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나라 >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이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나라이니라.
< 하나님의 나라 >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이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나라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를 창조(創造)하고 관활(管活)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이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關係)를 지으시고
그에대한
믿음을 주시느니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모든 것을
있게도하고 없어지게도 하시느니라.
< 목 차 >
I.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1.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에 대한 인간의 인식(認識)
2. 인간(人間)에 대한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3. “창조(創造)와 관활(管活)”되는 모든 것들
II. 하 나 님
3. 시간(時間), 공간(空間), 관계(關係)를 창조(創造)하고 관활(管活)하는 “하나님”
4. “하나” 를 이루게 하는 “하나님”
III. 하나님의 뜻, 섭리(攝理)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關係)를 지어 주시느니라.
1)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에 대한 섭리(攝理)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하시느니라.
1)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에 대한 섭리(攝理)
2) “지구(地球), 달 그리고 태양계(太陽系)”에 대한 섭리(攝理)
3) “자연(自然) 및 지구(地球)” 에 대한 섭리(攝理)
4) “인간(人間) 그리고 인류(人類)” 에 대한 섭리(攝理)
IV. “하나님”에 대한 믿음
1.”창조(創造)와 관활(管活)”에 대한 믿음
2. “하나님”에 대한 믿음
3. “하나님”의 뜻, 섭리(攝理)에 대한 믿음
2) “하나”를 이루게 하는 뜻에 대한 믿음
3)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하는” 뜻에 대한 믿음
V. “하나님”에 대한 사랑
1. 감사(感謝)하는 마음
2. 사랑하는 마음
3. 순종(順從)하는 마음
< 붙임글 >
“하나님 본연(本然)”에 대한 본연적(本然的) 탐구(探求)
1. “하나님 본연(本然)”에 대한 본연적(本然的) 탐구(探求)의 필요성(必要性)
2. 인간(人間)의 인식능력(認識能力) 발달(發達)에 따른 “하나님”에 대한 인식능력(認識能力) 확대(擴大)
3. “하나님 본연(本然)”에 대한 본연적(本然的) 탐구(探求) 불가피
4. “하나님”의 “피조(被造)된 것”으로서 인간의 인간 자신에 대한 재인식(再認識)
5. “하나님”에 대한 인간 본위적(本位的) 인식(認識) 방법의 탈피(脫皮)
6. “하나님 본연(本然)”에 대한 인간의 인식(認識) 방법의 다양화(多樣化)
1.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에 대한 인간의 인식(認識)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무엇에서나, 언제든지 또 어디서든지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은 이루어지고 있다.
인간은 이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을 그 과정과 결과로 인식하게되며, 이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에 대한 인간의 인식(認識)은 차츰 넓어져가고 있으며, 또한 더욱 깊어져가고 있다.
이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은 인간이 인식할 수 있든, 없든, 또 어떻게 인식하든 이에 관계없이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모두에서, 또 그 “ 각각(各各)의 것”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 “각각(各各)의 것”에서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이 이루어지나, 각각(各各)은 각각(各各)데로 “하나”를 이루어 온전해지며, 각각(各各)은 모여서 또 “하나”를 이루고, 끝내는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가 “하나”를 이루도록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이 이루어진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기관 및 기능으로부터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을 인식하게되며,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속해있는 동물로부터 식물에 이르기까지, 나아가 자연과 지구, 더 나아가 태양계, 은하계, 우주계등, 즉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에서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은 이“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모두를 인식할 순 없으며, 이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대상이 되는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어떠한 것도 이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모두를 인식할 순 없다.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각각(各各)은, 각각(各各)의 속성(屬性)정도에서, 또 그 속성(屬性)에 따라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을 인식할 뿐이다. 인간 역시 인간에게 주어진 속성(屬性)에 따라 “인간됨, 즉 인간적(人間的)”으로 이“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을 인식하고 있다.
< 주(註) : “관활(管活)”은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즉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로 “피조(被造)된 것”의 “생성(生成), 관리(管理) 및 통제(統制), 사멸(死滅)”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피조(被造)된 것”에 내재(內在) 하여 “하나님”의 뜻에 따라 스스로 역사(役事)하심을 뜻함.>
2. 인간(人間)에 대한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인간이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를 인정하고, 이의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을 인식하게 됨에 따라 인간도 이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하나”로,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인식해가고 있다.
인간은 온 우주의 “한 낱”에 불과한 태양계의 지구에 창조되었으며, 한 인간으로서, 또 인간집단(人間集團)인 “인류(人類)”로서 창조(創造)되고 관활(管活) 되고 있다.
한 인간은 “한시적 존재(限時的 存在)”로 태어나 한 삶을 살다가 죽음에 이르러 사멸(死滅)하나, 집단으로서의 “인류(人類)”는 한 인간의 사멸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인간의 탄생으로 인간의 “영속적 존재(永續的 存在)”를 이어가게된다.
이는 인간을 “남(男) 녀(女)”로 구분하여 창조(創造)하고, “남(男) 녀(女)”에게 “사랑”을 줌으로써 “최강(最强)의 선택과정(選擇過程)”을 거친 “잉태(孕胎)”로 한 인간이 태어나고, 또 다른 인간이 태어나게 됨으로써 한 인간은 “한시적(限時的)”이나, “인류(人類)”는 “영속성(永續性)”을 갖게 된다.
한 인간의 탄생은 “인류(人類)”의 “영속적 존속(永續的 存續)”을 이루어주며, 만일 한 인간이라도 더 이상 태어나지 않는다면, 언젠가 “인류(人類)”는 “단종(斷種)”됨으로써 “종말(終末)”을 맞게될 것이다.
어떻든 한 인간은 “선택(選擇)된 존재(存在)”이며, 이러한 인간으로 구성된 “ 인류(人類)”도 “선택(選擇)된 존재(存在)”이다. 단 인간은 인간만이 “선택(選擇)된 존재(存在)”가 아니고,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대상이 되는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모두가 나름대로 “최선(最善)의 선택과정(選擇過程)”을 거쳐 “창조(創造)되고 관활(管活)됨”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인간에 대한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은 인간 자신의 각 신체적, 정신적 조직과 기능을 각각 “하나”로 온전한 조직과 기능을 갖게하며, 이 모든 조직과 기능이 또 “하나”를 이룸으로써 비로소 한 “인간(人間)”이 된다.
이러한“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은 인간을 생물학적(生物學的) 분류(分類)의 “인류(人類)”로 “하나”를 이루며, “인류(人類)”는 다른 생명체, 비생명체 및 자연과 더불어 “지구(地球)”로 “하나”를 이루고, 지구는 다른 “행성(行星)”과 더불어 “태양계(太陽系)”로 “하나”를 이룬다.
인간은 생물학적(生物學的) 분류(分類)인 “인류(人類)”로 공통성(共通性)을 갖게되나, 각각의 인간은 서로 상이(相異)한 “내적(內的), 외적(外的) 특성(特性)”을 갖게된다.
이를 통해 인간은 한 인간으로서는 한시적 존재(限時的 存在)임에도, “인류(人類)”로서는 “영속적 존재(永續的 存在)”로 존속(存續)되도록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이 이루어지고 있다.
인간은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대상이 되고있는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조직과 기능을 바탕으로 상상(想像), 사고(思考), 행위(行爲) 및 행동(行動) 그리고 감정(感情)등 신체적(身體的) 정신적(精神的) 활동을 일으키고 있으며, 이 또한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대상이 된다.
이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은 인간에게 “믿음”을 갖게하며, 이 생래적(生來的)인 “믿음”을 바탕으로 인간은 태어나고, 살아가고, “인류사회(人類社會)”에 참여하며, 심지어 “죽음”까지도 “믿음”으로 받아 들인다.
3. “창조(創造)와 관활(管活)”되는 모든 것들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모든 것들은 물론, 이들을 구성하고 있는 “원요소(元要素)”나 “원요인(元要因)”들까지도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대상(對象)이 되고 있다.
형체(形體)가 있는 것은 “원요소(元要素)”라 불려지는 것으로, 형체(形體)가 없는 것은 “원요인(元要因)”이라 불려지는 것으로 구성될 것이나, 이들 “원요소(元要素)”나 “원요인(元要因)”은 “하나”의“자주(自主) 독립적(獨立的) 역할(役活)”을 가짐과 동시에 “상호 역동적(相互力動的) 역할(役活)”을 가짐으로써 또 다른 “하나”로 창조(創造)되고 관활(管活) 된다.
이들 “원요소(元要素)”나 “원요인(元要因)”들은 인간이 인식(認識)할 수 있는 정도에서 “원요소(元要素)”나 “원요인(元要因)”으로 불려질 수 있을 것이며, 인간의 인식능력(認識能力)이 개발(開發), 확대(擴大)됨에따라 더 이상의 “원요소(元要素)”나 “원요인(元要因)”들로 나아가게될 것이다.
또한 이들 “원요소(元要素)”나 “원요인(元要因)”들은 그 자체가 “하나”로 온전하며, 서로 다른 “원요소(元要素)”나 “원요인(元要因)”과의 결합(結合)으로 또 다른 “요소(要素)”나 “요인(要因)”들로 “하나”를 이루어 “차상위(次上位)”의 것들로 창조(創造)되고 관활(管活) 된다.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는 “시간(時間)과 공간(空間) 그리고 관계(關係)”속에 존재하며, 이“시간(時間)과 공간(空間) 및 관계(關係)” 모두 또한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대상이다.
시간(時間)은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에서 이의 “변화(變化)”로 인식될 수 있으며, “공간(空間)”은 이의 “있고, 없슴(無)”으로 인식될 수 있고, “관계(關係)”는 이들 사이에 관계(關係)가 “있고(有), 없슴(無)”으로 인식될 수 있다.
“시간(時間)과 공간(空間) 그리고 관계(關係)”에 대한 인식은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각각(各各)에 주어진 특성(特性)에 따라 다르게 인식된다.
“시간(時間)과 공간(空間) 및 관계(關係)”는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그 특성(特性)에 따라 인식될 수 있는 “시간(時間)과 공간(空間) 및 관계(關係)”가 있으며, “시간(時間)과 공간(空間) 및 관계(關係)”가 이미 주어져 있음에도 인식될 수 없는 “시간(時間)과 공간(空間) 및 관계(關係)”도 있다.
어떻든 이 “시간(時間)과 공간(空間) 및 관계(關係)”를 인식하든 못하든, 이 “시간(時間)과 공간(空間) 및 관계(關係)”는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대상이며,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모두는 “시간(時間)과 공간(空間) 및 관계(關係)”의 제약(制約)으로 “한계성(限界性)”을 갖게 된다.
인간(人間) 역시 인간에게 주어진 특성(特性)에 따라 “시간(時間)과 공간(空間) 및 관계(關係)”를 “인간됨, 즉 인간적(人間的)”으로 인식하게된다.
인간은 인식능력(認識能力)의 한계(限界)로 극히 짧은 시간이나, 극히 작은 공간은 인식할 수 없으며, 그리고 지나치게 긴 시간이나, 지극히 큰 공간도 인간의 능력으로는 인식할 수 없다.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시간(時間)”에는 “길고(長) 짧음(短)”있고, 시간의 경과에 따라 “과거(過去), 현재(現在), 미래(未來)”등이 있다.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시간(時間)” 에는 “객관적(客觀的), 과학적(科學的) 시간(時間)”과 “주관적(主觀的), 감각적(感覺的) 시간(時間)”등이 있다. 그러나 “극히 짧은 시간”과 “극히 긴 시간”은 인간(人間)이 인식할 수 없다.
그리고 공간(空間)의 경우,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공간(空間)”에는 “크고(大) 작음(小)”이 있고, 이 또한 “객관적(客觀的), 과학적(科學的) 공간(空間)”과 “주관적(主觀的) 감각적(感覺的) 공간(空間)”등이 있으며, “극히 작은 공간”과 “극히 큰 공간”을 인간(人間)은 인식할 수 없다.
또 “관계(關係)”에 대해서는 인간의 지속적이고 열성적인 탐구(探求), 즉 인식능력(認識能力)의 개발(開發) 과 확장(擴張)으로 인간(人間) 자신(自身)의 신체적(身體的), 정신적(精神的) 조직(組織)과 기능(機能)에서 그 “ 관계(關係)”를 인식해 가고 있다.
인간(人間) 자신(自身)을 통한 인식이외에도 생명체(生命體), 비생명체(非生命體), 자연(自然)과 지구(地球), 태양계(太陽系), 은하계(銀河系) 우주계(宇宙系), 즉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에서도 그 “ 관계(關係)”의 일부(一部)를 인식해가고 있으나, 이러한 인식은 아직 극히 일부(一部)에 불과할 뿐이다.
아직도 인식할 수 없는 “관계(關係)”는 소위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것으로 남아있다. 이 “관계(關係)”를 규명(糾明)해 나가는 것이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을 인식(認識)해 가는 것이다.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에 대한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본질적(本質的) 특성(特性)으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 로 모두가 “하나”를 이루어가는 “균형(均衡)과 조화(調和)의 관계(關係)”가 있다.
이 “하나”를 이루기 위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로의 “균형(均衡)과 조화(調和)의 관계(關係)”에 파괴(破壞)나 손상(損傷)이 생길 때는 이를 회복(回復)시키기 위해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하는” 또 하나의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이 이루어지게 된다.
