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의로 남지 않겠다고 약속할게"

불의의 표상, 타르타

지칭대명사  ·  그, 그들 / He, They  |  나이  ·  420  |  계급  ·  그을음가지

출처: Mads Schmidt Rasmussen, unsplash

외관

그림자를 끌고 등불을 흔들며 걷는 이를 보았는가?

키 205cm에 달하는 거구의 몸. 구부정한 자세. 몸의 절반을 물들인 뇌격의 흔적은 꿈틀거리는 그림자가 새까맣게 뒤덮고 있으며, 가슴 위에 새겨진 감은 눈의 표식은 칼로 그어 딱 절반 치만 눈 뜨게 했다. 이외에 드러나는 것이라고는 로브 밑으로 드러난 하관과 입, 등불을 잡고 있는 새까만 손뿐이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로브로 감싼 구부정한 거구가 소리 없이 길을 걷는다. 어깨에 둘러멘 단출한 봇짐. 은사로 자수 놓은 어두운 남색 로브. 안 신느니만 못한 낡은 가죽 신발. 흑단 나무의 심재를 깎아 만든 새까만 지팡이 끝에선 유난히 밝게 빛나는 등불과 넓고 긴 천 조각이 어수선하게 흔들린다. 수상쩍은 행색의 여행객인가, 뇌운을 기다리는 숱한 고행자 중 한 명인가. 게슴츠레 보고 있다 보면 그의 발치에서 등불보다도 더 선명하게 흔들리는 어둡고 불길한 것과 눈이 마주치고야 만다. 어찌 사람의 그림자가 저토록 거대하고 들쑥날쑥하게 움직인단 말인가? 세상의 가장 삿된 것들과 긴밀하고도 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게 되는 그 형상은 살아있는 인간보다는 죽음을 거두러 온 망령처럼 보였다. 그제서야 오직 거짓 없이 빛나는 등불만이 그나마 그를 살아있는 자처럼 보이게 하고 있음을 뒤늦게 깨닫는 것이었다.

하늘에 계신 세 어머니조차 품어주려다가도 놀라서 도로 내쳐버릴 형상이다. 저토록 불길한 분위기를 풍긴다니, 로브로 가린 목덜미는 수포와 풍토병의 흔적이 따개비처럼 달라붙어 있고, 삿된 말을 속삭일 입에는 짐승의 검은 입술과 치석 낀 누런 이빨 사이사이에 거품 낀 침이 그득 고여 있을 게 틀림없다! 경계하고 있노라면, 로브의 소매 사이로 시꺼먼 오른손이 스멀거리며 뻗어져 나온다. 저걸 인간의 손이라 볼 수 있는가? 이쯤 되면 그림자를 보고도 도망치지 않았던 사람 중 열에 아홉은 마저 도망치고 하나는 혼절한다. 

“아! 기절한 사람을 만나다니, 오늘은 정말 운수가 좋은 날이로군! 잘 됐다, 잘 됐어! 이자가 일어나면 마을이 있는 방향을 물어볼 수 있겠군!”

그러나, 이 어찌 된 일인가? 기절한 사람을 앞에 두고 비루먹은 여행자이자 고행자이자 동시에 삿된 괴물일 그가 아이처럼 기뻐한다. 그림자가 드리워진 뺨 위로 보조개가 패는 것이 보일 정도로 환하게.

로브 사이로 슬며시 드러나는 입술과 하관, 목덜미는 좀 창백하지만 깨끗하다. 하관을 제외하면 여전히, 마치 무언가에 가려지기라도 한 것처럼 어둠이 덮여 얼굴의 어떤 곳도 일절 보이지 않았으며, 그나마 드러난 부분조차 절반은 낙뢰의 형상이 빼곡히 차 있었지만. 흉측한 벼락 흉터 위를 검은 그림자가 벌레처럼 자글자글 뒤덮고 있는 모습은 사람을 두 번 기절시킨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모습이긴 했지만! 사실 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불운한 그가 드디어 빛의 제단으로 가는 길목을 물어볼 만한 사람과 만나게 되었다는 것 아니겠는가.

