 교수와 연구진들, 세미나와 컨퍼런스들을 활용하여 더 나은 연구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희 부산대학교는 해방 후 어려웠던 시절 부산시민들의 성금으로 만들어진 사랑의 학교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지역 사회와 국가에 많은 빚을 지고 있고, 공동체를 위해 헌신을 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공동체 기여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각자가 맡은 일들을 성실히 이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특히 자연과학자로서 인류의 지식을 넓히고, 동시에 사람들에게 “우리는 이렇게 놀라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라고 당당하게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의무를 지키는 것이 우리 공동체에 기여를 하는 것이며, 그 대가로 돈과, 사회로부터의 존경심을 받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공동체 기여를 하기 위해서는 아직 학문적으로 성숙하지 못하며 석,박사 과정 등 많은 준비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현재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공동체에 기여해왔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로는 한국장학재단에서 운영하는 고교 멘토링 활동을 방학기간 동안 80여 시간 정도 하였고, 부산대학교에서 운영하는 고교동아리연계프로그램 역시 2차례 참여하였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사회에 도움이 되었다는 뿌듯함과, 함께한 사람들의 추억은,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 제가 사회에서 맡은 의무를 다하여 사회에 공헌을 해야 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포스텍의 초대 이사장인 박태준 선생은 1965년 한일협정에서 민족의 피와 땀으로 만든 돈을 받아 포항제철을 설립했습니다. 저는 민족의 혼이 담긴 포스텍에서 홍익인간이라는 민족의 정신을 가지고,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해 수학을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2. 연구계획
저는 대학교 3학년 시절, 전공인 수학 과목들 보다 양자역학을 더 많이 공부할 정도로 양자역학이 재미있었습니다. 양자역학이 재미있었던 이유를 지금 돌이켜보면, 양자역학의 현상들, 예를 들면 ‘wave function collapse’ 와 같은 현상은 제가 지금까지 갖고 있던 상식과 직관을 깨어버렸고, 그 외에도 많은 양자 현상들로 새로움이 가득한 과목이었습니다. 또한 양자역학은 해밀턴 역학의 형식화가 부각되는 과목으로, 수학적인 형식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고, 앞으로 연구를 하고자 하는 것의 의의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작년 전기 대학원 전형에 지원할 때까지는 양자역학과 위상수학을 융합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양자역학의 현상 중에서 ‘Aharonov-Bohm effect’라는 그 현상자체만으로도 신기하지만, 수학적으로 Berry’s phase로 설명할 수 있다는 내용을 책에서 보았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Aharonov-Bohm 실험에서 solenoid가 복소적분에 나오는 singular point에 해당하고, Berry’s phase는 아무 곳에서 관측되는 것이 아니라 solenoid와 같은 singular point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물리학과 입자물리연구실에서 물리학과 분과 이 내용을 가지고 토론을 했고, 교수님 연구실에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제가 한 설명은 맞으며, 더 일반적으로 homotopy 이론이 사용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교과서(Griffith)에서 Berry’s phase의 예시로 구면 위에서 Berry’s phase가 관측되는 이유가 구면은 한 점으로 contractible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당시 Algebraic topology에 대해 공부하고 있었던 중이고, 추상적이기만 한 topology가 물리학의 현상을 수학적으로 형식화 하는데 쓰일 수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이후로 두 학기 동안 따분하게 느꼈던 위상수학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특히 Algebraic topology는 정말로 재미있게 공부를 하였습니다. 현재는 물리적인 계의 대칭성을 Group으로 표현하여, selection rule과 같은 법칙을 이끌어내는 것에 흥미를 느껴서 Group Theory를 중점적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기 대학원 입시에 포스텍에 합격하여 포스텍 교수님과의 면담을 통해서 구체적인 연구 계획을 설정할 계획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정의하는 저의 연구의 가치와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은 물리라는 시공간의 규칙 속에서, 그 규칙을 수학이라는 언어로 기술하는 이론물리학자이면서, 물리현상으로부터 수학적 방법론의 발전에 기여하는 수학자입니다.
부산대학교 수학과 수학동아리 Prime 소개(2016)
집중연구의 소개(2016)
포스텍 대학원을 준비하면서(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