인간의 경우 인간(人間) 자신(自身)의 신체적(身體的), 정신적(精神的) 조직(組織)과 기능(機能)에서, 또 “나”와 “남”, “집단(集團) 과 구성원(構成員)”, 사회(社會), 종족(種族) 국가(國家)등의 인문학적(人文學的) 관계(關係)에서, 생명체(生命體), 비생명체(非生命體), 자연(自然)과 지구(地球)등 지구생태학적(地球生態學的) 관계(關係)에서, 그 일원(一員)으로 “하나”를 지향(指向)하는 “균형(均衡)과 조화(調和)의 관계(關係)”가 있다.
또한 인간(人間)은 다른 행성(行星) 내지 태양계(太陽系), 은하계(銀河系), 우주계(宇宙系)등을 향해서도 “하나”를 이루는 “일원(一員)”으로 , “균형(均衡)과 조화(調和)의 관계(關係)”를 위한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II. 하 나 님
1.“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탐구(探求)로 인식(認識)되는 “하나님”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은 인간이 인식(認識)을 하든, 못하든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 “창조(創造)와 관활(管活)”로 이루어지는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는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결과(結果)로, 또 대상(對象)으로 “피조(被造)된 것”이라 불려진다.
< 주(註) : “피조물(被造物)”이란 어휘에는 대체적으로 유형적(有形的)인 것만을 함의(含意)하는 듯하여 비유형적(非有形的)인 것도 함의(含意)되는 표현으로 “피조(被造)된 것”으로 표현함 >.
이 “피조(被造)된 것”의 “내적구조(內的構造)와 기능(機能)”에서도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은 이루어지며,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결과(結果)는 “피조(被造)된 것”에 따라, 또 “피조(被造)된 것”의 “내적구조(內的構造)와 기능(機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이러한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에 대해서, 그 주관자(主管者)로 인간은 총칭적(總稱的)인 의미의 인간언어(人間言語)로 “창조주(創造主)” 또는 “조물주(造物主)”라 부르며,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에서 가장 궁극적(窮極的) “창조주(創造主)” 또는 “조물주(造物主)”를 “하나님”이라 부른다.
또한 인간은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에 대한 인간의 지속적(持續的)이고 분석적(分析的)인 탐구(探求)의 “끝”에서, 그리고 그것이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근원(根源)”일거라고 인식(認識)되는 “상황(狀況)”에서 “창조주(創造主)” 또는 “조물주(造物主)”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갖게되고, 또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必要性)”을 느끼며,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可能性)”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된다.
이 “믿음”은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이 이루어지는 모든 것, 즉 인간은 그 개체(個體)내에서는 물론, 인간집단(人間集團)의 “인류사회(人類社會)”, 인간처럼 생명을 갖는 동물, 식물, 그리고 다른 생명체, 생명이 없는 비생명체, 자연, 지구, 태양계, 은하계, 우주계, 즉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창조(創造)와 관활(管活)”모두에서,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주체(主體)로 가장 궁극적(窮極的) “창조주(創造主)” 또는 “조물주(造物主)”로 “하나님”을 인식(認識)할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하나님”은 어떤 “존재(存在)”로서 파악되는 것이 아니고,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일”, 곧 그“역사(役事)하심”을 통해서 인식되고 파악되며, “하나님”은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을 통해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모두가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關係)를 지어 모두가 “하나”를 이루게 해 줌으로써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 “하나님”은 인간이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즉 “피조(被造)된 것”을 탐구해 갈수록 모든 “피조(被造)된 것”의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주체(主體)로 “하나님”을 더욱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피조(被造)된 것”을 탐구해감에따라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능력(認識能力)이 개발(開發), 확대(擴大)되고, 이에 따라 “하나님”에 대한 인식(認識)은 더욱 넓혀질 것이나, “하나님”전체(全體)를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不可能)한 것이다.
이는 한 “피조(被造)된 것”으로서의 인간에게 부여(賦與)한 천부적(天賦的) 능력(能力)의 한계성(限界性)때문이며, 또한 “하나님”에 대한 인식(認識)을 개발(開發), 확대(擴大)해 나간다해도 “하나님”의 한 “피조(被造)된 것”으로서의 인간에게 부여(賦與)한 “인간(人間)”된 천부적(天賦的) 능력(能力)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인식(認識)은 “인간됨, 즉 인간적(人間的)”인 것에서 벗어나긴 어렵다.
2.“창조(創造)와 관활(管活)”하는 “하나님”
인간은 스스로 “창조(創造)의 능력(能力)”이 있어 “창조(創造)”한다고 한다.
인간은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을 마치 인간의 “창조물(創造物)”처럼 여기고, 이의 “주관자(主管者)”가 될려는 “속성(屬性)” 을 갖고있다.
이 “속성(屬性)” 또한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한 “인간됨”의 “속성(屬性)”이긴 하지만, 이 “속성(屬性)”으로 인해 인간이 “만들어낸 것”뿐만 아니라, 작게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것, 넓게는 태양계, 은하계, 우주계와 이에 존재하는 온갖 사물(事物) 과 현상(現象), 즉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모든 것에 “주관자(主管者)”가 “있을 거”라는 “의인적(擬人的) 생각”을 갖게된다.
이렇게 “의인적(擬人的)”으로 불려지는 “주관자(主管者)”, “조물주(造物主)” 또는 “창조주(創造主)”로서의 “하나님”은 인간의 이러한 “속성(屬性)”으로 인식되어지며, 또한 인간의 “본유적(本有的) 욕망(慾望)”, 즉 “영생(永生), 전지전능(全知全能), 완전(完全)함”, 즉 “완전(完全)한 선(善)과 덕망(德望)”,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을 초월(超越)”하고싶은 인간의 “본유적(本有的) 욕망(慾望)”의 “구현적(具顯的) 존재(存在)”로 인식되어 “하나님”은 “있을 수 있고, 또 있어야하고, 그래서 있는 것”으로 인식되어진다.
그러나 “궁극적(窮極的) 창조주(創造主)” “하나님”은 인간의 인식이나 믿음 여하에 관계(關係)없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 실로 인간은 “창조(創造)의 능력(能力)”이 없으며, 이 “창조(創造)의 능력(能力)”은 오로지 “하나님”에게만 있고, 인간은 “하나님의 섭리(攝理)”를 찾아서 그 “섭리(攝理)”를 따라 만들어내고 있을 뿐이다.
“창조(創造)”란 “하나님 의 일”로 오로지 “하나님”만 하는 일이며, “하나님”이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를 만드는 것을 “창조(創造)”라 하며, 이 “창조(創造)”의 일은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創造)”에만 그치지 않고, “피조(被造)된 것”의 “생성(生成), 관리(管理) 및 통제(統制), 사멸(死滅)”에 이르기까지 “피조(被造)된 것”에 내재(內在) 하여 “하나님의 뜻”에 따라 “스스로의 일” 즉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일을 함으로써 “피조(被造)된 것”이 “하나님의 뜻”에 따르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하나님”은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를 창조(創造)하고 관활(管活)하며. 이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은 오로지 “하나님”만 할 수 있다.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는 “하나님”의 “피조(被造)된 것”이며, “하나님”은 이 “피조(被造)된 것”에 내재(內在) 하여 “피조(被造)된 것”을 창조(創造)하고 관활(管活)하며, “피조(被造)된 것”에 따라 “스스로”를 나타낸다.
“하나님”은 “피조(被造)된 것”의 “각각(各各)”에는 물론, “각각(各各)”을 구성하고 있는 “내적(內的) 조직(組織)”과 각 조직의 “기능(機能)”에도 “내재(內在)”하여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일을 한다.
인간의 경우 그 개체(個體)가 “하나님”의 내재(內在)로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일”을 받고 있으며, 개체(個體)를 구성하는 “신체적(身體的), 정신적(精神的)” 각 기관(機關) 과 각 기능(機能)의 영역에도 “하나님”이 내재하여 이를 창조(創造)하고 관활(管活)한다.
3. 시간(時間), 공간(空間), 관계(關係)를 창조(創造)하고 관활(管活)하는 “하나님”
“하나님”은 “시간(時間)”과 “공간(空間)” 그리고 “관계(關係)”를 창조(創造)하고 관활(管活)한다. 곧 “시간(時間)”과 “공간(空間)”도 그리고 “관계(關係)”도 “하나님”의 한 “피조(被造)된 것”이며, “하나님”은 이“시간(時間)”과 “공간(空間)”그리고 “관계(關係)”를 “초월(超越)”한다.
“시간(時間)”과 “공간(空間)”과 “관계(關係)”를 창조(創造)하고 관활(管活)하며, “시간(時間)”과 “공간(空間)”과 “관계(關係)”를 “초월(超越)”하는 “하나님”을 어떤 “존재(存在)”나 “형상(形象)”으로 인식하거나, 그런 “존재(存在)”나 “형상(形象)”으로 표현할 순 없다.
“존재(存在)”나 “형상(形象)” 그 자체는 시간적(時間的) 으로, 공간적(空間的) 으로, 또 관계적(關係的)으로 “본질적(本質的) 한계성(限界性)” 을 갖고있어, “하나님”을 어떤 “존재(存在)”나 “형상(形象)”으로 인식하고 표현한다면, “하나님”은 “한계적(限界的), 유형적(有形的), 가변적(可變的) 존재(存在)”가 되고 만다.
그러나 “하나님”은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어떠한 “피조(被造)된 것”도 그들이 인식할 수 있는 “시간(時間)”과 “공간(空間)”과 “관계(關係)”는 물론, 그들이 인식할 수 없는 “시간(時間)”과 “공간(空間)”과 “관계(關係)”까지도 창조(創造)하고 관활(管活)하며, “하나님”은 또 어떠한 “시간(時間)”과 “공간(空間)”과 “관계(關係)”도 “초월(超越)”하고 있다.
“하나님”이 창조(創造)하고 관활(管活) 하고있는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는 “하나님”이 창조(創造)하고 관활(管活)하는 “시간(時間)”과 “공간(空間)”과 “관계(關係)”속에서 “형상(形象)”을 갖고 존재(存在)하며, 설령 “형상(形象)”내지 “형체(形體)”가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창조(創造)하고 관활(管活)하는 “시간(時間)”과 “공간(空間)”과 “관계(關係)”속에서 “제 일”을 하게 된다.
따라서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즉 “하나님”의 “피조(被造)된 것” 모두 “하나님”이 창조(創造)하고 관활(管活)하는 “시간(時間)”과 “공간(空間)”과 “관계(關係)”속에서 “한계성(限界性)”을 갖게 된다.
“하나님”은 “시간(時間)”과 “공간(空間)”과 “관계(關係)”를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에 따라 각각(各各) 다른 “시간(時間)”과 “공간(空間)”과 “관계(關係)”를 창조(創造)하여 관활(管活)하고 있으며, “하나님”은 이 “피조(被造)된 것”들이 인식할 수 있든 없든, 각각(各各)에 따라 다른 “시간(時間)”과 “공간(空間)”과 “관계(關係)”를 창조(創造)하고 관활(管活)하며. 이를 “초월(超越)”해 있다.
인간의 이 “시간(時間)”과 “공간(空間)”과 “관계(關係)”에 대한 인식(認識)은, 인식이 가능한 “시간(時間)”과 “공간(空間)”과 “관계(關係)”로 “측정(測定)”이 가능한 “시간(時間)”과 “공간(空間)”과 “관계(關係)”가 있으나, “측정(測定)”이 불가능한 “시간(時間)”과 “공간(空間)”과 “관계(關係)”도 있으며, 아예 인간에게 인식(認識)이 안되는 “시간(時間)”과 “공간(空間)”과 “관계(關係)”도 있다.
“하나님”이 창조(創造)하고 관활(管活)하는 “관계(關係)”는 “관계(關係)되는 것”끼리의 “본원적(本源的), 영속적(永續的) 관계(關係)”이며, “피조된 것”의 의사(意思)에 의한 “의도적(意圖的) 관계(關係)”는 “단속적(斷續的)”이고, “한시적(限時的)”이다. “하나님”이 창조(創造)하고 관활(管活)하는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어떠한 것도 “시간적(時間的), 공간적(空間的), 관계적(關係的) 한계성(限界性)”을 갖는다.
4.“하나”를 이루게 하는 “하나님”
“하나님”은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각각(各各)” 에 있어, 이 “각각(各各)”이 “하나”를 이루도록하며, 또한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전체(全體)”를 “하나”로 또 “하나”를 이루도록 한다.
이렇게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각각(各各)” 에서, 또 “전체(全體)”에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關係)”를 지어준다.
“하나님”은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각각(各各)” 에서, 이를 “창조(創造)”하고 “관활(管活)”하며, 또한 “전체(全體)”에서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의 “일”을 한다.
“인간(人間)”의 경우 “인류(人類)”로 “하나”를 이루게 하며, 각 “개체(個體)”는 “개체(個體)”내의 각각(各各) 다른 “신체적(身體的), 정신적(精神的) 조직(組織)과 기능(機能)”도 각각(各各) “하나”를 이루고, 이 모두가 “하나”를 이룸으로써 비로소 한 “인간(人間)”이 된다.
다른 생명체(生命體)의 경우도, 인간(人間)과 마찬가지로 각각 “하나”를 이루어, 한 “생명체(生命體)”를 이루며, 생명(生命)을 갖고있는 것은 “생명체(生命體)”로, 생명(生命)이 없는 것은 , “비생명체(非 生命體)”로, “자연(自然)”이라는 것으로 “하나”를 이루며, 이는 “지구(地球)”라는 것으로 “하나”를 이룬다.