“하하하! 한 달만에 처음 보는 사람이라 그런가, 거 지금은 이자의 자는 얼굴조차 어머니처럼 아름답게만 보이는군요. 아차, 요즘 세상엔 이런 말도 잘 안 하던가? 어머니 당신께선 부디 노여워 마시길. ……이것 참, 나이를 먹을수록 고집만 세지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나 유행 따위들과는 점점 멀어지니 참으로 큰일입니다.”

아, 기구한 팔자여!

성격

|수상쩍은|의중을 알 수 없는|혼잣말이 많은|회상하는|

척 보기에도 수상쩍고 음침해 보인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하관밖에 없으니 의중을 더욱 파악할 수가 없다. 대체 뭐 하는 작자일까? 평균적인 사람들에게 맞추어진 탓에 그에게는 작고 귀여운 테이블과 의자에 몸을 구겨 넣은 채 장난감 같은 포크를 로브 안으로 쑥쑥 밀어 넣는 그를 보면 모두가 눈을 게슴츠레 뜬다. 심지어 그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허공을 보며 계속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걸 보면 그에게 다가가려다가도 옆으로 커브를 돌기 마련이다.

“아, 어머니시여. 제가 백칠 년 만에 맥주 한 잔 따악 걸쳐도 되겠습니까? 피뢰의 창 마지막 회견을 끝으로 술에 혀끝도 안 담근 지가 벌써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까. 저 올해로 팔팔한 젊은 피의 삼백칠십 살입니다. 아, 원래 오십 정도는 빼도 됩니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야박하지 마십시오. 술은 괜찮은데 네 돈주머니를 알라고 하셨습니까? 이런 젠장, 역시 현명하시군! 오늘도 노숙이나 하겠습니다. 예!”

|실없는|수다쟁이|입만 열면 거짓말!|천부적인 이야기꾼|

중얼거리는 혼잣말에서도 보이는 것처럼 보기보다 굉장히 실없는 사람이다. 엉뚱하고 싱겁고 주책맞고 헐렁하고! 세상의 모든 실없다는 연관어가 전부 그를 향해 있는 것만 같다. 게다가 그는 입만 열면 거짓말에 뻥쟁이, 자존심도 명예도 없는 구라쟁이였으니…….

“이 문신 말인가? 섬광이 되고 싶다고 빛의 제단 앞에서 이십 년을 엎드려 기도했더니 그 치성이 딱하고 갸륵하다며 낙뢰의 교에서 손수 새겨준 낙뢰의 문신이라네. 단돈 금화 두 닢에 새겼지! ……무얼 믿나? 당연히 뻥일세. 문신은 내가 직접 새겼다네. 그걸 또 속나? 그것도 뻥일세. 내가 미쳤다고 이 여린 살에 문신을 새기겠는가? 사실 내 얼굴에 붙어 있는 요 귀여운 녀석들은 전부 내가 키우는 벌레들이라네. 내 뺨에 붙어 움직이는 거 보이나? 비명 지르는 거 봐라, 하하하! 자네는 이걸 또 속는군? 뻥일세.”

진실과 거짓을 섞어 교묘하게 이야기를 꾸며내는 데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탓에, 다른 사람이 했으면 콧방귀도 안 뀌고 무시했을 말도 그가 하면 묘하게 그럴듯하게 들렸다. 천부적인 이야기꾼의 재능이란 이런 걸까. 아니면 그 쓸데없이 진중한 목소리 때문일까. 혹은 그 자신감 넘치는 태연자약한 태도 때문일까. 평소엔 그림자 연극을 하며 먹고 산다더니, 그 말조차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몰라도 모두가 그의 태연자약한 구라만은 인정했다.

|웃음이 많은|긍정적인|허당|

음침해 보이는 모습이 때때로 과묵함을 연상시키지만, 이렇듯 그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웃음이 많으며, 좋게 말하면 장난꾸러기 같고 나쁜 말로는 허허공공하다. 실속 없는 사내 주제에 웃을 때면 또 어쩜 그렇게 호탕한지. 그의 말로 미소의 원천은 모두 긍정적인 마인드라나 뭐라나.

