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성폭력 사태에 수천 명의 여성이 다시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딥페이크 성폭력이 불법촬영이나 N번방과 다른 게 있다면, 여성의 일상이 점점 더 쉽게 침해되고 있다는 사실뿐입니다. 그래서 변치 않는 현실에 가해자 엄벌을 촉구하지만, 과연 이 현실을 양산해 온 ‘가부장적 자본주의 국가’는 누가 단죄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바로 그 국가에 책임을 묻고자 합니다. 이 세상을 생산하고 재생산해 온 여성의 이름으로, 맞설 것입니다. 더구나 딥페이크 사태는 가속화하는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더욱 밀려나는 여성의 현실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여성에게 더욱 전가되는 자본주의 위기!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가 심화하며 물가와 실업률이 치솟고, 제국주의 열강이 일으키는 참혹한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여성의 고통은 더욱 가중되고 있습니다. 많은 여성 노동자가 저임금과 불안정한 노동 조건에 내몰립니다. 경제협력기구(OECD)가 발표한 <2023년 경제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 전체 여성 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46%입니다. 여성 2명 중 1명꼴로 비정규직인 셈입니다. 같은 기간 성별 임금격차는 31.2%로 남성이 월급 200만 원을 받을 때 여성은 137만 원 정도를 받는 데 그쳤습니다.
또한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20년 전체 여성 노동자 중 300명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비율은 9.6%에 불과했습니다. 대부분의 여성 노동자들이 5인 미만 중소영세사업장, 플랫폼 특수 고용 형태, 프리랜서와 같은 노동권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열악한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여성 노동자는 자본의 이익과 편리를 위해 쉽게 자리를 잃을 수 있는 일터에서 열악한 환경에서 낮은 임금을 받으며 더욱 힘겹게 일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코로나 대유행 기간 여성들이 가장 먼저 해고되었으며, 이후 여성 실업률은 회복세를 보였지만 초단시간 여성 노동자 증가폭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것처럼 대부분은 불안정한 일자리입니다. 2020년부터 여성 저임금 규모는 2년 연속 증가했고, 이후 다시 낮아졌지만, 소폭일 뿐입니다. 결국 자본주의 위기가 여성에게 전가되고 있는 셈입니다. 자본이 야기한 위기의 책임을 왜 노동자가 특히 여성 노동자가 떠맡아야 합니까?
더욱 조여오는 무급 가사·돌봄 노동의 굴레와 무너진 돌봄 공공성!
여성 노동자가 자본주의 위기 전가에 사투하고 있는 가운데 여성 노동자에게는 무급 가사·돌봄 노동, 사회적 재생산의 의무까지 덧씌워지고 있습니다. 남성의 가사 노동 참여가 늘고 있기는 하지만 여성이 감당해야 하는 무게는 여전히 무겁디무겁습니다. 2024년 4월 OECD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남성의 가사 참여도를 뜻하는 여성 대비 남성의 무급노동 시간 비율이 23%에 그쳤습니다. OECD 평균은 52%로 한국의 두 배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여성 노동자들이 공공돌봄에 기댈 수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대표적으로,서울시는 ‘돌봄을 필요로하는 시민들의 삶이 질을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설립한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을 5년 만에 폐원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돌봄의 공공성은 무너진 것은 물론, 다수가 여성인 돌봄노동자의 집단해고와 임금 체불이 발생해 노동자로서의 권리와 생계가 위협받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족실태 조사결과, ‘성역할 고정관념’은 3년 전보다 강화됐습니다.
이주 여성 노동자 차별과 초과착취! 차별 철폐, 가사 노동자 노동권 보장!
그런가 하면 서울시는 졸속으로 필리핀 이주 가사 관리사 시범사업을 밀어붙였습니다. 이들은 2024년 최저임금인 시급 9,860원도 받지 못하고 강남에 위치한 1평 남짓한 숙소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강남은 한국에서 그 어느 곳보다 물가가 비싼 곳입니다. 더구나 현재까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 동포 출신 이주 가사 노동자는 저임금과 과도한 업무, 차별 속에서 힘겹게 일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처우조차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런 법적·제도적 개선 없이 도입된 필리핀 이주 가사 노동자의 상황은 더 열악해질 것이 불 보듯 뻔합니다. 이는 한국 여성 노동자에게 씌우던 희생과 착취의 올가미를 또 다른 여성들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성의 가사·돌봄 노동의 가치에 대한 재인식과 재평가와 이주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철폐돼야 합니다.
