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민 개인전 <세개의 방>
2024.12.10~19 하랑갤러리, 서울
2025.2.1~4. 30 트리비움, 평택
Lethe (2024) 90.9x72.7cm, Acrylic on linen
망각의 강 레테. 망자가 저승으로 가기 전 건너는 다섯개의 강 중 하나. 메모장에 적어두었던 이 신화의 이야기를 나의 시각으로 그려보고 싶었다. 파란 하늘의 현실에서 관문을 통화한 여성은 이미 레테의 강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 검은 강 위에 녹듯이 흘러가는 그녀의 그림자는 기억의 소멸이 진행되고 있음을 뜻한다. 다른 곳에서 건너온 검은 표범의 물 그림자에는 흐름이 없다. 기억의 소멸이 완료되고 육식본능을 잃은 짐승의 눈에는 여성을 향한 살의가 보이지 않는다. 강을 건널 준비가 끝난 것이다.
밀담 Private conversation (2024) 60.6x60.6cm, Acrylic on linen
노들섬에 아이와 함께 앉아있던 강변. 버드나무라는 단어를 메모장에 남긴다. 바람에 흔들리는 기운이 늘 매력적이라 생각했던 대상이었다. 그 단어에 미니카를 랜덤으로 붙여본다. 버드나무와 미니카. 두개의 단어는 이제 그들끼리의 에너지를 발산한다. 음산한 나무 아래 차 안에서 오고갈것 같은 비밀 이야기. 그 밀담을 듣고싶어 하는 귀. 누군가의 침실 같기도, 화성의 표면 같기도 한 방에, 나는 이 단어들간의 작용이 만들어낸 에너지를 그림으로 옮긴다.
Donde Voy (2024) 53.5x45.5cm, Oil on linen
한창 무덥던 올 여름, 아버지의 부고를 받은 한 사람을 만나고 왔다. 작은 배로 바다를 지나는 삶의 여정에서 그는 잠시 길을 잃는다. 가장 큰 상심의 시간 한가운데서 표류한다. 이 그림이 누군가에겐 기쁨의 소식과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의지로 느껴져도 괜찮겠다 생각한다. 어차피 한개의 선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어릴적 듣던 스페인어 노래에서 온 작품명.
세개의 방 Three rooms (2024) 60.6x60.6cm, Acrylic on linen
부조 작품 속 세개의 방을 관조하는 사람. 이 사람의 입장에서 이번 전시의 작업들은 출발했다. 문을 노크하면 누가 안에서 기다릴지, 무엇을 보게될지, 어떤 이야기를 주고 받을지 알수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흘러나오는 커피향을 맡으며 문을 여는 일이다. 내 안에는 열어볼수 있는 방이 무수히 많고 이것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참 근사한 일이다.
Spectre (2024) 37.9x45.5cm, Acrylic on linen
실체없는 적이 숨통을 조여오는 밤, 남자는 자신의 ppk 권총과 그들이 노리는 키를 탁자에 올려놓고 숨을 고른다. 언제든 나를 부인할수 있는 사람들은 안전가옥에 실체를 숨기고 시계탑에는 저격수가 있을지도 모르는 긴장감. 007을 몹시도 좋아했던 소년은 그가 홀로 감당해온 위험에 대해서 이제 조금 이해를 하는 나이가 되었다.
Old man (2024) 45.5x60.6cm, Oil on linen
보통 그림을 보는 사람의 뒷모습은 가장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한다. 잠시나마 무엇인가에 집중한 인간의 뒷모습. 이 노인이 응시하는 마크 로스코의 그림 아래에는 다른 그림이 스케치 되어 있다. 얼어붙은 강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소년들.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정경을 연출하고 싶었지만 결과물은 내 마음에 그다지 차지 않았다. 전시를 며칠 앞두고 첫그림을 덮으면서 수정을 했다.
스케치 하는 소년 (2024) 72.7x60.6cm, Oil on linen
런던의 테이트모던 미술관. 스케치에 푹 빠진 두 소년을 모습을 보았고 셔텨를 누른 것이 십여년 전의 일이다. 아마도 오른쪽 소년의 한다리를 걸친 포즈와 홍조를 띤 얼굴이 강렬해서 사진에 담았을 것이다.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나는 오랜 시간이 흐른 이 순간을 아이패드에 스케치 해보았다. 회벽과 나뭇바닥의 자연색을 무시하고 블루그린의 톤으로 실험을 해봤는데 아마도 영화의 후반작업처럼 색을 입힌 영상들의 익숙함에서 온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실험은 두소년과 벽의 그림을 도드라지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 마지막의 붓터치를 더해가면서 마음 깊이 행복감을 느낄수 있었던 그림.
알리칸테의 오후 Afternoon in alicante (2024) 60.6x72.7cm, Oil on linen
한 기타리스트가 타국에서 홀로 연습을 했던 공간은 어떤 곳일까. 기타리스트 박규희씨는 그 연주만큼이나 많은 영감을 선사하는 사진을 찍어왔다. 때로는 롤라이 플렉스 필름에 혹은 디지털에도 이국의 풍광과 정취를 고스란히 느끼게 하는 매력이 담겨 있다. 그녀가 연주하는 절제된 아름다움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어렴풋이 상상이 되는 오후의 건물 옥상.
