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_ 불편한 '연구능력' 평가

게시일: Oct 05, 2013 6:53:32 AM

2013년 10월 01일 (화) 10:25:23

김봉억 기자

<교수신문> 700호(2013.9.23.) 해외기획인터뷰에 소개됐던 서보명 시카고신학대 교수의 말 가운데 곱씹을만한 구절이 있다. 그는 오늘날 대학이 시장의 논리를 받아들이고 있지만, 이 시장의 논리라는 게 ‘효율성의 논리’인데, 문제는 이게 ‘현실이나 실체가 없는’ 허구의 논리일 수도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면서 서 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대학에서) 문제는 효율성을 측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효율성 때문에 치러야 하는 비용을 측정하기는 더 어렵다. 이를 위해 생겨난 게 평가 산업 아닌가. 최근 교육현장에서 평가산업의 성장은 놀라울 정도다.”

한국의 사정은 어떨까. <중앙일보>가 대학평가를 시작한 이후,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이 이어서 ‘평가’에 나서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최근 <동아일보>도 ‘인문사회분야 연구능력’ 분석 기사를 실으면서 연구자 집단에 대한 평가 포문을 열었다. 대학 평가가 학자들 평가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계량적 평가는 ‘공정성’을 위해 투명한 척도를 사용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렇게 동원된 평가툴, 예컨대 ‘외국인 학생 비율’, ‘취업률’ 따위가 지금 대학을 얼마나 극심하게 뒤흔들고 있는지 해당 ‘평가’의 寶刀를 쥐고 있는 매체들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외국인 학생 비율로 치면, 강의실마다 중국 유학생들이 넘쳐나는 ‘호황’이 벌어지고 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 상황인지 책임 있는 곳에서는 모른 척 한다.

<동아일보>의 ‘인문사회분야 연구능력’ 분석 기사를 접한 교수들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접근이라고 대놓고 말한다. ‘연구능력 1위 학자’라고 아예 학문 분야별 연구자들 이름까지 도표에 담는 친절을 베풀었지만, 이 친절을 호의로 받아들이는 교수들은 드물다. 연구자들의 논문이 얼마나 자주 인용되는지를 ‘직접인용건수’와 ‘간접인용사례’로 추적했지만, 이는 그간 학계에서 끊임없이 그 문제점을 지적하던 '구태'일 뿐이다.

올해 5월 16일 세계 각국의 과학자 150여 명과 주요 과학자 단체 75개가 “영향력 지수(Impact Factor, 이하 IF)가 학술지와 연구자의 질을 평가하는 척도로 쓰이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한 샌프란시스코 선언은 들어보지 못했나?

서보명 교수의 말을 환기해보자. “평가를 중심으로 한 대학운영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에 대한 평가는 없다. 평가 시스템이 등장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시스템을 완성시키면 나머지는 부속품으로 쉽게 대체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게 평가시스템이 불편한 이유다.” 미디어의 영향력을 등에 업은 메이저 신문이 나서서 학자들의 연구‘능력’을 분석하는 사회가 됐다. 무엇이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고 진행되는 ‘평가산업’의 이 미친바람 앞에 서 있는 교수 연구자들이 너무 불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