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이 최순실보다 나쁘다> 출판 기념회 특별 강연



*** 김수영의 ‘눈’

오늘 저는 최인호와 파란장미 시민들이 함께 쓴 <<김어준이 최순실보다 나쁘다>> 출판 기념회를 맞이하여 이 책 240쪽에 실린 시 한 편을 읽는 것으로 본 출판 기념회의 특별 강연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김수영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 그리고 눈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라는 말이 나옵니다. 새하얀 눈은 바로 이 ‘괴이한’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영혼과 육체를 말하는 게 아닐 것이고, 죽음을 불사하고 자기를 던지는 고귀한 영혼과 육체를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감히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입니다. 무릇 땅 위의 생명은 자신이 불멸의 존재가 아니며 언젠가 사멸할 것임을 잊지 않고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늘은 감히 죽음을 잊어버리고, 곧 죽는지도 모르고, 불멸의 존재인 듯 세상을 업수이여기고 세상을 더럽히며 사는 것들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눈이, 망할 놈의 눈이 ‘새벽까지’ 내립니다. 망할 놈의 새하얀 눈이 ‘죽음을 잊어버린’ 망할 놈의 ‘영혼과 육체’를 위해 ‘밤새도록’ 내리면서 그들의 추악함을 덮어줍니다. 그래서 시인은 젊은 시인들에게 요구합니다.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고 합니다.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고 합니다.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고 합니다. 그래서 김수영 시인의 말씀을 받들어, 이 책을 쓰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책은 서초동 촛불 시민들의 가슴에 고인 가래를 새하얀 눈 위에 뱉는, 그런 책입니다.


*** <<비극의 탄생>> 출간에 대하여

이 책과 같은 날 출간된 중요한 책이 있습니다. 고 박원순 시장님의 무고함을 밝히려는 <<비극의 탄생>>입니다. <<김어준이 최순실보다 나쁘다>>와 함께 베스트셀러 목록 상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기쁜 일입니다. 두 책 모두 ‘밤새도록 시대를 짓누르며 쌓여 있는 새하얀 눈’에 가래침을 뱉는 책입니다. 죽음을 잊어버린 채 난동을 일삼으며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는 오만방자한 두 존재, ‘페미니스트’와 ‘털룰라’에 맞서는 두 책이 <<비극의 탄생>>과 <<김어준이 최순실보다 나쁘다>>입니다.


‘페미니즘’이라는 외견상 아름다운 이름의 방패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만인의 인권을 찍어누르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살벌한 기세등등함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숨 죽인 채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비극의 탄생>>의 출간은 이 땅에 더 이상의 ‘비극’이 벌어지는 것을 거부하는 용감한 목소리의 탄생이기도 합니다. <<비극의 탄생>>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면 좋겠습니다.


*** ‘비극’이냐 ‘소극’이냐

그러나 <<김어준이 최순실보다 나쁘다>>는 ‘비극’이라는 말로 우리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 책은 차라리 그 반대말인 ‘소극’(Farce)을 써야만 수많은 촛불 시민들이 경험한 사태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극’이라는 말과 ‘소극’이라는 말을 함께 언급하다 보니, 마르크스의 유명한 문구 하나를 여기에 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헤겔은 어디선가 모든 위대한 세계사적 사건들과 인물들은 말하자면 두 번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소극으로.” (칼 마르크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비극’은 사람들에게 ‘적절한 쾌’(oikeia hēdonē), 즉 카타르시스(catharsis)를 줍니다. 거대한 인물들이 서로 얽히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핏빛 죽음들을 목도하며 생기는 연민과 공포, 그 과정의 필연성을 인식하면서 생기는 감정적 정화를 말합니다. 저는 서초동 촛불 시민들이 ‘검찰 쿠데타’에 맞서며 경험한 좌절과 패배, 허무와 허탈, 쓰라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조국 장관 일가의 고난을 ‘비극’으로 바라보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렇기에 이 책 <<김어준이 최순실보다 나쁘다>> 6장 <누가 정경심을 감옥에 가두었나?>는 유튜브 채널 <알릴레오>의 2019년 결산 방송을 다음과 같이 비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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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이 나쁜 짓 꾸몄다’라는 폭로에 머무는 게 아닙니다, 이 책은. 간단하잖아요, 사실은. 얼마나 간단합니까?

자기 직속 상관이 임명되는데, 대통령이 그 사람을 임명하는 데에 불만을 품은 부하 공무원이 딴 게 안 되니까 장관 딸 표창장 건으로 장관 아내를 구속시킨 사건이에요.

