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E는 공산주의 아래 신음하던 동유럽과 구소련의 교회를 돕기 위해 시작됐다. 당시 이 지역에서 말씀 사역이 필요했던 배경을 설명하고 BEE 사역의 중요한 성경적 원리를 살펴본다.
1975년, 철의 장막 넘어 구소련연방과 동유럽의 당국자들이 1929년 재정한 반종교법을 한층 강화한 개정법을 시행하자 철의 장막 내의 선교사들은 그나마 어렵게 이어가던 사역마저 뒤에 남긴 채 철의 장막을 철수해야 할 상황이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한 후 기독교를 향한 당국의 다양한 탄압이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목회자를 향한 탄압은 집요했다. 겉으로는 설교와 강해의 자유를 주었지만, 당국은 그들을 “배타적 종교성을 가진 자들” 즉 무신론과 국가 이데올로기에 반하여 설교하는 자들로 낙인 찍었다. 또한 당국은 젊은 종교지도자를 훈련할 교육체계를 지능적으로 파괴했고, 젊은 신학생들을 수십년간 주입했던 무신론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신병자로 취급해 정신병원에 수용하기도 했다.
서방 선교사들이 보기에 이 상태로는 철의 장막 내 기독교는 소망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성경을 아는 교회 지도자가 없었다. 지리적으로 동토였던 지역이 이제는 영적 동토가 되었다. 영적 동토를 녹일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한 그분의 말씀 즉 성경 뿐이었다. 말씀은 영적 양식으로 죽은 영혼을 구원하고 그리스도인을 성화하여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하며, 더 나아가 모든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도록 온전하게 하기 때문이다(딤후 3:15-17). 따라서 한 지역에서 올바른 말씀을 교육받은 교회 지도자가 없을 때 그 나라 안 기독교의 몰락은 시간문제였다. 철의 장막 안에서 이미 지난 60년 가까이 교회 지도자에 대한 말씀 교육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러기에 이 영적 동토 내에서 말씀을 아는 교회 지도자를 일으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구소련연방과 동유럽 공산권 선교를 전문으로 하던 슬라브복음협회(Slavic Gospel Association)는 CCC와 네비게이토와 함께 자신들의 선교지에서 교회 지도자를 훈련할 방법을 찾고자 1979년 8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컨퍼런스를 주관했다. 세 기관 외에도 유럽기독교선교회(European Christian Mission, ECM)와 Inherit A Blessing(IAB) 등 총 25개의 선교단체에서 이 컨퍼런스에 대표를 보냈다. 또한 동유럽 출신 주요 기독교 지도자 두 명도 함께했다. 이 컨퍼런스의 주요안건은 '철의 장막 안의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를 훈련할 프로그램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 였다. 주강사는 미국 휘튼대학의 홀란드 학장(Dr. Fred Holland)으로 그는 아프리카에서 TEE(Theological Education by Extension) 사역을 주도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홀란드 교수는 TEE의 원칙과 TEE를 어떻게 아프리카 상황에 맞추어 제공했는지를 컨퍼런스 참석자들에게 설명했다.
컨퍼런스를 마칠 무렵에는 참석자 모두가 동유럽과 소련연방의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를 훈련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참석자들은 이 프로그램을 Biblical Education by Extension(BEE)으로 정했다. 이들은 BEE 사역을 추진해 나갈 단체로 BEE International을 설립할 것을 결의하고 참석자 중 달라스 신학대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얼마 전 동유럽에 선교사로 온 IAB의 딜로우(Joseph C. Dillow) 박사가 이 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선출했고 ECM의 브릿지스(Al Bridges) 선교사는 이 프로그램 개발에 자원해서 참여했다. 그해 가을, 책임을 맡은 이 두 선교사는 계획을 설립하고 컨퍼런스 참석자들을 중심으로 동역자를 모집했다. 그들은 이미 자신들의 선교단체에 속해 있어 소속 단체의 허락이 필요했지만, 하나님은 BEE 사역이 동유럽에서 빠른 시간 내에 자리를 잡도록 인도하셨다.
