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수요일

03 (2025)


김종규

김하림

최원서


2025. 9. 26.(금) ― 10. 12.(일) 

소현문


쓔 2025

‘쓔'는 소현문 연례 큐레토리얼 전시기획으로, 아시아 문화 정체성 및 유산 기반으로 창작하는 주체를 조명한다. 어제와 내일을 잇는 시간선에서 지나가는 날을 배웅하고 다가오는 날을 마중하는 부름에 따라 이곳의 수요일은 수요일과 다시 인사한다. 중의적 문맥에서 반복하는 이름은 또 다른 연결을 상상하는 단서이다. ‘수요일 수요일’은 단어 하나를 강조하고, 앞말과 뒷말이 서로를 수식하거나 서술한다. 소현문이 일주일 중 수요일마다 운영을 쉬기에, 전시 제목과 그 약자인 쓔는 전시가 열리고 닫히는 시간을 동시에 호명한다. 


빗금과 물결과 이음새

쓔는 정사각형 칸을 반절로 접거나 펼친 모양처럼 하나이자 둘 이상이다. 2023년 김민주와 김아라와 유현아에 이어, 2024년 고성과 김예령과 한연희에 이르고, 2025년 김종규와 김하림과 최원서가 잇따르는 쓔를 접고 펼치는 전시와 전시는 제목이 같아 서로에게 정확히 포개진다. 일주일 정가운데 요일의 이름에 연마다 연달아 동기화하는 약속이 돌아오는, 늦지 않은 가을날이다.  

이곳에서 작가와 작가는 고유한 형식으로서의 주제 의식을 발화함에 상보하고, 해마다 열리는 전시와 전시 또한 그러한 가능태를 모색한다. 이는 과거 시점의 대상을 미래 시점의 것과 잇는 전통 문화 유산, 특히 한국화를 역사의 유효한 자산으로 가꾸는 과업을 자처한다. 반복의 미학을 주시하는 한편, 추석 명절 제사상에서의 홍동백서(紅東白西)를 구성의 단서로 삼는 등 '오늘날 전통 문화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으로서의 한국화를 미적 체험이 발생하는 안팎의 조건화로 매만진다.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가을 가운데(秋分) 이슬이 차가워지는(寒露) 새벽을, 저마다 예비한다. 이곳의 사연은 무릇 까치가 남기는 붉은 배려를 본다. 가을 복을 삼키는 날짐승이 겸허하게 속삭이는 소리를, 거의 모든 숨마다 닮고자 한다. 

김종규의 회화는 기울이는 나뭇가지의 빗금(/)으로 이미지를 줄바꾼다. 창공의 구름을 담묵으로 옮기는 초기 작업부터 산책로의 나무를 농묵으로 옮기는 근래 작업까지, 수행자의 시선은 획과 여백에 연과 행을 나누는 호흡으로 빛과 그늘을 따라 흐른다. 이곳의 그는 고도로 훈련된 움직임에서 나무의 생질을 닮는 자연스러움으로, 인간이 가닿을 수 없는 무위의 영역에서 어쩌면 본래적 미래인 ‘앞선 거기’로 미끄러진다. 흰 땅에 그림자보다 한 발자국 앞선 빛의 옷자락이 가득하다. 조금도 꺾이거나 굽히지 않는 약속이 '나'에게로 직진한다. 

김하림은 역경(易經)의 64괘를 오색 알갱이의 시나위로 풀어간다. 행복을 기원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구도자는 자연의 도(道)를 본받아 바람 한줌을 쫓으며 사적으로, 미시적으로, 주관적으로 감수성을 마땅하게 드러낸다. 세상의 소리를 보는 물결(~)의 의식이 서로에 맞닿기에, 음양이 형통하는 동세는 부단하게 활개 친다. 만물이 모이고 흩어지는(離合集散) 반복 가운데 자기 일부를 기꺼이 하늘과 땅에게 내어주는 과업으로, 세계와 사람이 묘하게 하나 되는(天人妙合) 거룩한 언덕에 다다른다.

최원서는 현대 산업자재가 전통 건축 또는 공예의 문양으로 보이는 공간에서 서로 다른 문화적 성질을 혼재한다. 한옥에서 기둥과 보를 받치는 동시에 심미적으로 방 한켠이나 처마 밑을 장식하는 보아지는 최원서의 예술에서 어제와 내일을 잇는 문화적 이음새(:)로 작동한다. 산업재가 지닌 본래 형태를 뜨면서(frottage) 무의식을 추적하는 근대적 방법은 아무에게 내재된 문화적 원류를 시추하고, 불현듯 그것의 규범에 불가피한 현실, 어긋나는 시간대에서 때마침 탈각하여 현실로 복귀하는 꿈의 파편을 목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