지구(地球)는 다른 “행성(行星)”과 함께 “하나”로 “태양계(太陽系)”를, “태양계(太陽系)”는 다른 “은하계(銀河系)”와 함께 “하나”로 된 한 “우주(宇宙)”를, 이 “우주(宇宙)”는 또 다른 “우주(宇宙)”와 함께 “온 우주(宇宙)”로 “하나님”이 “하나”를 이루게 한다.
이렇게 “하나”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본연(本然)”이며, “하나님”이라 불려진다.
III. 하나님의 뜻, 섭리(攝理)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關係)를 지어 주시느니라.
“창조(創造)와 관활(管活)”로 인식되는 “하나님”은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를 창조(創造)하고 관활(管活)하며, “하나님”은 이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각각(各各)에서는 물론, 모두에서도 서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關係)를 지어준다.
이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중 어느 것 하나도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關係)없이는 생성(生成)될 수 없는 “생래적(生來的) 관계(關係)”를 갖고 있으며, 이 “생래적(生來的) 관계(關係)”에 의해서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각각(各各)은 물론 모두가 생성(生成)되고 존속(存續)된다.
“하나님”은 이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창조(創造)하고 관활(管活)함으로써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각각(各各)은 물론, 모두를 보호(保護)하고 있다.
이렇게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가 모두 서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속에서 보호(保護)됨은 물론, 각각(各各)에서, 또 모두에서 “제 역활(役活)-일, 몫 )”을 할 수 있게 되며, 이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가 존속(存續)되게 된다.
“하나님”은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에 지어준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가 “손상(損傷)”되지 않도록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일을 하며, 이 관계(關係)가 “손상(損傷)”될 경우 이를 “회복(回復)”시키기 위해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각각(各各)에서, 또 모두에서 또 다른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일을 하게된다.
“하나님”은 “지구(地球)”와 “달”을 서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지어 “지구계(地球系)”를 만들어주고 있으며, “지구계(地球系)”는 다른 행성(行星)과 더불어 모두 서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로 지어져 “태양계(太陽系)”를 이루고 있다.
물론 ”태양계(太陽系)”도 또 다른 “은하계(銀河系)”와 더불어 서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로 지어져 다른 “은하계(銀河系)”와 더불어 존속(存續)된다. 이 처럼 지구와 달은 “지구계(地球系)”로, 나아가 다른 행성들과 더불어 “태양계(太陽系)”로, 이 “태양계(太陽系)”는 또 다른 “은하계(銀河系)”와 더불어 한 “우주(宇宙)”를 이루고 있다.
이 모두에 “하나님”이 서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로 지어줌으로써 지구계로, 태양계로 또 다른 은하계와 더불어 한 “우주(宇宙)”로 생성(生成)되고, 보호(保護)되며, 각각(各各)은 “제 역활(役活)”을 함으로써 존속(存續)된다.
“하나님”의 “창조(創造)와 관활(管活)”로 지어진 이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가 지켜지는 한은, 지구는 달과 더불어 “지구계(地球系)”로, “지구계(地球系)”는 다른 행성(行星)과 더불어 “태양계(太陽系)”로, 이 ”태양계(太陽系)”는 또 다른 “은하계(銀河系)”와 더불어 한 “우주(宇宙)”로 존속(存續)되나, 이 관계(關係)가 손상(損傷)되는 경우, “하나님”은 이 관계(關係)의 회복(回復)을 위해 무엇에서도, 어디서든, 또 언제든지, 또 다른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일을 하게된다.
지구가 달과 “지구계(地球系)”로, 다른 행성(行星)과 더불어 “태양계(太陽系)”의 일원으로 모두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로 지어져 존속(存續)되는 것처럼, 지구 자체도 지구를 구성(構成)하는 “ 내적(內的), 외적(外的) 요소(要素) 및 요인(要因)”간에 모두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로 지어져 “내적(內的), 외적(外的) 요소(要素) 및 요인(要因)”의 각각(各各)이 생성(生成)되고, 보호(保護)되며, “제 역활(役活)”을 함으로써 “하나”의 “지구(地球)”로 존속(存續)되고있다.
인간(人間)이 생물학적(生物學的)으로 속(屬)한 동물(動物), 식물(植物), 심지어 미생물(微生物) 및 박테리아등에 이르기까지, 어떻든 생명(生命)을 가진 생명체(生命體), 인간(人間)이 생명(生命)이 없다고 인식하고 있는 비생명체(非生命體), 이렇게 형체(形體)가 있는 것이나 없는것이나 또 현상(現象)등, 소위 자연(自然)을 구성하고, 나아가 지구를 구성하는 “내적(內的), 외적(外的) 요소(要素) 및 요인(要因)”들은, “하나님”이 지어준 모두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의 섭리(攝理)를 따르게 된다.
생명이 있는 것은 이 섭리(攝理)에 대한 “믿음”을 갖고 태어나며, 성장(成長)하고 쇠퇴(衰退)하며 사멸(死滅)한다. 또한 자연(自然)과 지구(地球)를 구성하는 “요소(要素) 나 요인(要因)”으로 생명(生命)을 갖지않는 것들도 모두 서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로 맺어져 생성(生成)되고, 보존(保存)되며, “제 역활(役活)”을 하게된다.
인간(人間)이 생명(生命)이 있다고 “생명체(生命體)”로 인식하는 모든 것은 “최선(最善)의 선택과정(選擇過程)”을 거쳐 태어나며, “하나님”의 섭리(攝理), 즉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에 대한 “믿음”이 있어 태어나고 살아가게된다. 이 섭리(攝理)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어떠한 생명체(生命體)도 태어날 수 없으며, 설혹 태어난다해도 살아갈 수가 없게된다.
“하나님”의 “창조(創造)와 관활(管活)”로 만들어진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가 “하나님”이 창조(創造)한 “시간(時間), 공간(空間), 관계(關係)”속에서 “한계성(限界性)”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自然)및 지구(地球), 이를 구성하는 “내적(內的), 외적(外的) 요소(要素) 및 요인(要因), 생명체(生命體), 비생명체(非生命體), 현상(現象)”등 모두가 “시간적(時間的), 공간적(空間的), 관계적(關係的) 한계성(限界性)”을 갖고 있다.
이들 각각(各各)은 자체(自體)가 갖고있는 “생래적(生來的) 한계성(限界性)”으로 생성(生成), 사멸(死滅), 즉 “하나님”의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하는”섭리(攝理)로 “순환(循環)의 과정(過程)”을 겪게되나,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가 지켜지는 한 이들 각각(各各)은 영속적(永續的)으로 존속(存續)될 것이다.
“하나님”의 인간(人間)에 대한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은 인간(人間)의 신체적(身體的), 정신적(精神的) 조직(組織) 및 기관(器官)과 기능(機能)등에서는 물론, 인간(人間)의 사고(思考), 행위(行爲) 및 행동(行動), 감정(感情), 심리(心理) 및 정서(情緖)등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인간(人間) 집단(集團)인 “인류(人類)및 인류사회(人類社會)”의 모든 영역(領域)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에서 이를 구성 하는 “요소(要素) 및 요인(要因)”등이 서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지어줘 각각(各各)이 “제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며, 이 각각(各各)에게도 서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로 균형(均衡)과 조화(調和)를 갖고 각각(各各)이 “제 일”을 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비로소 한 “ 인간(人間) “을 이루게 한다.
또한 “하나님”은 인간(人間)에게 개인(個人)사이이든, 집단(集團)사이이든, 종족(種族)사이이든, 국가(國家) 사이이든, 서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지어줘 이를 지켜가도록 하고 있으며, 인간(人間)이 이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의 섭리(攝理)를 따름으로써 한 “인류(人類)”를 이루게 하고 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인간(人間)에게, 인간(人間) 스스로가 인간(人間)끼리, 그리고 “하나님”이 만든 다른 것, 즉 생물학적(生物學的) 동물(動物)인 인간(人間)이 다른 동물(動物)과, 또 식물(植物)을 포함한 다른 생명체(生命體)와, 나아가 다른 비생명체(非生命體)등 이 모두를 포함한 자연(自然)과 지구(地球), 더 나아가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이 모두와 서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지어 인간(人間)을 창조(創造)하고 관활(管活)한다.
인간(人間)은 “하나님”의 “창조(創造)와 관활(管活)”로 이루어진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속의 한 “우주(宇宙)”내에서 “태양계(太陽系)”에 속하는 “지구(地球)”에서 “창조(創造)와 관활(管活)”되고있는 것으로, “ 지구(地球)”에서도 “창조(創造)와 관활(管活)”되는 “많고 많은 것”중의 하나이다.
인간(人間)은 이 “많고 많은 것”중의 하나로, 이 “많고 많은 것”과 서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로 존속(存續) 되고 있으므로, 적어도 지구상(地球上) 의 “많고 많은 것”과 함께 서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攝理)에 순종(順從)해야할 것이다.
인간(人間)의 탄생(誕生)은 “최강(最强)의 선택(選擇)”으로 “잉태(孕胎)”되어 “탄생(誕生)”되나, 탄생(誕生)은 태어날 생명(生命)이 살아있는 다른 생명(生命)과, 생명 (生命)과 관계(關係)되는 환경(環境)속에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태어나며, 이러한 “믿음”이 없이는 인간(人間)의 어떠한 잉태(孕胎)나 탄생(誕生)도 생겨날 수 없다.
인간(人間)은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에 대한 “믿음”을 갖고 세상(世上)에 태어나며, 성장(成長)하고, 생각하고, 행동(行動)하며, “죽음”을 맞게된다. 인간(人間)의 이러한 모든 과정(過程)에는 인간(人間)이 인식(認識)을 하든 못하든, 인간(人間)은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인간(人間)은 생존(生存)하게된다.
따라서 인간(人間)은 항상 어떤 순간(瞬間)에도, 어떤 장소(場所)와 환경(環境)속에서도, 이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에 순응(順應)하여 이를 충족(充足)시킬 수 있어야만, 인간(人間)의 가장 “이상적(理想的) 인 생존(生存)”이 가능하며, 설령 동시(同時)에 추구(追求)되기 어렵다할 지라도, 적어도 시간차(時間差)를 두고라도 이 관계(關係)의 회복(回復)과 존속(存續) 은 인간(人間)의 “영속적(永續的) 생존(生存)”에 불가피(不可避)한 “ 하나님”의 섭리(攝理)이다.
인간(人間) 이 동물(動物)과 식물(植物), 즉 생명체(生命體) 와 이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는 “하나님”의 섭리(攝理)이다.
인간(人間)이 동물(動物)의 일부(一部)를 “식용(食用)”으로 도축(屠畜)하고 있으나, 식용(食用)으로 도축(屠畜)되는 모든 동물(動物)도 “하나님”의 “창조(創造)와 관활(管活)”로 자기(自己) “종(種)”을 번식(繁殖), 존속(存續)하도록 되어있다.
인간(人間)이 “식용(食用)”으로 사용하고있는 동물(動物) 은 오랜 세월동안 인간(人間)과 “친화적(親和的)인 관계(關係)”, 즉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유지(維持)해왔고, 또 이 “친화적(親和的) 관계(關係)”가 계속 유지(維持)됨으로써, 인간(人間)은 동물(動物)을 “식용(食用)의 대가(代價)”로 그 동물(動物)의 “종(種)”을 번식(繁殖), 존속(存續)시키고있다.
인간(人間)은 이렇게 동물(動物)을 가축(家畜)으로 사용(使用)하면서, 그 가축(家畜)의 “종(種)”을 번식(繁殖), 존속(存續)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섭리(攝理)에 순응(順應)하고 있다.
인간(人間)의 동물(動物)과의 이러한 “친화적(親和的) 관계(關係)”는 식물(植物)과의 관계(關係)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식물(植物)중 곡물(穀物), 과일, 채소(菜蔬)등을 비롯한 “식용식물(食用植物)”은 인간(人間)과의 “친화적(親和的) 관계(關係)” 즉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로 식용(食用)으로 사용(使用)되면서 그 “종(種)”의 “번식(繁殖)과 존속(存續)”이 인간(人間)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처럼 인간(人間)은 “하나님”의 “창조(創造)와 관활(管活)”로 만들어진 동물과 식물과도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攝理)에 순종(順從)함으로써 인간(人間) 그 자체도 “생존(生存)”이 가능한 것이다.
인간(人間)의 “생명(生命)”을 구성하고 있는 것을 “정신(精神)”과 “육체(肉體)”라 한다면, “생명(生命)의 활동(活動)”을 “정신활동(精神活動)”과 “육체활동(肉體活動)”으로 구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건강(健康)한 육체(肉體)에 건강(健康)한 정신(精神)”또는 “건강(健康)한 정신(精神)에 건강(健康)한 육체(肉體)”라하여 “건강(健康)한 생명(生命) 활동(活動)”을 강조하고 있다.
