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UIUC의 Billie F. Spencer 교수님 연구실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신 심성한, 윤형철, 김은주 교수님께서 매년 각자의 연구실 학생들과 함께 모여 워크샵 같은걸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 나도 저런 모임에 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고 생각하던 중, 마침 누구보다 한가하게 살게 된 것을 기념하여 금년부터 대뜸 비슷한 걸 흉내내 보기로 결심했다.
우선 제일 중요한 행사의 이름은 지도교수님이신 김호경 교수님의 주된 연구분야인 Wind and Structural Engineering의 앞자를 따서 WiSE라고 충북대학교의 세진이가 (아마도 ChatGPT의 도움을 받아) 지어줬다. 그 뒤에 붙을 말로 워크샵이 좋은지 콜로키움이 좋은지 세미나가 좋은지 심포지엄이 좋은지는 잘은 모르지만 일단은 워크샵으로 하기로 했다. 그런데 넷의 차이가 뭐죠?
2026년 6월 기준 김호경 교수님 제자들 중 학교에 근무하는건 나랑 부경대의 유찬이, 충북대의 세진이, 그리고 공주대의 이삭이. 그렇게 네 개의 대학교 학생들이 8월 13일 시립대에 모인다... 라고 하면 굉장한 규모일 것 같지만, 사실 학생 참가자는 15명 정도가 전부인 아주 단촐한 모임이다. 그렇게 소소하게나마 모여 서로 자기 소개도 하고, 뭐가 됐든 5-7분 정도 연구 발표도 하고, 밥도 먹고 소주도 마시고... 뭐 그런 것이다.
이런 짓을 시작한 계기라면, 역시 합법적으로 밥도 먹고 소주도 먹고자...는 아니고, 먼저는 앞서 UIUC 동문 교수님 같은 훌륭한 분들이 하는걸 보면 분명히 좋은 의미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있었다. 동시에 아무래도 학부 연구생들은 어딘가에서 학술적인 발표를 해 볼 기회를 갖기 어렵다. 그래서 이런 '문턱이 낮은 학술행사(를 빙자한 무언가)'를 통해서나마 뭐든간에 학술적인 발표의 형식을 갖추어 보는 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실은 무엇보다도, 다 해서 15명이 전부인 단촐한 규모 자체가 이러한 모임을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비교적 작은 규모의 연구실에 있다보면, 나와 비슷한 경력과 상황에서 나보다 훨씬 잘(혹은 진지하게) 하는 사람의 존재를 마주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다른 그룹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아 나보다 잘 하는 사람이 존재하는구나, 나 정도면 그래도 꽤 열심히 하고 있었구나, 내 나이에도 저 정도를 해낼 수도 있구나,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뭐 그런 각자만의 어떠한 다이나믹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갑자기 다른 이야기지만, 나의 지리멸렬한 대학원 생활 중 그나마 제일 강렬한 경험이라면 단연 2011년 무렵의 서울대-동경대-동경공업대 간의 Tri-Colloquium이었다.
때는 대략 석사학위 심사를 마치고 거의 빈사상태가 되어 있을 무렵이었다. 김호경 교수님께서 동경에서 세 학교가 주관하는 학술행사가 있는데 한 번 가보는게 어떠냐고 하셔, 종심도 마쳤겠다 반쯤(정확히는 99.9%쯤)은 놀러간다는 생각으로 참가를 결심하였다. '석사논문 심사 발표를 적당히 수정해서 발표하고서는 온갖 식당에서 주지육림을 즐기고야 말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말이다. 사실상 마인드는 동경 관광객이나 다름 없었다.
그러나 실제로 경험한 콜로키움은 IABSE나 IABMAS, EMI와 같은 주요한 국제 학술대회보다도 몇 곱절은 진지한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것이 당장 좌석의 맨 앞에는 당시 한국 토목공학 및 구조공학계의 최고 빅가이인 서울대학교의 고현무 교수님이 앉아 계셨다. 그 옆에는 마찬가지로 일본(정확히는 아시아 전체) 토목공학 및 구조공학계 최고의 빅가이이신 Yozo Fujino 교수님. 두 분은 진지한 태도로 모든 참가자들의 발표를 듣고 그야말로 끝없이 질문을 하셨다. 보통의 학회였다면 이러한 빅가이들이 나같은 미물의 발표를 들을 일도 없고, 질문할 일은 더더욱이 없다.
