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유혹과 선택
이제 사람에게는 완전한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유혹을 뿌리치고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선택하길 기대하십니다. 사탄은 이 진정한 사랑이 형성되는 것을 방해하고 망쳐버려서 모두 허무하게 끝나버리면 좋겠습니다.
1. 뱀은, 주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서 가장 간교하였다.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하나님이 정말로 너희에게, 동산 안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느냐?"
2. 여자가 뱀에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동산 안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다.
3. 그러나 하나님은,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 어기면 우리가 죽는다고 하셨다."
4.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5.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6.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을 슬기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다. 여자가 그 열매를 따서 먹고,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니, 그도 그것을 먹었다. (창 3:1~6)
뱀이 갑자기 사람에게 나타나 사람처럼 말을 합니다. 아마도 성경이 유대 민족의 신화적인 허구라고 여기게 만드는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구절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탄이 등장 한 것도 아니고 갑자기 뱀이 나타나 인간에게 말을 겁니다. 더군다나 성경은 이 뱀안에 사탄이 들어갔다는 등의 언급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앞서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기 위해서는 유혹하는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는 것을 자세하게 살펴 보아야 했습니다. 뱀은 그럴싸하게 유혹했고 사람은 선택할 무엇인가가 있는 진정한 자유의지가 성립된 상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 유혹하는 뱀의 정체가 사탄이라면 왜 뱀으로 나타난걸까요?
- 물질을 입어야 했던 사탄
하나님께서 영이신 것처럼 사탄도 영적인 존재입니다. 존재하기 위해서 육체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특별한 목적이 없다면 말입니다. 또한 창세기 초반에 등장해서 하나님께서 그의 역할을 최종적으로 끝내시는 장면이 예언되어있는 성경 맨 마지막 요한계시록까지 죽지 않고 계속 등장합니다. 이처럼 사탄은 육체에 매여있지 않기에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처럼 전지전능하지는 못합니다. 세분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속성으로 한분처럼 완전하게 화합하셨기에 세분 다 전지전능이 가능하지만, 사탄의 악은 하나님의 선의 속성에 완전하게 반대됩니다. 대립되는 두 존재가 둘 다 전능할 수 없습니다. 한쪽이 전능하면 다른 한쪽은 그 상대의 전능함에 막혀 전능할 수는 없게 됩니다.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빛과 어둠의 대결 혹은 창조와 반창조의 관계가 가지는 근본적으로 뛰어넘을 수 없는 차이가 있기에 사탄은 전능한 영은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갈릴리 맞은 편에 있는 거라사 지방에 닿았다. 예수께서 뭍에 내리시니, 그 마을 출신으로서 귀신 들린 사람 하나가 예수를 만났다. 그는 오랫동안 옷을 입지 않은 채, 집에서 살지 않고, 무덤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가 예수를 보고, 소리를 지르고서, 그 앞에 엎드려서, 큰 소리로 말하였다. "더없이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예수께서 이미 악한 귀신더러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고 명하셨던 것이다. 귀신이 여러 번 그 사람을 붙잡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쇠사슬과 쇠고랑으로 묶어서 감시하였으나, 그는 그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서 광야로 뛰쳐나가곤 하였다. 예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대답하였다. "군대입니다." 많은 귀신이 그 사람 속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귀신들은 자기들을 지옥에 보내지 말아달라고 예수께 간청하였다. (누가복음 8:26~31)
사탄도 영적인 존재이기에 인간과 영적인 소통을 하려면 사탄의 영을 인간에게 집어 넣어야 합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영을 불어 넣으신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탄은 스스로 하나님의 영을 몰아내고 사람을 차지할 능력은 없습니다. 이 일을 성공 시키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진정한 사랑을 이루시려고 사람에게 주신 완벽한 자유의지를 이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거부할 수도 있는 자유의지가 있는 사람을 유혹해서 사람 스스로 하나님의 영을 거부하게 하고 사탄을 선택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합법적으로 사람에게 들어가 자신의 목적, 반창조와 죽음을 세상에 펼쳐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탄이 인간에게 접근해 나눈 첫번째 소통은 물질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람이나 다른 동물들처럼 공기의 파동, 즉 귀에 다다르는 물질세계의 소리체계를 이용할 수 있는 몸이 필요합니다.