“아, 어머니시여. 이렇게 감사할 수가. 오늘 밤에만 나를 보고 기절한 사람이 벌써 둘이로군. 이자들이 일어나면 말동무를 시키며 마을까지 함께 가야지! 오늘 밤은 외롭지 않겠어. 하하하!”

행동하는 것을 보면 그는 외견과는 달리 꿍꿍이나 사특한 것들과는 영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따금 그 덩치를 주체하지 못하고 술집의 테이블이며 의자에 부딪히고 다니는 꼴을 보면 더더욱. 이 인간, 보기보다 훨씬 허당인 거 아닌가?

|도망의 명수|

흐르는 듯 유하며 어지간해서는 좋게 좋게 넘어가길 바랐다. 그를 위해선 자신을 굽히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고 매사 긍정적이었다. 겉모습이 무색하게도 보기보다 호쾌하며 시원스러운 사내. 막상 대화를 해보면, 그저 특이하게 입고 다니는 평범한 고행자처럼 보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굽은 어깨도 펴고 누구보다도 미친 듯이 도망칠 때가 있었는데…….

“너 이 배신자 새끼! 이 피뢰들의 수치! 네가 감히 우리 앞에서 얼굴을 들고 다녀?!”

“들고 다닐 수 없어 숙인 건 못 봤나? 거 참, 나인 줄은 어떻게 알았는지…….”

“당장 거기 안 서! 오늘이야말로 죽여주마!!”

“세상이 내게 살라는 대로 살았으면 내가 어디, 어머니께서 내리시는 벼락까지 맞았겠나? 하하하!”

이런 불의의 표상 같은 사내를 보았나!

기타

피뢰의 창에 속하여 앞장서서 용맹하게 싸운 맹장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떨쳤으나 그 모든 것이 거짓된 의지였음을 몸소 증명한바, 우리는 여기서 옛 현자들의 말씀을 다시 새길 필요가 있다. 싸움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번갯불 같은 적군의 맹장이 아니오, 우레와도 같은 적 진영의 함성 또한 아니오, 천둥처럼 날카로운 무기 끝과 수호 의지 또한 아니오, 한없이 부끄러운 아군일지니!

그러니 피뢰의 창의 이름을 걸고 의지를 불살랐던 그의 배반은 가히 불의의 표상이라 일컬을 만하다.

- 『벽력의 전쟁사』 中에서


1. 불의의 표상

- 전쟁에 승리자와 패배자가 있다면, 그들을 기록하며 서기관을 자처하는 이도 꼭 한 명씩은 있는 법이다. 전쟁이 끝난 직후 무수히 많은 역사서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벽력의 전쟁사』도 그중 한 권이었다. 사실상 기록서라는 이름만 표명했을 뿐, 그 책은 삼류 작가가 쓴 역사 소설에 가까웠다. 그 때문에 읽은 사람은 읽고 안 읽은 사람은 안 읽은 그저 그런 승전 기록서였으나 한 마디만은 제대로 남겼다. ‘불의의 표상.’ 승자였던 낙뢰의 교를 향해 전적으로 아부하는 그 삼류 기록서에서조차 피뢰의 창을 배신하고 낙뢰의 교 편에 선 것으로 알려진 배반자 타르타는 불명예스러운 존재로 조롱당하고 있었다.

전쟁 이전까지 이렇다 할 명성도 이명도 없었던 타르타는 피뢰의 창에 속해 활동했던 오십여 년간, 영광의 시간부터 추락까지 섬광처럼 빠르게 이륙하고 빠르게 곤두박질쳤다. 그리하여 그의 이명은 전무후무하게도 삼류 역사서에 한 줄로 실린 ‘불의의 표상’으로 남게 된 것이었다.

2. 섬광이 되기 이전의 그는…….

- ‘은빛 안감의 도시’ 태생. 성인이 되자마자 목수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수로 일하며 반려와 함께 슬하에 세 자녀를 두고 평범하게 살았다.