농부인 이요하니스는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250여 킬로미터 떨어진 한 시골 마을에 안토네스쿠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에서 1980년대 초부터 집사로 섬기고 있었다. 39킬로미터 산지로 들어간 작은 마을에 농사를 짓는 할머니가 홀로 살고 계셨다. 이요하니스는 몇 년 전부터 부쩍 연로하신 할머니 농사일을 돕기 위해 수시로 그 마을로 가 할머니를 도왔다. 형제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러시아정교와 자신이 속한 개신교회가 무엇인가 다름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어느 날 형제는 할머니에게 안토네스쿠 목사에게 들은 복음을 설명하고 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할머니는 평생 정교회를 다녔지만, 믿음의 구원에 관한 이 이야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형제는 자신의 마을 교회로 돌아와 안토네스쿠 목사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도움을 청했다. 목사는 다음에 이요하니스 형제가 할머니를 뵈러 갈 때 같이 가자고 했다.
이요하니스가 안토네스쿠 목사와 들어서자 할머니는 당황해 하면서도 귀한 손님이 왔다며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함께 풍성한 식사를 하고 안토네스쿠 목사는 할머니에게 복음을 전한 후 예수님을 할머니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주님으로 영접하라고 설득했다. 할머니가 망설이자 목사는 손자에게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후 뭐가 달라졌나?'고 물었다. 이요하니스는 무엇보다도 죽음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형제는 자신의 할머니에게 예수님을 영접하라고 애절하게 부탁했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손주 말이 위안이 되기도 하고 예수님과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정교회에서도 늘 보고 들어왔던 것이라 할머니는 승락했다. 또한 이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이 먼 곳까지 온 안토네스쿠 목사와 늘 자신의 농사를 도와주는 사랑스런 손자가 고마워 더 쉽게 영접하기로 했다.
안토네스쿠 목사로부터 어떻게 전도하는지를 알게 된 이요하니스는 그 마을에 갈 때마다 자신이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했다. 꽤 여러 가정이 그 마을에서 신앙을 갖게 되자 안토네스쿠 목사는 할머니 댁에서 주일 교회로 모이고 예배를 인도했다. 안토네스쿠 목사는 매 주일마다 본 교회에서 예배를 인도하고 오후에는 이요하니스를 대동해 할머니 마을을 찾아 예배를 인도했다. 그런데 일년 남짓 지난 어느 겨울 안토네스쿠 목사는 심한 감기로 본 교회 예배만 겨우 드리고 할머니 마을 예배는 이요하니스 형제에게 오전에 들은 설교를 대신 전하라고 부탁했다. 구불구불 눈 덮인 산길로 버스는 느릿느릿 움직이지만, 형제 마음은 더 답답했다. 어떻게 예배를 인도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었다. 가는 내내 형제는 아침에 들은 설교를 곱씹으며 종이에 옮겼다. 다시 읽어보며 이 정도면 20-30분 분량은 된다고 생각하며 안도했다. 그런데 막상 그 내용으로 설교를 시작하니 5분만에 할 말을 거의 다 해버렸다. 성경에 관한 지식이 없는 형제로는 무엇인가 더 붙일 내용도 없었다. 형제는 당황하며 설교를 마치고 서둘러 예배도 마쳤다.
설상가상으로 이후 건강이 악화한 안토네스쿠 목사는 본인은 주요한 절기에만 참석해서 예배를 인도할테니 이요하니스 집사가 그곳에서의 보통 주일 예배를 책임지도록 했다. 그는 교회에서 들은 설교 외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공부할 기회가 없었다. 사람들은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라고 하는데 형제는 교회를 제대로 섬기기 위해 그 내용이 알고 싶었다. 하지만 성경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말 투성이였다. 안토네스쿠 목사도 성경에 관해 질문하면 머뭇거리기 일쑤였고 때로는 불편해 했다. 교회를 오래 다닌 경험 많은 장로나 집사들도 성경에 관해 무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부쿠레슈티에 있는 정부가 인정한 신학교를 다니고 싶었지만, 학생으로 그곳까지 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농사를 지어야 아내와 두 아이의 생계가 유지되기에, 농사는 나 몰라라 하고 자신만 도시로 갈 수도 없었다. 그리고 할머니 마을의 교회도 자신 외에는 맡을 사람이 없었다. 또한 수소문해서 듣기로 부쿠레슈티에 있는 신학교는 성경을 깊이 있게 가르치지도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졸 학력인 자신은 그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을 것이었다.
