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세계
Into the New World (2023 - 2024)
다시 만난 세계
Into the New World (2023 - 2024)
종종 투쟁 이후의 모습이 궁금해지는 현장이 있었다. 투쟁을 하러 다녔던 그 곳들의 모습이 그리웠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투쟁을 하던 그 순간의 감각을 다시 느끼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괜한 의무감 때문이었을까?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온 생각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 곳에 다시 가야만 한다는 강박이 들었던 현장들이 있었다.
그 강박에서 기어이 떠올라버린 질문 하나에 잠식되었다. “그 ‘곳’은 그대로일까?”
이 질문에 반쯤 먹혀버린 채 강박적으로 집착했다. 나는 내가 그 곳을 다시 방문할 때 어떠한 감정을 느끼게 될 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태로 무작정 강남역으로 향했다. 신논현역까지 버스를 타고, 정류장에서 그 곳까지 걸었다. 원래 15분 정도면 걸었던 거리를 30분이나 걸려 도착한 강남역 10번 출구는 너무나도 일상적인 지하철 역 주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강남역 10번 출구에 도착한 나는 무언가 기대하고 있었던 사람처럼 금세 실망했다. 가방과 겉옷을 벗어두고 그때 앉았던 나무 데크에 다시 앉았다. 고요하고 적막해진 그곳의 공기가 어색했다.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다가 어색한 공기를 깨고 일어났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또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발이 가는 대로 거닐며 그저 그 ‘곳’의 모습을 담았다.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며 그 곳을 담는 내내 마주한 불가피한 변화 앞에서 허탈함이 몰려왔다. 현장이 손쉽게 일상의 모습을 되찾아 간 것은 내 머리 속 정보 처리 회로에서 도무지 처리하지 못하는 데이터였다. 그렇게 어색함을 담는데 어디선가 모를 익숙함이 느껴졌다. 연고 모를 익숙함과 함께 나는 광주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가는 내내 그 익숙함에 대하여 생각했다. 광주에 도착했을 때 강남역에서 느꼈던 어색함 속 익숙함이 다시금 느껴졌다. 그제서야 강남역이 광주와 겹쳐 보였다. 이내 광화문과 제주가 이미 겹쳐진 ‘곳’들 위로 한 겹 두 겹 겹쳐졌다. 강남역에서 시작한 잃어버림이 광주로, 광주에서 광화문으로, 광화문에서 다시 제주로 나를 이끌었다.
한 때 현장이었던 곳이 일상적으로 바뀌어 버린 그 ‘곳’들의 모습이 꼭 닮았다 생각했다. 그 닮음을 담는 내내, 시간에 따라 공간 자체와 공간 속을 사는 이들이 가진 괴리를 보았다. 겹쳐진 ‘곳’들에서 나는 공간 자체보다 공간 속을 사는 이들을 생각했다. 그 ‘곳’의 공간 자체는 끊임없이 변화의 손을 잡으려 하지만, 공간 속에 있는 이들은 쉽게 변화의 손을 잡지 않는다. 공간 속에 있는 이들은 그 때의 그 공간과 지금의 그 공간이 별다를 바 없는 그 ‘곳’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전혀 달라진 것 없는 현실의 잔인함이다. 공간의 빠른 변화를 보며 현실의 변화를 지난하게 바랄 뿐이다.
길을 잃고 나서야 나는 투쟁 이후의 모습이 궁금한 현장이 있었던 이유를 찾았다. 그리고 나서 강박에서 떠올라버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시간을 잡아 둘 수는 없으니 현장의 모습이라도 비슷하길 바랬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가졌던 기대와는 달리, 현장은 전혀 다른 세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전혀 다른 세계를 맞이하는 것임에도 왠지 모르게 다시 만난 것처럼 느껴지는 ‘곳’이 있다. 천성이 그런 걸까. 길을 잘 못 들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매 번 도달하고자 한 곳에서 벗어나 그 ‘곳’에 가 있다. 어쩌면 그 ‘곳’에 도달하고 싶었던 것이 원래의 계획이었는지 모른다.
*제목 <다시 만난 세계 (Into the New World)>는 소녀시대의 2007년 데뷔 앨범 타이틀곡에서 따왔다. 이 곡은 2016년 일어난 이화여자대학교 미래라이프대학 신설 반대 집회에서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이 대학본부 측과 경찰에 막혀 있던 상황에서 부른 이후로 2016년 박근혜 탄핵 집회 등 여러 집회 및 시위에서 불려지기 시작하였다. 이 곡은 특히 성 소수자나 젠더 관련 사안의 집회에서 자주 불리고 있다.
2024년, 딥 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성범죄 사건이 전국 학교를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발생했다. 이에 대한 대책 수립과 가해자 처벌을 촉구하기 위해 서울여성회와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가 최초 제안을 하여 만들어진 ‘딥 페이크 성범죄 OUT 공동행동’ 주관으로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8월부터 11월까지 총 11회차의 말하기대회를 진행하였다. 이 말하기대회에서 역시 <다시 만난 세계>를 불렀다.
강남역 10번 출구, 서울 | Gangnam Station 10th Exit, Seoul (2024)
강남역 10번 출구, 서울 | Gangnam Station 10th Exit, Seoul (2024)
강남역 10번 출구, 서울 | Gangnam Station 10th Exit, Seoul (2024)
강남역 10번 출구, 서울 | Gangnam Station 10th Exit, Seoul (2024)
강남역 10번 출구, 서울 | Gangnam Station 10th Exit, Seoul (2024)
남문로, 광주 | Nammun-ro, Gwangju (2024)
전남대학교, 광주 | Chonnam National University, Gwangju (2024)
전남대학교, 광주 | Chonnam National University, Gwangju (2023)
전남대학교, 광주 | Chonnam National University, Gwangju (2023)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광주
Chonnam National University College of Art, Gwangju (2024)
광화문, 서울 | Gwanghwamun, Seoul (2024)
광화문, 서울 | Gwanghwamun, Seoul (2024)
광화문, 서울 | Gwanghwamun, Seoul (2024)
제주시, 제주 | Jeju City, Jeju (2023)
서귀포시, 제주 | Seogwipo City, Jeju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