게다가 발표 순서도 상당한 긴장을 자아내는 구조였는데, 연차가 낮은 순부터 서울대-동경대-동경공업대가 번갈아 가며 발표를 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니까 첫날 아침은 대략 석사 1년차, 오후에 석사 2년차, 둘째날은 박사 1년차, 셋째날은 2-3년차... 그렇게 비슷한 나이의, 비슷한 시기의 학생들이 번갈아가며 발표를 하니 뭔가 각 학교별 참가자들의 수준이나 태도를 실감나게 비교할 수 있었다.
실제로 첫날 석사들의 발표를 마친 후 숙소에서는 긴급 회의가 벌어졌다. 동경대와 동경공업대의 발표 수준이 상상 이상으로 높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니 석사 1년차면 수업이나 겨우 들을 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다들 꽤나 구체적인 연구를 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대략 학부 졸업논문 수준의 연구였지만, 어쨌든 그것을 학술적인 발표의 형태로 만들어 내는 솜씨가 상당하였기에 구체적인 연구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기묘하게나마 한일전 같은 정서가 우리 안에 생겨나서, 어떻게든 잘 해보자는 기운이 숙소를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다들 저녁에 나가 나마비루나 먹자느니 하는 마음을 접어둔 채 발표자료를 수정하고 대본을 들여다 보았다. 게다가 나는 석사 종심 때 고현무 교수님이 지적해 주셨던 코멘트들이 실상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뒤늦게 노트북에 MATLAB을 설치하고 서울에서 급히 실험 데이터를 받아 분석에 돌입해야만 했다.
그렇게 우리는 약 이틀간 동경대와 숙소만 오가며, 최초의 그 기세등등한 동경 관광객의 기운은 전부 잃어버린 채로, 그야말로 연습만 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나는 기어코 맛집에 가야 한다며 홀로 숙소를 빠져나와 몇몇 오래된 소바집들을 들르고야 말았지만...
지나고 보면 그 때에 결국 발표를 잘 했었는지는 사실 전혀 기억에 나지 않는다. 후에 고현무 교수님께 이 얘기를 했더니 심지어 내가 간 것조차 전혀 기억하지 못 하시는 걸로 미루어 보건대, 딱히 발표를 잘 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발표의 수준 여부와 별개로 어쨌든 그 때에 느낀, '세상엔 나보다 잘 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실감'은 지금까지도 뚜렷하게 남아있다.
실제로 박사과정과 포닥, 임용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따금 우쭐해지려고 할 때나 혹은 한껏 게을러지려 할 때면, 2011년 동경대 주변 코인호텔에 박혀 이틀 내내 풍동실험 결과를 분석하던 그 때를 생각하곤 했다. 언젠가 국내 학술대회에서의 발표를 짐짓 가볍게 여길 때면, 후지노 교수님의 질문을 듣고 문자 그대로 제대로 서있기 힘들 정도로 다리를 후덜덜 거리며 진땀을 흘리던 그 순간을 떠올리곤 했다.
세상엔 나보다 잘 하는 사람이 많다. 나보다 진지한 태도로 연구에 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
부디 그런 실감을 경험하는 워크샵이었으면 한다. 시립대 근처에는 무슨 맛집이 있는지 찾아보다 말고 쉬는 시간에 자기 발표자료를 한 번이라도 더 열어볼 수 있는 그런 워크샵이었으면 한다. 자세한 건 아래 홈페이지에서...
1년에 게재하는 논문 숫자가 처참하기로 유명한 내 논문 작성 루틴이 궁금한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1) 일단 방학 때는 최대한 많은 데이터를 쌓아둔다.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를 구분하지 않고, 일단 전력으로 질주하는 것이다.
(2) 학기가 시작하면 그렇게 쌓인 데이터 더미를 뒤져 쓸만한 것들을 찾고, 적당히 조합해 논문 비슷한 걸 만들어 2–3개 정도 투고한다.
(3) 학기말쯤이 되면 몇 개는 리젝을, 몇 개는 메이저 리비전을 받는다.
(4) 이어지는 방학에는 그동안 만들어 낸 데이터들을 끌어모아 넙죽 엎드려 디펜스를 한다.
(5) 거기서 남은 데이터들과 새롭게 만든 데이터들을 또 모아, 학기가 시작하면 다시 2–3개의 논문 비슷한 걸 쓴다.
