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수 : 태양빛이 태워가는
2025. 9. 2. ― 22. 소현문(1층)
*개회 : 9. 2.(화) 17:00
정희수 : 태양빛이 태워가는
2025. 9. 2. ― 22. 소현문(1층)
*개회 : 9. 2.(화) 17:00
서문
대낮에 느끼는 떨림
- 《정희수 : 태양빛이 태워가는》에 부쳐
콘노 유키(미술비평가)
외곽의 감각
수원의 하늘 위에, 커다란 소리가 지나간다. 소리가 들렸지만, 항공기는 보이지 않는다—소리가 먼저 날아오듯 다가왔기 때문이다. 귀를 막고 잠시 머리를 숙였다. 다시 하늘을 보니, 소리는 이미 지나갔고, 지나간 항공기의 모습이 점처럼 보였다 이내 사라졌다—수원 공군기지로 갔겠다. 수원 공군기지에 들어가 본 적 없는 나는 상상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이 주둔했던 과거를 상상해 본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미군과 한국군이 주둔하고 나라를 지키는 동시에 위협적인, 이 복잡한 현재를 상상하기란 가능할까. 이 소리를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이 들을 때, 무슨 생각을 할까. 이제는 서울 중심에서 지나가는 굉음을 들을 일이 없다. 도심에서 밀려난 소리가 수원이라는 외곽의 하늘을 덮는다. 이 지역에서 작가 활동을 하는 정희수의 작품이 오키나와에 가본 경험, 그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역사와 자연스럽게 연결한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는 외곽의 감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곽은 중심부에서 밀려나고 위임된 대상이 있는 동시에, 중심의 중요한 결정권을 좌우하는 ‘버팀목’ 역할을 한다.
일본 남쪽에 위치한 오키나와는 메이지 시대 말기에 일본으로 편입되었다가,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미국의 관리와 간섭을 받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투와 일본 패전을 거쳐, 연합군 최고사령부(GHQ)의 관리하에 비-군사화의 길을 가게 되었다. 하지만 1952년의 미일안전보장조약 발효와 1960년의 신조약 체결 이후, 일본은 현재까지 미군이 주둔하면서 자위대와 함께 국방을 담당하고 있다. 지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일본의 국방을 담당하는 핵심적 역할은 오키나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오키나와에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군이 세운 기지, 일본군에서 강제 인수한 기지, 그리고 최고사령부 통치 시기에 세운 군사 기지가 있는데, 섬의 많은 부분을 점유한다. 이런 현재를 과연, 도쿄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상상할 수 있을까. 상상할 수 있다면,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외곽의 감각은 군사기지에만 해당하지 않겠지만,(주석1) 현재를 상상하려면 지층처럼 쌓인 얽혀 있고 복잡한 역사를 따라가 봐야만 한다. 정희수에게 수원의 소리는 또 다른 외곽인 오키나와의 공진한다—공기가 같이 흔들린다. 하늘은 이어져 있으니, 어쩌면, 여기까지 잘 들릴지도 모른다—한번 지나갈 때마다 시기와 국가를 넘나들고 연결하면서.
몰락의 아름다움? 아름다움의 몰락?
이번 전시에서 사진 작업을 보면, 항공기지의 이미지를 일부 찾을 수 있다. 작가는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찍은 사진 연작 〈동반망각〉(2025)을 선보인다. 오키나와에 가본 사람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우리가 이 사진들을 오키나와에서 촬영한 사실을 알자, 프레임 안에 오키나와의 요소를 찾게 된다. 오키나와다움으로 유통되거나 소비되는 대중적 이미지도 있고, 전에 방문하거나 살았던 사람만 알 수 있는 미시적인 단서도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시선이 공존하는 상태야말로, 이 지역이 현재까지 겪어온 복잡한 사실을 드러낸다. 열대식물의 이미지는 자연스러운 동시에 오키나와다움을 상징한다. 마찬가지로 펜스의 사진은 오키나와다운 동시에 자연스럽다. 자연물이 거기에 있거나, 펜스가 거기에 있거나, 오키나와다운 동시에 자연스러운 이미지로 받아들일 때, 오키나와에서 나고 자란 사람의 시선인 동시에 (정희수가 그랬듯이) 관광객의 시선이 서로 겹치는 묘한 지점이 드러난다. 이는 영상 작업 〈투어리스트 러브 플래시라이트(Tourist Love Flashlight)〉에도 나타나는 특징이다. 당연한 실제와 특별한 실제의 수평화야말로, 외곽의 난처함이다.