-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 알려진 까닭은 그의 이력 때문이다. 대략 400년쯤 전, 그의 아이가 섬광이 되고자 광장의 높은 첨탑을 기어오르는 곡예를 선보이다 떨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아이는 아버지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목이 부러져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 이후 타르타가 섬광이 되기 위해 성지에서 위험한 짓을 자행하는 이들을 제지해달라고 낙뢰의 교에 간청했던 일, (의지를 긍정하는 교리에 따라) 간청이 묵살 당하자 신전 앞에서 난동을 부렸던 일, 이것이 정녕 신의 뜻임을 반문하며 항의했다가 난동을 부렸던 전적까지 한데 엮여 벌을 받았던 사건 등이 있었다. 

- 교단에서 충분히 벌을 받은 그는 섬광이 되지 않고도 스스로의 의지로 섬광만큼 강해질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자 은둔했다. 문제는 이후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섬광이 되어 돌아온 것이었다!

- 후대의 사람들은 이를 두고 하늘에 계신 어머니도 눈물지은 부모 자식 간의 비극이라느니, 어머니께서 목이 부러져 죽은 가여운 아이를 거두어 주며 그 징표를 보호자들에게 준 것이라느니 마음대로 살을 붙여 떠들어댔다고. 결과적으로 이런 비극적인 이야기가 얽혀, 그가 성지가 된 곳보다 그의 아이가 떨어져 죽은 첨탑이 더 준-성지로서 유명해지는 어이없는 해프닝이 생겼다. 정작 그을음가지이자 배반자 타르타의 이름은 희미하게 지워진 채 비극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만이 세상에 남았다니, 세상사는 정말로 아이러니할 따름이다.


3. 피뢰의 창에 속한 이후

- 섬광이 된 이후 세계 곳곳을 떠돌며 지냈다. 성지를 다니며 섬광이 되기 위해 위험한 짓을 자행하는 이들을 막고, 그러다 싸움이 붙고, 쫓겨나기를 반복하면서.

- 그런 그가 피뢰의 창에 들어가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땅 끝의 창’이 세력을 모으기 시작하던 즈음부터 간부로 활동하고 있었기에 그즈음 소속되어 있었던 사람들과는 대부분 구면이다.

- 그때도 로브를 온몸에 두르고 있었지만, 그 시절의 그는 홀로 있기보다는 동료들과 시간을 보내는 걸 즐기고, 마음이 따듯하고, 동시에 굉장히 호전적이고 적극적이었다고. 동료들에게 강한 애착을 드러내는 사람이기도 했다.

- 그는 피뢰의 창임을 표방하며 앞장서서 항거했던 사람 중 한 명이다. 이전까지 명성이 없었던 그는 피뢰 전쟁에서 두각을 드러내 많은 기대를 받았으나, 신전 주위에서 게릴라전을 벌이던 도중 작전에 실패하고 말았다. 전쟁이 끝나기 2년 전 일이었다.

- 함께 있었던 다른 간부 한 명은 그 자리에서 부상을 입고 사망한 뒤 바다에 던져졌다. 그는 살아남은 부대원들과 함께 포로로 붙잡혔다.


4. 불명예의 기록

- 이후는 오로지 불명예의 기록뿐이다. 그는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낙뢰의 교에 투항했다. 그러나 이도 선해해준 것이고, 실상은 그가 처음부터 낙뢰의 교 소속이었던 게 아니느냐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출신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불분명한 데다가 얼굴도 밝히지 않았다. 심지어 증언에 의하면 그는 포로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동료들에게 적극적으로 항복을 권유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치 사람이 바뀐 듯한 변화에 동료들이 당황했다고.

- 그러던 어느 날, 포로로 붙잡혀 있었던 타르타와 그를 담당하고 있었던 주임관, 둘 다 감쪽같이 사라졌다. 전쟁이 끝나기 반년 전이었다. 교단에서는 그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밝히지 않은 채 그들이 교단을 이탈해 행방불명되었고 끝내 찾을 수 없었다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 전쟁 도중 사람이 죽고 사라지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문제는 방식과 시기에 있었다. 포로로 붙잡혀 있었던 사람의 행적이 적진에서 묘연해진 것도 모자라, 그가 적과 함께 사라지자마자 반 년 후 피뢰의 창이 패배하다니! 분노와 증오, 절망감과 비탄 속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우리에 대한 정보를 밀고한 놈이 있었던 게 분명해. 타르타, 그놈도 그중 하나였겠지! 행방불명? 웃기지 마! 낙뢰의 교로 간 거겠지!”

