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공간지은 전시지원 개인전

이지수 <일렁일렁> 

뒤섞인 기억, 부유/침전하는 이미지 

Stirred Memories, Floating/Settling Images

글 김가은(김가은미술사무소 대표)

이지수는 과거의 경험이나 사건, 꿈이나 매체에 등장하는 장면 속의 이미지, 색, 소리, 인물 등에 대한 기억을 매개로 내면의 의식을 탐구한다. 그는 투박한 윤곽으로 인물이나 사물의 형태를 잡고 특유의 색감을 통해 인물이 지닌 감성을 평면에 담아내거나, 입체적인 형태를 만들어 표현한다. 비교적 느슨하게 구체화된 작품 속 인물들은 비일상적인 구도 속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와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손(Henri Bergson, 1859-1941)은 『물질과 기억』(1896)을 통해 정신과 물질의 실재성과 그 관계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기억’에 대해서 고찰한다. 그는 ‘습관-기억(souvenir-habitude)’과 ‘이미지-기억(souvenir-image)’이라는 두 가지 기억으로 분류하여 이 두 개념을 학과의 암기와 독서에 빗대어 설명하는데, 그에 따르면 ‘습관-기억’은 반복을 통한 기계적인 암기와 같은 성격을 가지는 반면, ‘이미지-기억’은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어도 각각의 경험은 일회적이고 인상적이며 고유한 특성을 지니는 것이다.1) 그는 또한 ‘현재’라고 부르는 것이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잠식한다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현재를 지각하는 순간 이미 과거가 되고, 동시에 미래를 지향하게 되기 때문이다.2) 그의 철학은 기억을 과거의 사건이나 정보의 단순한 저장이라고 생각하는 일반적인 관념을 넘어서, 의식을 지속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자 미래를 지향하는 현재를 구성하는 활동으로 이해해볼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둥근 테이블에 여덟 인물이 둘러 앉아 있는 <Table for eight>(2023)에는 작가의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산비둘기, 다른 색 양말을 신던 같은 반 친구 A, 기르던 개, 그리고 과거의 자신 등이 등장한다. 같은 공간에 표정 없이 앉아 있지만 이들의 시선은 어긋나고 자세도 제각각이어서 각자의 세계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듯 보인다. 테이블 위의 사물들 역시 목적 없이 무작위로 흩어져 있다. 서글픔과 아련함, 천진난만함과 유희적인 감각이 공존하면서 맥락이 해체된 채로 이들은 작가가 설정한 작품 속 테이블에 모여 있다. 이들을 연결시켜 주는 것은 가느다란 실 정도이다. 실은 이들 간의 관계를 미약하게 연결시키면서 공존의 필연성을 소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서로 다른 개별 기억에 시각적 상상력이 보태어져 만들어진 작품 속 인물들은 화면 속에서 상호작용하며 작가의 현재를 재구성한다. 이 인물들은 <Going home>(2023)과 같이 다른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또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들을 생산한다. 이 이미지들은 지속적으로 재맥락화되기 때문에 임시적이고, 가변적이며, 회고적이지 않다. 여러 기억들을 기반으로 형성되는 작품 속 이미지들은 의식과 무의식의 차원 모두에서 떠오르거나 혹은 가라앉는 활동을 지속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의 제목 ‘일렁일렁’은 본래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나타내는 의태어로, “자꾸 마음에 동요가 생기는 모양”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함께 지닌다. ‘동요(動搖)’는 한편으로 불안하거나 혼란스러운 마음의 상태를 나타낼 수 있으나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긍정적인 변화의 징후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뜻을 담아 이번 전시 <일렁일렁>이 생명이 움트는 봄기운과 어우러져 기분 좋은 촉매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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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앙리 베르그손, 『물질과 기억』, 박종원 옮김, 아카넷, 2005, pp.138-143.

2)위의 책, p.237.


