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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서재

04/26 책 『리타의 일기』(안리타, 홀씨의 일기, 2023) / 오상은



글쓰기는 때로 말보다 솔직하다. 침묵은 정제되지 않은 감정이 언어로 쏟아지기 전까지의 시간이며, 그 고요 속에서 문장은 자신의 내장을 꺼내 보이듯 적혀 나간다. 『리타의 일기』는 바로 그러한 글쓰기의 산물이다. 이 책은 수많은 말이 가능하지 않았던 겨울의 시간 속에서, 안리타 작가가 홀로 자신의 삶과 언어를 정면으로 마주한 기록이다. 다듬지 않고, 퇴고하지 않은 글. 고백의 순간을 유예하지 않은 글. 『리타의 일기』는 그 점에서 자전적 글쓰기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는 동시에, 에세이즘이라는 글쓰기의 윤리적 지형을 탐색하게 만든다.

『리타의 일기』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자전적 글쓰기의 형식과는 거리가 멀다. 어떤 기승전결도, 의도된 회고나 교훈도 없다. 대신 이 책에는 쏟아지듯 적힌 날것의 문장들, 작가 자신의 내면에서 직접 길어올린 감정의 단상들, 때로는 무엇도 설명하지 않는 말들이 적혀 있다. 그것은 서사로 조직되지 않은 시간의 조각들이며, 고백조차 아닌 고백으로 다가온다. 이로써 『리타의 일기』는 자전적 글쓰기를 “삶을 돌아보는 장르”가 아닌, 지금 이곳의 감정과 사유를 직면하는 글쓰기 행위로 바꾸어 놓는다. 

자전적 글쓰기를 다룬 강미란의 연구는 글쓰기의 치유적 가능성을 직면-고백-동화-자기이해의 구조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치유는 무엇보다도 고백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이 고백은 반드시 아름답고 완성된 언어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글쓰기가 치유로 작동하는 순간은 문장이 실패하고, 감정이 과잉되며, 언어가 흔들리는 그 지점에서 비롯된다. 『리타의 일기』의 글들은 바로 그 흔들림을 정직하게 담고 있다. 작가는 그 흔들림을 정제하거나 재구성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흔들림을 견디며, 자신을 타자에게로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그 지점에서 『리타의 일기』는 자전적 글쓰기의 가장 윤리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이 책의 진정한 독창성은 바로 그 날것의 상태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완성된 문장, 아름답고 정돈된 삶의 묘사를 통해 감동을 얻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리타의 글은 그 반대편을 고집한다. 퇴고하지 않은 글, 감정이 너무 빨리 문장을 앞서 나가는 글, 때로는 어떤 사유도 남기지 않는 문장이 우리를 마주한다. 그로 인해 『리타의 일기』는 독자를 향한 ‘설득’보다는 자기 내부의 발화에 가까운 자기 존재의 증명이 된다. 이 책은 우리에게 말한다.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건 누군가를 위한 글이 아니라,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글이다.” 

이러한 쓰기의 태도는 자전적 글쓰기를 넘어, 에세이즘이라는 보다 넓은 글쓰기의 지형과 연결된다. 에세이란 ‘시도’ 라는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완결된 진술이 아니라 사유의 진행형이며, 정답이 아닌 질문의 양태로 존재한다. 몽테뉴, 바르트, 아도르노 등으로 이어지는 에세이 전통은 개인의 사유가 어떻게 세계를 관통할 수 있는지를 탐색하는 과정이다. 『리타의 일기』는 에세이적 글쓰기의 이러한 본성을 날것의 언어로 실현한다. 작가는 이 책에서 어떤 ‘글쓰기의 결론’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생각, 감정, 무기력함, 사랑, 외로움 등을 있는 그대로 쏟아낸다. 그 언어는 정리되지 않았지만 정직하고, 완성되지 않았지만 살아 있다. 그것은 자기를 해체하면서 사유를 발화하는 글쓰기다. 에세이즘은 바로 그러한 쓰기의 태도이자 세계에 대한 태도이다. 

『리타의 일기』는 이처럼 자전적 글쓰기와 에세이즘의 경계 어디쯤에 서 있다. 그것은 문학도, 철학도, 일기도 아닌, 말할 수 없는 것을 쓰기 위한 한 사람의 필사의 기록이다. 그것은 삶을 구조화하지 않으며, 오히려 삶의 균열을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을 통해 글쓰기를 ‘존재의 실천’으로 전환시킨다. 이 책을 읽는 일은 누군가의 일기를 훔쳐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존재하기 위해 어떻게 글을 쓰는가를 목격하는 일이다. 

결국 『리타의 일기』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왜 쓰는가?" 그 질문에 우리는 쉽게 대답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질문을 우리에게 돌려주며, 쓰는 행위가 곧 존재를 감당하는 방식임을 말해준다. 글쓰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기억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를 통과하는 나를 감당하고 재구성하는 것이다. 『리타의 일기』는 그러한 쓰기의 힘과 윤리를 몸소 보여주는 책이다. 정답 없는 시대, 너무 많은 말이 쏟아지는 시대 속에서, 이 날것의 일기장은 말한다. 우리는 여전히 글을 쓰며 살아갈 수 있다고. 

소현문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월드컵로 357번길 11-20 | 070-8121-4827  | 운영시간 : 12:00~19:00, 매주 수요일 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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