3단계에서의 2-3개가 전부 메이저 리비전을 통과하면 그 해에는 4–5편 정도의 논문을 게재하고, 깐깐한 리뷰어를 만나 전부 리젝을 당하면 한 편도 게재하지 못 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이 루틴의 핵심은 (1) 데이터를 잔뜩 쌓아두고, (2) 데이터 더미를 뒤져 쓸만한 것을 찾아내며, (3) 학기 중에 논문 비슷한 것을 만들어 내서, (4) 방학 때 부디 친절한(=허술한) 리뷰어를 만나기를 기도하는 것... 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번 방학이 지나고 나니 손에 들린 데이터가 썩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학생들이 게으르게 지낸건 전혀 아니다. 게다가 학생 숫자도 늘어 오히려 그들의 진도를 내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였다. 다만 산더미처럼 쌓여진 데이터 더미를 도무지 쑤셔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내일이면 학기가 시작인데 무언가 논문 비슷한 걸 만들어 낼만한 구다리도 딱히 보이지 않는다. 무슨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2–3년 전만 해도 괜찮은 AI 모델을 찾아 SHM 도메인에 적용해 보는 수준의 데이터로도 논문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가령 이상탐지라 하면, (1) UAD 관련 최신 논문들을 찾아보고, (2) 거기서 많이 쓰인 SoTA 모델을 슥 가져다 쓴 뒤, (3) “손상탐지가 잘 됩니다”라고 말하는 정도. 그런데 지금은, 소위 잘 치는 성님들의 경향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그 정도로 낮은 단계의 적용만으로는 ‘논문 비슷한 것’조차도 만들어 낼 수 없는 느낌이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괜찮은 AI 모델을 그냥 적용해서는 안 되고, SHM 도메인에 알맞게 적당히 수정해야 한다고 느낀다. 그리고 이 정도 단계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결국 AI 모델 기저에 있는 이론적 배경과 수학적 원리를 충분히 파악해야 한다. 단순히 ChatGPT에게 코드 수정해 달라는 정도로는 곤란하다. 결국 비교적 쉽게 결과를 낼 수 있어서 흥미를 느낀 AI에서도, 이제는 구조역학이나 풍공학을 다룰 때만큼의 수고를 들여야만 한다.
요컨대 아무 배경지식 없이 만들어진 모델을 블랙박스처럼 얹어놓고 숫자놀음으로 논문을 주장하던 야만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최소한 내부의 작동원리를 꼼꼼히 이해한 뒤 도메인에 맞게 다시 설계하는 '공학적 접근'이 요구되는 시대에 돌입했다고 한다면... 이는 학술 커뮤니티 입장에서 분명 필요한 일이고, 전체적으로 보아도 분명 좋아지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줄어드는 내 논문의 숫자만 빼면.
새로운 루틴을 개발해야 할 때이기도 하다. 그 때까지는 논문의 숫자가 비약적으로 줄어들테니 오세훈 시장님께는 미리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
생명과학과 조익훈 교수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시립대에서 가장 연구력이 훌륭한 교수님 중 한 분이시고, 그래서인지 나랑은 당연하지만 일면식조차 없다.
어쨌든 작년에 학교에서 세계 최상위 2% 연구자에 선정된 교수님들을 축하하는 행사가 있었고 연사로 나선 조익훈 교수님께서는 '나이가 들어도 세계 수준의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알려주셨다: (1) 하나의 주제를 쭉 이어서 연구할 수 있는 박사과정 2명, (2) 훗날 그러한 박사과정이 될 후보군인 석사과정 6명, (3) 훗날 그러한 석사과정 6명이 될 후보군인 학부연구생 10명. 박사 1, 석사 4, 학부 6이었나? 하여튼...이 정도 구성이 끊이지 않는 파이프라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
꽤 합리적인 조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나이가 들어서도 첨단의 연구를 하려면 나보다 앞선 자리에서 최신의 감각으로 연구 흐름을 놓치지 않고 아이디어를 떠올려 실제로 구현해 낼 사람이 1명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하는 박사과정이 4년 터울로 졸업한다고 하면, 2년 터울로 졸업하는 석사과정이 그래도 해마다 4-6명은 있어야 박사과정의 맥이 끊기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풀의 역할을 하는 석사 학생 4-6명이 우글우글 하려면 마찬가지로 학부 연구생이 10명 정도는 되어야 한다.
라고 생각하며 내가 속한 연구실을 돌아보니...