얼마나 간단한 사건입니까? 있을 수 없는 사건 아닙니까? 뭔 놈의 그리스 비극이에요? 그 뻔한 거를 자꾸 진영 논리니 뭐니, 위대한 대통령, 인사를 잘못할 리가 없는 대통령, 이런 식의 말도 안 되는 전제를 훼손하지 않으려고 하니까 말이 길어지고 복잡해지고 ‘개소리’하게 되고 그런 거 아닙니까? 얼마나 간단한 겁니까? 진영이니 정당이니 하는 거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의 시각에서 보면 너무 간단한 거잖아요. 저래서야 되나 싶어서 다 서초동으로 나온 거죠. 이런 간단한 일에 대해서 무슨 정치 9단적인 이야기를 해대냐 이거죠. 세상에 그런 나라가 어디 있어요? 자기 직속 상관 오는 거에 불만 품고 표창장 따위를 찾아내겠다고 온 집안을 온종일 뒤집고 쑤시다가 나오는 게 없으니까 표창장 가지고 장관 아내를 구속 시킨 사건이잖아요. 무슨 다른 보탤 말이 필요해요? 무슨 검찰 개혁의 당위성과 필연성이 국민에게 광범위하게 인식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따위의 소리를 떠들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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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5장 <청와대를 내려다보는 양털>에서는 같은 <알릴레오> 방송에서 논객 유시민의 ‘강제 순교’ 발언과 ‘그리스 고전 비극’ 발언을 비판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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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한 것인가? 유시민의 말 속에서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다.”라는 거시 역사적 견지의 위대한 문장이 연상되지 않는가? 이 문장이 주는 ‘심상’에 슬쩍 기대서 눈앞의 엄정하고 명백한 현실 — 민간인 가족의 처참한 인권 유린과 노골적인 헌정 질서 유린 사태 — 을 하나의 비극적, 필연적 과정으로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유시민은 김어준의 음험하고 가증스러운 ‘아무 말 대잔치’에 비장미 넘치는 피날레의 무대 장막을 내려준 것이다. 내가 앞서 힘주어 지적한 “부인, 감옥에서 잠깐 지내게. 나는 공수처가 바쁘네. 검경 수사권 조정 된 후에 뵙세.”의 반인권적 사고, 인간에 대해서 ‘닥치고 정치’의 사고와 사실상 다를 바 없는 것이다. 허공에 휘날리는 깃발에 새겨진 ‘대의’를 위해서 인간이 제물로 바쳐지는 것을 당연시하는 태도가 두 사람 모두에게 배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그것은 그들의 진심이 아니라 그들의 양심과 그들의 능력으로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사태를 억지로 설명하고 그 안으로 도피하기 위해 그들이 짜내고 만들어낸 허위의 서사 구조일 뿐이다. 이런 식의 서사 구조를 발상하는 정서가 이른바 ‘민주 진보 진영’에 팽배해 있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소중한 사람들이 피 흘리고 죽어간 것이고, 그 와중에도 민주당이라는 정당은, 민주와 진보를 표방하는 정치 세력은 점점 더 커지고 강력해진 것이다. 심청이를 만들고, 순교자를 만들고, 인간을 제물로 바치면서 더욱 커져가는 괴물, 리바이어던(Leviathan)이다. 진정한 민주 시민들은 ‘사람이 먼저다’라는 정신을 말로만이 아니라 자기 삶을 건 실천으로 지켜내고자 한다. 시민들 자신이 괴물 리바이어던에게 식량과 연료를 갖다바치는 그런 가련한 존재가 되는 역사를 이제 끊어내기 위해서 이 책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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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바위에 속절없이 당한 쓰라린 코미디

서초동 촛불 시민들이 지난 시간 동안 겪은 사건들에는 그리스 고전 비극에서처럼 거대한 인물들의 필연적 대서사로부터 느낄 수밖에 없는 연민과 공포, ‘적절한 쾌’, 카타르시스 따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보다 못난 하찮고 조잡한 인물들의 야바위 짓거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속절없이 속아버린 어처구니없는 소극, 그 소극 속에서 펼쳐진 민간인 가족의 쓰라린 고통과 수난, 그 소극의 우스꽝스러움과 추잡함을 감추기 위해 동원된 추악한 하얀 언어들의 광란 …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폭로하고 묘사하는 데 ‘희생양 박해와 서초동 십자가’ 같은 우아한 흰눈의 언어를 쓸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비극인 듯 비극 아닌 비극 같은 거지 같은 상황에 제대로 가래를 뱉는 제목으로 <<김어준이 최순실보다 나쁘다>>를 채택한 것입니다.


*** 거지 같은 경우를 거지 같다고 말할 자유

그리고 이 책의 6장 마지막에 저는 쉽고 분명하게 다음과 같이 이 책의 출간 이유와 의의를 토로했습니다.


우리에게는 거지 같은 경우를 거지 같은 경우라고 말할 권리와 자유가 있습니다. 이것은 두 번째 문제인데요. 두 번째 문제는 정경심 교수뿐만 아니라 ‘나’의 권리와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당해서 제가 말하는 겁니다. 거지 같은 경우를 거지 같은 경우라고 말할 권리와 자유를 박탈당해 왔어요. “모르겠고, 이건 거지 같은 경우다.”라고 말할 나의 권리와 자유를 찾겠습니다, 저는. 그게 이 책을 쓰는 이유입니다. 무슨 다른 어려운 말이 필요해요? 거지 같은 경우라는 말 한 마디로, 다 설명되는 거잖아요. 그 말 한 마디면 서로 다 아는 거죠. 모두가 뜨끔해지는 말이죠. 이 말 한 마디로 모든 현실을 다 설명할 수 있는 것이죠. 안 그렇습니까?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뭘 잘못했는지, 그 말이 다 담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말을 할 권리와 자유를 여러분들과 제가 침해당했어요, 지난 시간 동안. 진영의 승리를 위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시민의 소중한 권리를 짓밟고 유린한 겁니다, 그들이, 시민을 바보로 만들면서. 그 권리와 자유를 찾아야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떳떳하고 정당한 겁니다. 그래서 한국의 정치적 정신사에 새로운 획을 긋는 작은 디딤돌이라도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민주’와 ‘진보’를 내세우는 자들에 의해 이렇게 인권이 유린되는 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습니다. 중단되어야 해요.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서 조직 내에 생긴 성희롱, 성폭력 사건을 묵살한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아요. 인권이라는 말을 가슴으로 느끼면서 말하지 않던 … 진영의 인권밖에 없고 순수한 인권은 없는 … 진영적 필요에 따라서 인권이라는 단어를 내세우면서 투쟁했던 그런 우리였다고 우리를 반추하기 싫다면, 인간을 위한 인권, 모두를 위한 인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우리라고 말하려면, 이 잘못된 흐름을 끊어야 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 마치며 ...

더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기를 바라며 출판 기념회 특별 강연을 마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