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여성의 날, 여성파업은 여성 억압과 착취에 맞서 여성의 노동을 중단하는 파업을 말합니다. 파업은 노동자의 권리이며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기 위한 효과적인 노동자의 무기입니다.
3‧8 국제여성의날은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시작했습니다. 1910년 독일 여성 사회주의자들이 국제 여성의 날을 제안하기에 앞서 미국 섬유공장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대규모 투쟁이 벌어졌습니다. 노동시간 단축, 임금 인상, 노조 활동의 자유, 선거권 보장을 요구하는 대규모 투쟁이 일어났고, 무려 13주간에 걸친 파업도 이어졌습니다. 1917년 3월 8일 ‘빵과 평화’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진 러시아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은 러시아 노동자혁명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이렇듯 3.8여성의날은 여성 노동자의 투쟁을 기념하고 계승하기 위한 날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날 이제 여성파업을 조직합니다. 3.8여성의날 여성파업은 여성억압과 차별, 착취를 심화해 온 자본가계급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효과적인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근래 여성파업은 1975년 10월 24일 오후 2시 5분 아이슬란드에서 처음 벌어졌습니다. ‘2시 5분’은 남성과 동일한 임금을 적용해 퇴근 시간을 계산한 것이었습니다. 여성파업에는 여성의 90%가 참여했고, 여성들은 일과 가사노동, 돌봄노동을 모두 거부하고 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다수가 여성 노동자로 구성된 산업들은 완전히 마비되면서 아이슬란드 경제 역시 멈춰 섰습니다. 파업이 처음 제안되었을 때 많은 사람은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파업은 거의 100%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전화 서비스가 사실상 중단된 통신이었습니다. 또한 조판공이 여성이기 때문에 신문사가 문을 닫았고 여성 배우가 일을 거부했기 때문에 극장이 문을 닫았으며, 교사의 65%가 여성이기 때문에 많은 학생이 배우지 못한 채 남겨졌습니다. 국영 항공사는 스튜어디스 부족으로 항공편을 취소해야 했고, 은행은 여성 직원 대신 임원을 창구에 배치했습니다.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트 광장에서 열린 파업집회에는 당시 전체 인구의 10%가 넘는 2만5천~3만 명의 여성이 참가했습니다. 또 주요 도시별로 모여 시위와 집회를 열었습니다. 여성들은 “우리가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 “유치원을 늘려라”, “임금을 평등하게 지급하라”, “성폭력을 멈춰라” 등 평등과 권리를 외쳤습니다. 세계 최초의 여성 총파업, 남성들은 이날이 너무 길어 ‘긴 금요일’이라 불렀습니다. 이 같은 여성파업이 만든 변화로, 현재 아이슬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성평등한 나라로 불리고 있습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법제화했고, 노동시간 단축과 주4일제도 시행했습니다. 2세부터 8시간 공공보육 정책을 포함해 초중고에는 성평등 교육을 의무화했습니다.
그러나 여성파업은 과거의 역사만이 아닙니다. 아이슬란드 여성들은 주요 시기마다 여성파업을 벌입니다. 2016년 이후에는 폴란드와 아르헨티나, 아일랜드, 스페인 등 여러 나라에서도 여성파업이 일어나 여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현실을 바꿔갔습니다.
폴란드에서는 2016년 임신중지법 개악에 맞서 수백만이 여성파업을 벌여 개악안을 철회시켰습니다. 2016년 10월 3일 여성파업 당일, 20만 여성이 전국에서 검은 옷을 입고 거리를 점거하여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2016년 10월 19일 최초의 대규모 여성파업을 조직하기 시작해 이 파업의 힘으로 임신중지 권리를 쟁취했습니다. 처음 여성파업에 참여한 아르헨티나 여성들은 일터와 가정에서 최소 1시간 동안 노동을 중단했고, 파업 시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만 25만 명이 참여했습니다. 파업은 학교와 병원, 관공소와 제조공장뿐 아니라 쓰레기수거, 세탁,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광범위한 참여로 이뤄졌습니다. 2018년 아일랜드에서도 여성들의 투쟁이 국민투표를 이끌어 내 임신중지 합법화를 쟁취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2018년 여성파업에 530만 명이 참여했고, 이는 열차 300편이 취소될 정도로 위력적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스페인은 ‘임신중지 숙려 제도’를 폐지하고 16~17세 여성과 장애 여성이 법적 보호자의 동의가 없어도 임신을 중지할 권리를 보장했으며, 트랜스젠더 성별 확정 절차를 간소화하는 법안을 하원에서 통과시켰으며, 생리휴가를 법제화하는 등 성평등 개혁 조치를 쟁취했습니다.
지난 6월 14일에도 스위스에서 여성파업이 일어나 30만 명이 넘는 여성과 여러 노동자, 시민이 동등한 임금을 요구하며 전국적 파업에 동참했습니다. 이들은 직장 내 차별과 괴롭힘 근절,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폭력 근절, 가족을 돌보는 무급 노동에 대한 더 많은 인정도 요구했습니다.