일단 나는 처음부터 연구실 최대 인원을 6명으로 한정했을 뿐 아니라 실제로도 6명 이상이 온 적도 없기 때문에 조익훈 교수님의 이상적인 구성은 자의든 타의든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다. 그나마 6명 구성에서 어떻게든 비슷하게 흉내를 내려면 박사과정 1명, 석사과정 2명, 학부연구생 3명 정도가 나에게는 가장 이상적일테고, 실제 현재 연구실에는 박사과정 2명, 석사과정 3명, 학부연구생 1명이 있으니 밸런스로 따지면 뭔가 아래쪽이 여러모로 약하다(=미래의 존속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할 수 있겠다.
처음 학부 연구생 4명이 아무 것도 없는 연구실에 들어왔을 때, 나는 그 학부 2-3학년 학생들을 마치 박사과정인 냥 대했다. 물론 연구의 난이도나 깊이는 학부생 수준이었지만, 어쨌든 그 네명이 각자 맡은 이슈에서 (나보다는) 최신의 감각으로 연구 흐름을 파악하며 (나보다는 총명한 두뇌로) 아이디어를 떠올려 (나보다는 빠른 손과 발로) 실제로 구현해 내기를 바라며 꽤나 진지하게 연구자처럼 대했다. 그리고 그러한 과도한 기대와 그들의 수고 덕에 나름 내 딴에는 없는 살림에 첨단의 연구 비슷한 걸 흉내낼 수 있었다.
6명 정도의 도란도란한 규모를 유지하려는 까닭에는 언젠가 연구비가 끊기더라도 생존하고자 하는 마음이 제일 크지만, 동시에 마음 깊숙한 곳에는, 연구실 구성원들이 어떠한 사람이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가 직접 듣고 만지고 이해하고야 말겠다는 결의(?) 비슷한 것이 있다. 그러한 체결감이 있었기 때문에 그 시절의 나는 학부연구생이라는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고 그 때 아무 것도 없는 연구실에 찾아온 친구들을 박사과정마냥 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조익훈 교수님처럼 왕성한 연구력과 훌륭한 인품을 가지고 계속해서 학생 두자리수를 유지하지 못 한다면, 도리어 구성원 모두의 동태를 면밀히 파악하며 그들 모두를 마치 박사과정처럼 지지고 볶는 것이 나름 비인기연구실의 유효한 생존 전략이라는 반인륜적인 글... 어째 제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예전에는 여러 영역의 심사에서 글솜씨만으로도 1차적인 스크린이 가능했다고 한다.
가령 영어 논문이다 치면 영어 문장을 얼마나 잘 썼는지를 가지고 데스크 리젝을 결정한다. 국문 제안서나 지원서라고 하면 뭐 전체적인 문체나 맞춤법, 형식 준수 여부로 어느 정도 스크린을 한다. 내용도 읽지 않고 너무하다 할 수도 있겠지만 신기하게 이러한 소위 '문서의 와꾸'랑 최종 퀄리티가 얼추 정비례 하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으로 정말 엉망진창인 것들을 읽지 않고도 거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근데 요새는 ChatGPT나 Gemini 등을 위시로 하는 LLM 덕에 전체적인 글쓰기 실력이나 포맷 맞추는 퀄리티가 상향 평준화 되었다. 영어도 이제 원어민 레벨은 아니겠지만 중국 한국 일본 파키스탄 에디오피아까지 다들 거슬리지 않는 수준으로 잘 쓰고, 당장 그걸 심사하는 우리도 원어민이 아니기 때문에 거슬리는 부분이 없다. 지원서 같은건 이제 입시하는 고등학생들 자기소개서에서조차 그 흔한 비문을 찾아볼 수가 없다.
글솜씨로 1차 스크린을 못 하니 이제는 모든 지원서를 읽어봐야 한다. 단순히 시간이 늘어나는 것도 힘들지만, LLM의 그럴듯한 포장과 별개로 전체 지원자/투고논문 대비 엉망진창의 비율은 과거와 유사하기 때문에, 한참 읽다가 '개똥이잖아'를 발견하는 횟수가 늘어나는 것이 가장 큰 스트레스다.
그래서 심사하는 사람들(=나)도 '니들도 ChatGPT 썼으니 나도 쓴다' 마인드로 1차 스크린을 AI/LLM으로 돌리는데...
아직까지 내가 느끼기에 AI가 스타일 변환(개똥같은 글->괜찮은 글)이나 평균 수준의 창작(형식적인 문장들 만들어내기)에는 탁월한 반면, 평가는 잘 못 한다고 느낀다. 평균 혹은 이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의 아웃풋을 뱉어내야 하는 AI 특유의 경향이, 결론적으로 독자적인 관이 필요한 가치판단이나 의사결정에 있어서는 도리어 마이너스가 되는 느낌이랄까.
