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법대와 하버드로스쿨 - 무엇을 할 것인가?

게시일: Jan 27, 2015 1:40:12 PM

서울 법대와 하버드 로스쿨 3

길고도 긴 글을 이제 마무리해야죠. 서울 법대와 하버드 로스쿨의 같고 다른 점과 다른 이유를 이야기했으니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좋은 학문적 토양과 문화가 있으니 너도 나도 달러 빚을 내서라도 애들을 유학 보내서 선진문물을 배워 오도록 해야 할까요?

글의 처음에 별 다를 게 없더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결국 정성과 성실, 책임감 같은 평범한 가치들이었다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시스템이나 문화가 백화점에 진열된 물건처럼 돈 주고 사면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시스템이나 문화는 결국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대형 서점에 가 보면 ‘나는 이렇게 하버드 대학 갔다’, ‘하버드 들어간 쌍둥이 이야기’ 류의 책들이 참 잘도 팔리더군요. 그런 책들 읽어 보면 참 아이들이 대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동시에 드는 의문은 하버드 가느라 고생했겠다만, 그래서 뭐 할 건데? 하는 것입니다. ‘하버드라는 특정 대학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사회에 있어 어떠한 독자적인 가치를 갖고 있습니까? 대학 입학이라는 것 자체가 인생의 한 목표가 될 수 있습니까? 그 대학 간판이 남은 인생 동안 자기 능력과 성실성에 대해 새로 증명할 필요 없는 자유이용권 같은 겁니까?

우리는 아이들에게 ‘나중에 커서 뭐가 될래?’라고 묻지, ‘나중에 커서 어떤 일을 하고 싶어?’라고 잘 묻지 않는 것 같습니다. 뭐가 되고, 어느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한 것 아닙니까? 어느 대학에 들어가고, 뭐가 되는 것까지가 아니라 무엇이 된 이후 그 좋은 방편을 활용해서 무슨 일을 왜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민하고 있습니까?

이이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른이 된 이후가 더 문제입니다. 장관이 되고, 교수가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사장이 되고, 다 좋지요. 그런데 다들 기억하는 것은 그 자리에 오른 날 신문에 난 활짝 웃으며 괜히 전화 받는 척하면서 찍은 사진 한 장이지, 그 사람이 그 자리에서 무슨 일을 하려고 왔는지, 실제로 무슨 일을 했는지가 아닌 것 같습니다.

3일 장관을 하다 불미스러운 일로 불명예 퇴진했지만 평생 ‘장관님’ 소리를 들으며 목에 힘주고 다니는 사람과 만년 말단 공무원이지만 끊임없는 아이디어로 맡은 업무를 혁신하여 작으나마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사람 중에 누가 더 큰 성취를 한 사람입니까?

부모도, 학교도, 사회도 어떻게 살 것인가, 왜 그렇게 살 것인가, 무엇이 행복인가에 대하여 고민하기보다, 그런 고민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으니 인생의 지름길로부터 이탈하지 말고 눈 가린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릴 것을 강요한다면, 그래서 미친 듯이 달려서 골인했는데 알고 보니 그곳은 그냥 깃발만이 꽂혀 있는 곳일 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 이후의 삶은 허무해서 어쩌지요?

하버드의 학문적 풍토, 우수한 시스템, 교수들의 정성과 열의를 이야기했지만 간판만 얻으면 족한 사람들에게 그게 다 개뿔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귀찮기만 하지. 그러한 혜택은 그것이 절실히 필요한 이에게 주어져야 제 값어치를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절실한 사람이라면,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고 세상을 보다 낫게 만들고 싶은 강한 욕구와 의지를 가진 이라면 그러한 혜택이 없다고 공부를 하지 못할까요? 더디고 길을 헤맬지는 모르지만 어디에서든 공부하지 않을까요?

앞에 언급했던 엘리자베스 워렌(Elizabeth Warren) 교수의 강의는 하버드에서도 최고의 명강의로 꼽힙니다. 워렌 교수는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입법에도 참여하고, 백악관에서도 강연하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도 쓰고, 신문에 칼럼도 쓰면서 파산제도, 소비자 금융 등의 시스템이 빚과 가난 때문에 고통받는 개개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탐구하고 목소리 높여 월가의 금융업 로비스트들과 맞서 싸웁니다.

그런데 이 교수는 하버드 출신도 아이비리그 출신도 아닙니다. 시골인 오클라호마에서 근로 계층 부모 밑에 태어나, 학부에서는 언어병리학과 청각학을 공부하여 장애아 지도 교사로 일하기도 했지요. 이후 아주 유명하지는 않은 로스쿨을 졸업하고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하였는데, 워낙 강의도 열심히 하고 좋은 논문도 발표하여 좀 더 큰 대학 교수로 옮기고, 옮기고 하다가 평생 한 번도 인연이 없었던 하버드 교수가 되어 지금은 이곳을 대표하는 교수가 된 것입니다.

대가가 된 지금도 어찌나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학생들이 질문을 하면 바로 ‘그건 예일 로스쿨 리뷰 지난 봄 호에 어느 교수가 논문을 발표한 이슈인데….’ 하면서 설명을 합니다. 강의를 듣다 보면 교수가 학생보다 훨씬 눈을 더 반짝반짝거리면서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인 것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결례이겠지만 솔직히 그녀의 강의나 책을 보면 법경제학을 하는 유태인 학자들의 글에서 발견하는 천재적인 번뜩임 같은 것은 찾기 힘듭니다. 학생들의 복잡한 질문의 요지를 금방 캐치하지 못해서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히 인정하고 열심히 공부해 온 후 다음 시간에 처음부터 다시 설명합니다.

그녀는 죽는 날까지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런 행복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1등만 하고, 1등 대학만 가고, 1등 지위에 오른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녀가 하버드 교수가 되고 전국적 명성을 얻은 것은 그녀에게 자신의 주장을 사회에 펼칠 수 있는 ‘힘’을 주었고, 그녀는 그 ‘힘’을 최선을 다해 쓰고 있습니다. 만약 힘만 주어졌고, 그 힘을 무엇에 써야 할지에 대한 목적의식과 가치관이 없었다면 그녀는 하버드 교수가 된 날 이후로는 목에 힘만 주고 무위도식하다가 어느 순간 허무함을 느끼고 마는 삶을 살았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강한 힘에는 강한 책임이 따른다."

네, 영화 「스파이더맨」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강한 책임을 기꺼이 질 수 있는 가치관은 심어 주지 않은 채, 손쉽게 강한 힘에 접근할 수 있는 지름길로만 애들을 내모는 것이 진정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인지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이곳 하버드에서 만나는 한국 학생들에게 ‘나중에 뭐할 거니?’를 꼭 물어봅니다. 그리고 꼭 한 마디 당부합니다. 뉴욕에서 돈도 많이 벌고, 하고 싶은 일도 맘껏 하되 언젠가는 꼭 한국에 돌아와서 후배들을 가르쳐다오. 너희들이 배우고 느낀 것을 잊지 말고….

우리도 분명히 바뀌고 있음을 믿습니다. 시작이 반인데, 문제가 있음을 알고 스스로 달라지려는 이들이 하나씩 둘씩 늘어난다면 이미 반절은 되어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p.s. 이 글 이후 시간이 흘러 워렌 교수는 일생을 바쳐 온 금융 규제와 소비자 보호를 위해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 2012년 매사추세츠 주 상원의원으로 당선되었고, 민주당 내 유력 대선주자 후보 중 한 명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