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것들 (2025)
The Things Left Behind
남겨진 것들 (2025)
The Things Left Behind
한 정치인은 연설에서 “1980년 5월 광주가 2024년 12월을 이끌었다”고 했다. 그 연설이 내게 남겨진 광주를 다시금 더듬어 보게 했다. 내게 남겨진 광주는 지극히 사적인 기억들 뿐이지만 …
셋째 큰아버지는 사범대학을 졸업해 교단에 서서 평범한 수학교사로 제자들을 가르치다 교감이 되고 교장이 되고 이제는 은퇴를 해 전원주택에서 평온한 삶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나의 셋째 큰아버지는 80년 5월 자신의 고향 광주에서 그 삶을 잃을 뻔 했다. 계엄군을 피하려고 3층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다리가 골절된 큰아버지를 숨겨준 옆 건물 은행원이 있었기 때문에 그 삶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아빠가 말하길 집에 돌아온 큰아버지를 보고 할아버지는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불같이 화를 내었다고 한다. 그렇게 화를 내었음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는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나누어 주었다.
그때 무등산 아래 살던 엄마는 버스를 타고 가는 시민군을 보았다 했다. 그 시민군들은 아일랜드의 유명한 반전 노래를 개사한 곡을 부르며 버스 벽면을 각목으로 두드리고 다녔다고 한다. 엄마의 버스 목격담을 들은 나는 주남마을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래서 주남마을을 찾았다. 한때 학살의 땅이었던 그 마을은 조용하고 평온했다. 나는 그 분위기가 퍽 마음에 들었다. 짙은 녹음이 드리운 지금 그곳은 분명 학살보다는 생명의 땅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곳이었다. 거기에서 나는 왜 학살의 장소는 늘 어둡게만 남아있어야 하나 작은 질문 하나를 마음 속에 심었다. 그 질문은 내게 꽤 진득하게 붙어 있었다. 생각해보면 광주는 매번 어두운 과거로 비춰졌던 것 같다. 그래서 주남마을에 간 나는 더더욱 광주가 도운 수많은 현재들과 도울 수많은 미래들을 떠올리며 셔터를 눌렀다. 왜냐하면 남겨진 것들은 소중한 것들이니까.
광주가 도운 수많은 현재들 중에는 두 번의 탄핵 광장도 있다. 그런 탄핵 광장을 끝까지 남아 지키다 보면, 남겨진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집회 참여자들이 쓰고 간 피켓들, 단위별로 배포한 스티커들부터 때로는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부서진 교통 안내 시설물의 파편들까지 다양한 것들이 남겨져 있었다. 광장은 탄핵이라는 목표에 도달하자 지난하게 싸워왔던 시간과는 다르게 재빨리 닫혔다. 그리고 그에 따라 누군가는 승리를 선언했다. 하지만 승리로 닫힌 탄핵 광장에는 물건만 거기에 남겨지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았다. 거기에서 나온 목소리들도 대부분 남겨진다는 것을 알았다.
아직도 복직을 위해 고공에서 싸우는 해고노동자들이 있다. 아직도 산재로 인해 일터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아직도 장애인들은 원하는 곳으로 제때 이동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성소수자들은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어디선가 여성혐오 범죄는 일어나고 있다. 누군가가 승리를 확신한 순간에도 씁쓸한 표정을 지어야 하는 사람이 있는 세상이다. 한 정치인의 말마따나 광주가 현재의 민주주의를 지켰다. 그런데 그렇게 지킨 민주주의가 오월 광주를 만들었던 이들이 원했던 민주주의인지는 모르겠다. 분명 승리했지만 혀끝에서 계속 쓴 맛이 남아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