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아야 나 나영이야. 나 지금 편지 쓰는데도 울 것 같아. 이사 가서도 가끔 톡하고 지내자. 그리고 그 반 친구들한테 세계시민,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알려줘. 선아, 너는 세계시민이니까. 혜정이(전학생, 가명)가 온지 한 달 밖에 안 되었는데 너가 가면 어떡해. 4학년 1반의 기억 잊지 말고 잘 지내기를 기도할게. 이 편지 소중하게 간직해줘. 선아야, 그리고 사랑해. 이사 잘 해. 화이팅!

내일 전학 가는 친구에게 ‘가서 행복하게 잘 지내’와 같은 당부가 아니라 그 반 친구들에게 세계시민과 지속가능발전목표가 무엇인지 알려주라니……. 그리고 그걸 끄덕끄덕하며 듣고 진지하게 같이 듣고 있는 이 교실의 진지한 풍경에서 웃음이 날 수 밖에 없었다. 친구들이 통곡하는 중에 웃음을 참지 못하는 눈치 없고 경박한 자기 담임 선생님이 얄미웠는지, 옆에 앉은 남자 아이가 진지한 눈빛으로 나지막하게 “웃지 마세요.”라며 훈계를 하기도 했다. 사실 그 웃음에는 보람과 뿌듯한 기쁨이 스며들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선아가 친구들에게 남긴 편지는 이러했다.

TO. 우리 반 친구들에게

안녕! 난 선아야. 갑자기 전학을 가게 되어서 이 편지를 써. 그 동안 너희들이 잘 대해주어서 학교 올 때마다 너무 좋았어. 고마워. 우리 반이 특별한 세계시민 반이다 보니, 더 기억에 남을 것 같아. 전학 가서도 우리 반과 우리 반 친구들과(의) 추억 잊지 않을게. 언젠가 또 만나자. 연락하며 지내자! 고마웠어.

2023.11.24. 선아가

사실 선아를 위해 반 친구들이 남긴 칠판 편지에도 ‘선아는 진정한 세계시민’, ‘세계시민 기억해’와 같은 문구들이 적혀 있었다. 이 아이들에게 ‘세계시민’이라는 이 말이 그냥 선생님이 소개한 신기하고 멋있는 표현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과 정체성으로 나름 스며들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사실 아이들이 스스로 세계시민으로 여기고 있음을 문득문득 만나는 일은 거의 매일 있는 일이었지만 전학 가는 날의 풍경 속에서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웃음이 터져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세계시민을 교실에서 꾸준히 이야기해온 것이 아이들의 영혼에 울림을 줄 수 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 일이었다. 3월에는 세계시민은커녕 시민이라는 말도 들어 본 적도 없다던 아이들이었다. 선아를 보내는 풍경에서 세계시민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꾸준했던 그 시간들이 스쳐 갔다. 세계시민이 우리 반의 문화가 되고 아이들의 정체성으로 스며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기쁨을 느낀 순간이었다.(중략)

‘이태석 신부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서후(가명)라는 친구에요(예요). 이태석 신부님은 아프리카 친구들과 함께 놀아주고 도와주고 학교, 병원, 머물 것(곳)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저는 돌아가셔도 안 돌아가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저도 신부님 같은 세계시민이 되어서 사람들을 돕는 아름다움 실천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서후 올림.

(중략)세계시민교육과 관련해 여러 지역에서 선생님들에게 사례를 보이며 경험을 나누면 관련된 수업 자료를 공유해 달라는 부탁 받는다. 수업 자료를 나누면서 늘 덧붙이게 되는 말이 있다. 어떤 수업을 하는지 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학생들이 삶에서 시민됨을 경험할 것인가’라는 것이다. 대단한 수업 자료와 멋진 수업 방법으로 교육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스스로가 시민이라는, 내가 삶의 주체자라는 긍지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긍지는 스스로가 민주시민, 세계시민이라는 정체감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것을 위한 꾸준하고 은근한 노력이 진정한 시민교육의 핵심이라 생각한다. 모든 교육적 노력이 그렇듯,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세계시민 삶이 되다'  발표문(박종하,  2023년 대동철학회 추계 기고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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