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문 벡델초이스 10 | 2024 Bechdel Choice 10 in FILM
영화 부문 벡델초이스 10 | 2024 Bechdel Choice 10 in FILM
영화 부문 벡델초이스 10 심사총평
성평등한 가치를 실천한 영화와 시리즈를 조명하는 벡델데이가 올해로 5회를 맞았다. 지난 시간 벡델데이는 ‘성평등 구현’이라는 테스트 항목을 가지고 한국영화의 성취와 발전을 점검해 왔다. 그 시작에는, 한국영화 콘텐츠와 제작진의 구성에 있어 가시적인 성비 불균형에서 오는 문제점을 점검하고 앞으로 나가고자 하는 뚜렷한 목표지점이 있었다. 더불어 미투운동으로 촉발된 성평등의 사회적 인식 개선, 여성 창작자의 참여도와 목소리의 증가 같은 가시적인 변화를 수렴함으로써 벡델데이가 성평등한 콘텐츠를 만드는데 긍정적으로 역할 하기를 바랐다.
올해는 지난 1년간 개봉한 영화, 공개된 OTT 오리지널 영화 총 108편의 영화를 대상으로 벡델초이스 10과 벡델리안을 선정했다. 심사에서도 우선, 한국영화 산업의 부진한 토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커다란 이슈였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24년 6월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올 상반기 극장 매출, 흥행 부진, 한국영화 제작 위축 등 제작부터 상영 단계 모두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 수치로 확인되고 현실화되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가 제작과 투자, 창작에 영향을 미치고 관객과의 만남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23년 한국영화 성인지 결산’에 따르면 순제작비 30억 이상의 상업영화 시장은 판데믹 이후 ‘고예산·남성’ 중심으로 편성되고, 저예산 및 독립·예술영화의 편수가 줄어드는 가운데, 상업영화 안에서 여성 주연의 감소, 뿐만 아니라 고예산 영화의 여성 감독의 저조, 여성 감독의 상업영화 진출 감소 등 여성 핵심 창작 인력들의 기회 감소 등도 어느 해 보다 도드라지고 있다.
이렇게 상황이 어렵다 보니 우선은 한국영화의 회복, 관객 유입이라는 목표가 무엇보다 우선시 되는 분위기다. 투자, 제작에 있어서 흥행을 담보로 한 보수적인 기준의 적용은 결국 다양한 가치의 실종, 위축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이 가운데 당장의 위기 극복보다 한 발 더 나가, 미래적인 영화의 가치를 점검하는 벡델데이의 시각이 더 많이 요구되는 때이자, 창작 단계의 성평등한 구조를 점검하는 우리의 노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창작자와 대중이 만나 함께 성평등의 가치를 실천하는 데 앞장선 이들에게 우리의 행사는 작지만, 성평등한 가치를 실현하는 데 있어 수상자들의 기여와 공로가 결코 작지 않음을 알리고자 한다. 벡델데이가 단순 수상에 그치지 않고 보다 성평등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쟁점을 논의하는 자리를 만들어 가는 것도 이곳이야말로 더 큰 목표에 자칫 미뤄질 성평등의 가치를 위한 의견 교환의 장으로 역할 하기를 바라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성평등한 가치를 잃지 않고 관객들에게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며, 주제의식을 견지한 영화들을 심사 과정에서 다수 만날 수 있었다. 다양해진 목소리로 고군분투한 영화들에 대해 심사위원들의 가치 평가가 앞으로의 영화를 만드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전달해 주길 바란다.
이화정(벡델데이 2024 프로그래머)
2024년, 올해의 ‘벡델초이스10’은 2023년 7월부터 2024년 5월까지 선보인 한국영화 108편·시리즈 91편을 대상으로 예심과 본심을 통해 선정됐다. 올해 영화 부문 본심 심사에는 <미씽: 사라진 여자>, <탐정: 리턴즈>, [살인자의 쇼핑목록]을 연출하고, 최근 [킬러들의 쇼핑몰] 크리에이터로 참여한 이언희 감독을 필두로, 문샷필름 최정화 대표,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손희정 영화평론가가 참여했다.
2024 Bechdel Choice 10 in FILM
교토에서 온 편지 사진 제공 : 한국영화아카데미
감독 김민주 | 출연 한선화 차미경 한채아 송지현 | 작가 김민주 | 101min | ⑫
영화는 식민주의와 근대화 등 거대 역사 기술에서 지워져 저 깊은 장롱 속 어딘가로 파묻혀 버린 일상 속으로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 가려졌던 것들을 하나하나 스크린 위로 길어 올린다. 과거에는 이런 기록들이 지엽적이고 사소한 것들이라고 폄하되곤 했지만, 기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것이야말로 역사다.
손희정(영화평론가)
너와 나 사진 제공 : (주)필름영
감독 조현철 | 출연 박혜수 김시은 | 작가 정미영 조현철 | 118min | ⑫
영화는 모두가 파국을 말할 때에도 끝까지 사랑을 말한다. 어쩌면 ‘정상성에의 강요’가 이미 파국인 이들에게는 고통 속에서도 ‘함께’를 상상하고 그로부터 일종의 피난처를 구축하는 힘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편견은 물론 종차(種差)조차 넘어 서로를 돌보는 퀴어한 피난처를 만드는 일이 우리를 구원할 수도.