안토네스쿠 목사에게 이러한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자, 목사는 형제에게 한 목사 이름과 그가 시무하는 교회를 적어주었다. 그 교회는 부쿠레슈티 가는 길에 있는 중간 규모의 도시에 있었다. 어렵살이 그 목사와 통화하여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자 그 목사는 자신을 한번 찾아오라고 했다. 어느 월요일 아침 일찍 이요하니스 집사는 그 목사를 만나러 그 교회로 향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그 목사는 반갑게 그를 맞았다. 이요하니스의 상황과 성경에 대한 열망을 확인한 목사는 그 앞에 옅은 갈색의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제목은 루마니아어로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라고 적혀 있었다. 목사가 한 번 보라고 해 책을 열어보니 자세한 설명과 함께 많은 질문이 있었다. 그가 막연하게 바라던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기 위한 책이었다. 그러면서 그 목사는 이런 것을 공부하겠냐고 이요하니스 집사에게 물었다. 그는 뛸 듯이 기뻤다. 하지만 부쿠레슈티 신학교를 가지 못하는 이유들이 떠올라 걱정이 앞섰다. 걱정하는 얼굴을 보자 목사는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었다. 그 이유들을 설명하자 목사는 평균 3개월에 한 번 3-5일씩 1년에 네 번 시간을 낼 수 있냐고 했다. 그 형제가 물론이라고 답하자 그런데 적어도 2-3년은 꾸준히 참석해야 한다고 목사는 다짐을 주었다. 형제는 목사와 그리 하겠노라 약속했다. 마지막으로 형제는 학교가 어디에 있냐고 목사에게 물었다. 목사는 자신의 교회를 가리키며 여기라고 답했다. 따로 학교가 있는 것은 아니냐고 하니 없고 신학교가 우리에게 온다고 설명했다.
이요하니스 집사 같은 경우는 단지 루마니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목회와 사역에 임하는 3백만 명 이상의 목회자가 있다. 그들은 이요하니스 집사가 가지고 있는 이유나 다른 이유로 사역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본적인 공부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전통적인 신학교에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착안한 것이 연장 교육(education by extension)이다. 즉 신학교 과정을 학생들이 있는 곳까지 연장해 그들이 공부할 기회를 준다. 학생들이 학교로 오는 것이 아니고 학교가 학생들에게 온다. 학생들은 그들의 삶과 사역의 현장을 장시간 떠나지 않고 바로 그 현장에서 공부하면 된다. 그래서 BEE는 이동식 신학교이다.
하지만 연장 방식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아주 좋은 연장 방식의 모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직접 뵙고 가르침을 받을 수 없기에 하나님은 하늘 나라를 이 땅에 연장하시어 예수님을 보내시고 그분을 통해 하나님을 보고 그분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을 수 있게 하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방식은 사도들에게 전해졌다. 당시 유대교에는 랍비가 되기 위한 교육기관이 예루살렘에 있었고, 사도 바울 역시 그 기관에서 수학했었다(행 22:3). 하지만 사도들은 자신들이 가르칠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가르쳤다. 역시 연장 교육 방식을 택한 것이다. 따라서 연장 교육 방식은 성경적이다.
한스 목사는 동 베를린의 한 교회에서 목회를 하며 BEE를 접했다. 기차를 타고 철의 장막을 넘어 위험을 무릅쓰고 2-4개월마다 찾아와 자신들을 가르치는 미국인들이 고맙기만 했다. 그들은 자신을 선생이 아닌 인도자(facilitator)로 소개하며 선생은 그들이 사용하는 학습서라고 했다. BEE의 학습서는 자습이 가능하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각 과마다 개요가 있어 어떤 주제를 배울지 기대를 갖게 했고, 그 과에서 학생들이 달성해야 하는 학습 목표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한스 목사 생각으로는 내용이 너무 좋아 인도자들이 어렵게 오기에 한 번 올 때 가능한 많은 사람이 공부하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BEE 인도자들은 극구 15명 이내의 학생만을 고집했다. 이러한 소규모의 학생은 모두 핍박 가운데 당국의 눈치를 보며 사역하기에 서로에게 존재만으로도 격려가 되었다. 성경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뿐 아니라 배운 내용에 근거해 설교를 하니 교인들이 목사의 설교가 변했다며 좋아했다.
