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에 자유가 찾아오며 BEE는 사역 대상을 동유럽에서 아시아로 넓힌다.
1989년 8월 19일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사이의 철의 장막이 처음 열리면서 동유럽의 공산권은 연쇄반응을 일으켰다. 수많은 동유럽인이 체코슬로바키아나 프라하에 있는 서독 대사관을 통해 자유진영에 문을 개방한 헝가리로 가려 했다. 이는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이어졌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폴란드 연대운동(Solidarity Movement)과 더불어 동유럽 공산주의의 몰락을 촉발했다. 1990년 여름이 되자 동유럽의 모든 공산 정권은 민주 방식으로 선출된 정부로 대체되었다. 1991년 8월부터 12월 사이 러시아를 포함한 소련의 모든 공화국이 연방에서 탈퇴하거나 소련 수립 조약에서 탈퇴했고, 1991년 12월 26일 142-H 선언에서 모든 소련의 공화국의 독립을 인정하며 독립국가연합(CIS) 수립을 허용하면서 소련이 붕괴하고 철의 장막도 역사에서 사라졌다.
BEE International은 자신들의 기도가 이루어졌다며 동유럽 공산권의 붕괴를 환영했다. 이제 더 이상 위험을 무릅쓰고 마음을 졸이며 학생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공산권 같이 성경 교육의 기회가 제한된 창의적 접근 지역을 위해 설립한 BEE의 설립 목표가 빛을 바랬다. 종교의 자유가 주어지자 세계 유수의 신학교와 선교단체가 밀물같이 동유럽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BEE International 내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성경을 가르칠 수 있는 이곳에 아직도 BEE 프로그램이 필요한지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BEE International의 이사회와 집행부는 이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직접 현장에서 교과과정을 개발하고 가르쳤던 집행부는 이제 동유럽 사역을 마무리하고 지구 상의 또 다른 공산권을 찾아 지난 10여 년간 쌓은 경험을 합해 사역을 새롭게 하기를 제안했다. 하지만 이사회의 생각은 달랐다. 지난 10여 년간 무서운 핍박 가운데 하나님이 연결해 주신 이 친밀한 현지인들과의 관계를 통해 더 넓고 깊게 이 지역에서 사역하도록 의결했다. 하지만 딜로우 선교사와 알 선교사를 중심으로 집행부는 동의하지 않고 집요하게 이사회를 설득했다. 결국 이사회는 딜로우 선교사와 알 선교사가 제안한 또 하나의 BEE 선교단체인 BEE World 설립을 용인하고 기존 BEE International의 선교사는 그 두 기관 중 동역할 기관을 정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BEE International은 동유럽에서 사역하고 BEE World는 다른 지역에서 사역하도록 서로가 인정했다.
딜로우 선교사와 알 선교사는 BEE International에 속한 선교사의 반 정도와 함께 1992년 BEE World를 설립하고 중국과 베트남이라는 공산국가가 있는 아시아를 타겟으로 삼았다. 이들은 중국을 먼저 사역 대상국으로 정하고 자신들이 동유럽 사역을 위해 인접한 자유진영인 오스트리아에 본부를 두었던 것처럼 중국 본토에 인접한 홍콩에 본부를 두기로 했다. 그리고 곧바로 본국(미국)을 중심으로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지원할 이사회를 새로 조직했다. 그후 그들은 1992년 말 홍콩으로 이주해 본부를 차리고 지금까지 개발한 학습서를 중국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특히 동아시아 선교를 위해 홍콩에 BEE China 설립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렇게 BEE 프로그램은 유럽에서 아시아로 건너왔다. 사람들은 BEE 초창기에 공산권을 사역 대상으로 정했기에 공산국가가 있는 아시아로 왔지만, 하나님은 세계를 보고 계셨다. BEE가 아시아로 온 것은 공산권을 넘어 세계로 가기 위한 발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