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아
강정아
재현된 이미지를 생성하는 작동방식은 고정화된 신체로 나타난다. 나타나고 실재하는 이미지는 현실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복제된 현실을 구축한다. 원본을 복제한 재현은 복제된 원본을 파생시키고 이미지는 재현 불-가능성에 전복 당한다. 실시간으로 생산하는 이미지는 도처에 깔려있다. 이미지의 재현은 진실과 삶 사이를 방황하고 경계 짓고 상황을 통제하고 위험(Risk)을 줄인다.
이미지의 진실 여부와 진정성에 관한 문제는 끊임없이 우리를 옥죄어 왔고 이것은 ‘예술인가 삶인가’라는 기만적인 슬로건이 처참한 현실 앞에 의례 고개 숙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미지가 발생하고자 했던 태초의 욕망이 빠져나간 후 남겨진 잔여물, 불쾌하고 찜찜한 여운이 몸 안 곳곳을 배회하고 다시 나타난다. 욕망의 기호에 덧입혀진 타자를 마주할 때, 느껴지는 매슥거린 혐오는 섹슈얼리티를 떠받든다. 혐오의 기원은 이미지를 생산하며 욕망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이 모든 것은 재현 불가능성에서 나타나는 재현하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혐오는 내재적 동기이며, 이미지는 재현 불가능성이 아니라 재현 가능성을 재배열함으로써 등장한다.
윤결은 그간 작업을 통해 억압된 욕망과 욕망의 자리가 배제된 이들의 자리를 추적하며 사회에서 작동하는 혐오 기제를 분석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의 전통문화와 관습에 따른 억압된 욕망이 발현되는 방식을 다룬 <창문과 음악이 없는 파티>(2015~2018)와 중년 여성이자 사회 내에서 어머니로 생존하기 위해 선택한 처세술 <빠른 발걸음>(2018)을 통해 가장 친숙한 존재를 혐오의 대상으로 위치시키고 관조하는 태도를 꼬집었다.
억압과 혐오에 따른 욕망의 이면을 탐색하는 작업은 소수, 하위, 변방으로 내모는 대상화를 재현하는 작업의 윤리성에 칼끝을 세웠고 작가 자신을 투영했다. 대상과 함께 관계 맺음을 통해 일어나는 감각은 전이(轉移)를 동반해야 했고, 작가 자신으로부터 기이한 것에서 출발해야 했다. 대상을 모방하려는 시도는 혐오를 일으키는 기제를 알아차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윤결의 이미지는 서사의 재현 불가능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전시 《가동하는 이미지-교차하는 서사》는 다양한 정체성, 규정할 수 없는 조건들로 이뤄진 몸으로 ‘각설이 품바’를 호출하며 〈대나무에 꽃이 피다〉(2019)와 〈무릎은 노랗고 빨갛게 시리다〉(2022) 작품 일부를 선보인다.
진정한 삶, 실재하는 삶이란 무엇인가. 그것에 대해 우린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재현하는 과정에서 의도된 이미지는 언제나 진실에 도달하지 못한다. 결국, 이미지에서 미끄러진 부산물만이 다음 이야기를 시작할 초석이 되어준다. 이미지 안팎을 배회하는 서사는 통제 불가능성을 내포하며 우리의 삶을 위협할 것이다. 그것은 언제나 ‘예술인가 삶인가’의 명제로 돌아갈 충분한 명분을 만들어 주며 정면을 응시할 용기를 찾아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