가령 공고문이랑 전혀 다른 개똥같은 제안서를 하나 껴서 올려도 가끔은 '제일 완성도가 높다'는 식으로 칭찬해 준다. 그 칭찬의 이유는 꽤나 그럴듯하지만 실상 아무말 대잔치 수준이다. 그 뿐 아니라 동일 플랫폼(ChatGPT, Gemini 뭐가 됐든)에서 같은 제안서에 대해 동일한 프롬프트로 평가를 요청해도 반복할 때마다 결과가 계속 달라진다. '다른 세션에서는 2번이 최고라는데?' 하면 곧바로 2번의 평점이 올라가기도 한다.
명확한 평가 기준이 없어서인가 싶어 무척이나 디테일한 평가 가이드라인을 줘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다른 세션에서 새롭게 요청하면 결과는 또 달라지고, 채팅창 끄고 새로 시키면 또 달라지고... 내가 사용법을 잘 몰라서일수도 있지만, 어쨌든 내 경우 중요한 평가나 심사에 있어서는 AI의 도움을 받지 못 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흥미롭다고 느끼는 지점은, 오히려 LLM으로 마사지를 하지 않은 글들이 AI 마사지로 무색무취해진 서류더미 사이에서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서툴고 투박하거나 약간의 비문이 있으면 오히려 '그래 이게 고등학생이 쓰는 글이지'라며 반갑기도 하고, ChatGPT는 절대 만들어 내지 않는 '불필요하게 긴 호흡'의 문장(바로 제가 쓰고 있는 이것)들 역시 AI 산출물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리듬감을 전달한다.
근시일내에 AI가 쓴 글을 AI가 평가하고 사람은 단지 프롬프트만 전달하는 세상이 올 수도 있겠다. 그러나 최소한 평가의 영역에서만큼(창작 역시 AI가 뱉어준게 쓸만한지는 취사선택 해야 한다는 면에서) 여전히 인간이 해야 할 일이 존재하는 듯 하다. 그리고 설사 AI가 모든 창작과 평가의 세계를 완전히 지배하는 순간이 온다 하더라도, 오히려 평균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의 고유한 쿠세(?)는 더욱 가치를 가지게 되지 않을까.
여담이지만 아무리 AI에게 사정을 해도 이런 똥글을 써주진 않는다. ChatGPT한테 물어보니 '연구실 홈페이지에 이런 개인적인 글을 쓰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는 엄중경고를 들었다 (정말입니다).
개인적인 이유로 2026년에는 국제학회에 활발히 참석하기 매우 어려워졌다. BBAA 같은 국제풍공학회야말로 (놀러)가기 좋지만 아마도 참석이 어려울테고(사실 오라고 한 적도 없다), 그나마 하나 정도 간다면 EMI. 그것도 최대한 짧게 가 보려고 한다. 화요일에 출국해서 금요일에 귀국하는 대가들의 빡빡한 일정을 나도 경험해 볼 계획이다.
그 대신 가능한 학생들은 최대한 많이 보내보려고 한다. 선호와 시윤이는 EMI에 초록을 제출했고 훈이는 i3CE에 초록을 냈다. 은찬이의 연구 역시 EMI에서 발표하면 좋을 것 같은데... 더불어 한국에서 9월에 열리는 IABSE에도 시윤이랑 선호가 하고 있는 연구가 가장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을 때를 가정하여 초록을 각각 하나씩 제출했다. 그나저나 IABSE가 할 무렵 시윤이는 이미 졸업하고 떠났을 때라 아마도 내가 대신 발표를 해야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교수 없이 가는 해외학회만큼 학생들에게 위험한(=좋은=유익한=신나는)건 없다고 알려져 있으나..
EMI 2026
June 2-5, 2026
Boulder, Colorado
Abstract Submission Opens - Nov 1, 2025
Abstract Submission Deadline - Jan 15, 2026
Early Registration Opens - Feb 15, 2026
Early Bird Registration Deadline - Mar 31, 2026
i3CE 2026
June 14-17, 2026
Incheon, South Korea
Abstract Submission Deadline - Nov 15, 2025
Full Paper Submission Deadline - Feb 1, 2026
Early Bird Registration Deadline - May 19, 2026
IABSE Congress Incheon 2026
September 16-18, 2026
Incheon, South Korea
Abstract Submission Deadline - Sep 15, 2025
Full Paper Submission Deadline - Mar 15, 2026
Early Bird Registration Deadline - Jun 30,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