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가난한 달동네 면서 80년대 분위기가 남아있는 추억의 도시, 언덕과 끝을 알수 없는 골목길이 이어지는 곳
삼양동은 현재 고령층위주의 주택가로서 경전철 삼양역 근처에 위치해 있다.
삼양동은 서민들의 삶 자체인 동네이다. 최초 서울시 수재민들이 이주해 터전을 잡은곳이고 지방에서 서울에 올라와서 가장 저렴하게 서울살이를 하는 동네 였다. 그래서 청년 전태일도 삼양동에 거주했고 걸어서 청개천을 출퇴근했다. 그리고 아낀 차비로 풀빵을 사서 시다소녀들에게 주었다고 한다. 삼양동 강북구는 통일 운동을 해오셨던 고 문익환 선생님과 한신 대학교로도 유명한곳이다. 주변에는 공초 오상순 선생님의 묘지가 있다. 이를 통해서 서울둘레길을 둘러볼수도 있다.
삼양동(三陽洞)은 서울특별시 강북구에 위치한 행정동으로, 법정동은 미아동이다. 솔샘로를 경계로 삼각산동과 인접하고 서남쪽으로는 수유1동과 경계를 이룬다.
1949년 미아리가 서울특별시에 편입될 당시 구청장들이 모여 “삼각산의 양지 바른 남쪽 동네”라는 뜻으로 행정동명을 제정하였다. 이때의 삼양동은 현재 삼각산동과 삼양동 일대로서, 그 이름은 법정동명도 아닌 행정동명이었지만 시내버스 노선표지에서도 일부 사용되고 있었을 정도였으며, 주민들도 미아동이라는 법정동명보다 삼양동이라는 이름을 더 즐겨 쓴다.
삼양동은 과거 가내 수공업 단지로서 대부분 집들에서 가내수공업을 통한 생산활동을 해왔던 동네로서 중국의 생산기지화 로 급격하게 쇠락한 도시이기도 하다. 우리집에서는 바늘샘지 공장을 하고, 이후에는 학생 교재용 현미경 렌즈를 깍는 일을 했다.
비록 부유한 동네는 아니지만, 마을내 많은 가구는 저마다 작은 규모의 가내수공업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 가면서 삼양동 근처에는 극장 들과 레코드점등 있는 삭막하지 않은 동네였다.
마을이 가내수공업 공장이던 곳
•갈포벽지 공장(현재 길음교회)
•직물공장(요꼬기계)
•모자공장
•렌즈공장
•바늘샘지
극장이 있었던 곳
•주변 극장이 3곳 : 삼양극장, 아폴로극장,
대지극장
문화, 공간이었던 곳
•레코드점 : 동네 레코드점에서 음악이 흘렀고 이후 비디오가계로 변화 된후 사라졌다.
•서점 : 동네 서점 이지만 여러곳에 있었던 지역이다. 이후 대형서점이 나타나면서 급속히 쇠락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