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사적 제122호)은 1405년 경복궁 다음으로 지어진 별궁으로, 정궁인 경복궁의 동쪽방 면에 있다 해서 "동궐"이라고도 했다. 창덕궁은 1997년 12월에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창경궁(사적 제123호)은 세종대왕이 상왕인 태종을 모시고자 1418년에 지은 수강궁이 그 전신이다. 이후 성종임금 대로 와서 세조의 비 정희왕후, 덕종의 비소혜왕후, 예종의 비 안순왕후를 모시기 위해 명정전, 문정전, 통명전을 짓고 창경궁이라 명명했다.
덕수궁(사적 제124호)은 본디 왕궁이 아니고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집이었으나 1592년 임진왜란 때 왕궁이 모두 불타서 1593년 행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피난 갔다 온 선조가 잠시 머물다가 한동안 별궁으로만 사용해 오던것을 1897년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관에 있다 환궁하면서 이 곳을 다시 왕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다시 경운궁이라 부르게 되었고 그 규모도 다시 넓히고 고종 황제의 장수를 비는 뜻에서 덕수궁이라 부르게 되었다.
경복궁(사적 제117호)은 5대궁궐 가운데 규모와 건축미 면에서 으뜸으로, 임진왜란 때 상당 수의 건물이 불타 없어진 것을 고종때에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7,700여칸에 이르는 건물들을 다시 세웠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경회루와 향원정의 연못이 원형대로 남아있다.
조선 5대 궁궐이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을 말한다. 5대 궁궐 여행은 교통편을 고려해 덕수궁부터 경희궁,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순서로 돌아보는 것이 좋다. 덕수궁은 대한제국 시절에는 황궁으로 사용하여 근대 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인 곳이다. 경희궁은 광해군 12년에 완공됐고, 당시 명칭은 경덕궁이었다. 영조 36년에 경희궁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입구 동편에 서울역사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경복궁은 조선 왕조를 대표하는 제1궁궐이다.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규모가 크고 격식도 매우 엄중하다. 경복궁에서는 광화문 수문장 교대식도 빠뜨리지 말아야 하고, 국립민속박물관과 국립고궁박물관도 둘러볼 만하다. 창덕궁은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해서 ‘동관대궐’ ‘동궐’로 불렸다. 법궁인 경복궁보다 오랫동안 왕조의 역사가 펼쳐진 곳이다. 창경궁은 창덕궁의 보조 궁궐로 사용됐다. 춘당지에 비치는 가을 풍경이 아름답다.
참고: 사이버문화재탐방.
경희궁(사적 제271호)은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살았던 곳으로, 새문안 대궐 또는 서쪽의 궁궐이다 해서 서궐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 후 왕족의 사저로 쓰이다가 광해군 8년에 새문안 대궐자리에 왕기(王氣)가 있어 이를 눌러 없애기 위해 별궁을 짓고 경덕궁이라 하였으나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은 축출되고, 영조 36년에 궁의 이름을 경희궁이라 개칭하였다.
종묘는 조선왕조의 역대 왕과 왕비 그리고 사후에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56,500평의 경내에 종묘 정전을 비롯, 별묘인 영녕전과 전사청, 어숙실, 향대청, 신당 등의 건물이 있다.
운현궁(사적 제257호)은 경복궁과 같은 궁궐이 아니라 왕족의 친족들이 거주하던 곳을 궁으로 부른것 중의 하나이다. 운현궁은 흥선대원군의 사저였으며, 조선 26대 임금인 고종의 잠저(潛邸), 즉 임금이 되기 전까지 출생, 성장한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