이 영적인 존재가 뱀이라는 동물을 덧입어 나타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과는 다르게 반창조의 능력만 가짐으로 악한 영을 불어넣은 별도의 악한 사람을 만들 능력은 없습니다. 태초의 인류 두사람이 다 하나님의 영이 있으니, 사탄은 동물을 덧입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탄의 육체 점령, demon possession 능력이 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많은 사람들로부터 귀신들을 쫓아내시는 것과, 심지어 열두 제자중 한명에게도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혼내시고, 가롯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다는 표현들이 성경에 등장하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왜 뱀을 택했는지 썩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가장 간계한 동물이라는 설명이 나오지만 사실 뱀은 성경상에서 좋은 의미로 쓰인 경우도 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모세라는 사람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출해 광야로 나왔을때 많은 사람들이 죄를 짓고 뱀에 물려 죽어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구리뱀 형상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매달아 두고 이것을 보면 산다고 알려 주셨고 이를 믿음으로 보러 나온 사람들은 모두 살게 되었습니다. 뱀의 형상이 구원과 용서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쓰였습니다. 더 나중에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제자들에게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 조언해 주십니다. 역시 좋은 의미로 쓰였습니다. (민수기 21:1~10, 마태복음 10:16 참조)
반면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에서, 세례요한은 누가복음에서 교활하고 이중적인 바리세파 사람들과 사두개인들엑게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욕을 했습니다. 여기서 독사는 나쁜 의미로 쓰였습니다 (마태복음 12:34, 누가복음 3:7 참조). 이렇게 좋게도 나쁘게도 언급된 뱀은 사탄이 육체를 입고 사람에게 나타나기 위해 선택된 동물입니다.
그러나 뱀이 사탄은 아닙니다. 먹이를 사냥하는 모습이 꽤 음흉하긴 하나 뱀을 함부로 죽이면 생태계가 훼손됩니다. 뱀도 우리가 바르게 다스리고 보호해야 하는 자연의 일부입니다. 사탄을 잡겠다고 뱀을 죽여 없애는 일은 사탄의 술책에 넘어가 이땅에 반창조를 가져오는 우매한 일에 쓰임 받는 것입니다. 사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상당히 교묘하게 숨어 있습니다.
사탄은 뱀의 껍질을 뒤집어 써서 영적인 실체를 감추고 사람에게 나타나 그의 존재의 목적, 사람을 유혹하는 일을 시작합니다. 인간을 꾀어서 하나님의 영을 스스로 거부하도록 유도합니다. 또한 그와 동시에 자신을 선택하게 해야 합니다.
인류의 첫번째 커플이 등장하자 마자 사탄은 재빠르게 그들에게 다가갑니다.
- 유혹의 성립 조건
사탄의 유혹이 제대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첫번째는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지말라는 명령을 내리시기 전에 먼저 유혹할 수 없습니다. 이 명령이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합니다. 따라서 사탄은 인간에게 가장 먼저 이것을 확인합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너희에게, 동산 안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느냐?" (창세기 3:1 중)
...“어기면 우리가 죽는다고 하셨다." (창세기 3:3 중)
여자의 대답은 정확하게 이 금지 명령을 알고 있음을 확인시켜 줍니다. 사탄은 유혹의 첫번째 조건이 성립되었음을 알고 두번째로 넘어갑니다.
두번째는 유혹이 명확하게 하나님의 뜻에 반대의 입장에 서야 합니다.
