벡델데이2023 시리즈 부문 벡델리안


감독

작가

배우

제작자

<박하경 여행기> 이종필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코로나 시국, 대중과 평단의 지지와 호응을 얻어낸 드물고 귀한 여성 서사물이었다. 그동안 <전국노래자랑> <도리화가> 등의 전작을 통해 여성 캐릭터를 흥미롭게 담아냈던 이종필 감독은 첫 OTT 시리즈물인 <박하경 여행기>를 통해 또 한 번 인상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빠른 속도와 강한 자극이 대세인 OTT 시장에서 <박하경 여행기>는 포장도 내용도 심심해 보였지만, 뚜껑을 열자 이 담백함은 보는 이들의 마음에 오래 머물렀다.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는 고등학교 국어교사 박하경의 여행기에는 여백이 많은데, 이는 도리어 보는 이들을 그 여정에 동참시키는 정확한 초대장이 된다. 또한 주인공 박하경 역할을 맡은 배우 이나영 특유의 호기심 가득한, 맑고 엉뚱한 매력은 이 여행기의 훌륭한 가이드가 되었다. 무엇보다 이종필 감독은 ‘구태여’와 ‘억지로’ 없이 이 여행기를 보여주고 들려준다. 눈으로 들을 수 있고 귀로도 볼 수 있는, 때로는 마음으로도 맡을 수 있는 이 자연스러움은 OTT의 전력 질주 시대에 찾아온 느닷없는 뒤로 걷기였다. 

진명현(무브먼트 대표)

<슈룹> 박바라 

<슈룹>은 지금의 현실을 되비추는 알레고리로서 조선시대 궁중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낸 웰메이드 퓨전 사극이다. 왕자들의 신박한 사교육 비법을 앞세워 ‘조선판 SKY 캐슬’로 불리며 극적 몰입감을 높이는 한편, 자신을 낳은 어머니의 신분과 처지에 따라 계급이 달라지는 왕자들, 즉 계급의 세분화를 통해 그동안 드라마에서 재현되었던 갑과 을로 구성된 이분법적 K-세계관을 낯설게 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극 중 ‘성공한 을’로 그려지는 중전(김혜수)과 대비(김해숙)의 대립 구도를 통해 이상적인 ‘갑’의 조건을 탐색하고자 한 시도는 폭력적인 사적 복수가 팽배한 K-드라마 세계관에서 유의미한 성찰의 지점을 만들어낸다. 시리즈 분량에 비해 등장인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모두에게 제각각의 성격을 부여해 매력적인 캐릭터로 창조해낸 점 또한 드라마 속 성소수자 에피소드가 단순히 사극의 시의성을 높이기 위한 서사 전략이 아닌 작가의 ‘벡델스러운’ 세계 인식에 기반한 것임을 느끼게 한다. 신인 작가의 앞날에 꽃길이 펼쳐지길, 기쁜 마음으로 응원한다. 

김민정(중앙대학교 문예창작전공 교수)

<더 글로리> <마당이 있는 집> 임지연 

<더 글로리>란 드라마 제목은 몰라도 온 국민이 ‘연진이’를 알았다. 학교 폭력 가해자 박연진. 스타 작가 김은숙이 십대 딸이 던진 학폭에 관한 난제를 피해자의 서슬 퍼런 복수극에 담은 이 드라마에서, 임지연은 기꺼이 그와 같이 칼춤을 춘 망나니였다. 배우로서 쌓은 모든 걸 걸고 철저히 금수저 학폭 가해자가 됐다. ‘납작한 악녀’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빌런의 얼굴에 전에 본 적 없는 복잡한 욕망의 경로를 새겨냈다. 자신의 과거 악행에 어린 딸이 볼모로 잡힌 젊은 엄마, 풍족한  아내, 자존심만 남은 경력 위기 아나운서의… <마당이 있는 집>의 추상은은 남편의 폭력에 시달린 임산부였다. 서늘한 복수의 순간에도 뱃속에 품은 자식은 굶기지 않으려는 동물적 연기가 한 사람 안의 극과 극 온도차를 납득시켰다. 어쩌면 익히 봐온, ‘드라마틱한’ 여성 캐릭터에 피와 뼈를 부여했다. 그 어떤 지독한 삶도 임지연을 만나면 생생한 ‘현재성’을 획득한다. 드라마와 현실을 잇는 ‘지금, 여기의 얼굴’로 임지연은 2023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나원정(중앙일보 기자)

*사진 제공: 아티스트컴퍼니

<작은 아씨들> 조문주 

<갯마을 차차차> <빈센조> <해피니스> <유미의 세포들>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일타스캔들>까지… 조문주 CP가 제작해온 작품들은 <작은 아씨들>이 ‘조문주 사단’의 공든 탑이란 걸 말해준다. <유미의 세포들> 배우 김고은, <빈센조> 김희원 연출이 영화 <아가씨>의 정서경 작가와 만나 제대로 시너지를 터뜨렸다. 합이 좋은 여성 스타들의 성공적인 패키징을 성사한 건 제작자로서의 ‘촉’뿐만이 아니다. 그와 작품을 함께한 동료들은 그가 부재한 인터뷰 자리에서도 어김없이 ‘조문주’를 신뢰의 다른 말로 언급한다. 그의 작품들은 평범함 속 비범한 찰나를 낚아 올린다. 평일 점심 백반집의 밑반찬이 때때로 특별한 날 고급 레스토랑의 스테이크보다 잊지 못할 맛을 낸다는 걸 잘게 쪼갠 일상의 감정들로 뚝심 있게 보여준다. 사각지대에 묻혀 있던 여성, 소수자의 얼굴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끌어낸다. <작은 아씨들>은 그 대표작으로 남을 만하다. 

나원정(중앙일보 기자)

<앙상블>(2012), <전국노래자랑>(2013), <도리화가>(2015),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 <박하경 여행기>(2023) 

<슈룹>(2022) 

<인간중독>(2014), <간신>(2015), <럭키>(2016), <유체이탈자>(2021),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파트 2>(2022), <더 글로리>(2022), <마당이 있는 집>(2023), <국민사형투표>(2023) 

<아는 와이프>(2018), <남자친구>(2018), <로맨스는 별책부록>(2019),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2020), <빈센조>(2021), <갯마을 차차차>(2021), <유미의 세포들>(2021), <해피니스>(2021), <작은 아씨들>(2022), <일타스캔들>(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