Alicante (2024) 34x38.5cm, Oil pencil on paper
발렌시아 전역에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 산타바바라 성 주변의 집들은 하나둘 불을 밝힌다. 거대한 바위산의 길을 따라 빛나는 이 역광들은 천연의 요새를 비추고 지중해에서 바라보는 이는 그 위엄에 사로잡힐 듯하다. 그 옛날의 병사는 칠흑같은 어두움 안에서 어떤 장관을 보았을까. 기타리스트 박규희씨의 사진에 영감을 받아 그림.
Marken (2023) 46x36.3cm, Oil pencil on paper
아내와 어린 두아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돌아보았던 섬 마르켄. (지금은 육로로 연결되어 있다) 암스테르담 북동쪽에 위치한 아름답고 소박한 곳이었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던 북해의 해변에서 기저귀를 차고 물장구치던 아들, 도톰한 감자튀김이 기억이 난다.
Lethe (2024) 45.5x53cm, Oil on linen
레테 연작의 시작점이 된 그림. 그날 런던의 검푸른 운하에는 하얀 바지선이 후진을 하고 있었다. 그 광경은 몽환적이면서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배가 화면을 향해서 역행하는 모습은 삶의 시작점으로 회귀, 탄생, 죽음을 연상시켰고 십여년이 지난 지금 망각의 강 ’레테‘라는 메모에 합치되는 느낌을 가질수 있었다. 배의 키를 잡은 남자의 옆에는 그의 어릴적 자아가 후진을 이끌고 있다. 기억의 시작점으로 회귀.
Rainy day (2011) 90.9x72.7cm, Oil on linen
2011년, 한창 일러스트레이터로 삶을 꾸려가면서도 회화 작업에 대한 열망을 품고 있었다. 이 그림의 어느 한 부분은 어린 꼬마였던 아들이 도운 터치가 들어간 것으로 기억한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생계의 방편은 변모해가지만 이때의 열망이 현실로 이어질수 있어서 기쁘다.
code 24-1 (2024) 40.9x53cm, Oil on linen
제주 금오름을 산책하면서 만난 정경. 침엽수림의 높이 때문에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진입로에 햇살의 조각들이 나무에 반짝거리며 빛을 낸다.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보면 마치 자연이 나에게 보내는 코드처럼 느껴진다.
Code 24-2 (2024) 194.5x80.3cm, Oil on linen
제주 금오름을 산책하면서 만난 정경. 침엽수림의 높이 때문에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진입로에 햇살의 조각들이 나무에 반짝거리며 빛을 낸다.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보면 마치 자연이 나에게 보내는 코드처럼 느껴진다. Code 24-2는 이 느낌을 파노라마로 도식화 해보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Home (2024) 65.1x53cm, Oil on linen
새벽녘의 푸르스름한 공기 사이로 집의 불이 켜진다. 아내가 차를 끓이고 메모를 한다.
공들인 시간이 흐르면 동이 트고 우리는 집 둘레의 길로 걸어갈 것이다.
제주의 집을 짓는 과정은 지난했고 우리 가족에게 상처를 남겼다. 불필요한 시간과 에너지가 우리의 발목을 잡았지만
이제는 그런 것들을 뒤로 하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Wall (2024) 65.1x50cm, Oil on linen
주저함,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그림. 마치 바위같은 단단하고 거대한 숲. 그 어두움에 발을 들이면 보통은 예상과 다른 것들을 경험하게 된다. 들이치는 빛과 새소리, 새로운 공기와 흙내음, 시시각각 변화하는 정경들. 숲에 발을 들여야만 내 앞에 펼쳐지는 것들이다. 화면의 중앙에는 숲의 입구가 있고 들어가길 주저하는 사람이 있다. 주변을 맴돌며 흔들리고 있다.
Joshua tree (2024) 52.7x33.2cm, Oil on linen
“천사의 나팔소리는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고
위정자들은 피의 댓가로 축배를 든다.”
손이면서 동시에 나무인 것의 한기운데에는 고통의 못자극이 있다.
가자 지구의 비극을 접하면서 스케치한 그림.
Al di meola (2024) 60.6x60.6cm, Oil on linen
기타의 거장 알 디 메올라의 여름 휴가 정경에서 모티브를 얻은 그림. 점묘적인 터치와 마감을 적극적으로 시도해본 첫 그림.
낙원의 밤 Night of paradise (2024) 90.9x72.7cm, Oil on cavas
인간이 지구상에서 사라질 때 비로소 지구는 낙원이 될것 같는 생각을 가끔 한다. 물에 잠긴 오름들 사이로 인간이 남긴 풍력발전기만이 돌고 있다. 연극적 설정에 조선의 ‘일월오봉도‘ 구조를 차용하고 있다. 다섯개의 오름, 해와 달의 원과 같은 회전체, 양쪽의 소나무를 대체한 커튼을 통해 전체를 조망하는 구도를 취하고 있다. 영화 ‘낙원의 밤’의 제목에서 따온 작품명.
Untitled (2021) 10x10cm, Ink on paper, Monotype printmaking
제주의 밤바다. 모노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