우리는 여성이고 남성이며 성소수자입니다. 우리는 장애나 질병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매일 성장하고 또 매일 늙어갑니다. 우리는 도시와 시골에서 태어났고 해외에서 이주해 오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성과 신체, 출신은 모두 다르지만, 그럼에도 동일한 한 가지는 모두 노동력을 팔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는 노동자라는 것입니다. 또는 그래서 노동력을 팔고 싶어도 팔 수 없거나 노동을 해도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이 사회가 성별과 신체와 출신에 따라 노동력에 등급을 매겨 서로를 경쟁시키며 값싼 임금노동자로 부리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이기 때문입니다. 이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여성의 노동은 저평가되고 성소수자는 지워집니다. 그러나 남성에게는 당연시되는 노동강도를 비롯해 남성 노동자 역시 성별을 이유로 억압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억압을 통한 이득은 이 자본주의 체제가 비호하는 한 줌의 자본가들에게 돌아갑니다.
이러한 체제는 자본가들을 위해 여성의 노동력을 직장에서는 저임금으로 초과착취하고 가정에서는 무급으로 수탈합니다. 여성 노동자의 경력은 임신출산뿐 아니라 승급승진이나 고용형태에 의해서도 단절되며 이는 임금과 노동조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경제적 권리뿐 아니라 여성을 비롯해 모든 노동자의 성과 재생산 권리 역시 보장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자본주의 사회가 노동자계급 여성에게 씌운 굴레 때문입니다. 이러한 억압과 착취를 철폐하기 위해서는 여성이 노동자계급의 주체로서 나서 계급투쟁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 점에서 노동자계급 여성의 집단적인 여성파업은 이 현실을 바꿔내기 위한 핵심적인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성파업을 제안합니다. 여성파업은 노동을 실제로 중단하는 파업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현실 여건 상 파업이 가능하지 않는 노동자들 역시 연차나 조퇴를 포함해 다양한 형태로 당일 행동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여성파업은 하루하루 현장에서 고통받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더욱 절박한 투쟁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바꿔내기 위해서는 실제적인 생산의 중단이 중요합니다. 생산을 멈추는 것은 노동자의 피, 땀, 눈물을 빼앗아가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질서에 위력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또한 각 사업장의 여성 노동자들은 공통된 차별과 억압 속에서도 서로 다른 노동조건에서 일하며 특수한 차별과 억압을 당합니다. 이에 성평등한 사업장을 쟁취하기 위해서 각 사업장 여성 노동자들이 주체가 된 투쟁에 나서야 합니다. 이를 통해 각 사업장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문제를 공론화하고 전 노동자계급의 의제로 끌어올립시다.
가부장적 자본주의는 여성과 성소수자 노동자들만 억압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성 역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당연시되는 노동강도를 포함해 직장 내 규율은 남성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억압하기 위해 작동합니다. 무엇보다 여성/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억압이 존재하는 한 전체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자본주의를 철폐할 수 없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전체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경쟁하도록 하여 자본의 이익에 기여합니다. 이에 전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위해서는 여성해방, 성소수자 해방을 위한 단결투쟁이 필수적입니다.
2025년 3·8여성파업조직위원회는 2025년 3·8 국제여성의날에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가 여성노동자들을 차별하고 착취하는 것에 주목하며 여성파업을 조직하는 조직위원회입니다. 이러한 목표와 사회에 대한 인식에 동의하는 단체(조직)와 함께 조직위를 구성하고자 다음과 같은 참가 기준을 정했습니다.
하나, 우리는 의례적으로 하는 3·8 국제여성의날 행사를 만들려고 모인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여성파업을 조직하고자 모인 조직위원회입니다. 파업은 사용자(자본가)와의 싸움입니다. 파업이 제대로 조직되기 위해서는 노동자를 착취함으로써 유지되는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문제인식과 노동자계급의 힘에 대한 동의를 기반으로 합니다.
하나. 우리는 여성 노동자의 힘을 모으고 행사하기 위한 여성파업을 조직하는 위원회로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동등한 권리의 주체로 여기지 않는 성차별과 성폭력에 반대합니다. 나아가 트랜스젠더와 같이 성별 이분법과 시스젠더 이성애규범에 저항하는 성소수자, 심신의 정상성에 맞서는 장애인, 국적과 국경으로 차별받는 이주민 등 수많은 사회적 소수자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질서에 맞서 싸울 것입니다.
하나, 여성파업은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를 떠받치는 정치세력에 의존하지 않고 노동자계급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계급정치운동이기도 합니다. 가부장적 자본주의체제의 전환을 당장 이룰 수는 없더라도 체제를 유지하는 기업권력, 자본가권력에 의존하는 정치운동에 대해 경계합니다. 체제친화적 정당운동으로는 체제의 전환을 이룰 수 없기에 여성노동자계급의 힘으로 체제의 변화를 이루기 위한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하나, 노동자들의 노동권, 노동자성을 부인하는 한국 사회의 제도로 인해 파업권을 갖지 못하거나 행사하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여성파업은 실질적인 파업권이 없더라도 가부장체제와 노동자계급성에 대한 인식을 기반으로 현장을 바꾸고 투쟁을 조직하려는 운동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