이 “건강(健康)한 생명(生命) 활동(活動)”은 “정신(精神)”과 “육체(肉體)”가 건강(健康) 하게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가 조성(造成)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정신활동(精神活動)에만 치중(置重)함으로써 육체(肉體)와 정신(精神)의 “균형(均衡)”이 깨어질 경우, 즉 육체(肉體)와 정신(精神)이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가 손상(損傷)될 경우나, 반대로 육체활동(肉體活動)에만 치중(置重)함으로써 또 육체(肉體)와 정신(精神)의 “균형(均衡)”이 깨어짐으로써 즉 육체(肉體)와 정신(精神)이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가 손상(損傷)되는 경우등에서는 건강(健康)한, 또 건전(健全)한 “생명(生命) 활동(活動)”에 지장(支障)을 초래(招來)할 수 있고, 때로는 생명(生命)을 위협(威脅) 할 수 도 있다.
따라서 “정신활동(精神活動)”도 “육체활동(肉體活動)”도 균형(均衡)과 조화(調和)를 이루는, 즉 서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가 조성(造成)되어야 건강(健康)한 “생명(生命) 활동(活動)”이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人間)에게 “생물학적(生物學的) 공통성(共通性)”을 부여(賦與)하여 생물학적으로 “인류(人類)”로 분류(分類)되도록 하고 있으나, 이 “인류(人類)”로서의 “영속적(永續的 존속(存續)”을 위해 인간(人間)에게 내적(內的), 외적(外的) “상이(相異)한 특성(特性)” 즉 “개인(個人)”으로는 “개성(個性), 개인차(個人差)”를 두고 있으며, “집단(集團)”으로는 “인종(人種), 민족(民族)”등의 “차별성(差別性)”을 두고 있다.
인간(人間)의 이러한 “내적(內的), 외적(外的) 상이(相異)한 특성(特性)”으로 인간(人間)의 “생명(生命) 활동(活動)”도 “개인(個人)”으로는 상이(相異)한 “개성(個性)과 개인차(個人差)”가 있는 “생명(生命) 활동(活動)”, “집단(集團)”으로는 “인종상(人種上), 또 민족적(民族的)”으로 상이(相異)한 “생명(生命) 활동(活動)”을 하고 있다.
이러한 개인간(個人間), 또 집단간(集團間)의 “상이(相異)한 생명(生命) 활동(活動)”은 “하나님”이 “인류(人類)”의 “영속적(永續的) 존속(存續)”을 위해 “하나님”의 “창조(創造)와 관활(管活)”로 이루어진 것으로, 인간(人間)은 “인류(人類)”로서의“영속적(永續的) 존속(存續)”을 위해 “상이(相異)한 생명(生命) 활동(活動)”, 모두 서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지켜가야할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人間)을 “인류(人類)”로 영속적(永續的으로 존속(存續)시키기 위해 생물학적(生物學的) 분류(分類)로서의 “인류(人類)”를 이루기 위한 “공통성(共通性)”을 제외(除外)하고는 어느 것 하나도 똑 같이 만들어 놓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인간(人間)의 “생명활동(生命活動)”은 백인백색(百人百色)의 “다양(多樣)한 양상(樣相)”을 띄고있다.
인간(人間)의 “생명활동(生命活動)”중 특히 “정신활동(精神活動)”은 그 영역(領域)이나, 목적(目的)이나, 방법(方法) 그리고 결과(結果)에 이르기까지 “다양(多樣)한 양상(樣相)” 즉 “다양성(多樣性)”을 갖고 있다.
생명활동(生命活動)의 이 “다양성(多樣性)”이 인정(認定)되고 존중(尊重)될 때 즉 “다양(多樣)한 양상(樣相)”이 모두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로 존속(存續)될 때 비로소 인간(人間)은 “인류(人類)”로 “영속적(永續的) 존속(存續)”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創造)와 관활(管活)”로 이루어진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모든 것이 서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속에서 “각각(各各)”은 “제 일”을 하게 되어 있으며, “각각(各各)”이 이 관계(關係)속에서 “제 일”을 할 때에만 이“각각(各各)”은 존속(存續)될수 있으며, 보호(保護)될 수 있다.
인간(人間)과 인간(人間)에 연계(連繫) 되어있는 모든 것도 서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속에서 “각각(各各)”은 “제 일”을 하게 되어 있으며, 이 관계(關係)속에서 “제 일”을 할 때에만 이“각각(各各)”은 존속(存續)될수 있으며, 보호(保護)될 수 있다
“하나님”의 “창조(創造)와 관활(管活)”로 이루어진 어떠한 것이라도 만일 “제 일”을 벗어나는 경우는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파괴(破壞) 또는 손상(損傷)시키게되어 이의 “회복(回復)”을 위한 “하나님”의 또 다른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일이 시작된다.
지구(地球), 자연환경(自然環境)의 경우, 모든 것이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가 존속(存續)되는 한 “평온(平穩)”을 유지(維持)할 수 있으나, 지구(地球), 자연(自然)의 어떤 것에서든지 이 “관계(關係)”가 파괴(破壞) 되거나 손상(損傷)되는 경우, 소위 자연재해(自然災害), 즉 태풍(颱風), 폭우(暴雨), 폭설(暴雪), 지진(地震), 해일(海溢) 등이 발생(發生)하면, “하나님”은 지구(地球), 자연(自然) 에서 모두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의 “회복(回復)”을 위해 또 다른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일을 하게 된다.
또한 인간(人間)의 경우 인간(人間)의 신체적(身體的), 정신적(精神的) 질병(疾病), 사고(事故), 사건(事件), 사망(死亡)등은 관련(關聯) 요소(要素)나 요인(要因)에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가 파괴(破壞) 되거나 손상(損傷)됨으로써 발생(發生)된 것이며, 인간집단(人間集團), 즉 인종간(人種間), 종족간(種族間), 민족간(民族間),국가간(國家 間)의 불화(不和), 분쟁(紛爭), 전쟁(戰爭)등도 마찬가지로 인종간(人種間), 종족간(種族間), 민족간(民族間),국가간(國家 間)에 서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의 파괴(破壞) 및 손상(損傷)이 야기(惹起)됨으로써 발생(發生)되는 것이다.
어떻든 “하나님”은 인간(人間) 그 자체의 신체적(身體的), 정신적(精神的) 요소(要素)와 요인(要因)에 대해서는 물론, 인종간(人種間), 종족간(種族間), 민족간(民族間),국가간(國家 間)에서도 모두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의 “회복(回復)”을 위해 “하나님”은 또 다른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일을 하게되며, 이를 인간(人間)은 흔히 “종말(終末)”이 가까웠다고하며, “하나님”의 “심판(審判)”이 내려진 것이라고 한다.
인간(人間)의 산물(産物), 즉 정신적(精神的) 산물(産物)이든 물질적(物質的) 산물(産物)이든, 어떠한 산물(産物)이든 그 산물(産物)의 외연적(外延的) 관련(關係) 요소(要素) 나 요인(要因)들이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이룰때에만 한 “산물(産物)”로서의 “존재가치(存在價値)”를 갖게된다.
또한 한 산물(産物) 또는 한 사물(事物)로서 온전(穩全)하게 존재(存在)할려면, 이를 구성(構成)하고있는 내연적(內緣的) 관련(關聯) 요소(要素)나 요인(要因)들이 모두가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가 조성(造成)되어야 “온전(穩全)한 존재(存在)”로 있게된다.
어느 한 요소(要素)나 요인(要因)이라도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조성(造成)할 수 없거나, 손상(損傷)시키는 경우, 어떠한 산물(産物) 이나 사물(事物)도 온전(穩全)하게 존재(存在) 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攝理)이다.
2.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을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가 모두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에 대한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을 통해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하는”섭리(攝理)로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를 생성(生成)하고 또 사멸(死滅)되게 한다.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는 모두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로 생겨나고, “제 일”을 하면서 있게되나,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중 “어떤 것”으로 인해 이 관계(關係)가 “손상(損傷)”되거나 “파괴(破壞)”되는 경우, “하나님”은 이 관계(關係)의 “회복(回復)”을 위해 이 “어떤 것”과 그리고 이에 “관련(關聯)된 것”을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한다.
“하나님”은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를 “하나님”이 창조(創造)하고 관활(管活)하는 “시간(時間)과 공간(空間) 그리고 관계(關係)”속에서 각각(各各)이 모두와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유지(維持)할 수 있도록 이 각각(各各)에 “시간적(時間的), 공간적(空間的), 관계적(關係的) 한계성(限界性)”을 두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 “각각(各各)”이 “각각(各各)”으로서의 이 “한계성(限界性)”을 극복(克復) 할 수 있도록 이 “각각(各各)”에 “내적순환(內的循環)”을 부여(賦與)하여 이 “각각(各各)”으로서의 “전체(全體)”가 존속(存續)될 수 있도록 “각각(各各)”속의 “하나 하나”를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한다.
지구와 달은 “지구계(地球系)”로, 지구계(地球系)는 다른 행성(行星)과 더불어 “태양계(太陽系)”를 이루어 모두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지어준 “하나님”의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섭리(攝理)로 생성(生成)되어 각각(各各) “제 일”을 하면서 보호(保護)되고 존속(存續)된다.
태양계(太陽系)는 또 다른 “은하계(銀河系)”와 더불어 서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로 존속(存續)되고 있으며, 태양계(太陽系)내의 모든 행성(行星), 그리고 “지구계(地球系)”의 달과 지구도 태양계(太陽系)가 다른 은하계(銀河系)와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의 일익(一翼)을 담당(擔當)하고 있다.
이렇게 지구와 달의 “지구계(地球系)”나, 태양계(太陽系)내의 다른 행성(行星)들이 서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로 존속(存續)되고 있으나, 만일 이들 중 “어느 하나”가 또는 “수(數) 개(個)”가 이 관계(關係)를 “손상(損傷)”시키거나 “파괴(破壞)”하는 경우, “하나님”은 이 관계(關係)의 “회복(回復)”을 위해 이 “어느 것 하나”든 , 또는 “관련(關聯)된 것”에 대하여 또 하나의 “창조(創造)와 관활(管活)”로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하는”섭리(攝理)를 일으키게 된다.
지구와 달의 “지구계(地球系)”는 물론, 이 지구계와 다른 행성으로 구성된 태양계(太陽系)는 “하나님”의 “창조(創造)와 관활(管活)”로 이루어진 “시간(時間) 과 공간(空間) 그리고 관계(關係)”속에서 “시간적(時間的), 공간적(空間的), 관계적(關係的) 한계성(限界性)”을 갖고 있으며, 태양계내의 행성은 그 행성에 따라 “하나님”의 “창조(創造)와 관활(管活)”로 정해진 각각(各各)의 다른 “시간(時間) 과 공간(空間) 그리고 관계(關係)”를 갖고 있다.
“하나님”은 이들 행성이 “시간적(時間的), 공간적(空間的), 관계적(關係的) 한계성(限界性)”을 극복(克復)하면서, 다른 행성과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가 지속(持續)될 수 있도록, 또 각각(各各)의 행성에는 각 행성을 구성하는 “원요소(元要素)와 원요인(元要因)”이 서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조성(造成)하여 각 행성이 “하나”로서 존속(存續)되도록, 이들 행성을 구성하는 “원요소(元要素) 나 원요인(元要因)”에 “내적 순환(內的循環)”을 부여(賦與)함으로써, 또 행성 전체(全體)로서도 “내적 순환(內的循環)”이 이루어지는 섭리(攝理)로 “원요소(元要素)와 원요인(元要因)”을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하는” 또 하나의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을 일으켜준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다른 행성과 더불어 태양계(太陽系)내에서 모두가 서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의 일익(一翼)을 담당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구를 구성하는 “내적(內的), 외적(外的) 요소(要素)와 요인(要因)”들이 모두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조성(造成)하여 그 일익(一翼)을 담당함으로써 이 모두가 “하나”로 지구를 이루어 가도록 “하나님”이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일을 하고 있다.
지구를 구성하는 “내적(內的), 외적(外的) 요소(要素)와 요인(要因)”들이 서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지켜가도록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이 이루어지는 것은 지구(地球) 자체(自體)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계의 일원(一員)으로 태양과 태양계의 다른 행성들과 서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의 일익(一翼)을 담당케 하는 것이다.
지구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要素)와 요인(要因)”중 인간에게 근접(近接) 되어있는 것을 “자연(自然)”이라 할 때, 이 자연(自然)을 구성하고 있는 것도 모두 서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속에서 생성(生成)되고 보호(保護)되며, 존속(存續)되게 “하나님”의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자연(自然)”은 인간과만 밀접(密接)한 관련(關聯)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구를 구성하는 다른 “요소(要素)와 요인(要因)”과 같이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로 모두가 “하나”를 이루어 “지구(地球)”를 존속(存續)시키고 있다.
이렇게 지구를 구성하고 있는 자연이나 또 다른 “요소(要素)나 요인(要因)”들이 “하나님”의 “창조(創造)와 관활(管活)”로 모두 서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갖게되나, 이 모두는 “하나님”의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로 생겨난 “시간(時間) 과 공간(空間) 그리고 관계(關係)”속에서 존재(存在)하여 “시간적(時間的), 공간적(空間的), 관계적(關係的) 한계성(限界性)”을 갖게 되며, 지구를 구성하고 있는 이 모든 “요소(要素)와 요인(要因)”은 “하나님”의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에 따라 정해진 각각(各各) 다른 “시간(時間) 과 공간(空間) 그리고 관계(關係)”를 갖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구를 “하나”로 존속(存續)시키기위해 지구를 구성하고 있는 자연이나 또 다른 요소와 요인이 모두 서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지속하도록 하고, 이들 요소와 요인의 “시간적(時間的), 공간적(空間的), 관계적(關係的) 한계성(限界性)”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이들 요소와 요인의 각각(各各)에 “내적순환(內的循環)”을 부여(賦與)하여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하는” 또 하나의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일을 한다.