두리뭉실하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면 더 좋아 하시 않을실까?” “하나님께서 선악과 하나 정도는 봐주실꺼야” 정도로 유혹하지 않았습니다. 그정도 유혹에 넘어간다면 선악과를 먹은 잘못은 발생하겠지만, 하나님의 영을 거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첫째 예의 경우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일을 하려다가 속은 것이고, 두번째도 여전히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기대하며 선악과를 먹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은 할지언정 하나님의 영을 거부하는 일은 아닙니다.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창세기 3:4)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으면 “너는 반드시 죽는다”라고 하셨고, 사탄은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부인했습니다. 사실 이말은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제 사람은 사탄의 말을 믿던지 하나님의 말을 믿던지 둘중에 하나만을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탄이 말이 참(true) 이던지, 아니면 사탄이 거짓말을 하고 있어서 사탄의 말이 참이 아니던지(untrue) 이 둘중에 한가지만 가능합니다. 사탄의 말이 참이면서 사탄의 말이 참이 아닐 가능성은 없습니다.
이제 사탄은 자신이 명확하게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 있음을 드러냈습니다. 이로서 사람이 사탄의 말을 믿기로 선택하면 사람도 완벽하게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을 거부하는 일과 같습니다.
셋째로, 사탄은 강제적으로 선악과를 먹게하거나 불법 함정수사를 할 수 없습니다.
자전거를 훔칠 생각이 없는 사람을 지속적으로 유혹하고 협박해서 자전거를 훔치게 하는 것은 불법 함정수사이지만, 자전거가 자주 없어지는 지역에 자전거를 가져다가 두고 잠복하다가 이를 훔쳐가는 사람을 잡는 것은 세계 여러국가가 시행하는 합법적 함정수사입니다.
사탄이 강제적으로 선악과를 먹게 하거나, 너무 과도하게 먹어보라고 유혹하거나 협박하는 것도 선악과를 먹는 죄를 유도할 수는 있어도 하나님의 영을 거부하는 일까지는 발생 시킬 수 없습니다. 이 일은 반드시 자발적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놀랍게도 사탄은 선악과를 먹어보라는 이야기를 단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하나님이 거짓말 하셨다. 절대 안죽는다. 오히려 니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는 열매다. 하나님이 니가 하나님처럼 될까봐 널 속이고 있는 것이다 라고만 말하고 사라져 버립니다.
- 하나님이 되려는 욕망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창세기 3:4~5)
사탄이 사람을 유혹하기 위해서 선택한 단어는 “하나님처럼 되어서” 입니다. 앞으로 인류의 타락을 이해하는데 가장 핵심이 될 단어 입니다.
사실 이 “하나님처럼 되어서”는 얼핏 들으면 하나님과 닮아간다는 좋은 의미처럼 들립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애초에 창조하실때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만드셨고, 사람 존재의 목적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 맞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사람에게 “하나님을 닮아간다”와 “스스로 하나님이 된다”의 이중적인 표현인 “하나님처럼 되어서”, “you will be like God” 이라는 말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너는 절대 죽지 않는다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반박했기 때문에 그 말은 이제 하나님을 닮아간다는 의미는 절대 되지 못합니다.
네가 평소에 늘 장담하더니 '내가 가장 높은 하늘로 올라가겠다. 하나님의 별들보다 더 높은 곳에 나의 보좌를 두고, 저 멀리 북쪽 끝에 있는 산 위에, 신들이 모여 있는 그 산 위에 자리잡고 앉겠다. 내가 저 구름 위에 올라가서, 가장 높으신 분과 같아지겠다' 하더니 (이사야 14:13~14)
“하나님처럼 되어서”는 이처럼 사탄이 꿈에도 그리는 단어입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탄은 악을 담당하는 영적세계의 한 축이지만 그 능력이 하나님을 쫓아 갈 수는 없습니다. 어둠은 빛이 나타나면 소멸되고, 반창조는 창조가 없으면 존재 하는지 조차 알 수 없으며, 게다가 하나님의 전지전능에 가로 막혀 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하나님되심, 창조주되심을 속으로는 인정하지 못하고, 절대로 이루어지지 못할 욕망, 자신이 하나님과 같아 지려는 욕망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세계관이 정의 내리는 "교만” Hubris 입니다. 그저 단순하게 건방지고 잘난척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아닌 존재, 즉 인간과 같은 피조물 혹은 사탄이 생명의 근원이신 창조주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욕망, 이것이 교만입니다. (휴브리스 Hubris /ˈhjuːbrɪs/, also hybris, from ancient Greek ὕβρις)
사탄의 마음속에서는 늘 무엇이 소용돌이 치겠습니까? 이루어지지 않을 욕망의 괴로움과 고통이 태풍처럼 휘몰아치지 않을까요. 늘 열등감에 휩싸여 쉴새 없이 욕된 말들을 뱉어 낼 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이기고 이 땅에 허무한 반창조를 펼쳐보고 싶은 헛된 망상이 가득차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자신의 존재가 끝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기에 절망과 두려움이 폭력적으로 텨져 나올 것입니다. 자신의 존재도 언젠가는 끝날 것인데 세상에 닥치는 데로 죽음과 파괴를 가져와도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죽이고 자신도 파괴해서 끝맺는 잔인하고 허무한 범죄들의 결말과 꼭 같습니다.
