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한국연구재단 글로벌인문사회융합연구지원사업 과제("감정 표현 및 조절 과정의 문화 보편성과 특수성을 반영한 자연어처리 기반 감정 프로파일링 시스템 개발")가 최종 선정되었습니다!
언어와 지각의 상호작용 (Interaction between Language and Perception)
지각(perception)은 오감을 통해 들어온 감각 정보의 해석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 언어는 부지불식(不知不識)중에 영향을 미칩니다. 김춘수의 '꽃'의 한 구절,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라는 시구는 어떤 사람이나 대상에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을 부르는 행위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일깨웁니다. 숲에 가 봅시다. 숲에는 내가 이름을 알고 있는 꽃과 나무들도 있는 반면, 이름을 알지 못하는 풀과 나무들도 많습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이름을 알지 못하는 풀들을 '잡초', 그 꽃들을 '야생화'라고 뭉뚱그려 부릅니다. 하지만 그 풀들과 꽃들을 백과사전이나 인터넷에 찾아보면 '구절초', '개망초', '각시붓꽃', '투구꽃' 등 대부분 멋들어진 이름이 있으며, 식물분류학상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국화'나 '장미'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름을 알지 못하는 꽃에 비해 이름을 알고 있는 꽃을 볼 때, 우리는 그 꽃을 보다 쉽게 알아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이렇게 다시 알아보는 과정, 그것을 심리학에서는 재인(recognition)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나 대상에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을 부를 때, 우리는 그 사람 혹은 그 대상을 더 잘 알아볼 수 있을까요? 어떤 대상에 이름을 붙임으로서 생기는 심리적 효과를 소위 '명칭 효과(labeling effect)' 라 합니다. 위스콘신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Gary Lupyan은 어떤 대상에 이름을 붙이고 부르는 행위가 그 대상의 범주화(categorization)와 시각적 변별(visual discrimination), 그리고 단순 탐지(simple detection)를 용이하게 한다고 주장합니다(Lupyan, 2012). 우리 연구실에서는 이러한 명칭 효과를 다른 사람 혹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즉, 복잡미묘한 감정을 어떻게 이름붙이느냐에 따라 그 감정을 인식하는 과정이 달라지는 지를 얼굴표정 범주 판단 과제 등을 사용하여 연구하고 있습니다(양현보, 이동훈, 2018; 이정수, 양현보, 이동훈, 2019; 양현보, 김비아, 이동훈, 2020). 그리고 언어가 얼굴표정 지각을 넘어서 다양한 사건 지각과 기억, 그리고 행동에 미치는 영향력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있습니다(e.g., 이동훈, 신천우, 신현정, 2012; 나영현, 정명영, 곽자랑, 이동훈; 2016; Goller, Lee, Ansorge, & Choi, 2017)
한국인의 감정표현 특성 분석 및 감정표현의 감정 인식 및 조절 기능 연구
전통적인 유교적 집단주의 문화 속에서 한국인들의 감정표현은 자유롭지 못했고,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거나 가끔 표현하더라도 애둘러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현대 한국인들은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경제적으로 자유시장경제 제도를 체험하면서, 개인의 권리와 자율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고, 이로 인해 전통적인 집단주의 문화에서 빠르게 탈피하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제도적인 변화는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지만, 일상 생활에서 개개인이 서로의 행동을 조율하는 의사소통 방식은 여전히 위계적이고, 집단주의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부장님이 "자장면!" 하면 자장면으로 통일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렇게 집단적이고 위계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유롭게 개인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거나 전체를 고려하지 못하는 행동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이로 인해 현대 한국인들의 일상에서 감정표현은 매우 까다로운 문제이며, 과도한 감정억제와 부자연스러운 감정 조절은 개인의 정신건강을 위협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문화적 과도기적 상황에서 서로 다른 감정 표현 방식은 일상 생활에서 세대간, 남여간 오해와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현재 본 연구실에서는 2019년부터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한국인의 언어적, 비언어적 감정표현의 특성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다양한 감정표현의 감정 인식의 조절 기능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연구 과제의 일환으로 한국어 감정 단어 및 비유 표현의 심리언어적 특성을 체계적으로 조사하여 한국어 감정표현 표준 자료집을 구성하고 있으며, 한국인의 얼굴표정 및 감정 음성 자료를 최신 컴퓨터 공학 및 정보처리 기술을 이용하여 분석하고 있습니다. (관련연구: 권소영, 곽자랑, 김비아, 이동훈, 2019; 정은희,이동훈, 김비아, 2020)
한국어의 형태, 의미, 통사론적 특성의 화용적 기능에 관한 심리언어학적 연구
한국어는 대한민국, 북한 및 연변지역, 또는 미국 및 일본 등 해외에 거주하는 조선에 뿌리를 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그 기원이 아직 모호하지만 유일하게 조선 지역에서 사용되어온 고립어로서 한국인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는 언어입니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언어학자들이 현존했던 사람들 중 가장 뛰어난 언어학자로 손꼽은 세종대왕이 발명한 한국어 문자체계, 즉 한글로 인해 한국인들의 모국어 사랑과 자부심은 정말 남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어의 여러 언어학적 특성들에 대한 심리언어학적 연구는 그렇게 활발히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본 연구실에서는 한자와 외래어의 유입으로 복잡한 형태소 체계로 인한 어휘 의미 처리의 어려움이나, 문장 구성성분들의 배열 구조가 주어-목적어-동사(Subject-Object-Verb; SVO) 순으로서 주어-동사-목적어(SOV) 순인 영어나 중국어와 다른 점, 그리고 상대적으로 어순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동사 중심의 의미 전달체계 특성, 그리고 경어법과 같이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등에 남았있는 유교문화권 언어의 공손표현의 화용적 특성에 대한 심리언어학적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배성봉, 이동훈, 2017; Goller, Lee, Ansorge, & Choi, 2017; 곽자랑, 권소영, 김해진, 이동훈, 2018; 곽자랑, 권소영, 이동훈, 2019). 한국어에 대한 높은 자긍심만큼, 우리말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한국어에 대한 다양한 특성의 심리언어학적 측면에 관심있는 분들의 관심과 공동, 협력 연구를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