또한 “하나님”은 지구를 구성하고있는 모든 요소와 요인이 모두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에대한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일을 하나, 만일 이 모든 요소와 요인 가운데 “어느 것”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것들이 이 섭리를 파괴(破壞) 또는 손상(損傷)시킬 경우, 이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의 회복(回復)을 위해 그 “어느 것”이나 그 이상의 것들에 대하여 이를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하는” 또 하나의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일을 하게된다.
이렇듯 자연 및 지구에는 이를 구성하는 요소와 요인이 생명체(生命體)가 됬든, 비생명체(非生命體)가 됬든 “내적순환(內的循環)”의 섭리(攝理)가 “하나님”의 섭리(攝理)로 적용(適用)되고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이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유지(維持)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攝理)이다. 이 “순환(循環)”의 섭리(攝理)로 생명체(生命體)는 태어나고, 자라고, 쇠약(衰弱)해져서 사멸(死滅)하며, 비생명체(非生命體)는 생겨나고, 있다가, 소진(消盡)되어 소멸(消滅)하게 된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만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攝理), 즉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하는” “순환(循環)”섭리(攝理) 에 의해서 생명체(生命體)의 경우는 한 생명체(生命體) 가 태어나고 성장(成長)하고 쇠약(衰弱)해져서 사멸(死滅)하면서, 새로운 생명체(生命體)가 다시 태어나며, 비생명체(非生命體)의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가 없어지면서 비생명체(非生命體)가 다시 생겨나게 된다. 생명체(生命體)에서의 “죽음”은 생명체(生命體)로서 “하나님”의 “순환(循環)”의 섭리(攝理)에 의한 일련(一連)의 과정(過程)의 “하나”일 뿐이다.
비물질(非物質), 즉 “현상(現象)”도 있다가 없어지면서, 다시 생겨나는 “순환(循環)”의 섭리(攝理)에 의한 과정 (過程)을 겪게된다.
“순환(循環)”의 섭리(攝理)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이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조성(造成), 유지(維持)키 위한 “하나님”의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일환(一環)이다.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을 하는 “하나님”의 궁극적(窮極的)인 뜻, 섭리(攝理)는 “하나님”이 만든 모든 것이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짓고, 이에 대한 “믿음”을 주는 것이다.
이 궁극적(窮極的)인 섭리(攝理)를 목적으로하는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에는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하는” 즉 긍정적(肯定的)인 의미(意味)의 “생성(生成)”과 부정적(否定的)인 의미(意味)의 “사멸(死滅)”을 내포하고 있으며, “있게도 하는 것” 즉 “생성(生成)”도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일환(一環)이고, “없어지게도 하는 것” 즉 “사멸(死滅)”도 또 다른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일환(一環)이다.
“있게도 하는”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은, “없어지게도 하는” “창조(創造)와 관활(管活)”로 인해 더욱 조장(助長)될 수 있고, 반대로 “있게도 하는”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은 “없어지게도 하는”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을 억제(抑制), 제어(制御)하는 역할(役割)을 하게 된다.
인간(人間)은 수적(數的)으로 팽창(膨脹)되면서 “인류(人類)”로, 지구의 다른 “요소(要素)와 요인(要因)”들과 더불어 지구를 “하나”로 형성(形成)되게하는 주요(主要)한 “요소(要素)및 요인(要因)”이 되고 있다.
지구가 태양계의 일원으로 태양계가 다른 은하계와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것처럼, 인간(人間)도 지구가 태양계의 일원으로 다른 행성들과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인간(人間)은 지구를 “하나”로 이루게하는 한 “요소(要素)및 요인(要因)”으로, 지구를 이루는 다른 “요소(要素)및 요인(要因)”과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속에서 “하나님”의 “창조(創造)와 관활(管活)”로 존재(存在)하게 된다.
지구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要素)와 요인(要因)에는 물질적(物質的)인 것, 비물질적(非物質的)인 것, 형태(形態) 가 있는 것, 없는 것, 또 현상적(現象的)인 것등 다양한 요소(要素)와 요인(要因)들이 있으며, 이 가운데 인간(人間)에게 근접(近接)되어 있는 요소(要素)와 요인(要因)으로 자연(自然)과 자연현상(自然現象)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인간(人間)은 물론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창조(創造)와 관활(管活)”로 이루어져 각각(各各)이 “하나”를 이루며, 특히 인간(人間)은 “인류(人類)”로 “하나”를 이루고, 이 모두가 서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로 “하나”를 이룸으로써 지구가 존속(存續)할 수 있게 된다.
지구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要素)와 요인(要因) 가운데는 인간(人間)이 “인식(認識)”할 수 있는 것도 있으나, 인간(人間)이 “인식(認識)”할 수 있는 것은 극소(極小) 하며, 오히려 인간(人間)이 “인식(認識)”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으로 인간(人間)은 차츰 이들 요소(要素)와 요인(要因)에 대한 인식(認識)을 넓혀가고 있다.
“자연(自然)”은 인간(人間)이 비교적 많이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자연(自然)에는 생명체(生命體), 비생명체(非生命體), 물질적(物質的)인 것, 비물질적(非物質的)인 것, 형태(形態) 가 있는 것, 없는 것, 또 현상(現象)등 “하나님”의 “창조(創造)와 관활(管活)”로 다양하게 이루어져 있으며, 모두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로 맺어져 있다.
인간(人間)과 자연(自然), 또 다른 요소(要素)와 요인(要因)등 지구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要素)와 요인(要因) 모두 서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로 맺어져 있음에도, 인간(人間)이든, 자연(自然)이든, 또 다른 요소(要素)나 요인(要因)중의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것이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파괴(破壞)하거나 손상(損傷)시키는 경우, “하나님”은 이 관계(關係)를 회복(回復)시키기 위하여 “어느 것”이든, 또 그 이상의 것이든 간에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하는” 또 하나의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일을 하게된다.
또한 “하나님”은, 인간(人間)과 자연(自然), 지구를 구성하는 요소(要素)와 요인(要因)들이 “하나님”의 “창조(創造)와 관활(管活)”로 이루어진 “시간(時間) 과 공간(空間) 그리고 관계(關係)”속에서 존재(存在)토록 하여 인간(人間)에게도, 자연(自然)에게도, 또 다른 요소(要素)나 요인(要因)에게도 “시간적(時間的), 공간적(空間的), 관계적(關係的) 한계성(限界性)”을 부여(賦與)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人間)과 자연(自然), 지구를 구성하는 또 다른 요소(要素)와 요인(要因)들이 서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지속(持續)하는 경우, 인간(人間)과 자연(自然), 또 다른 요소와 요인들의 각각(各各)에 “내적순환(內的循環)”을 부여(賦與)함으로써 “하나님”은 이들을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하는”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일을 통해 이들이 계속 존속(存續)되도록 한다.
인간(人間)은 “인류(人類)”로서 자연(自然)과 또 다른 요소(要素)와 요인(要因)과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로 존속(存續)되며, 인간(人間)의 “내적순환(內的循環)” 즉 한 생명이 태어나고 성장(成長)하며 죽음에 이르면서, 또 다른 생명이 태어남으로써 “인류(人類)”로서 존속(存續)되게 된다.
인간(人間)이 인간(人間) 의 집단(集團)인“인류(人類)”로서 존속(存續)될 수 있는 것은, 개인(個人)으로서의 한 인간(人間)과 다른 인간(人間), 집단(集團)으로는 한 가족(家族), 한 사회(社會) 그리고 종족(種族), 인종(人種), 국가(國家)등 상이한 개인(個人), 그리고 상이한 집단(集團)간에 서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가 존속(存續)될때 “인류(人類)”로서 온전(穩全)하게 존속(存續)될 수 있는 것이며, “하나님”은 이 관계(關係)가 존속(存續)될 수 있도록 인간(人間)에 대한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한 개인(個人) 또는 집단(集團)이 이 관계(關係)를 파괴(破壞)하거나 손상(損傷)시키는 경우, 즉 불화(不和), 분쟁(紛爭), 전쟁(戰爭)등이 발생(發生)할 경우, “하나님”은 서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회복(回復)시키기 위해 그 개인(個人)이나 집단(集團)에 대하여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하는” 또 다른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일을 하게된다.
“하나님”의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하는” 이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일은, 한 인간(人間)내에서도 그 개체(個體)의 신체적(身體的), 정신적(精神的) 조직(組織)과 기능(機能)에서도 이루어지며, 각 조직(組織)과 기능(機能)이 서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가 파괴(破壞)되거나 손상(損傷)되는 경우, 즉 질환(疾患), 갈등(葛藤), 사고(事故), 사건(事件)등이 생기는 경우, “하나님”은 이 관계(關係)를 회복(回復)시키기 위하여 관련(關聯) 조직(組織)과 기능(機能)에 대하여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하는” 또 다른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일을 하게된다.
“하나님”이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하는” 이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일은, 인간(人間)에게 “탄생(誕生)과 사망(死亡)”, 그리고 “성장(成長)과 병약(病弱)”, “선성(善性)과 죄성(罪性)”, “긍정(肯定)과 부정(否定)”, “적극(積極)과 소극(消極)”, “화평(和平)과 고난(苦難)”, “행복(幸福)과 불행(不幸)”, “결행(決行)과 갈등(葛藤)”, “성공(成功)과 실패(失敗)”등 인간(人間)의 “생명활동(生命活動)”, 즉 신체적(身體的), 정신적(精神的) 활동(活動)에 “양면성(兩面性)”을 부여(賦與)함으로써 생명활동(生命活動)의 모든 요소(要素)와 요인(要因)이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존속(存續)할 수 있게 해준다.
IV. “하나님”에 대한 믿음
1.“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에 대한 믿음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은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의 모두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은 물론, 이 모든 것들을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關係)로 지어주고, 이 관계(關係)에 대한 “ 믿음”을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모두에게 갖게 해 주고 있다.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어느 것이든, 그것들이 이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에 대한 “ 믿음”을 인식하든, 못하든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일환(一環)으로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모든 것에 이 “ 믿음”이 주어져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는 생겨나고 존속된다.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는 각각(各各)이 내적(內的), 외적(外的) 그리고 내연적(內延的), 외연적(外延的) 특성(特性)을 갖고 창조되고 관활되며, “ 시간(時間)과 공간(空間) 그리고 관계(關係)”가 창조되고 관활 되는 가운데 “ 시간적(時間的), 공간적(空間的), 관계적(關係的) 한계성(限界性)”을 갖고 창조되고 관활 된다.
또한 이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는 전체(全體)로서, 또 각각(各各) 에서 “ 하나”로 창조되고 관활 되며, “ 시간적(時間的), 공간적(空間的), 관계적(關係的) 한계성(限界性)”을 극복하고 “ 하나” 로 계속 존속되도록 각각(各各)에 “내적순환(內的循環)”의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이 이루어지고 있다.
온 우주(宇宙)를 이루고 있는 한 우주계(宇宙系)나, 한 우주계(宇宙系)의 모든 은하계(銀河系), 은하계(銀河系)내의 하나인 태양계(太陽系), 태양계(太陽系)내의 지구계(地球系), 지구계(地球系)내의 지구, 그리고 지구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요소와 요인, 이 요소와 요인중의 하나인 “ 인류(人類)”및 “ 인간(人間)”에게도 모두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에 대한 “ 믿음”이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일환(一環)으로 주어져 있다.
이렇게 인간에 대한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로 인간에게 주어진 “ 믿음”은 생래적(生來的)인 것으로 인간 본연(本然)에 내재(內在)되어 있으며, 인간이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에 대한 “생래적(生來的) 믿음”이 있어 인간은 잉태되어 탄생되며, 성장하면서 한 삶을 살게되며, 이 “ 믿음”은 인간의 생명활동, 그것이 신체적 활동이든, 정신적 활동이든 또는 영적(靈的)활동이든 모든 생명활동의 원천(源泉)이 된다.
인간은 이 “ 믿음”을 인간의 정신영역(精神領域)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으며, 사실(事實)에 근거(根據)한 “ 믿음”, 체험(體驗)에 의한 “ 믿음”, 느낌에 의한 “ 믿음”, 판단(判斷)에 의한 “믿음”, 나아가 상상(想像)에 의한 “ 믿음”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사고(思考)와 판단(判斷), 행위(行爲)및 행동(行動)을 좌우하는 가장 중추적(中樞的)이고, 가장 근원적(根源的)인 정신영역(精神領域)의 하나로 간주하고 있다.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로 맺어진 것에 대한 이 “ 믿음”은 비단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생명이 있는 생명체에는 물론, 그 생명체가 이러한 “ 믿음”을 인식(認識)하든, 못하든 이 “ 믿음”이 있어 생겨나고 생존(生存)하며, 비생명체나 “ 현상(現象) 및 관계(關係)”등에도 본원적(本源的)으로 이 “ 믿음”이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로 주어져 있어 이들이 조성(造成)되고 생성(生成)되며, 또 존속(存續)되고 있다.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즉 우주(宇宙), 은하계(銀河系), 태양계(太陽系), 지구계(地球系), 지구(地球), 자연(自然), 인류(人類) 및 인간(人間)등의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에 대한 인간의 “ 믿음”은 인간에게 “ 지식(知識)”, “ 지혜(智慧)”, “ 이성(理性)”, “ 감성(感性)”등의 토대를 마련해 주며, 또한 정서적(情緖的), 심리적(心理的) 안정(安靜) 즉 “ 평안(平安)”을 제공하고, 신념(信念), 확신(確信)등 행위(行爲) 및 행동(行動)의 원동력(原動力)이 된다.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모두를, 그리고 또 각각을 “ 창조(創造)하고 관활(管活)하는 이”를 인간의 언어(言語)로 “ 하나님”이라 한다.
