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2 책 『살갗 아래』(토머스 린치 외, 아날로그, 2020) / 신유보
소현서재의 발제가 소현문의 전시와 반드시 연계될 필요는 없다는 공지를 봤지만 ⟪평화 문해력⟫이라는 기획 전시 제목을 보고 나는 그래도 어딘가 관련이 있는 책을 다루고 싶었다. ‘평화’…. 아, 평화……. 얼마나 멀고 까마득한 단어인가.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몸과 마음의 문제였다. 근 몇 년간 이전에는 겪어본 적 없는 몸의 변화를 느끼며 노화를 직접적으로 체감하고 있기 때문일 테다. 그러던 중 어느 글방 모임 종료 후 글방 지기에게 선물 받은 책이 눈에 들어왔다. 페미니즘과 질병 관련된 책을 모아놓은 책꽂이에 서늘한 은빛 책등 위로 새겨진 붉은 제목. 그래서 이렇게 몸에 관한 에세이 『살갗 아래』를 다루게 되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몸이란 내가 나를 적극적으로 추방하는 일에 가깝다. 꿈에서 기상을 반복하는 아침이나 잦은 소화제 복용을 줄이기 위해 선택하는 소식. 어쩌다 계단을 이용했을 때 가빠지며 나를 채근하는 듯한 숨소리. 내가 아는 원래의 나와 달라진 나의 면면. 나의 몸이 너무나 나의 바깥에 있다고 느껴질 때 이것을 어떻게 다스려야 잘 살 수 있는 것인지 통 모르겠는 고단한 마음.
‘여름의 한 독서 모임에서 나눴던 이원론적 사고방식이 어떻게 반페미니즘적인지 이야기 나눈 것이 생각난다. 나는 아주 고집스럽게 스스로를 정신-몸으로 나누어 여기고 있다. 자칭 페미니스트의 페미니즘 하기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이런 식으로 매일 실패다.’
작년에 내가 쓴 몸에 관한 글의 일부다.
그리고 본 책에 실린 박연준 시인의 추천사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몸과 나는 분리될 수 없다.’
‘영혼은 몸을 벗어나 존재할 수 없다.’
‘사람들은 때로 몸이 곧 자신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현대사회가 우리의 몸-마음을 어떻게 구분 지어 접근하게 함으로써 이 고통과 혼란을 모른척하는지 어렴풋이 감각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은 얼핏 보면 마음과 몸이 하나로 연결된 듯한 말인 척하고 있지만 행동이 뜻대로 안 될 때 그것은 결국 인지를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평화적이지 않다. 사회 곳곳에 만연하게 퍼진 몸에 관한 정상성 판타지를 떠올려 보자. 주름, 흰머리, 미적이지 않다고 여겨지는 각 신체 부위의 생김새. 외부가 정해놓은 범위 안에 들지 않으면 평화로울 수 없는 상태로부터 나는 식민지성을 읽는다. 그리고 그 감각은 장애인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가시화되지 않은, 혹은 사회가 적극적으로 비가시화하려는 몸과 목소리들. 나 또한 피상적으로만 아는 어떤 몸에 관해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그렇다면 평화는 반드시 외부에서 오는가? 이런 질문이 가능할 텐데 나는 이 질문에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는 무책임한 답변밖에 할 수가 없다. 자신의 영혼과 몸을 분리해서 보지 않으려는 일은 개인의 수련을 통해 가까워질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결국 사회가 지속해서 이데올로기를 부과한다면 끝나지 않는 충돌을 개인이 막을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태생부터 들어맞지 않았거나 나이가 들며 변화 중인 몸의 상태를 ‘나’로 받아들이는 일이 내 경우에는 스스로 몸을 관찰하고 직시하려는 노력과 『살갗 아래』 등과 같은 다양한 몸에 관한 타인의 경험을 쓴 글을 읽고 나의 글을 쓰는 과정에서 비록 미진하지만 가능해졌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런 기회나 여유나 동기가 주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의 「맹장」, 「피」, 「담낭」 등은 몸이 역사적·문화적 계급으로부터 결코 독립적일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피부」, 「귀」 같은 글은 몸을 묘사하는 글이 도달할 수 있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데, 이를 통해 자기 몸의 생김새나 감각에 치밀하고 섬세하게 관여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다. 「창자」, 「자궁」 같은 글을 통해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것에 관한 이야기가 발생시키는 진폭이 인상적이라고 느꼈다. 개인적으로는 잇몸이나 혀 등 입안의 피부에 관한 글을 써보고 싶어졌다. 책에서는 예민한 기관으로 「코」를 다루는데, 또 다른 예민한 기관으로서의 입안은 이것이 탐닉의 기관이기도 하므로 발견할 수 있는 지점이 있으리라.
나는 이 시점에 다시 한번 이 세계로의 연결됨, 연루됨을 이야기하고 싶다. 타인의 경험에서 실마리를 찾고 그것을 나의 경험과 방식으로 재구성, 재맥락화하는 일이 어떻게 나를 살게 했는지 다시금 헤아린다. 그리고 내가 뱉은 말과 남긴 글과 취한 행동이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울 수 없는지 또한 주의를 기울여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것이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을 넘어서 그 자체로 나인 몸과의 깊은 대화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이 책을 경유해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