만약 사탄이 자족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하나님을 인정하고 자신의 역할에만 충실했다면, 혹은 욕망을 절제할 줄 알았다면 아마도 꽤 그럴싸한 존재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역할이 사람을 유혹해서 그 안에 있는 범죄성향이 들어나면 이를 선악을 판단하시는 하나님 앞에 고발하고, 그에 맞는 형벌을 구형하는 검사처럼 말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보여 주시는데, 내가 보니, 여호수아 대제사장이 주님의 천사 앞에 서 있고, 그의 오른쪽에는 그를 고소하는 사탄이 서 있었다. (스가랴 3:1)
하지만 이런 하나님의 속성인 자족, 인정, 순종, 절제 등이 있었다면 그가 왜 사탄이겠습니까.
이 “하나님처럼 되어서”는 사탄의 욕망이 가장 함축되어 있는 단어입니다. 이 말로 사람을 유혹했다는 것은 사탄의 생각의 핵심이자 그 이루어지지도, 꺼지지도 않는 욕망을 사람에게 전한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사탄의 생각의 핵심이자 그 근본적 욕망이라면 사실 사탄의 영과 같습니다.
- 유혹받은 인간
이제 사람에게는 두가지 서로 맞지않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하나는 ‘선악과를 먹지말아라 먹는면 반드시 죽는다’ 이고, 다른 하나는 ‘죽지 않는다 오히려 니가 하나님처럼 된다’ 입니다. 두가지 서로 상충되는 말을 들으면 사람은 혼란을 겪게 되고 혼란은 불편함을 가지고 옵니다. 사람은 불편함이나 고통을 느끼면 자연스럽게 그것을 해결하고자 합니다. 이 경우에는 두가지 정보중 거짓을 찾아내면 됩니다.
타락 이전의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 있어서 하나님과 소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 어디에도 사람이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하나님을 찾았다거나, 물어봤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왜 일까요?
사람이 이미 마음속에서 선악과를 먹기로 결정했다면 굳이 하나님께 가서 이 사실을 확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이제 곧 가서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처럼 될 것인데 그걸 하나님께 가서 왜 물어 보겠습니까. 먹지 말라고 하셨으니 말리실게 뻔한데 말입니다. 이미 여자 수영복 사진을 인터넷에서 보려고 마음먹은 청소년은 부모님께 가서 그런 사진을 봐도 되냐고 절대로 물어 보지 않습니다.
사람은 이 선악과를 먹고 스스로 하나님이 되기로 결정을 내립니다. 그리고 다가가 선악과를 따서 먹습니다.
이때 요즘 영화의 그래픽 특수 효과처럼 선과 악을 알게하는 신비하고 특수한 능력이 선악과를 먹은 바로 그순간에 인간에게 슈~욱하고 들어갔을까요? 그 선악과의 신비한 능력으로 인간은 타락 되었을까요?