곧 “ 하나님”은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모두를, 그리고 또 각각을 창조(創造)하고 관활(管活)한다.
“ 하나님”은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모두에, 그리고 또 각각에 내재(內在)하여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의 일을 하며,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모두에서, 그리고 또 각각에서 “ 스스로”를 나타내고, 이 각각이 “ 하나”를 이루게 하면서,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모두가 “ 하나”를 이루도록 한다.
“ 하나님”은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모두를, 그리고 또 각각이 “ 하나”를 이루게 하기 위해서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모두가, 그리고 또 각각이 모두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지어주며, 이 관계(關係)에 대한 “ 믿음”을 준다.
이렇게 “ 하나님”은, “ 하나님”이 창조(創造)하고 관활(管活)하는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모두에게, 그리고 또 각각에게 모두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지어주어 “ 하나님의 나라”를 존속(存續) 시키고 있다.
“ 하나님”은 ”시간(時間)과 공간(空間) 그리고 관계(關係)”를 창조하고 관활하면서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에 “ 시간적(時間的), 공간적(空間的), 관계적(關係的) 한계성(限界性)”을 부여(賦與)하며,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각각이 이 “ 시간적(時間的), 공간적(空間的), 관계적(關係的) 한계성(限界性)”을 극복(克復)하면서 존속(存續)되도록, 각각에 “ 내적순환(內的循環)”으로 “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하는” 섭리(攝理)를 운용(運用)하고 있다.
또한 “ 하나님”은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어느 것이든, 모두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손상(損傷)시키거나 파괴(破壞)하는 경우,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회복(回復)시키기 위해서 이를 손상(損傷)시키거나 파괴(破壞)한 “ 어느 것”이나 “ 관련(關聯)된 것”에 대하여 “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하는”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의 일을 하게 된다.
“ 하나님”이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모두에, 그리고 또 각각에 내재(內在)하여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의 일을 하며, “ 하나님”은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각각에 따라 “ 스스로”를 나타내고 있음에도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모두는 물론, 각각은 “ 하나님” 모두를 인식(認識)할 순 없고, “ 하나님”의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로 각각에 주어진 속성(屬性)에 따라, 그 속성(屬性) 정도에서 “ 하나님”을 인식(認識)할 뿐이며, 인간 역시 “ 하나님” 의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로 일쿼진 “인간(人間)됨”의 속성(屬性)에 따라 “ 하나님”을 “ 인간됨, 즉 인간적(人間的)”으로 인식(認識)하고 있다.
“ 하나님”은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가 “ 하나님”을 인식(認識)하든, 못하든 “ 하나님”은 이들에 대한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일을 하며, 이들이 모두가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에 대한 “ 믿음”을 주어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를 존속시키고 있다.
인간에 대한 “ 하나님” 의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로 인간에게 주어진 인간의 “생래적(生來的) 믿음”은, “ 믿어지지 않는 것까지도 믿게 되는 것”으로 이 “ 믿음” 의 극치(極致)는 “ 하나님”을 인정(認定)하고 “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3. “ 하나님”의 뜻, 섭리(攝理)에 대한 믿음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는 처음부터 모두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로 맺어져 생성(生成)되었고, 조성(造成)되었으며, “ 하나님”이 맺어준 이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가 지속(持續)되는 한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는 존속(存續)된다.
온 우주 (宇宙)는 서로 다른 우주와, 한 우주는 이 우주를 이루는 은하계들이, 한 은하계는 이 은하계들을 이루는 항성군(恒星群)들이, 한 항성군(恒星群)은 이 항성군(恒星群)을 이루는 행성(行星)들이, 즉 태양계는 태양계를 이루는 행성(行星)들이, 지구계는 지구와 달이, 지구는 지구를 구성하는 요소와 요인들이, 이 요소와 요인의 하나인 “ 인류”는 “ 인간”들이, 이 모두가 서로 이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 하나님”이 맺어주며, 이 관계에 대한 “ 믿음”을 준다.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는 모두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에 대한 “ 믿음”이 있어 생성(生成)되고, 조성(造成)되며, 존속(存續)된다.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어떤 것도 이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에 대한 “ 믿음”이 없이는 생성(生成)되거나,조성(造成)될 수 는 없으며, 설령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어떤 것이 생성, 조성되었다 하드라도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에 대한 “ 믿음”이 없이는 존속(存續)될 수 없다.
“ 인간(人間)”은, 인간 집단(人間集團)인 “ 인류(人類)”는, 지구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와 요인, “ 인류(人類) “와 가장 근접되어있는 “ 자연(自然)”, 자연을 구성하고 있는 생명체, 비생명체, 심지어 자연현상(自然現象)과 지구적(地球的) 현상(現象)등, 지구를 구성하고 있는 이 모든 요소와 요인들과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갖고 창조되고 관활되어 왔으며, 이 모든 요소와 요인들이 이 관계를 지속하는 경우, 이 요소와 요인들, 자연, “ 인류(人類) “ 및 “ 인간”이 계속 존속될 수 있게, “ 하나님”은 이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맺어주고 이에 대한 “ 믿음”을 갖게하는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일을 한다.
또한 인간도, 한 인간이 다른 인간과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에 대한 “ 믿음”이 있어 잉태되어 탄생되고 살아가게 된다. 인간의 상이한 집단, 즉 인종, 민족, 또 작은 사회조직으로부터 국가나 지역 공동체에 이르기까지도, 한 인간이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에 대한 “ 믿음”을 갖고 탄생하게 되는 것처럼, 인간의 모든 상이한 집단도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에 대한 “ 믿음”이 있기 때문에 생성되고 조직된다. 이 “ 믿음”을 인간이 인식하든 못하든 “ 하나님”은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로 “ 인류”를 이루어 지구를 구성하는 한 요소와 요인이 되게 한다.
인간 한 개체(個體)의 각 신체적, 정신적 조직과 기능도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가 있어 각각 “ 제 일”을 하게 되며, 인간의 생명활동, 즉 신체적 활동이든 정신적 활동이든 모든 생명활동, 또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가 있어 정상적인 활동을 하게 된다
심지어 인간의 정서적, 심리적 안정도, 심리적 정서적 구성요소와 요인간에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가 있을 때에 심리적 정서적 안정을 기할 수 있다.
또한 인간에 의해 생산된 어떠한 것도 이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가 있기 때문에 한 산물(産物)로 온전하게 존재하며, “ 제 일”을 하게 된다.
이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에 대한 “ 믿음”을 인간이 인식하든, 못하든 “ 하나님”은 인간과 그 산물(産物)에 이 “ 믿음”을 부여함으로써 한 “ 인간”으로, 또 그 “ 산물(産物)”로 온전하게 존재하게 된다.
2) “ “ 하나”를 이루게 하는” 뜻에 대한 믿음
“ 하나님”은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각각에 있어, 각각의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로 각각이 “ 하나”를 이루게 하며, 또 각각이 모두가 전체로서 “ 하나”가 이루어지도록 하여 “ 하나님”은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일을 한다.
이렇게 각각이 또 전체가 “ 하나”를 이루도록 하기 위하여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각각이 또 전체가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맺어준다.
온우주는 서로 다른 우주와 “ 하나”로, 한 우주는 서로 다른 은하계로 “ 하나”를, 은하계는 태양계와 또 다른 항성군과 “ 하나”로, 태양계는 지구계와 또 다른 행성군과 “ 하나”로, 지구계는 지구와 달로 “ 하나”를, 지구는 인류, 자연, 생명체, 비생명체등 지구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와 요인들과 “ 하나”로, 인류는 인간 집단으로 “ 하나”로, 이렇게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각각이, 또 전체로 “ 하나”로 온전하게 존재하며, 각각이 “ 제 일”을 하도록 “ 하나님”의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이 이루어진다.
인간집단은, 개인으로 집단으로, 집단은 서로 다른 인종으로 또 민족으로, 서로 다른 사회조직으로, 또 단위(單位)를 달리하는 공조직(公組織)이나 사조직(私組織)으로, 목적이나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서로 다른 집단으로, 나아가 서로 다른 국가와 지역 공동체로, 각양각색의 인간집단이 모두가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로 맺어져 “ 인류사회” 내지 “ 인류”로 “ 하나”를 이루어, 지구를 “ 하나”로 이루는 다른 요소와 요인과 같이 존속되고, “ 제 일”을 하도록 “ 하나님”의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일이 이루어지고 있다.
인간 개체(個體)는, 작게는 조직과 기능을 달리하는 유전자, 세포로부터, 크게는 신체적, 정신적 각 조직과 기능에 이르기까지, 각 조직과 기능이 온전한 “ 하나”로 존재하고, “ 제 일”을 하며, 다른 조직 및 기능과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로 맺어져 차상위(次上位) 조직과 기능으로 존재하고 “ 제 일”을 하게 되어, 끝내 신체적, 정신적 모든 조직과 기능이 온전한 “ 하나”를 이룸으로써 비로소 한 “ 인간”으로 생존하도록 “ 하나님”이 각 조직과 기능에 있어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일을 하고 있다.
또한 인간의 생명활동과 그 산물(産物), 생명활동이 신체적 활동이든, 정신적 활동이든, 그리고 이 생명활동에 의한 산물, 이 산물이 물질적 산물이든 정신적 산물이든, 또는 형체(形體)가 있든 없든 즉 어떠한 현상(現象)과 관계이든, 또한 그것이 완성(完成)된 것이든 어떤 것에 부속(附屬)된 것이든, 그 자체는 온전한 “ 하나”로 만들어지며, 이들이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로 맺어져, 또 다른 “ 하나”를 이루어 존재하고 “ 제 일”을 하며, 이 모든 산물은 인간과의 관계에서도 이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가질 때 온전한 “ 하나”로 존재하고 “ 제일”을 하도록, 인간의 모든 생명활동과 그 산물에도 “ 하나님”이 있어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일을 하며, 인간은 “ 하나님”의 이러한 “ 일”을 찾아 따라 갈 뿐이다.
3) “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하는” 뜻에 대한 믿음
“ 하나님”의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로 이루어진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는 그 각각에서는 물론, 차례로 각각의 한층 낮은 차원에서의 각각들도, 모두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로 맺어져, 각각으로, 또 차례로 한층 높은 차원에서의 전체로 온전하게 존속된다. 이렇게 이루어진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는 이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에 순응하도록 “ 하나님”의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이 이루어지고 있다.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그 각각은 물론, 또 어떤 차원에서의 각각들도 모두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가 지속되는 한, 각각으로 또 전체로 존속될 수 있으나,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어느 것 하나든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손상시키거나 파괴하는 경우, “ 하나님”은 이 관계의 회복을 위해 이 관계를 손상 또는 파괴시킨 어느 것이든, 관련된 것에 대하여 “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하는”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일을 하게 된다.
이 “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하는”“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일은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에서, 즉 온 우주에서, 모든 은하계에서, 태양계 모두에서, 그리고 지구계의 모두에서, 지구에서, 자연에서, 모든 생명체 및 비생명체에서, 인간 집단인 “ 인류 및 인류사회”에서 그리고 인간 그 각각에서, 각각이 그리고 모두가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지속시키기 위해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 인류”에서도 개인간이든, 종족간이든, 인종간이든, 민족간이든, 국가간이든, 지역 공동체간이든, 어떠한 사회 조직이든 즉 어떠한 상이한 집단간이든, 인간으로서 개인과 집단간에 모두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관계(關係)를 지속 시켜야할 것이며, 이 관계가 손상되거나 파괴되는 경우, 이 관계의 회복을 위해 “ 하나님”은 이 관계를 손상, 파괴하는 무엇이든 “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하는”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의 일을 하게 된다.
인간 개체의 경우도, 개체를 구성하는 각 신체적 정신적 조직과 기능이 모두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關係)가 지속될 때, 인간 한 개체로서 온전하게 존속되나, 어느 한 조직과 기능에 손상이나 파괴가 있을 경우 “ 하나님” 은 이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關係)의 회복을 위해 손상이나 파괴와 관련된 조직과 기능에 대하여 “ 하나님” 은 “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하는”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의 일을 하게 된다.
