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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정말 수고많으셨습니다. 누군가 갓이 무엇이냐 묻거나, 그래서 무슨일이야? 라고 물었을때 구구절절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당당하고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는게 무엇일까 하다가 이 사이트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디코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다들 정말 정성스럽게 자료를 모아주시고, 요약해주시고, 검토해주시고, 피드백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Sky를 이렇게나 사랑하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주는 따뜻함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TGC는 다시 평화로운 Sky왕국을 재건하려면 여러분들의 도움이 많이 필요할 겁니다. 그리고 언젠가 평화롭고 따뜻한 Sky 왕국에서 서로 우연히 만날 수 있기를...
TGC will need a lot of your help to rebuild the peaceful sky kingdom again. And hope we can meet each other by chance in Warm, Peaceful Sky Kingdom.
시대별 갓의 변화
1485년(성종 20) 3월 “입자의 모양이 승립(僧笠)과 같으니 이를 개정하라.
당시의 갓은 모자의 정상이 둥그렇고 테가 넓은 형태였다.
1504년(연산군 10) 5월에는 모자가 높고 양태가 작은 새로운 형태의 갓을 만들도록 하였으나, 잘 지켜지지 않았다.
1530년(중종 25) 5월에는 모자의 높이나 양태의 넓이를 절충한 새로운 형태의 갓을 만들도록 하였다.중종 말기에는 모자의 높이가 극도로 높아지고 양태는 극히 좁아졌으며, 명종초에는 모자의 높이와 양태의 넓이를 적당히 가감하여 만든 경쾌한 형태가 등장하였다.
그러다가 곧 다시 모자는 점점 낮아지고 양태는 우산을 펼친 모양처럼 넓어졌다.
1556년(명종 1) 개정이 다시 논의되었으나, 주로 모자가 낮고 양태는 극히 넓은 형태의 갓이 명종 말기까지 쓰였다. 그러나 선조 때에는 초년부터 모자가 높고 양태가 좁아지기 시작하여 말년까지 계속되었다.
광해군 때에는 그와 반대로 양태가 극히 넓어지고 모자가 아주 낮아져 안반처럼 넓은 양태에 마치 주발을 엎어놓은 것 같은 모양의 갓이 유행되었다. 넓은 양태의 갓이 인조 말부터는 갑자기 모자도 높아져서 이른바 ‘큰갓’이 되었으며, 효종 때까지 변함없이 사용되었다.
숙종 때는 한때 모자가 낮고 양태가 좁은 ‘작은갓’이 유행했다.
영·정조 때의 갓은 그 시대의 풍속도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양태가 비교적 넓었다. 거기에 밀화나 호박·대모 등으로 만든 갓끈을 가슴 밑으로 길게 늘어뜨려 그 멋을 한층 더하였다.
순조 말기에는 양태가 더욱 넓어져서 종전의 어깨를 덮을 정도에서 앉은 사람을 완전히 덮을 정도가 되었는데, 흥선대원군 집정 이후 사회개혁의 일환으로 종래의 ‘큰갓’은 ‘작은갓’으로 변화되었다.
갓의 의의
삼국시대부터 유래된 조선시대 성인 남자가 머리에 쓰던 관모로, 머리카락처럼 고운 세죽사로 짠 반투명의 섬세한 죽세공품이다.
갓 착용 시 모자집은 머리 위에 단정히 얹혀진 형태이므로, 망건의 정중앙 위쪽에 달린 풍잠을 모자집 속으로 밀어 넣어 갓이 움직이지 않도록 하고 검은색의 비단 끈을 턱 밑에 매어 갓을 고정시킨다. 여기에 밀화나 호박, 대모 등으로 만든 갓끈을 가슴 밑으로 내려뜨려 그 멋을 한층 더하였다.
또한 옻칠을 올려 단단한 형으로 정형화된 상협하관의 모자집과 아래로 우긋한 모양의 곡선을 이루고 있는 양태는 긴장감과 함께 여유로움을 준다. 더욱이 반투명의 멋스러움마저 갖는 흑색의 갓은 백색의 복식과 함께 어우러짐으로써 조선시대 남자복식에서의 미적 산물로 자리매김하는 데에 모자람이 없다.
갓은 조선시대에 성인 남자들이 일상 통행 시에 착용한 대표적이 관모이다.
넓은의미로는 방갓형과 패랭이형에 속하는 모든 종류의 것을 말하나, 일반적으로는 좁은 의미의 갓, 즉 흑립을 말한다.
역사의 기록 속 갓
1) 고대
둔황 석굴에서 발견된 신라인의 모습과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된 신라 입형백화피모 모자, 고구려 감신총에서 발견된 착립기마인물도, 그리고 원성왕이 꿈을 적은 원성대왕설화에 북두를 벗고 소립을 썼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통해 갓의 삼국시대부터 갓의 유래가 이어져 왔다는 것을 알수있다.
2) 고려
고려시대에 와서는 관리들의 관모로 제정됨으로써 신분이나 관직을 나타내는 사회적 의의를 가지게 되었다.
그에 관한 최초의 기록으로는 1357년(공민왕 6)에 문무백관에게 갓을 쓰도록 한 것인데, 이어 1367년 7월에는 아문(衙門)의 정3품 이하 관원들에게 각기 품수에 따라 백옥·청옥·수정 등으로 장식된 흑립을 착용하도록 하였다.
또한, 1374년 4월에는 재상(宰相)·중방(重房)·각문(閣門)이 모두 갓을 착용하도록 하였는데, 그때의 갓은 재료나 제작기술상 조선시대의 흑립과는 다르나 형태는 패랭이형일 것이다.
3) 조선
갓은 고려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 패랭이 · 초립의 단계를 거쳐 흑립으로 발전되었다.
태종 때 한때 백관들이 갓을 쓰고 궁궐에 출입한 적이 있었으나, “조로에 우설일이 아닌데도 대소관리가 착립하고 있어 미편하다.”고 하여, 조정에서는 사모를 쓰게 되고 갓은 편복에 착용하게 되었고, 다양했던 관모 중 가장 널리 사용되었던 갓은 특히 양반층에서 즐겨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