제가 약혼녀가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녀가 어느날 만나자는 연락이 와서 나갔더니 다른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약혼 반지를 빼서 돌려줍니다. 그럼 그 약혼반지를 빼는 순간 저에 대한 사랑이 없어졌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다른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에게 마음이 넘어간 상태에서 파혼을 확정하기 위해 만나서 반지를 빼 이를 확인시켜 준 것 뿐입니다. 반지를 빼서 선언하기 전에 이미 결정은 내려졌고 사랑은 떠났습니다. 선악과에는 아무런 마술같은 힘이 없어도 됩니다. 사탄이 그 마음속에 유혹을 일으켰고, 사람이 이를 선택하는 것으로 이미 성립되었습니다. 그리고 선악과를 먹는 것으로 서명은 완료 되었습니다.
이처럼 선악과는 사람이 어떤 영에 반응했는지, 내적으로 어떤 영을 선택해서 했는지를 밖으로 보여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사람이 몸, 육체로 내면의 생각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선악과는 그것을 먹거나, 먹지않고 지키는 것으로 인간이 선택한 영이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게 됩니다. 나중에 등장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매달려 돌아가신 십자가도 이와 아주 유사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 유혹의 방치
사람은 유일하게 먹을 수 없는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보고 타락이전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 선악과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명령을 내리시는 분이고 자신은 그 명령을 들어야하는 제한적인 존재임을 느꼈을 것입니다.
사람은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체로 창조되었습니다.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은 상상력에는 제약이 없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사람이 실제로 하나님처럼 되는 것은 불가능 하더라도 자신이 창조주가 되는 것을 상상해 보는데는 아무런 제약이 없습니다. 그래야 자신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유혹이 성립됩니다. 스스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상상이 불가능하다면, 이 사탄의 유혹은 성립하지 않고 따라서 자유의지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사탄이 바로 이 인간의 발칙한 상상력을 건들여 자신의 가장 강렬한 욕망을 앞에 던져 두었습니다. 니가 이 열매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유혹. 사람은 이 유혹을 받았고, 받아들인 유혹을 빨리 떨쳐버리지 않아 생각 속에서 자라 욕심이 되었습니다.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을 슬기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다… (창세기 3:6 중)
굳이 그렇게 되지 않아도 충분히 살 수 있고 행복 할 수 있는데도 필요 이상의 것에 집착하고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데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생기는 불행감을 느끼는 상태가 “욕심”일 것입니다. 태초의 인류부터 지금까지 욕심이 자라나면 지혜를 가리게 됩니다.
수십억원을 횡령했던 한 은행의 여직원도 처음부터 그만큼의 돈을 가져가진 않았었습니다. 한번 두번 횟수가 늘어나면서 액수가 커지고 나중에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지혜가 가리워져서 깨닳지 못하고 계속 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마약이나 도박에 중독되어 가는 과정이나 성적으로 심각하게 타락해 결국 뉴스에 나올 정도가 되었던 목사님이나 다른 종교인들도 처음부터 단번에 그렇게 타락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유혹을 빨리 뿌리치지 못하고 그것이 안에서 자라도록 놔둔것이 욕심과 채워지지 않은 욕망이 되고, 일단 시작되면 반복되다가, 결국에는 어처구니 없을 정도의 지혜가 없는 행동들로 드러나게 됩니다.
금지된 나무 열매를 하나 먹어서 갑자기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뱀의 유혹은 사실 지능이 많이 떨어지지 않으면 믿기 힘든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유혹을 받은 사람이 그 유혹이 속에서 욕심으로 자라도록 방치했기에 지혜가 가리워져 이런 믿기 힘든 말에 넘어가고야 말았습니다.
시험을 당할 때에, 아무도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당하고 있다" 하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않으시고, 또 시험하지도 않으십니다. 사람이 시험을 당하는 것은 각각 자기의 욕심에 이끌려서, 꾐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 (야고보서 1:13~15)
이제 사탄은 인간을 유혹하기 위해 뱀같은 육체를 덧입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인간의 머릿속에 못된 생각들을 원하는데로 직접 집어 넣을 수 있는 영적인 소통 채널을 열었습니다. 인간이 사탄의 영인 이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버리지 않는한 그 채널은 항상 유효합니다. 이 때문에 사탄은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을 절대로 버리지 못하도록 세상의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변형된, 니가 하나님이야, 너는 하나님처럼 될 수 있어 라는 메시지를 끊임 없이 전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계속해서 인간들 속에 심어둔 사탄 자신의 영을 통해 악한 생각들을 쏟아 부어대고 그들 중에 반응하고 몸으로 실행하는 사람들을 통해 세상에 반창조의 파괴와 죽음을 가져오기 시작합니다.