인간의 생명활동과 그 산물, 생명활동이 신체적 활동이든 정신적 활동이든 모든 생명활동간, 인간의 산물(産物)로 모든 산물간, 그리고 생명활동과 산물간, 모두는 상호간에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關係)로 맺어져 존속되며, 만일 어느 한 생명활동이나 산물이 이 관계를 손상시키거나 파괴하는 경우에도 이 관계의 회복을 위한 “ 하나님” 의 “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하는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의 일이 이루어진다.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는 “ 하나님” 이 창조(創造)하고 관활(管活) 하는 “ 시간과 공간 그리고 관계” 속에서 “ 시간적, 공간적, 관계적 한계성” 을 갖고 존재하며, 이 “ 시간적, 공간적, 관계적 한계성” 을 극복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 하나님” 은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의 각각에 “ 내적, 외적 그리고 내연적, 외연적 특성” 을 부여하여 “ 내적 순환”으로 “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하는”“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일을 하게 된다
이 “ 내적 순환” 을 위해 “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하는” “하나님” 의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의 일은 우주에서, 은하계에서, 태양계에서, 지구계에서, 지구에서, 자연에서, 생명체에서 또 비생명체에서, “ 인류” 에서, “ 인간” 에서, 모두 “ 시간적, 공간적, 관계적 한계성” 을 극복하도록 각각에 “ 내적, 외적 그리고 내연적, 외연적 특성” 을 부여하여, 각각이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關係)를 지속하면서 존속되도록 하고 있다.
인간의 경우 “ 내적, 외적 그리고 내연적, 외연적 특성”은 개체에게는 개성과 개인차등의 차별성, 집단간에는 종족, 인종, 민족간의 상이성, 또 국가간, 지역 공동체간의 상이성, 인간의 탄생과 생존 및 사망의 시간차, 인간 산물의 모든 차별성 등으로 나타나며, 이 모든 것이 “ 시간적, 공간적, 관계적 한계성” 을 극복하고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關係)를 지속하면서 “ 내적 순환” 을 통해 계속 존속되도록 “ 하나님” 의 “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하는”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의 일이 이루어진다.
V. “ 하나님” 에 대한 사랑
1. 감사하는 마음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가 창조(創造)되고 관활(管活)되는 “ 과정(過程)과 결과(結果)”로 인식되는 “ 하나님” 이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의 그 각각이, 또 차례로 한층 낮은 차원에서의, 각각에게도 모두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關係)를 맺어준 것에 대한 “ 감사”, 그리고 이 관계(關係)에 대한 “ 믿음” 을 갖게 해 준 것에 대한 “ 감사”, 그리고 또 이 모든 “ 피조(被造)된 것”이 존속될 수 있게 해 준 것에 대하여 “하나님”에게 “ 감사하는 마음” 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인간에게, 우주의 일원(一員)으로, 은하계의 일원으로, 태양계의 일원으로, 지구계의 일원으로, 지구의 일원으로, 자연의 일원으로, 생명체의 일원으로, 인류의 일원으로, 한 개체(個體)로, “ 하나님” 의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로 모든 “ 피조(被造)된 것 ”과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關係)를 맺어준 것에 대한 “감사”, 이에 대한 “ 믿음” 을 준 것에 대한 “감사”, 이에 “ 참여(參與)” 할 수 있게 해 준 것에 대한 “ 감사”, 한 인간개체는 “ 한시적(限時的) 존재(存在)” 임에도 인간집단의 “ 인류(人類)” 를 이루어 계속 “ 존속(存續)” 될 수 있게 해 준 것에 대하여 “하나님”에게 “ 감사하는 마음” 을 가져야 할 것이다.
또한 “ 하나님” 은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가 모두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關係)를 지속하는 한 계속 존속되면서 “ 제 일” 을 할 수 있게 해주나, 만일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의 어느 것이든, 이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關係)를 손상시키거나 파괴하는 경우, 이 관계(關係)의 회복을 위해 이 관계(關係)를 손상, 파괴시키는 어느 것에든 “ 하나님”은 “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하는”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의 일을 하게 되며, 이를 통해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가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關係)로 “ 보호(保護)” 되고 “ 존속(存續)” 되도록 해 주는 것에 대한 “감사”로 “하나님”에게 “ 감사하는 마음” 을 가져야 할 것이다.
“ 인간” 및 “ 인류” 에게도, 개체간, 종족간, 인종간, 민족간, 국가간, 지역 공동체간, 어떠한 사회조직 및 집단 이든 간에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關係)를 지속하는 한, “ 인간” 및 “ 인류” 로 계속 존속되고 각각이 “ 제 일” 을 할 수 있게 되나, 어느 것이든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關係)를 손상시키거나 파괴하는 경우, 이 관계(關係)의 회복을 위해 이 관계(關係)를 손상, 파괴하는 어느 것에든 “ 하나님” 은 “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하는”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의 일을 하게 되며, 이를 통해 모두에게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關係)를 맺어주고 이에 대한 “ 믿음” 을 갖게 해 주어 계속 “ 존속(存續)” 되도록 “ 보호(保護)” 해 주고 있음에 “ 감사하는 마음” 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렇게 “ 하나님” 의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로 이루어지는 것에 대하여 “ 감사하는 마음” 이 커질수록 “ 하나님” 에 대한 “ 믿음” 이 더욱 커지게 된다.
2. 사랑하는 마음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이 이루어지는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의 무엇에서나, 언제든, 또 어디서든, “ 하나님” 이 있으며, “ 하나님” 은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의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로 이 “ 피조(被造)된 것”에 따라 “ 스스로” 를 나타내고,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의 일을 한다.
이러한 “ 하나님” 은 온 우주에, 한 우주에, 모든 은하계에, 태양계의 모두에, 지구계의 모두에, 지구에, 자연에, 인류에, 인간 개체에, 인간 개체의 신체적 정신적 조직과 기능 모두에 있으며, 이 “ 피조(被造)된 것 ”에 따라 “ 스스로” 를 나타내고,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의 일을 한다.
인간 에게는, 그 생명활동, 즉 신체적 활동이든 정신적 활동이든, 심지어 영적(靈的) 활동이든, 모든 생명활동에 “ 하나님” 이 있으며, 생명활동의 산물(産物), 이 산물이 물질적 산물이든, 정신적 산물이든, 형체가 있든 없든, 어떤 현상과 관계이든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로 이루어진 모든 “ 피조(被造)된 것 ”에 “ 하나님” 이 있으며, “ 하나님” 은 “ 피조(被造)된 것”에 따라 “ 스스로” 를 나타내고,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의 일을 한다.
인간 은 이렇게 개체의 신체적 정신적 조직과 기능, 각 개체의 생명활동과 그 산물, 인간 에 근접된 자연, 지구, 태양계, 은하계, 우주 모두에 “ 하나님” 이 있어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인식(認識)하고, 이 “ 하나님” 이 “ 있을 것이라는 예상(豫想)” , “ 있어야 한다는 필요(必要)” , “ 있을 수 있다는 가능(可能)” 등에 대한 “ 믿음” 을 갖고 “ 하나님” 을 사랑해야 할 것이다.
“ 하나님을 사랑함” 은 “ 하나님께서 하심, 또 하신 것을 사랑하는 것” 이다.
3. 순종(順從)하는 마음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는 각각에, 또 차례로 한층 낮아지는 차원의 각각에, 그리고 각각이 차례로 한층 높아지는 차원의 전체에, “ 하나님” 이 있어, “ 하나님” 의 뜻에 따라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이 이루어지며, “ 하나님” 은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가 “ 하나님” 의 뜻을 따르도록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의 일을 한다.
“ 하나님”은 “ 하나님” 의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로 이루어진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의 각각이, 또 차례로 한층 낮아지는 차원의 각각이, 그리고 각각이 차례로 한층 높아지는 차원의 전체가 모두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關係)를 맺어주어, 모두가 이 관계(關係)를 지속시키는 한 계속 존속되도록 한다.
그러나 만일 어느 것이든 이 관계(關係)를 손상시키거나 파괴하는 경우, 이 관계(關係)를 회복시키기 위해 이 관계(關係)를 손상, 파괴하는 어느 것에도 “ 하나님” 은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하는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의 일을 하게 되며, 이를 통해 “ 하나님” 은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가 모두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關係)를 맺어준다.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즉 “ 하나님” 의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로 “ 피조(被造)된 것 ”은 “ 하나님” 의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에 순종(順從)하고, “ 하나님” 의 뜻, 즉 “ 피조(被造)된 것” 모두가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關係)에 “ 믿음” 을 갖고 이 “ 하나님의 뜻 ”에 순종(順從)하며, 이 관계(關係)가 손상되거나 파괴되지 않도록, “ 하나님의 뜻” 에 순종(順從)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인류로 자연과, 지구와, 지구계와, 태양계와, 은하계와, 우주, 즉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와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關係)로 맺어주고, 이에 대한 “ 믿음” 을 주는 “ 하나님의 뜻 ”에 순종(順從)해야 할 것이며, 이 관계(關係)가 손상되거나 파괴되지 않도록, “ 하나님의 뜻” 에 순종(順從)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인간은, 개체로 신체적 정신적 조직과 기능, 또 각 개체의 생명활동과 그 산물, 다른 개체 및 집단, 즉 “ 인류 및 인류사회” 의 누구에게도, 어느 것에도, 언제든, 어디서든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의 일을 하는 “ 하나님” 이 있음을 인식하고, 이 “ 하나님” 과 “ 하나님” 의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에 순종하며, 또 이 모든 것이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關係)로 맺어주고, 이에 대한 “ 믿음”을 주는 “ 하나님의 뜻”에 순종(順從)해야 할 것이며, 이 관계(關係)가 손상되거나 파괴되지 않도록, “ 하나님의 뜻” 에 순종(順從)해야 할 것이다.
< 붙임글 >
“ 하나님 본연(本然)” 에 대한 본연적(本然的) 탐구(探求)
1. “하나님 본연(本然)”에 대한 본연적(本然的) 탐구(探求)의 필요성(必要性)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 차례로 우주, 은하계, 태양계, 지구계, 지구, 자연, 인류, 인간, 그리고 인간 의 모든 생명활동과 그 산물등에서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이 인식되고, 이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에 대해서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의 “ 주관자(主管者)” 로 인간은 총칭적인 의미의 인간언어로 “ 창조주” 라 부르며, 나아가 “ 궁극적 창조주” 를 “ 하나님” 이라 부른다. 곧 이 “ 하나님” 이 이 “ 모든 것” 을 창조하고 관활 한다.
이 “ 하나님” 은 이 “ 모든 것” 에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關係)로 맺어 “ 하나” 를 이루게 하고, 이에 대한 “ 믿음” 을 주며, 이 뜻을 지켜 나가기 위하여 이 “ 모든 것” 에 대하여 “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하는” 또 다른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의 일을 하고 있다.
이 “ 하나님” 은 이 “ 모든 것” 에 각각 다른 “ 시간과 공간 그리고 관계” 를 주어 “ 시간적, 공간적, 관계적 한계성” 을 부여하고 있으나, “ 하나님” 은 이 “ 시간과 공간 그리고 관계”를 초월하여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의 일을 하고 있다.
“하나님의 본연(本然)” 이 이러할 진데, 인류 역사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신앙과 종교가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이 “ 하나님” 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면서, 정작 “ 하나님 본연(本然)” 에 대한 인식은 자기 중심적(自己 中心的)으로 인식되어 왔으며, “ 하나님 본연(本然)” 에 대하여 인식된 내용을 교리로 굳히고, 이를 제도화, 의식화시킴으로써 각 종교는 이를 존립(存立)의 근거(根據)로 세우고 있으나, 이는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를 창조하고 관활하는 “ 하나님 본연(本然)” 에서는 한참 이탈(離脫)되어있는 실정이다.
물론 “ 하나님” 은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의 각각에, 또 전체에 내재(內在)하여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의 일을 하며, 이 “ 모든 것” 에 따라 “ 스스로” 를 나타내고, 이 “ 모든 것” 이 “ 하나님” 이 부여한 속성(屬性)에 따라 “ 하나님” 을 인식할 수 있게 해 준 것으로 보아, 인간의 “ 하나님” 에 대한 인식이 “ 하나님” 의 인간에게 부여한 속성, 즉 “ 인간됨, 혹은 인격적” 일 수 밖에 없음이 인정되며, 각 신앙과 종교가 “ 하나님” 을 “인간됨 혹은 인격적” 으로 인식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각 종교는 자기만이 “ 유일무이(唯一無二)” 한 종교로 다른 종교를 폄하(貶下), 부정(否定)함으로써, 자기 종교의 “ 우월성(優越性)” 과 다른 종교에 대한 “ 배타성(排他性)” 이 조장(助長)되어, 종교간 갈등(葛藤)과 분쟁(紛爭)을 야기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은 종교 내에서도 종파간 갈등과 분쟁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는 더욱이 자기 종교의 “우월성(優越性)” 을 기초로 집단적(集團的) 결속(結束)을 강화시키는 한편, 다른 종교에 대한 “ 배타성(排他性)” 을 조장하여 다른 종교나 종파의 괴멸(壞滅)을 추구함으로써, 종교가 가져야 할 종교 본연(本然)의 목적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 하나님” 의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로 이루어진 “ 지구” 의 한 요소와 요인으로서의 “ 인류” 에 대한 존속(存續)을 위협(威脅)하고 있다.
“ 하나님” 은 “ 하나님” 이 만든 “ 모든 것” 에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關係)를 맺어주어, “ 모든 것” 이 이에 대한 “ 믿음” 을 갖고 존속되게 하는 것처럼, 어떠한 신앙이나 종교도 이의 뜻에 따라 모두 서로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關係)를 인정해야 할 것이며, 이것이 또한 각 종교가 갖고 있는 각 종교 본연의 목적에도 합치(合致)될 것이다.