손희정(영화평론가)
물비늘 사진 제공 : 플라시보 픽쳐스
감독 임승현 | 출연 김자영 홍예서 정애화 | 작가 임승현 김승현 | 99min | ⑫
<물비늘>은 특별한 이야기를 보여주겠다는 욕심보다는 “묵묵히 마음 한구석에 덩어리를 간직한 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묵묵하게, 묵직하게 그들의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전달함으로써 특별한 영화가 된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계속 이어질 그들의 삶이 지금만큼은 힘들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된다.
이언희(영화감독)
밀수 사진 제공 : (주)외유내강
감독 류승완 | 출연 김혜수 염정아 조인성 박정민 김종수 고민시 | 작가 류승완 김정연 최차원 | 129min | ⑮
여성의 연대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한국 여성으로만 존재 가능한 해녀라는 특수성 안에서 풀어냈다. 김혜수, 염정아 등 각기 다른 경로로 한국영화계를 관통하는 배우들의 활약까지 화룡점정. '한국', '여성', '영화', 어떤 키워드를 우위에 두더라도 충족시켜줄 영화.
성찬얼(씨네플레이 기자)
비밀의 언덕 사진 제공 : 오스프링 필름
감독 이지은 | 출연 문승아 임선우 | 작가 이지은 | 122min | Ⓖ
12살 여자아이 명은은 완벽하지 않다. 제 욕심에 거짓말도 일삼는다. 한국영화에 이토록 ‘나쁜' 소녀는 처음이다. 영화는 다크한 명은을 비난하거나 다그치지 않는다. 스스로 잘못된 궤도를 수정할 수 있도록 명은의 시공간을 만들어 준다. 남성 성장 서사의 부수적 역할에 그쳤던 여자아이들에게도 이로써 ‘기댈’ 언덕이 생겼다. <우리들>과 <벌새>를 보유한 한국 여성 성장영화의 계보를 잇는 기록할 만한 작품의 출현이다.
이화정(벡델데이 2024 프로그래머)
소풍 사진 제공 : (주)로케트필름
감독 김용균 | 출연 나문희 김영옥 박근형 | 작가 조현미 | 114min | ⑫
벡델초이스에 이 영화가 선정된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듯하다. 이 영화는 우리가 너무 사랑하고 존경해 마지않는 배우분들이 본인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영화다. 한국 사회가 고령화되며 노인 인구가 늘고 있다는 걱정 섞인 소식에 비해 나이가 드는 것은 이상하게도 소수자가 되게 만들고 그만큼의 소외감을 느끼게 한다. 그런 소외감을 더더욱 부추기는 한국영화계에서 <소풍>은 그야말로 반가운 영화다. 관객들의 공감까지 얻어내었다는 것에 대해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이언희(영화감독)
시민덕희 사진 제공 : (주)씨제스 스튜디오
감독 박영주 | 출연 라미란 공명 염혜란 박병은 | 작가 박영주 | 114min | ⑮
범죄 피해를 직접 해결한다는 것. 즉, 범죄자와 직접 맞서겠다는 것은 사실… 무섭다. 한 평범한 여성이 이 두려움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간다. 보이스 피싱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공권력. 다 비켜! 내가 직접 해결한다! 영화 속 허구에서만 존재할 것 같은 얘기가 실화라는 게 더 아이러니. 심각한 수사물임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연출과 여성 4인방의 캐릭터는 가히 볼매라 하겠다.
최정화(문샷필름 대표)
잠 사진 제공 : (주)루이스픽쳐스
감독 유재선 | 출연 정유미 이선균 | 작가 유재선 | 94min | ⑮
<잠>은 미스터리 호러영화의 획기적인 한국적 변주다. 더불어 그간 장르 안에서 수동적이라서, 전개를 지연시킨다는 이유로 지탄받아 온 여성 캐릭터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캐릭터의 완벽한 변주다. 부부의 일상이 깨질 무시무시한 침범 앞에서 잠의 여성 캐릭터 수진은 뒷걸음치지 않는다. 두렵지만 맞서고 깨져도 나아간다. 그렇게 장르의 고정관념을 깨는 캐릭터를 만나는 쾌감을 선물처럼 선사한다.
이화정(벡델데이 2024 프로그래머)
정순 사진 제공 : 시네마루
감독 정지혜 | 출연 김금순 윤금선아 조현우 | 작가 정지혜 | 105min | ⑮
연민으로 시작된 사랑. 배신으로 돌아오다… 남은 건 복수다! 가해자 앞에 당당히 서는 순간, 응징은 시작된다! 성범죄 피해 여성이 일상으로 복귀하여 가해 남성 앞에 당당히 선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응징이 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영화. 피해자인 당신은 잘못하지 않았습니다.
최정화(문샷필름 대표)
지옥만세 사진 제공 : 한국영화아카데미
감독 임오정 | 출연 오우리 방효린 정이주 박성훈 | 작가 임오정 | 109min | ⑫
증오와 혐오로 점철된 세상에서 살아남기에, 이상은 때때로 걸림돌이다. <지옥만세>는 공감대 형성과 연대에서 살짝 비껴간다. 완벽한 용서도, 이해도 불가능하다고 인정한다. 그래서 온갖 난잡함에도 자신을 잃지 않고 세상에 다시 발 딛는 나미(오우리)와 선우(방효린)의 모습은 세상 가장 아름다운 부화로 보인다. 세 배우와 임오정 감독이 앞으로도 좋은 작품으로 "웰컴 백 투 헬"하길.
성찬얼(씨네플레이 기자)
벡델데이 2024 2024. 09. 07. (토) @인디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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