- 당시 함께 포로가 되었던 이들 대다수는 이미 목숨을 잃었으며, 그나마 살아남은 자들의 의견도 다소 분분하다. ‘그가 전쟁이 곧 끝날 것 같다는 말을 곧잘 하고는 했었다’, ‘그는 항상 신전과 성지를 부수어야 한다고 앞장서서 주장하면서도 막상 부술 때는 망설이고는 했다’, ‘그의 아이가 죽었다던 첨탑도 그대로 남아있지 않으냐’, ‘타르타는 언제나 독방에 있었기 때문에 정작 그가 고문당하는 모습을 본 이는 없다’, ‘그는 전부터 낙뢰의 교에 있는 섬광들을 딱하게 여겼다’, ‘그는 진심으로 우리에게 투항을 권유했다’…….

- 남은 진실은 그가 전쟁이 끝날 시기에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 피뢰의 창에선 그를 공식적으로 제명했다는 것. 한동안 피뢰의 창에선 “거꾸로 읽어도 타르타일 놈!”이라는 욕설이 유행했었다는 것. 그리고 이를 두고 후대의 기록자들은 그를 배반자로 조롱했다는 것뿐이다.

- 그런데, 그놈이 다시 나타났다고?


5. 전쟁 이후

- 그가 모습을 드러낸 건 그로부터 50년이 지나서다. 그가 처음 목격된 장소는 끝끝내 피뢰의 창의 편에 서서 저항하다가 결국 몰락한 영지에서였다.

- 그러나 다시 나타났다는 소문 속 ‘타르타’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로브를 뒤집어쓴 거구의 장신이라는 단서를 제외하고는 겹치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는 어두컴컴하고 더러운 로브를 쓰고 다니지도 않았고, 등불을 들고 다니지도 않았으며, 손이 새까맣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피뢰의 창이었던 그는 어머니에게 기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 게다가, 그는 걸려 오는 싸움을 피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마주치는 사람마다 꽁무니를 빼다니! 겅중겅중 도망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기록을 정정하기 위해 찾아간 후대의 기록자들과 배반자를 그저 흠씬 두들겨 패주기 위해 찾아간 소수의 사람들이 어찌나 당황했는지!

- 거기까지 사람이 바닥을 치자 누군가는 임계치를 넘는 증오심으로, 누군가는 벌레만도 못한 신의를 보여준 이에 대한 냉소로, 또 누군가는 완벽한 무관심으로 그를 외면했다. 살아있든 죽었든 알 게 뭔가. 그야말로 불의의 표상, 피뢰의 창의 살아 숨 쉬는 불명예 중 한 명일 뿐인데!


6. 힘을 다루는 방식

- 어깨와 허리를 숙이고 있는 것은 그의 큰 키 때문에 생긴 버릇이다. 자세가 굽어 있긴 해도 몸놀림은 날렵한 편이다. 그림자를 사용할 수 없는 순간엔 지체 없이 육탄전으로 맞붙으며, 가지고 다니는 흑단 나무 지팡이를 무기로 사용한다.

- 그림자를 방패막처럼 세울 수도 있으나, 그림자의 소모가 커지면 장기전에서 불리해지기 때문에 보통 적의 발을 묶는 데에 그림자를 사용한다.

- 얼굴 반쪽에서부터 목덜미, 그리고 그 아래까지 몸의 절반이 낙뢰 흉터로 모조리 뒤덮여 있는데, 그는 이것을 그림자로 촘촘하게 뒤덮어 문신처럼 보이게 하고 다닌다. 누군가가 물어보면 낙뢰가 내리길 기다리며 새긴 문신이라고 능청스럽게 대답한다. 