여전히 여러 위험의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여성!
여성이라는 이유로 폭력을 당하고 살해에 이르는 사건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8월에는 서울 도심에서 새벽에 청소 업무하던 여성 노동자가 살해된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6월에 발생한 아리셀 화재참사에서는 희생자 23명 중 여성 이주 노동자가 15명으로 여성 노동자, 여성 이주노동자가 일터에서 위험의 최전선에 놓여 있는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냈습니다. 이스라엘이 행하는 참혹한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서도 아동과 여성이 당하는 피해가 더욱 심각합니다. 게다가 2022년 디지털 성범죄 중 통신매체를 이용한 성범죄 발생 건수는 2015년과 비교했을 때 9.3배나 증가했습니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는 지난해 14.2%에서 올해 20.8%로 늘었고, 성추행·성폭력 역시 지난해 13.8%에서 올해 20.8%로 늘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성이 위험에 더욱 노출되는 이유는 자본이 젠더에 기반한 차별과 억압을 공고히 하며 그것을 노동자계급을 갈라치는 데 이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낙태죄도 2019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폐지되었지만 4년이 넘도록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고 있습니다. 더구나 유산유도제조차 아직 상용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 장애인 노동자 민중에 대한 혐오와 차별!
현재까지도 성소수자 노동자들은 혐오와 차별을 피하기 위해 일터에서 정체성을 감춰야 합니다. 때로는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취업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기도 합니다. 장애인 노동자들은 일상적으로 마땅히 누릴 수 있어야 할 이동권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노동할 권리 자체를 부정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서울시는 2020년에 도입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를 2023년에 폐기해 공공일자리 400명과 전담 인력 105명이 해고됐습니다. 2023년 하반기 기준 여성 장애인 고용률은 22%로 남성의 절반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또한 여성 장애인 노동자 가운데 83.5%가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소수자 노동자, 장애인 노동자는 폭력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본주의는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청소년, 이주 노동자, 고령자, 질환자 등 사회적 소수자의 차별을 비롯한 각종 차별과 불평등을 구조화해 그 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단결과 계급투쟁, 여성파업으로 세상을 바꾸자!
여성 억압과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가부장적 자본주의를 변혁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계급투쟁이 필요합니다. 노동자가 힘을 모으고 그 위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성파업을 제안합니다. 여성파업을 통해 여성의 문제, 우리의 요구를 알리려 합니다. 단결된 계급투쟁으로, 여성파업으로 세상을 멈추고 세상을 바꿉시다! 자본가계급에 맞서는 노동자의 가장 큰 무기는 파업입니다. 자본주의 체제를 떠받치는 정치세력에 의존하지 않고 노동자계급, 여성 스스로가 나서서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킵시다! 여성파업으로 여성해방과 모든 노동자의 해방으로 나아갑시다!