* 일시 /

2024 4 15(mon) - 4 21(sun). 10am-5pm

2024 4 22(mon) - 4 28(sun). 윈도우 전시

* 전시장소 / 송파구 풍성로 22, 1층 

* 주최, 주관 / 공간지은

* 참여작가 /  이지수

* 전시서문 /  김가은(김가은미술사무소 대표)


공간지은 전시지원 개인전

권영희 <숨; sum_ 작은 숨고르기> 

올해 첫 전시인 <숨; sum_ 작은 숨고르기>전은 작은 것들을 마주하며 숨을 쉴 수 있게 되고, 작은 무언가를 만들며 작가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가는 권영희 작가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조형적인 도자 형태에 새와 열매를 올리고 높은 굽을 만드는 작업은 작가가 자연에서 위안을 받은 과정을 토분에 담아내고자 하는 과정이 엿보입니다. 작가의 바람처럼 높은 굽의 작은 틈 사이로 오가는 작은 숨이, 바람이 드나드는 풍납동에서 자연스레 호흡을 하며 보는 이들에게 공감 주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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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산을 바로 뒤에 둔 집으로 이사를 한 지 2년이 지났다.

아침마다 산에서 차오르는 구름과 안개, 그리고 작은 새소리를 마주하고 있다.

해가 지면 짙은 산 내음… 숲의 그림자가 창 안으로 네모지게 자리잡아 사람의 흔적을 감추고 달빛만이 드러나는 곳이 된다.

자연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게 되니 온통 머릿속이 변해가는 산의 색채와 작은 새소리들로 채워진다.

 

다시 20년 동안 저 먼 곳에 팽개쳐 놓아 둔 작업을 다시 하기 위해 서울 안 작은 공간을 마련하게 되었을 때 솔직히 두려움이 앞섰다. 작업보다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공황장애를 스스로 고쳐 보려는 이유가 작업보다 먼저였다. 한 없이 작아져 있는 나의 자존감이 몸의 증세로 드러나 숨을 쉬는 데 많은 힘이 들었다. 숨 쉬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우스꽝스러운 짓을 반복해서 했고 더 크게 숨을 쉬고 싶어 더더 더 크게 숨을 몰아 쉬어야만 했지만 곧 답답해져 심장이 요동을 쳤다.

 

 내 투박한 손은 작은 것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손이 가는 대로 옛 기억을 더듬어 물레를 돌리기 시작했다. 집 뒷산으로 산책을 자주 하며 작은 새가 들려 주는 소리들에 위로 받았고 그 소리를 어떻게 표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기도 했다. 바람이 드나든다는 서울 풍납동에 마련된 갤러리 기획전 참여를 계기로 사람들과 소통을 하게 되었을 때 가슴에 느껴지던 답답함은 아주 조금 줄어 들었고 과거의 내가 무엇을 하던 사람이었는지 확인받을 수 있었다.

 

무너진 내 자신을 스스로 높이고 싶어 높은 굽을 물레로 돌려 만들었고 그 위에 산의 열매들과 새들의 형상을 올렸다.

 

높은 굽….. 그릇의 밑 부분이지만 높게 만들어 진 그 부분을 보는 이들의 마음도 높이 올라갈까?

 

소통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적극적인 의지’ 의 표현이라고 한다. 높은 굽은 나를 다시 세상의 자리로 올려 놓고 싶은 마음의 지지대다.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다시 자연스럽게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으려는 나의 의지.

 

가슴을 부풀리는 억지스런 호흡 말고 바람이 들어오는 굽의 작은 구멍으로 오가는 그런 작은, 가만히 있어도 숨이 쉬어 지는 그런 날이 이어지기를 바래본다.  < 권영희 작가 노트 >

 

 

* 일시 /

2024 3 25(mon) - 3 31(sun). 10am-5pm

2024 4 01(mon) - 4 07(sun). 윈도우 전시

* 전시장소 / 송파구 풍성로 22, 1층 

* 주최, 주관 / 공간지은

* 참여작가 / 권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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