그 증거로 이 사건 이후에 성경에서 뱀을 입고 나타난 사탄은 갑자기 사라져 버립니다. 그리고 수천년 뒤에 예수님이 군대처럼 많은 숫자의 귀신떼가 들어간 사람을 만나 귀신들을 돼지떼로 들어가게 허락하셔서 다시 물질세계에 돼지의 육체를 덧입은 사탄의 영을 사람의 육안에 보여 주시기 전까지 성경에 동물을 입고 나타난 적이 없습니다. 그 수천년의 시간 사이에 사탄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 뱀이 사라지고 난 뒤 갑자기 잔인한 인간들이 성경에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 선악과의 정리
하나님께서는 왜 굳이 선악과라는 것을 만들어 애초에 인간의 타락을 가능하게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기에 인간이 선악과를 먹으리라는 것을 미리 다 아셨으면서도 왜 안 막으셨을까요? 그렇다면 선악과는 하나님의 테스트였을까요? 먹지 말라 명령하고 지켜보시다가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먹으면 가차없이 죽음이라는 벌을 내리시려고 심어두신 하나님의 함정이였을까요?
이런 모든 질문들에 이제 대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기에 사랑하시려고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로보트와 같이 선택권이 없는 상태가 아닌 자유의지 가운데 자발적으로 선택되어져야 합니다. 자유의지가 있으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길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선악과입니다.
그래서 이 선악과는 마치 사랑하는 남녀의 혼인서약과 같은 역할을 가지고 있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남자는 이 여자 이외에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 여자도 이 남자 이외에 다른 남자는 사랑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결혼합니다. 결혼 이후 서로 다른 이성에게 호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이내 그 유혹을 떨처버려야 합니다. 이것을 서로 약속하고 결혼하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지키는 것으로 그들의 결혼은 유지됩니다. 그렇게 자유의지로 유혹을 물리치고 서로에게 신실했던 결혼생활이 20년 30년 흐를수록 그 사랑은 더 아름답고 위대해져 갑니다. 부부는 그 사랑안에서 서로를 닮아갑니다. 선악과도 하나님과 사람의 혼인서약 같은 것으로 완벽한 자유안에서 이 약속이 유지되면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도 유지될 뿐만 아니라 점점 더 깊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나아가며 궁극적으로는 서로 닮아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 모든것이 누구에 의해서 강요되지 않고 완벽한 자유 안에서 지켜지기에 그 사랑은 위대하고 피조물이 창조주를 닳아가는 놀라운 힘을 얻게 됩니다.
이처럼 선악과는 자유의지 안에서 지켜지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은 서서히 성취되고 있었습니다.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의 남편이 되실 것이다. 그분의 이름은 만군의 주님이시다. 너를 구속하신 분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온 세상의 하나님으로 불릴 것이다. (이사야 54:5)
성경에 세분 하나님과 그 사랑을 받아드리기로 선택한 사람들이 사랑하는 남녀관계나 부부관계로 많이 비유되어지는 이유도 선악과의 이 혼인서약같은 역할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사탄의 가장 강렬한 욕망, 스스로 하나님과 같아 지려는 영을 선택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기로 결정하고 선악과를 먹음으로 이를 확정해 버렸습니다.
사탄은 오랜 역사 동안 인간의 이 욕망을 지속적으로 유혹하고 점점더 타락시켜 이제는 인간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생각을 우리가 가진 문화 곳곳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해두었습니다. 인간들은 이제 월등한 사람들에게는 갓, ~느님, 신, 여신, 아이돌, 우상 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섬기고 찬양하고, 진짜 창조자를 뜻하는 이 껄끄러운 “하나님”이란 단어에는 거의 본능적으로 거부감부터 들게 만들어 두었습니다.
이제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반응 하시는 것이 옳으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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