또한 현존(現存)하는 신앙과 종교가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를 창조(創造)하고 관활(管活)하는 “ 하나님” 을 그 신앙과 종교의 “ 궁극적(窮極的) 실재(實在)” 로 공유(共有)하고 있는 거나, “ 인간” 과 “ 인류사회” 를 향한 실천적(實踐的) 활동에 공통성(共通性)을 갖고있는 것에 비추어 봐도 현존하는 신앙과 종교는 당연히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關係)에 대한 “ 하나님”의 뜻에 따라야 할 것이다.
만일 이 관계가 존속되지 않는 경우, “ 하나님” 은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가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關係)를 손상, 파괴시키는 경우, 이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이 관계를 손상, 파괴하는 어떤 것에든 “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하는” 섭리를 운용(運用)하는 것처럼, 어떠한 신앙과 종교도 이 섭리를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를 창조(創造)하고 관활(管活)하는 “ 하나님” 을 “ 궁극적(窮極的) 실재(實在)” 라 하여 명시적(明示的)으로 자기 종교의 근원(根源)으로 삼고있는 종교는 물론, “ 하나님” 의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을 벗어날 수 없는 “ 인간” 그 자신의 정신적 또 영적(靈的)활동으로 생성된 한 종교로서 어떠한 종교이든, “ 하나님 본연(本然)” 에 복귀(復歸)하여 “ 하나님 본연(本然)” 을 더욱 탐구하고, “ 하나님의 뜻” 에 순종하여 모든 신앙과 종교가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關係)를 조성(造成)함으로써, 종교간, 종파간 갈등과 분쟁을 해소하여 종교간, 종파간의 평화(平和)를 추구할 수 있으며, “ 하나님” 의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로 이루어진 “ 지구(地球)” 를 구성하는 한 요소와 요인으로서의 “ 인류” 에 대한 평화(平和)와 이 한 요소와 요인으로서의 “ 인류” 로 계속 보호되고 존속될 수 있을 것이다.
2. 인간(人間)의 인식능력(認識能力) 발달(發達)에 따른 “ 하나님” 에 대한 인식능력(認識能力) 확대(擴大)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의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로 인식되는 “ 하나님” 은 어떤 “ 형상(形象)” 이나 “ 존재(存在)” 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고,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에 대한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의 “ 과정(過程)과 결과(結果)” 로 인식되는 관계로, 인간의 “ 하나님” 에 대한 인식은, “ 하나님” 의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로 이루어진 “ 인간” 그 자신과 인간의 생명활동과 그 산물에 대한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의 “ 과정(過程)과 결과(結果)” 를 통해서 인식되어질 수 있으며, 또 인간이 “ 인류” 로 지구를 구성하는 한 요소와 요인으로서, 지구를 구성하는 다른 요소와 요인, 즉 자연 과 지구, 자연현상 및 지구현상, 나아가 지구계, 태양계, 은하계, 우주, 그리고 또 다른 우주. 즉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에 대한 “ 하나님” 의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의 “ 과정과 결과” 로 “ 하나님” 을 인식하게 된다.
이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의 “ 과정과 결과” 로 인식되는 “ 하나님” 에 대한 인식과,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의 “ 한 낱” 에 불과한 지구에 인간이 생겨나면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 하나님” 에 대한 인식능력은 꾸준히 개발(開發), 확대(擴大)되어 왔으며, 더욱이 이 인식능력은 인간자신의 인식능력향상뿐만 아니라, 인간이 개발한 “ 도구(道具)” 의 개발, 확대에 따라 이 “도구(道具)” 를 통한 인식능력의 향상으로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의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의 “ 과정과 결과” 에 대한 인식이 확대됨에 따라 인간의 “ 하나님” 에 대한 인식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인간의 “ 하나님” 에 대한 인식능력이 미개(未開)했던 시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 하나님” 에 대한 인식능력이 개발, 확대되고 있음에도, 현존(現存)하는 거의 모든 신앙과 종교는 각 종교의 창시(創始) 초기(初期)에 “ 하나님” 대해 인식된 내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현존하는 많은 신앙과 종교가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를 창조(創造)하고 관활(管活)하는 “ 하나님” 을 자기 신앙과 종교의 존립(存立) 근거(根據)로 세우고 있으며, 다른 신앙과 종교에서도 이 “ 하나님” 을 각 신앙과 종교의 존립 근거로 공유(共有)하고 있음에도, 자기 신앙과 종교의 “ 우월성(優越性)” 만을 주장하고 다른 신앙과 종교에 대한 “ 배타성(排他性)” 을 조장(助長)함으로써 종교간 또 같은 종교 내에서의 종파간 갈등과 분쟁이 야기되고 있다.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에 대한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의 “ 과정과
결과” 로 인식되는 “ 하나님” 은 이 “ 모든 것” 의 각각에, 또
전체에도 있으며, 이 모두를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를 맺어주고, 이관계에 대한
“ 믿음” 을 갖게 해 주어 모두가 존속되도록 하고, 또한 이 “관계”
와 “ 믿음” 이 지켜질 수 있도록 “ 있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하는”
또 다른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의 일을 한다.
이에 따라 “ 하나님” 은 인간에게 “ 인류” 로 지구를 구성하는 한 요소와 요인으로, 다른 요소와 요인과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를 맺어 이에 대한 “ 믿음” 을 갖고 존속되도록 하고 있으나, 현존하는 신앙과 종교는 자기만의 “ 우월성(優越性)” 과 타 신앙과 종교에 대한 “ 배타성(排他性)” 으로 인간의 “ 인류” 로서의 “ 하나” 된 존재와, “ 인류” 가 다른 요소와 요인들과 “ 지구” 로 “ 하나” 된 존재를 위협(威脅)하고 있다.
현존하는 신앙과 종교의 자기만의 “ 우월성(優越性)” 과 타 신앙과 종교에 대한 “ 배타성(排他性)” 은, 각 신앙과 종교의 존립 근거인 “ 하나님” 에 대하여, “ 하나님 본연” 과 “ 하나님 본연의 뜻” 을 탐구하고 이를 따름으로써, 모든 신앙과 종교가 모두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를 회복하고, 이에 대한 “ 믿음” 을 가짐으로써, 해소(解消)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이를 통해 종교간, 종파간 갈등과 분쟁을 해소하고, 인간이 “ 인류” 로서 “ 하나” 를 이루어 “ 평화(平和)” 를 향유(享有)하며, 지구의 다른 요소와 요인들과 같이 “ 지구” 로 “ 하나” 를 이루어 존속됨으로써 각 신앙과 종교 본연의 목적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4. “ 하나님” 의 “ 피조(被造)된 것” 으로서 인간의 인간 자신에 대한 재인식(再認識)
“인간”은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의 “ 한 낱” 에 불과한 “ 지구” 에 “ 하나님” 의 창조와 관활로 탄생(誕生)되었으며, 탄생당시로부터 인간은 지구를 구성하는 자연과 다른 요소 및 요인들을 경외(敬畏)하고 숭배(崇拜)까지 해야 할 정도로 왜소(矮小)한 존재 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수적(數的)으로 꾸준히 팽창(膨脹)되어 집단(集團)으로 “ 인류(人類)” 를 형성(形成)해 가면서 자연과 다른 요소와 요인들과 같이 “ 지구” 를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와 요인의 “ 하나” 가 되었다.
인간의 수적(數的) 팽창(膨脹)으로 상이(相異)한 종족, 인종, 민족, 국가, 또 목적과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사회조직 및 집단 등이 형성되면서 이들의 집단(集團) 이기주의(利己主義)가 팽배 됨에 따라 갈등(葛藤), 분쟁(紛爭), 전쟁(戰爭) 등이 야기됨으로써 지구를 구성하는 한 요소와 요인으로서의 “ 인류” 의 공존(共存)과 평화(平和)가 위협(威脅)을 받고 있다.
또한 인간의 수적(數的) 팽창(膨脹)은 지구를 구성하는 자연과 다른 요소와 요인을 훼손(毁損)하고 이의 존속(存續)을 위협함으로써 “ 인류” 자체의 생존(生存)도 위협을 받고 있다.
“ 하나님”이 인간을 “ 인류”로 “ 하나”를 이루어 지구를 구성하는 한 요소나 요인으로 보호하고 존속시키는 것은, 인간에게 상이한 집단간에 모두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를 지어 이에 대한 “ 믿음” 을 주고, 또 지구를 구성하는 한 요소와 요인으로서의 “ 인류” 가 지구를 구성하는 다른 요소와 요인들과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를 맺어 “ 지구” 를 “ 하나” 로 이루게 하여, 달과 함께 지구계, 나아가 다른 행성들과 같이 태양계의 일원으로 지구를 존속시키기 위한 것이다.
인간은, “ 하나님” 의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로 탄생된 “인간 (人間) 본연(本然)” 과 “ 하나님의 뜻” 을 깨닫고 이에 순종하여 “ 제 일” 을 함으로써 “ 인류” 로 “ 하나” 를 이루어 계속 보호되고 존속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5. “ 하나님” 에 대한 인간 본위적(本位的) 인식(認識) 방법의 탈피(脫皮)
인간은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의 전체에서는 물론, 각각에서도 결코 “ 우월적(優越的) 존재(存在)” 가 아니며, 더욱이 제왕적(帝王的) 존재, 심지어 “ 하나님” 으로 부터 전적으로 위임(委任) 받은 존재, 또는 “ 하나님” 이 유일(唯一)하게 선택(選擇)한 존재가 아님을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인간이 “ 하나님” 의 유일한 선택으로, 전적으로 위임 받았다는 인식으로 인해, 인간은 인간의 생존 기반(基盤)인 자연 및 지구를 훼손하고, 더욱이 일부 인간집단은 “ 선민의식(選民意識)” 을 조장하여, 인간집단 상호간에 갈등, 불화, 분쟁, 전쟁 등을 야기시킬 뿐만 아니라, “ 하나님”을 “인간화(人間化)”시킴으로써,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에 대한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의 “ 과정과 결과”로 인식되어야할 “하나님 본연(本然)”을 “인간 (人間) 본위적(本位的)” 으로 인식하고 있다.
인간이 “ 하나님” 을 어떻게 인식하든, “ 하나님” 은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에 내재(內在)하여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에 따라 “ 스스로” 를 나타내고,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의 일을 한다.
인간은 “ 하나님” 의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로 이루어진 한 우주의, 한 은하계의, 태양계의, 지구계의, 지구의 한 요소와 요인으로 “ 인류” 로 존재함을 인식하여 “ 하나님”과,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와, “ 하나님” 의 “창조(創造)와 관활(管活)”과, “ 하나님의 뜻” 에 대한 “인간 (人間) 본 위적(本位的)” 인식을 탈피(脫皮)하고 “하나님” 의 이러한 “본연(本然)”에 입각하여 “ 하나님” 을 인식 해야 할 것이다.
6. “하나님 본연(本然)” 에 대한 인간 의 인식(認識) 방법의 다양화(多樣化)
인간은 인류 역사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 인식능력(認識能力)” 을 개발, 확대시켜옴에 따라, 인간 스스로의 “ 인식능력(認識能力)” 은 물론, 인간이 개발한 “ 도구(道具)” 를 통한 “ 인식능력(認識能力)” 도 개발, 확대 됨으로써, 인간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조직과 기능 에서는 물론, 인간이 속한 자연의 생명체, 비생명체 등과 지구를 구성하는 많은 요소와 요인등에 대하여, 지구 및 달의 지구계, 태양계, 은하계, 한 우주 등, “대상(對象)의 본연(本然)”
에 근접(近接)하여 대상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인간의 “ 인식능력(認識能力)” 이 개발, 확대됨에 따라 “ 하나님” 의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로 이루어지는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의 각각이 “ 내적(內的), 외적(外的) 또 내연적(內延的), 외연적(外延的) 특성(特性)”을 달리하는 “ 다양성(多樣性)”이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고, 인간 그 자신에 대해서도,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조직과 기능에서의 차이, 인간의 생명활동, 즉 신체적 활동이든 정신적 활동이든 또 영적 활동이든, 또한 생명활동의 산물등에서 서로 상이한 “ 다양성(多樣性)”을 인식하게 되었다.
인간의 이러한 본질적(本質的), 생래적(生來的) “ 다양성(多樣性)” 으로 “ 온 우주(宇宙)와 우주(宇宙)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관계(關係)”, 또 그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의 “ 과정과 결과”, 그리고 “ 하나님” 에 대한 인식도 다양하여, 어느 한 신앙과 종교만이 “ 하나님” 을 인식하는 것도 아니며, 그 인식된 내용이 결코 “ 유일 무이(唯一無二)” 한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할 것이며, 단지 종족, 인종, 민족, 국가 등 인간집단과 그들의 생명활동 및 그 산물이 다양하여 이를 토대로 “ 하나님” 을 인식하기 때문에 “ 하나님” 에 대한 인식(認識) 방법(方法)과 인식(認識) 내용(內容)이 달라진다는 것을 서로 인정(認定) 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 하나님” 에 대한 인식(認識) 방법(方法)과 내용(內容)을 달리하게 하는 것도, “ 하나님” 의 “ 창조(創造)와 관활(管活)” 의 섭리(攝理)로, 이 모든 신앙과 종교가 서로 “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같이 있는” 관계를 조성(造成)하여, 한 “ 인류(人類)” 로 계속 존속되도록 하기 위한 “ 하나님의 뜻” 인 것이다. < 끝 >
< Copyright©2005. All rights reserved. The Publication and Translation are protected by Copyright and Prior permission should be obtained from the Author( Hyung Ho L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