이번 전시의 출발은 쿠시 후사코(久志 芙沙子)가 1932년에 쓴 다음 문구에서 시작했다. “수백 년 동안 억압받아 온 민족이, 쌓이고 쌓인 감정으로 인해, 이와 같은 예술[류큐 민요]을 만들어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 황혼의 풍경을 좋아한다. 이 몰락의 아름다움과 호응하는, 내 안에 잠재된 무언가에 동경하는 마음을 품었다.”(주석2) 이 몰락의 아름다움이 도대체 무엇일까—정희수는 그렇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문맥상 ‘몰락의 아름다움’은 쿠시 후사코가 글을 쓴 시점까지 오키나와가 겪어온 아픈 역사를 가리킨 것이다. 그러나 몰락의 아름다움은 2025년 현재까지 지나온 역사에도 이어지지 않을까. 어쩌면 몰락의 아름다움이란, 아름다움의 개념마저 몰락해 버린, 오키나와의 난처함이 아닐까. 푸른 바다와 높은 하늘이 펼쳐진 이국적인 풍경 앞에서, 정희수는 자연스럽지만 그렇기만 하지 않은/않던 과거가 아름다움으로 덮여가는 이곳을, 그리고 그러한 과거를 잠시 덮었던 자기 자신을 목도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반응을 내가 직시할 수 있도록,〈동반망각〉은 피사체와 배경 사이에 분리하거나 차단하는 대상을 하나 깔고 들어온다. 내가 있는 곳과 뒤에 펼쳐진 곳—내 시선만 들어설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 사이에 있는 것은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물러선 과거와 가까이 다가간 시선이 만난 그곳은, 아마도 현재라는 이름을 가지지 않을까.
역추적하듯 따라간다.
하늘에서 지나가는 항공기 소리와 달리, 출품작은 모두 고요하다. 영상 작업의 시선 변화는 빠르지 않고, 사진 작업에는 소리가 없다. 더 보려고 했던 것마저도 잘 안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것 같다. 잘 보이기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카메라를 든 사람은 그 장소에 다가가고, 우리는 정희수의 사진과 영상 작업에 다가간다. 정희수의 발걸음과 시선은 동굴 안으로 향한다.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를 피하려면 땅 밑의 어두운 곳을 향할 수밖에 없다. 정희수가 방문한 오키나와의 동굴은 고요하고 또 고요하다. 방공호로 사용된 동굴에 들어가, 작가는 개인적인 과거를 소환하게 되었다. 영상 작업〈영원히 사는 소년과 기억하는 행동〉(2025)에는 사촌 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면한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이 연결된다. 메모리카드에 남아 있던 캠코더 영상을 어느 날 정희수는 발견한다. 손에 크레파스를 들고 그림을 그리는 사촌 동생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심지어 이를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나타나지 않는다—클로즈업된 장면과 목소리만 담겨 있다. 그 당시의 상황을, 극히 일부만 포착한 컷(cut)은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해 줄 것인가.
부분은 전체에 속하기만 하지 않고, 맞선다. 단편(fragment)은 영상 속에서 또 다른 단편을 만나 흐름을 이룬다.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동굴에서 찍은 컷 다음에 대낮에 정희수가 비행장 주변을 돌아다닌 컷, 메모리카드 속에 남은 영상, 그리고 사촌 동생이 잠드는 수원 연화장 지하 공간으로 내려가는 컷—이 모든 컷이 시각적으로 꺼내어져 나열되었다. 보이지 않았지만 있었던 기억과 남기려고 애썼던 기록들이 영상에 나온다. 이는 1975년 7월 17일에 일어난 히메유리 위령탑 화염병 사건에서 사람이 기억을 따라가는 방식을 취한다. 패전 이후 처음으로 황실 관계자가 방문한 기념비적인(주석 3) 날에 , 두 청년이 화염병을 황태자에게 투척한 이 사건(주석 4)에서, 당사자는 화염병을 던지기 전까지 히메유리 탑의 지하 공간에 숨어 있었다. 어둠 속의 시간을 거쳐, 죽은 사람을 기리는 전체적 묵상(주석 5)에 맞서 이들은 침묵—나와 너, 국가와 나 사이에 분위기처럼 맴돌고 ‘암암리(暗暗裏)’(주석 6)에 강요당한—을 깬 것이다. 히메유리 학도대가 경험한 폭격은 기념행사에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정희수의 작업도 전쟁의 실제 경험과 거리가 멀다. 단순히 오키나와와 수원, 역사와 개인사를 ‘연상’하여 연결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화염병을 던지기 위해 어둠 속에서 시간을 보냈던 오키나와의 두 사람처럼(주석 7), 정희수는 동굴에 들어가서 외곽에 외재화된 기억/데이터에 접속하면서 헤아릴 수 없는 죽음의 경험을 개인적 경험과 접속하여 역추적하듯 따라갔다고 할 수 있다.