인도자는 우리의 소규모 수업 방식을 강의가 아닌 세미나로 불렀다. 그 안에서 모든 학생은 이런저런 모습으로 학습과정에 직접 참여해야 했다. 그중 특정 주제에 관해 토론하는 소그룹 토론은 거의 매 세미나마다 빠지지 않는 학습 방법이었다. 처음에 늘 가만히 앉아 선생이 가르치는 내용을 듣는 데 익숙한 우리는 토론이 어색했다. 매번 조장을 뽑아 그 조장이 토론 내용을 정리해 발표도 해야 했다. 내성적인 나는 조장을 매번 사양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조장으로 섬겨 보니 더 많은 내용을 배울 수 있었다. 두 세 과목을 이렇게 배우다 보니 소그룹 토론이 정말 학습서 내용을 이해하는데 유익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직접 내 의견을 개진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으며 응대하려니 여러 사람의 의견과 경험에서 배울 점이 많았다. 학생 모두는 배우는 내용 뿐 아니라 교수법도 너무 좋다고 입을 모았다.
보통 한 과목을 마치면 인도자는 다음에 공부할 과목의 학습서를 미리 주어 예습해 오도록 한다. 그런데 세 과목을 배우고나니, 딜로우 인도자는 다음에 공부할 과목의 학습서는 아직 주지 않겠다고 했다. 예습을 하지 않아도 되기에 학생들 만면에 희색이 돌았지만, 이는 곧 의아함으로 바뀌었다. 우리의 의아함을 알아 챈 딜로우 인도자는 다음 번에는 어떻게 우리가 배운 과목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지 배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이는 우리 그룹이 처음 만났을 때 우리도 인도자가 될 것이라고 한 약속이기도 했다.
BEE는 초창기 학습서 기획 단계부터 디모데후서 2장 2절에 명시한 재생산 원칙, 즉 사도 바울이 디모데를 가르치고, 디모데는 충성된 사람들을, 충성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원칙이 실현되도록 학습서를 계획했다. 그러려면 내용을 가르치는 사람에 따라 전달해야 할 내용이 달라지거나 배움의 결과가 달라서는 안 되었다. 따라서 누가 가르치더라도 학습서만 있으면 전달해야 하는 지식을 전달할 수 있도록 학습서가 만들어져야 했다. 그러기 위해 전달자는 학습서에서 목표하는 전달 내용을 학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야 했다. 그래서 BEE에서 선생은 사람이 아니고 학습서라고 한다. 또한 가르치는 사람은 그 내용을 학생들이 잘 습득하도록 돕는 인도자(facilitator, 조력자라는 의미)라고 한다. 인도자는 물론 자신이 인도하는 과목의 내용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분야에 깊이 있는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 학습서가 목표로 하는 것을 학생들이 성취할 만큼 학습서의 내용을 숙지하면 된다.
재생산의 원칙은 배가로 이어진다. 즉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 있다. 물론 이 방법은 소규모의 학생을 대상으로 오랜 시간이 걸리기에 처음에는 더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배가는 혼자 대규모의 학생을 훈련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가르치게 된다. 바울 뿐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 훈련도 배가 원칙을 기본으로 한다. 그분은 지상명령을 통해 지난 3년간 훈련한 소수의 제자에게 제자 삼도록 명령하셨다(마 28:19-20).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단지 그분이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한다. 그분의 가르침을 지키려면 필연적으로 다른 이들에게 예수님이 분부하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사역에 참여하도록 해야만 한다.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지상명령을 지켜 나간다면 이 가르쳐 지키게 하는 사역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계속 이어져야만 한다. 즉 배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실로 예수님의 방법은 확실한 수확을 보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