한국에서는 2017년부터 여성파업을 만들기 위한 행동이 이어졌습니다. 2017년에 시작된 <3시 STOP>은 OECD 부동의 1위인 100:64 비율의 성별임금격차를 지적하며, 여성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가시화하기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100:64라는 충격적인 성별임금격차를 노동시간으로 환산하면, 여성은 오후 3시부터 무급으로 일하는 셈이 됩니다. <3시 STOP>이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기원합니다.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100:64의 성별임금격차를 상징하는 오후 3시부터 노동을 멈추고, 여성 노동자들이 저항의 목소리를 높이자는 의미였습니다. 여성·노동·시민사회 단체들과 노동조합들이 모여 구성한 <3시 STOP 공동행동>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3시 STOP>이라는 이름으로 여성 노동자들이 처한 성차별적 문제를 가시화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습니다. <3시 STOP>이 성별임금격차라는 이슈를 본격적으로 제기한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성별임금격차가 해결해야 할 사회적 과제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이후 <3시 STOP>은 해를 거듭하며, 여성 노동자들이 처한 수많은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더욱 확장해갔습니다. 성별임금격차 뿐 아니라 채용성차별, 직장 내 성희롱·성차별, 낮은 최저임금, 페미니즘 사상검증, 저임금과 고용불안, 안전 위협, 돌봄 노동 저평가, 독박 돌봄에 이르기까지, <3시 STOP>을 통해 여성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한국 사회에 알려내었습니다. 2017년 <3시 STOP 조기퇴근 시위>로 시작된 <3시 STOP>은 2020년부터는 <3시 STOP 여성 파업>으로 전환되어 더 가열찬 투쟁을 이어갔습니다. 코로나19라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참여를 통해 진행된 <3시 STOP 여성파업>은 감정노동 파업, 꾸밈노동 파업, 독박가사-돌봄노동 파업, 현장 투쟁 등 다양한 위치에 있는 여성 노동자들이 함께 저항의 목소리를 내는 공간이었습니다. 이렇듯 다양한 방식으로 여성 노동자들의 의제를 알려내었던 <3시 STOP> 투쟁은 2021년까지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2017년부터 2021년까지 꾸준히 이어져왔던 <3시 STOP>은 코로나19로 인해 여성 노동자들의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오프라인 시위가 어려워짐에 따라 발전 방안을 모색하며 휴식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2023년에는 여성파업을여는준비위원회가 꾸려서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의 시급 400원 인상 파업을 지지하며 여성파업의 중요성을 사회적으로 알려냈습니다. 그리고 2024년 드디어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3.8 여성파업을 조직했습니다.
2024 3‧8여성파업과 2025 3‧8여성파업 이후
41개 단체가 함께한 2024 3‧8여성파업조직위원회는 2024년 3‧8 여성의 날을 맞아 오후 12시 30분부터 서울 보신각 앞에서 “역행하는 시대, 돌파하는 우리의 투쟁, 2024년 여성파업” 집회를 진행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여성파업이 진행된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금속노조 KEC지회와 공공운수노조 건보고객센터지부에서는 1천 명에 달하는 전 조합원이 파업에 돌입했으며, 전국여성노동조합에 소속된 청소, 디지털콘텐츠창작 노동자 등 300여 명은 노조활동 시간을 활용해 임노동을 중단했습니다. 이외에도 여성 노동자들은 출근 대신 연가나 조퇴 등을 내고 참가했으며, 조직적으로 반차를 내고 참여한 성소수자 인권 단체를 비롯해 다양한 여성·노동·사회 단체도 여성파업대회에 함께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려대 소수자인권위원회, 단국대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하는 학생모임 ‘새벽’, 성공회대 노학연대모임 ‘가시’, 학생사회주의자연대 등 7개 학생단체 소속 대학생들이 수업 대신 여성파업에 동참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날 여성파업에는 임노동 파업에 1천여 명, 여성파업대회에 8백여 명이 참가하여 “여성이 멈추면, 세상도 멈춘다!”는 구호를 외쳤고, 본 대회는 시작부터 행진까지 굉장한 활력 속에서 진행됐습니다. 구조적 여성억압이 더욱 심화하는 현실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계급적 행동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여성 노동자, 성소수자 노동자, 장애인 노동자, 남성 노동자 등 많은 노동자들이 모여 “여성이 멈추면, 세상도 멈춘다!”는 구호를 외치며 여성해방, 노동해방을 기원했습니다. 3‧8 여성의 날 파업 전 조직위는 수개월에 걸쳐 ‘찾아가는 여성파업’, ‘오픈 마이크’ 등의 간단회 및 강연을 진행하며 파업 대오를 조직했습니다. 또한 기자회견, 연재 기고, 실태조사, 인터뷰 등 언론 활동을 통해 여성파업을 널리 알려 왔습니다. 3‧8여성파업조직위원회는 2024년에 이어, 2025년에도 여성 억압과 차별에 맞서 여성파업을 조직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