암암리에, 필연적인
그렇게 생각할 때, 동굴의 어둠은 어둠에만 머무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곳에는 떨림의 신체와 감정이 있다. 언제 올지 모르는 대상에 대한 두려움은 적군, 국가 주도적 기념(비적) 행사의 참여자, 그리고 망각으로 이어진다. 망각에 대한 두려움은 떨림을 통해서 다시 끄집어진다. 분노를 느낀 것은 화염병을 투척한 두 사람뿐이었을까? 어두운 방공호에서 죽음에 맞서 간호하고 치료받았던 사람들의 과거에, 패전 이후 곳곳에서 열린 메이데이 야간 집회의 역사적 사실을 불러들이면서(주석 8), 정희수가 다시 꺼내놓은 사촌 동생의 흔들리는 카메라 화면이, 촬영하는 방식을 따라해 본 작가의 손을 통해, 군용기가 지나가는 수원 하늘 아래 공진한다. 물론, 두려움과 분노가 섞인 경험과 사촌 동생이 영상을 찍었을 때 감정—그리고 정희수가 저장된 영상을 보고 느끼는 감정은 엄연히 다르다. 그럼에도 정희수가 하늘 아래서 느낀 항공기의 진동처럼, 수원과 오키나와를 잇고 전쟁이라는 큰 사건과 개인의 상실을 겹친 이유가, 물러선 과거와 가까이 다가간 시선이 만난 현재에—암암리에, 아니 필연적으로—있지 않을까. 그 결과, 공진은 대낮을 평화롭게 비치지 않는다. 수원의 낮에 오키나와의 낮이 겹칠 때, 우리는 외곽에 덮인 어둠을 그 떨림 안에 같이 들여다보게 된다. ■
각주
1. 예컨대, 쓰레기 매립장, 화학공장, 물류센터도 해당할 것이다.
2. 쿠시 후사코,「멸망해가는 류큐 여인의 수기(滅びゆく琉球女の手記)」중에서 인용. 인용문은 정희수가 오키나와를 방문해서 구매한 『沖縄文学選_日本文学のエッジからの問い(오키나와 문학 선집_일본문학의 가장자리에서 묻다)』(岡本恵徳・高橋敏夫 編, 勉誠社, 2003)을 정희수가 읽고 직접 번역한 문장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3. 기념적이지만, 정리된 ‘형식’만 남는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이라 할 수 있다.
4. 1972년에 오키나와는 미국에서 다시 일본으로 반환되었다. 그 전부터 전쟁 사상자를 추모하는 의미로 오키나와 곳곳에 위령탑(기념비)이 세워졌으나, 1975년까지 여러 번 낙서당했다. 반감 의식이 고조된 배경에는 반환 전부터 지속된 일본/미국의 군사적 대응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경제적 지원을 고려한 오키나와 해양박람회(1975) 개최를 앞두고 과도한 개발에 따른 일자리 약탈과 자연 파괴가 이어지자 반발이 거세졌다. (福間良明,『戦後日本、記憶の力学: 「継承という断絶」と無難さの政治学(전후 일본, 기억의 역학 - ‘계승이라는 단절’과 무난함의 정치학)』, 作品社, 2020, p.97-123 내용을 참조.)
5. 이들의 안녕을 비는 사람도, 거기서 희생당한 사람도 모두 침묵을 강요당한다는 점에서 ‘전체적’이다.
6. ‘암암리’의 한자는 어둠-어둠-뒷면으로 풀이할 수 있다.
7. 福間良明, 『「戦跡」の戦後史――せめぎあう遺構とモニュメント(‘전적戦跡’의 전후사 - 맞싸우는 유구遺構와 모뉴먼트)』, 岩波書店, 2015, p. 187
8. 오에 겐자부로는 오키나와 노트에서 야간 집회의 경험을 쓴 시인의 시를 소개하면서, 그 시인이 발신했을 거라 짐작되는 태풍 경보를 라디오 방송으로 듣던 경험과 겹쳐보면서 술회한다. (大江健三郎, 『沖縄ノート』, 岩波書店, 1970, p. 30)
소현동행 25
○ 작가와의 대화 : 9. 6.(토) 16:30~17:30(60분)
○ 또 다른 작가와의 대화 : 9. 20.(토) 시간 추후공지
*수원문화재단 「유망 예술가 지원」사업 역대 선정자 초청 협의회
운영시간
12:00―19:00, 매주 수요일 쉼
글
콘노 유키, 백필균, 정희수
번역
고성
포스터 디자인
윤충근
도움주신 분들
박다빈, 이은솔
주최
소현문
주관
정희수, 백림기획, 마음랩
큐레이팅
백필균
전시 운영
이유린(인턴)
후원
수원특례시, 수원문화재단
*수원문화재단 「2025 유망예술가 지원」 사업 선정(정희수)
Jung Heesu_The Sunlight
Date
Exhibition : 2 ― 22 September 2025
Venue
Sohyunmun
Open hours
12:00~19:00, Every Wednesday closed
Hosted by
Sohyunmun
Organized by
Jung Heesu, White Forest Agency, Maum Lab
Curated by
PAIK Philgyun, LEE Yurin
Supported by
Suwon City, Suwon Cultural Foundation
*2025 Emerging Artist Program, SWC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