 7. 그 외

- 낮은 중저음을 갖고 있으며 장난스러우면서도 정중한 말투를 구사한다. 그럼 무얼 하나. 내막을 아는 사람에게 그는 정중한 사람이 아니라 가증스러운 배신자일 뿐이다.

- 주로 하게체로 사람을 대하는데 오로지 혼잣말을 하거나 어머니께 기도를 올릴 때만 존댓말을 구사한다. 

- 길거리에서 그림자 연극을 하는 것으로 자주 돈을 번다. 연극 주제는 주로 피뢰 전쟁과 피뢰의 창의 동료들. 이놈이 이젠 우리를 팔아먹어서 돈을 벌기까지? 더더욱 가증스러울 따름이다.

- 타고난 길치에 방향치. 그가 게릴라 전투를 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뛰어난 동료들 덕분이었다.

- 이번에도 길을 좀 헤매긴 했지만 전언을 받자마자 바로 이곳으로 향했다. 본인 말로는 갚을 빚이 있어서란다. 정작 진짜 갚을 빚은 따로 남아 있을 텐데……. 

- 그가 살았던 은빛 안감의 도시의 가장 큰 광장에는 그가 목수였던 시절, 그의 지휘로 만들어진 가제보가 아직도 세워져 있다.

능력-【그림자 밟기】

그림자에 일시적으로 실체를 불어넣으며 만지고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가 그림자를 운용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그림자를 이용해 눈에 띄는 낙뢰 흉터를 문신처럼 검게 덮어 가리기도 하고, 실체를 갖게 된 그림자를 지면으로부터 끌어올려 방패처럼 사용하기도 하고, 타인의 그림자를 무겁게 만들어 발을 붙잡아 두거나 그림자를 빚어 물건이나 모양을 만들기도 한다. 심지어는 타인의 그림자를 제 그림자에 붙이는 식으로 그림자를 거두어 가기도 한다. (그림자의 성질상 거두어 간다고 해도 잠시뿐, 그로 인해 그림자가 사라지거나 피해를 입지는 않는다. 물론 그가 하는 일이 기분에 피해를 입힐 수는 있다.)

얼핏 효용성이 큰 능력처럼 느껴지지만 그의 능력에는 제약이 뒤따른다. 첫 번째로는, 그림자가 있을 수 있도록 적당량의 빛과 적당량의 어둠이 언제나 절묘하게 교차하는 상태를 이루고 있어야 한다는 것. 두 번째로는, 사방이 너무 밝거나 너무 어두워 그림자가 사라지게 된다면 그도 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 세 번째로는, 그가 운용할 수 있는 그림자는 항상 그 순간, 빛의 각도에 따라 지면을 향해 진 그림자의 표면적뿐이란 것. 그러니 그림자가 짙고 길어질수록 그에게 더욱 유리해지는 셈이다.

이런 점을 상쇄하기 위해 그는 최대한 많은 그림자들을 긁어모으며 다닌다. 당장 지면에 있는 그림자를 사용할 때는 그 양이 얼마 되지 않아도, 보존한 그림자들은 그대로 형태를 유지하여 사용이 좀 더 용이했다. 그가 타인의 그림자에게까지 집착하며 바닥을 기어다니게 된 것과 그의 질량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 거대한 그림자를 끌고 다니게 된 것은 오로지 그 때문이었다. 어차피 그림자가 없는 환경에서는 보존한 그림자들도 못 꺼내는 거 아니냐고 누군가 지적해도 그는 시종일관 긍정적으로 세상의 그림자들을 싹싹 긁어모았다. 

그러나, 시종일관 날이 흐려 하늘에서 내리는 빛이라고는 낮을 가늠케 해주는 희미한 빛무리와 뇌격뿐인 세상에 그림자라는 것은 의식하지 않으면 얼마나 보기 힘든 성질의 것인가? 때문에 그는 능력의 잠재성과 별개로 평가를 매우 박하게 받았다. 이 춥고 어두운 세상에 하필이면 그림자라니. 설령 그의 염원과 관련된 것이라 해도, 신의 갸륵함과 노여움을 동시에 산 것이 아니라면 설명하기 어려운 능력이라는 비웃음은 덤이었다.

Skills

Sta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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